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겔스 마을 (2)
콰직.
날카롭게 떨어져 내린 내 검이 녀석의 볼을 스치며 땅에 틀어박혔다.
“...!”
자신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은 녀석이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비, 빌어먹을. 워, 원하는 게 있다고 하지 않았나!”
마지막 순간. 나는 녀석의 머리를 날려버리는 대신 검을 살짝 비틀었다.
다른 뜻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내가 가져갈 것이 녀석의 목숨임은 분명했지만, 단지 그 전에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
“배후가 누구냐.”
나직한 물음. 내 말에 녀석의 눈이 흔들렸다.
일으킨 구울의 상태, 그리고 형편없는 전투 능력으로 미루어보아 눈앞의 이 녀석은 혼자서 독단적으로 이런 비술을 개발하고 발전시켰을 가능성은 낮았다.
아직은 어둠 속에 숨어 때를 기다리며 숨을 죽이고 있는 흑마법사 무리들이 대부분인 지금은 더더욱.
분명 해당 임무를 내린 배후가 있을 터.
“...”
내 질문에 녀석이 입술을 깨무는 것이 보였다.
충성, 혹은 의리는 지킨다는 건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가볍게 움직였다.
“크헉─!”
검 끝에 꿰뚫린 나머지 한쪽 팔. 사내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때 무언가가 보였다. 고통에 몸을 비트는 녀석의 목덜미 부근에 새겨진 검은 뱀 문신.
‘낯이 익은데.’
어디선가 본 듯한 문양. 하지만 곧바로 떠오르지는 않았다.
어둠 속에 존재하는 단체나 집단의 수는 매우 많고, 나라고 해서 그 모든 비밀을 알고 있지는 않았으니까.
“자, 잠깐만!”
그때 다급하게 입을 여는 사내. 부들부들 떨던 녀석의 눈에는 분노가 아닌 두려움이 가득 차 있었다.
“나, 나도 조직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어디까지나 여러 번 거친 명령을 받았을 뿐. 시체들을 시작으로─”
충성 따위보다는 자신의 목숨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듯한 사내가 막 이야기를 털어놓으려던 순간.
꿈틀.
녀석의 목덜미에 새겨진 검은 뱀이 미동했다.
땀과 피에 젖은 채 부들거리는 사내의 움직임 때문에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그저 문신처럼 새겨져 있던 뱀이 천천히 꿈틀거리고 있었다.
녀석은 자신의 목에 새겨진 문신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듯했다.
스륵.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인 뱀이 이빨을 쩍 하고 벌렸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
콰득. 녀석의 두 송곳니가 사내의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커헉...!”
그제서야 뭔가 이상함을 느낀 사내가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잘 움직이지 않는 손으로 자신의 목덜미를 더듬었지만 잡히는 것은 없었다.
“으, 으으...!”
새까맣게 물들기 시작하는 얼굴.
콰득, 콰득. 뱀의 이빨이 살갗을 꿰뚫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느껴지는 불쾌한 기운.
나는 미간을 좁혔다. 저주의 일종인가.
“크헉, 끄어어어...”
전투가 끝나고 조용한 무덤가. 끔찍한 고통에 몸부림치며 버둥거리는 사내의 신음만이 울려 퍼졌다.
이내 다시 찾아온 적막. 나는 끔찍한 몰골로 숨을 거둔 사내를 내려다보았다. 녀석의 목숨을 거둔 뱀 문신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다소 과격하고 끔찍한 입막음. 듣지 못한 대답.
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검은 뱀 문양이 상징하는 집단이 어디인지.
‘아라하드 네크로폴리스.’
3년 후 미래. 어둠 속에서 일어나 대륙의 남부와 중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들 중 하나.
‘지금 시점에서도 이런 흔적을 남기고 있었군.’
뜻하지 않은 정보를 알아낸 나는 생각에 잠겼다.
물론 내가 처리한 것은 녀석들의 끄나풀 중 하나일 터. 아마 놈들은 지금쯤 남부의 지하 어딘가에 숨어서 때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전쟁으로 대륙이 혼란스러워지기만을 기다리면서.
“...”
