망겜의 스킬 줍는 방랑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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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현파
작품등록일 :
2024.07.28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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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2)

DUMMY

“...수도?”


간단하게 요약된 내 설명을 들은 아르젠시아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그래. 아무래도 그쪽이 가장 확실할 것 같아서 말이야.”

“...그렇긴 하지.”


천천히 끄덕여지는 고개. 하지만 아르젠시아의 얼굴에는 약간의 찜찜함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섣불리 접근했다가는 위험할 수도 있어. 자칫하면 국왕의 자리를 건 암투에 휘말리게 될 수도 있으니. 아무리 당신이라도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맞는 말이긴 했다.


아라하드 네크로폴리스의 음모와는 별개로, 현재 왕국의 수도에서는 두 명의 왕자가 곧 비워질 왕좌를 두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을 테니까.


물론 대놓고 수도에서 전투를 치르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개인이 전부 틀어막을 수 있는 흐름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다.


정치적 견제나 암살 시도, 혹은 밑의 세력으로 치르는 대리전과 같은 것들이 난무하고 있겠지.


나 혼자서 그러한 흐름에 맞설 생각은 없었다. 단지 아라하드 네크로폴리스를 상대하기 위해 둘 중 한쪽을 이용할 생각이었을 뿐이었다.


게다가.


왕국의 유력한 귀족들과 그들을 모시는 기사들이 모여있을 수도. 그리고 그곳에서 벌어질 싸움들은.


‘나에게는 큰 기회나 다를 바 없다.’


큰 판일수록 마주할 시체들의 능력 또한 상당할 터.


스스로의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충분한 실력을 갖춘 상태에서의 수도행은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기회였다.


물론 이런 세세한 생각을 모두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아라하드 네크로폴리스의 사악한 음모를 저지하고, 왕국이 무너져 그 혼란의 파도가 이곳 카블락까지 들이닥치는 것을 막는다는 자체만으로도 명분은 차고 넘쳤으니까.


따라서 나는 긴 설명 대신 피식 웃으며 아르젠시아의 말을 받았다.


“걱정해주는 건가?”

“동업자로서의 염려라고 해두지. 카론 당신 덕분에 우리 길드의 이름값이 꽤 올라갔거든. 그리고...”


약간의 머뭇거림 끝에 살짝 틀어진 말.


“...너처럼 실력 있는 인간은 쉽게 찾기 힘드니 말이야.”

“명심하지.”


나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내 말을 들은 그녀는 옅은 한숨을 푹 내쉬며 앞으로의 일정을 정리했다.


“그럼 나는 둘의 자금줄과 협력 귀족들을 조사해보지. 수도 바깥을 드나드는 경우가 잦을 테니, 파보면 뭐라도 나올 거야.”

“좋은 생각이군.”

“아, 그리고 이거 받아.”


아르젠시아가 내민 것은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울퉁불퉁한 작은 구슬. 약간의 마력이 어려 있는 것으로 보아, 뭔가 특별한 기능이 있는 듯했다.


“알카루스 공방에 부탁해 특수 제작한 물건이야. 보다시피 한 쌍으로 이루어져 있지.”


그녀가 이윽고 꺼낸 다른 구슬. 서로 다른 두 개의 구슬이 공명하듯 반짝거렸다.


두 개가 딱 맞아떨어지는 아귀. 원래는 하나였던 것처럼 보였다.


“...”


나는 각자의 손에 하나씩 들린 구슬과 아르젠시아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잠깐의 침묵. 이내 헛기침을 한 그녀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먼 거리에서도 음성을 전달할 수 있는 마도구다. 물론 거리의 제한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알카루스는 이곳과 수도 정도의 거리는 문제없을 거라고 자신하더군.”


음성 메시지 전달이라. 꽤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도구였다.


알카루스 공방이 꽤 쓸 만한 물건을 만들어낸 모양.


“물론 주의해야 할 점은 있어. 각각 한 번씩 마력을 소모하면 두 개가 다 부서지니, 대단히 중요한 정보를 전달할 때 사용해야겠지.”


각자 단 한 번만 쓸 수 있는 건가. 뭐, 그래도 없는 것보다야 나을 터였다.


어쨌든 그녀가 바깥에서 결정적인 무언가를 알아낸다면 그 즉시 나도 알게 될 수 있을 테니.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고.


“...무슨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니 오해하지는 말고.”

“아무 생각도 안 했는데.”


설명이 끝난 후에 서둘러 덧붙인 말. 나는 그녀에게 가볍게 대꾸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나중에 보자고.”


크게 준비할 것은 없었지만 서두르는 편이 좋을 듯했다.


수도 바이에르타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 가지의 음모들이 뒤섞여 벌어지고 있을 테니까.


***


아르젠시아와의 대화를 마친 나는 곧바로 도시를 벗어났다.


말을 타고 달려간다고 해도 수도까지는 꽤 먼 길. 평범한 속도로 따지면 일주일은 족히 걸리는 거리였다.


물론 말을 타고 빠른 속도로 가로지르는 내 앞을 가로막는 것들은 없었다.


혹시라도 일어날지 모를, 쓸데없는 시간 지체를 피하기 위해 몇몇 도시는 들리지도 않고 통과했으니까.


그렇게 평원과 강, 숲을 가로지른 지 사 일째 되는 날. 내가 잠시 멈춰 선 곳은 한 작은 마을이었다.


내가 이곳에 들른 이유는 하나. 어제 잠깐의 재정비를 위해 들른 소도시에서 들은 소문 때문이었다.


‘밤이 되면 시체가 걸어 다닌다던데.’

‘마을 사람들도 모두 사라졌다더군.’

‘병사들이 아까 우루루 몰려가던데. 거기에 진짜 무슨 일이 벌어지긴 한 모양이야.’


어쩐지 익숙한 종류의 소문이었다.


무덤가의 구울. 이전에 내가 처음 네크로폴리스의 흔적을 마주했던 곳과 유사한 사건. 아니, 거의 똑같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이곳에는 나와 같은 인물이 제때 도착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들어선 마을. 안쪽에는 근처 도시에서 파견된 것으로 보이는 병사들이 한창 뒷수습을 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뒷수습이었다.


이미 마을은 초토화된 상태였으니까.


마을 곳곳에 널브러진 시체. 약초 물에 적신 천을 입가에 두른 병사들이 그것들을 마을 중앙으로 실어나르고 있었다.


깊게 구덩이를 파놓은 것으로 보아 모두 한꺼번에 불태우려는 모양. 나름 정석적인 대처였다.


주민 모두가 죽음을 맞이한 마을. 비전 시야를 켠 내 시야에도 흑마법사의 기척은 잡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곳을 이렇게 만든 녀석은 이미 이곳을 떠난 듯했다.


“어이, 거기 뭡니까?”


한창 작업 중인 병사들 근처로 다가가자 병사들 중 계급이 높은 것처럼 보이는 이가 나를 향해 소리쳤다.


나는 상대를 가볍게 훑어보았다.


귀족이나 기사는 아니다. 아마 이곳의 뒷수습을 위해 파견된 병사들의 조장쯤인 모양.


병사들에게 작업을 지시하던 것을 멈춘 조장이 얼굴을 찌푸리며 나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근처를 지나가던 용병이오.”

“...용병이라. 그런데 여긴 왜 들른 거요?”


약간은 의심이 담겨 있는 표정. 그가 경계 어린 기색을 보이자 몇몇 병사들이 시체 나르는 것을 멈추고 창을 치켜들었다.


나는 오른손을 검 손잡이 위에 가볍게 올려놓은 채 금패를 꺼내 병사들을 위협, 아니 안심시켜주었다.


“...음. 실례했군.”


반짝이는 금빛에 조금 움찔하며 물러선 병사들. 기사만큼은 아니어도, 금패 용병은 말단 병사들이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흠흠. 헛기침을 하며 내 눈치를 슬쩍 본 조장은 어깨를 으쓱이며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


“기분 나빴다면 사과드리지. 보다시피 여기 꼴이 말이 아니어서 우리가 좀 예민한 상태입니다.”

“범인이 아직 잡히지 않았나 봅니다.”