하지만 그 기다림이 녀석들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녀석들이 그림자 아래에 숨어 상황을 주시하고 있듯, 나 역시 조용히 힘을 기르고 있었으니까.
그것도 그 누구보다 빠르게.
나는 선명한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는 시체에게 손을 가져다 대었다.
-기본이 선행되지 않은 새로운 분야이기 때문에 흡수가 불안정합니다. 계속하시겠습니까?
떠오른 문구. 물론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마법, 혹은 저주라는 아예 새로운 분야를 일부나마 습득할 수 있는 것은 쉽게 마주하기 힘든 기회였으니까.
나는 시체에서 흘러나오는 빛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미량의 마나를 흡수합니다.
-하급 저주, ‘맹독 연기’를 흡수합니다.
-‘비전시야(하급)’를 흡수합니다.
주르륵 떠오르는 글자들. 나는 눈을 깜빡였다.
‘상당한데?’
머릿속을 파고드는 지식들. 아무런 기반 지식도 없었던 분야인 탓에 약간의 두통이 밀려 들어왔지만,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이제 기반이 마련되었으니, 다음번에 비슷한 계열의 적을 쓰러뜨린다면 더욱 효율적인 흡수가 가능할 테니.
나는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흘러들어온 다량의 지식을 정리했다.
우선 새로 흡수한 미량의 마나.
지금껏 수도 없이 마나 호흡을 해도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만 오르던 체내의 마나가 확 체감될 정도로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이런 시체나 만지는 하수인도 마법사는 마법사라는 건가.’
이 정도면 마나를 바탕으로 펼치는 기사의 검술이나 체술을 한결 오래 유지할 수 있을 듯했다.
물론 하급 저주, ‘맹독 연기’와 같은 것도 전투에서는 상당히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터였다.
조금 전 녀석을 쫓는 과정에서 나를 향해 뿜어졌던 독무. 내가 뛰어난 반사신경과 트롤에게서 얻은 재생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더라면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비전 시야.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나는 자연스럽게 체내의 마나를 움직여 해당 스킬, 그러니까 마법을 사용해 보았다.
화악. 계속해서 주변을 주시하고 있었음에도 마치 오래 눈을 감고 있었다 뜬 것처럼 주변이 한결 새롭게 느껴졌다.
훤히 들여다보이는 캄캄한 어둠 속.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많은 마법사들이 익히고 있는 비전 시야의 효과는 단순히 밤눈이 밝아지는 것뿐이 아니었다.
‘...저건가.’
근처에 남아있는 마나의 흐름.
무덤, 그리고 시체와 이어진 희미한 마법의 잔향이 남긴 기류가 보였다.
물론 보다 뛰어난 실력의 마법사가 작정하고 숨긴 흔적은 볼 수 없겠지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건 바로 능력을 흡수한 장본인이 남긴 잔향.
나는 그 희미한 기류를 훑었다. 예상대로 녀석이 머무르던 곳은 여기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모양.
비전 시야를 유지한 채로 흔적을 따라간 나는 어렵지 않게 녀석의 은거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주인이 죽으며 은신 마법이 풀려 드러난 작은 동굴. 혹시나 남아있는 구울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검을 움켜쥔 채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밤중에 들어서는 동굴 내부. 매우 어두웠지만 비전 시야 덕분에 횃불 따위는 필요 없었다.
물론 임시로 파견되어 언제든 버려질 수 있는 끄나풀의 거처인 만큼 귀중해 보이는 것은 없었다.
은화 몇 푼과 녀석이 직접 보고를 위해 작성한 듯 보이는 낡은 책 한 권. 그리고.
“...빌어먹을.”
동굴의 안쪽. 눈앞에 드러난 것들을 본 나는 작게 욕설을 중얼거렸다.
“끄어어...”
쌓여 있는 시체 더미.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고통스러운 신음.
지금까지 사라진 마을 사람들이었다.
물론 무덤가의 구울들처럼 나를 향해 공격을 해오지는 않았다. 아니, 애초에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다양한 종류의 실험을 거친 듯, 수십에 달하는 시체는 이미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으니까.
“...”