후. 내 말에 입가를 답답하게 가리고 있던, 약초 물로 젖은 천을 내린 사내가 씁쓸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가로저었다.


“범인은커녕, 이 빌어먹을 마을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겠소. 소문이야 무성한데, 직접 본 이는 없으니 원.”


아마 이런 경우를 직접 겪어본 것은 처음인 모양이다. 특히 이곳은 수도 근처였으니.


하기야. 시체가 살아 돌아다니며 산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은 아니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인원은? 사라진 이들은 없습니까.”


혹시나 이전 마을처럼 납치된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건넨 질문.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조금 의외였다.


“없는 것 같은데. 대충 세어보니 인원수는 맞더군. 모두 죽어버렸지만.”


사라진 사람은 없다라. 나는 고개를 슬쩍 들어 구덩이 속의 시체들을 살펴보았다.


생기가 사라져 비쩍 마른 시체. 몸 곳곳에 가득한 상해의 흔적. 완전히 죽은 지 며칠이 지난 건지, 희미하게라도 빛을 발하고 있는 시체는 없었다.


안타깝지만, 이런 참상을 만들어낸 흑마법사가 이미 이 마을을 떠났다면 병사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시체와 마을을 태워 이곳에서의 일어난 비극의 흔적을 지우는 것밖에는.


“어이, 이제 태워! 나머지 시체는 불 꺼지면 다시 옮기고!”


그리 깊게 파지는 않은 탓에 금방 찬 구덩이. 조장이 병사들에게 크게 소리쳤다.


촤악. 지시를 들은 몇몇 병사들이 구덩이에 기름을 부었다. 이윽고 타오르는 불길.


나는 매캐한 검은 연기를 바라보았다. 하늘 위로 솟아 희미하게 사라지는 연기가, 마치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경고의 뜻처럼 보였다.


***


물론 이 작은 마을에서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한 건 아니었다.


나는 혹시 모를 흔적이 있을까 싶어 나머지 시체를 옮기는 일을 도와주었고, 그 결과로 꽤 쏠쏠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전투? 이 근처에서 말입니까?”


물론 이 마을을 덮친 사건에 대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어찌 보면 지금 당장은 그것보다 훨씬 유용한 정보였다.


“그렇소. 우리도 오늘 아침에 소식을 전달받았으니, 이제 슬슬 끝나가고 있겠군.”


그건 바로 수도 근처에 자리 잡은 영주들간의 전투.


대략적인 설명을 들으니, 각각의 기사와 사병들을 꽤 커다란 규모로 동원한 싸움인 모양이었다.


겉으로야 명예니 모욕이니 하는 구실을 갖다 붙였지만, 실상은 왕위 쟁탈전의 연장이었다.


“기사나 귀족이 없으니 하는 말이지만, 양쪽이 각각 다른 왕자를 지지했다는 걸 모르는 이는 없지.”


단순한 이야기였다.


왕이 위독한 지금, 1 왕자와 2 왕자는 모두 수도에서 곧 다가올 임종을 지키기 위해 자중하고 있는 상황.


따라서 대놓고 수도에서 난리를 피우며 상대방을 공격할 수는 없었지만, 대리전은 얼마든지 치를 수 있었다.


아마 눈앞의 조장이 말한 근처의 전투 역시 각 진영의 수장인 왕자들의 암묵적 동의 아래 이루어졌을 터.


“뭐, 어쨌거나 그 근처는 피해 가시라고 알려드리는 거요. 아무리 금패 용병이라도 기사 나으리들이 벌이는 싸움에 휘말리면 살아남기 힘들 테니까.”

“...음.”


나는 조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시체 몇 구 나르는 것을 도와준 것 치고는 상당히 친절하고 귀중한 대답이었다.


“그러지. 그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아야겠군. 정보 고맙소.”


굳이 상대가 준 도움을 대놓고 거절할 이유는 없었기에 건넨 말.


하지만 당연히, 내 마음은 그와 정반대였다.


기사들이 여럿 참전한 전투가 근처에서 벌어졌고, 심지어는 거의 끝나간다라.


슬쩍 들러서 상황을 살피다가, 시체의 빛을 흡수하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터였다.