입술을 깨문 나는 옆쪽에 놓인 낡은 책자를 집어 들었다.
조금 전 끔찍한 고통 속에서 숨을 거둔 녀석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내용.
사락. 빛 한점 없는 어둠 속에서 페이지를 넘긴 나는 그것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죽은 지 오래된 시체를 구울로 일으키는 것은 쉽지만, 살아있는 사람을 구울로 만드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하지만 본단의 비술을 개량시킨다면...’
사락.
‘실험 4일 차. 역시나 실패다. 마나 한 점 가지고 있지 않은 농민 따위에게도 잘 먹혀들지 않는다. 해당 개체는 폐기.’
‘실험 17일 차. 이성을 없애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불안정하다. 채 1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내렸다. 해당 개체는 폐기.’
나는 빠르게 종이를 넘겼다. 폐기, 폐기, 폐기.
녀석은 끝내 실험을 성공시키지 못한 모양이었다. 눈앞의 결과물이 그걸 증명해주고 있었다.
책을 빠르게 읽은 나는 그것을 품속에 집어넣은 채 동굴을 훑었다.
놀랍지는 않았다. 적어도 나에게는 익숙한 광경이었으니까.
다만 익숙한 혐오감이 느껴졌을 뿐.
“...”
살아있는 사람은 없다. 되돌릴 수 있는 방법 따위도 없었다.
다만 이들의 고통을 끝내줄 수 있는 방법은 있었다.
나는 품속에서 알카루스 공방의 단검을 꺼내 들었다.
화륵. 이내 간단하게 붙는 불.
나는 무덤가에서 밤까지 시간을 보내며 몸을 데울 겸 여관에서 담아온 싸구려 증류주를 시체 위에 흩뿌렸다.
그리고 단검을 작게 휘두르자, 그 끝에서 떨어져 나간 불꽃이 시체에 불을 붙였다.
화륵. 타오르는 불길. 나는 그 광경을 짧게 눈에 담은 후, 이내 매캐한 연기가 솟아오르기 시작한 동굴을 빠져나왔다.
서서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
“...허. 이거 뭐라고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할지.”
날이 밝은 마을. 나는 다시 여관으로 돌아가 마을 사람들에게 간밤의 일을 알렸다.
사람들을 납치했던 흑마법사의 거처를 발견하고 녀석을 처리했다는 설명.
물론 모든 것을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들어봤자 좋을 것도 없었고, 일반 농민들이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으니까.
증거야 차고 넘쳤다.
처참하게 숨을 거둔 흑마법사와 무덤에서 기어 나와 나에게 쓰러진 시체들. 그리고 불이 어느 정도 사그라든 동굴도 남아있었으니까.
“...자네가 아니었다면 몇 달 내에 마을 사람들 모두가 당했을지도 모르겠구먼.”
마을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실종 사건이 끝났음을 알게 된 이들의 얼굴에는 안도감이 깃들었다.
“카론님이라고 하셨습니까.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원하시는 것이 있으면 뭐든 말씀하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마을에서 돈을 모으기로...”
나는 고개를 저으며 촌장으로 보이는 사내의 말을 멈추었다. 당장 더 쓸모 있는 건 따로 있었다.
“보수야 따로 받을 쪽이 있습니다. 그보다는, 마을에 남는 말이 있는지?”
빠르게 돌아가기 위한 수단.
또 길바닥에서 노숙을 하며 며칠 동안 이동할 생각에 문득 떠오른 보상 방안이었다.
“아, 물론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내어줄 수 있다는 사실에 밝은 표정을 지은 촌장이 상태가 좋은 말을 한 필 내어주었다. 아마 이 한 필의 가격 자체도 상당할 터.
감사의 인사를 건네는 마을 사람들과 짧은 인사를 나눈 나는 말을 타고 빠르게 왔던 길을 되돌아왔다.
이전보다 훨씬 단축된 시간. 어느새 저 멀리 카블락의 성벽이 보였다.
깔끔하게 끝낸 의뢰. 빠르고 가벼운 발걸음으로의 귀환이었다. 물론 정보 길드 아르젠시아가 짐작조차 하고 있지 못한 정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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