소문의 찝찝함을 놓치지 않고 이 마을을 찾은 데에서 비롯된 행운.


나는 조장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넨 뒤 다시 말에 올라탔다.


역시 수도 근처에 오니까 벌써부터 무언가가 굴러들어오는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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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왕위 쟁탈전 (2) NEW +10 11시간 전 4,834 237 14쪽
51 왕위 쟁탈전 (1) +19 24.09.17 10,653 407 13쪽
50 수도 (6) +19 24.09.16 12,069 447 12쪽
49 수도 (5) +15 24.09.15 12,601 458 12쪽
48 수도 (4) +24 24.09.14 12,931 493 11쪽
47 수도 (3) +22 24.09.13 13,494 501 12쪽
» 수도 (2) +14 24.09.12 14,348 447 11쪽
45 수도 (1) +16 24.09.11 14,722 477 11쪽
44 흑마법사 +25 24.09.10 14,714 532 12쪽
43 수도의 감사관 +15 24.09.09 15,148 472 12쪽
42 들판의 배회자 (4) +10 24.09.08 15,514 473 12쪽
41 들판의 배회자 (3) +21 24.09.07 15,633 519 11쪽
40 들판의 배회자 (2) +21 24.09.06 16,134 494 11쪽
39 들판의 배회자 (1) +12 24.09.05 17,039 484 12쪽
38 영지전 (6) +18 24.09.04 16,759 558 13쪽
37 영지전 (5) +21 24.09.03 16,529 573 11쪽
36 영지전 (4) +13 24.09.02 16,984 521 12쪽
35 영지전 (3) +16 24.09.01 17,061 546 11쪽
34 영지전 (2) +16 24.08.31 17,412 534 12쪽
33 영지전 (1) +21 24.08.30 18,331 514 12쪽
32 숲의 거미 (2) +24 24.08.29 18,510 530 12쪽
31 숲의 거미 (1) +19 24.08.28 19,242 560 11쪽
30 복귀 +16 24.08.27 20,008 563 12쪽
29 대화 (3) +14 24.08.26 19,846 613 12쪽
28 대화 (2) +10 24.08.25 19,946 567 11쪽
27 대화 (1) +14 24.08.24 21,005 588 12쪽
26 기사의 자격 (3) +17 24.08.23 21,136 581 12쪽
25 기사의 자격 (2) +15 24.08.22 20,480 596 12쪽
24 기사의 자격 (1) +23 24.08.21 21,412 623 15쪽
23 지하 수로의 암살자 (3) +15 24.08.19 20,948 591 14쪽
22 지하 수로의 암살자 (2) +12 24.08.18 21,489 584 12쪽
21 지하 수로의 암살자 (1) +17 24.08.17 22,474 593 10쪽
20 베리드 용병단 (3) +13 24.08.16 22,100 628 11쪽
19 배리드 용병단 (2) +10 24.08.15 21,999 601 11쪽
18 베리드 용병단 (1) +10 24.08.14 22,982 609 11쪽
17 리베르 상회 (3) +11 24.08.13 23,187 621 11쪽
16 리베르 상회 (2) +12 24.08.12 23,602 622 10쪽
15 리베르 상회 (1) +14 24.08.12 25,083 608 11쪽
14 포겔스 마을 (2) +15 24.08.10 24,232 666 11쪽
13 포겔스 마을 (1) +16 24.08.09 25,193 663 11쪽
12 접촉 (2) +17 24.08.08 25,772 672 11쪽
11 접촉 (1) +8 24.08.07 25,542 664 11쪽
10 트롤 (3) +13 24.08.06 25,545 679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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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트롤 (1) +12 24.08.04 26,489 695 10쪽
7 대도시 카블락 +23 24.08.03 26,665 706 12쪽
6 이동 (2) +20 24.08.02 27,299 741 10쪽
5 이동 (1) +22 24.08.01 28,100 734 11쪽
4 마땅한 값 (2) +24 24.07.31 28,683 764 13쪽
3 마땅한 값 (1) +13 24.07.30 30,098 756 9쪽
2 기사 +23 24.07.29 32,233 771 10쪽
1 특전 +15 24.07.29 37,279 69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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