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타테스터 영주

마물의 숲(3)

“아란 씨가 만들어 준 단검은 뒀다가 어디에 쓰려고요?”

“아..!”

두란은 단검의 효과를 잠시 잊고 있었던 듯하다.

‘하긴 아무리 방어력이 높아도 출혈이 많아지면 움직일 수 없을 테니.’

만약이긴 하지만 트롤이 출현한다면 그 상대는 이샤르의 말대로 두란이 제격이었다.

“그리고 필립이 튼튼한 문을 만들어 준 덕분에 다른 분들은 홉만 신경 써주시면 됩니다.

고블린으론 문을 뚫을 수 없어요.”

짝짝짝-

다들 필립을 향해 박수를 쳤고 필립은 쑥스러운 듯 뒤통수를 긁적였다.

슬슬 웨이브가 다가올 시간이 되자 다들 정해진 자리로 이동했다.

“영주님. 세아 잘 부탁드려요.”

“나도 좀 걱정해 주지..?”

주현의 말에 세현은 툴툴거리며 세아와 함께 목책 밖으로 나섰다.

망루에 자리한 이샤르와 필립, 디그리온 일행과 주연, 모리를 제외하곤 전부 목책 밖에 위치했다.

“몬스터가 보이기 시작하면 때에 맞게 지시하겠습니다!”

이샤르가 외치고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멀리서부터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쿠웅- 쿠웅-

두두두두-

“전방에 몬스터 웨이브 출현! 고블린 기수들이 먼저 접근합니다! 숫자는 열다섯!”

“세아야.”

“네! 아우우---”

세아의 귀여운 하울링에 늑대들은 기수들을 바닥에 내팽개치곤 달아났다.

“세상에.. 혹시 저 아이 은빛 늑대 부족인가요?”

케샤의 질문에 이샤르는 빙긋 웃을 뿐 대답은 하지 않았다.

푹! 푸욱-

늑대에게서 떨어진 고블린들은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홉 둘이 고블린 보병 다수와 함께 접근 중입니다! 그 뒤로 조금 떨어진 곳에 트롤 한 기 출현!

전장에서의 지휘권은 샤쿠에게로 넘깁니다!”

이샤르는 보병의 숫자를 줄이려 활을 쏘며 말했다.

“제가 홉 하나를 처리하고 빠질 테니 나머지 하나를 부탁드려요.”

아란과 라칼이 달려들어 보병들을 밀어내며 길을 열자 샤쿠는 어제처럼 단칼에 홉을 처리해 냈다.

“홉을 일격에..”

디그리온은 흥미롭다는 듯 중얼거렸다.

“두란! 힘 빼지 말고 바로 트롤한테로 가!”

남은 홉에게 달려들려는 두란을 세현이 말렸다.

“하지만..!”

“저 덩치가 목책에 도달하면 문이고 뭐고 소용없어. 빨리!”

두란은 고블린 보병들을 베어내며 홉을 지나쳐 곧장 트롤에게로 향했다.

“아란! 홉의 공격만 받아내 줘! 나머지 분들은 보병들을 부탁해요.”

샤쿠는 전선 뒤에서 기운을 회복하며 말했다.

“아르르르-”

세아는 은빛 늑대 부족의 후예답게 보병들을 손쉽게 줄여나갔다.

푸욱- 푸욱-

세현 역시 창을 다루는데 능숙해져 고블린에게서 창을 빼지 못하는 불상사는 없었다.

투웅- 투웅-

아란은 홉의 묵직한 공격을 방패로 흘리듯 튕겨냈다.

“다들 버텨줘서 고맙습니다.”

샤쿠는 회복이 끝났는지 다시 한번 검을 크게 휘둘러 홉을 베어냈다.

“두란은?”

홉과 고블린 보병들의 정리가 끝나자 세현은 고개를 돌려 두란부터 찾았다.

서걱- 서걱-

두란은 쉼 없이 단검을 휘두르며 트롤의 몸에 상처들을 내고 있었고 트롤은 그런 두란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한 걸음 한 걸음 목책으로 발검을을 옮겼다.

쿠웅- 쿠웅-

“돕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이샤르가 두란을 믿고 맡긴 거니까.. 믿어보죠.”

샤쿠의 말에 세현이 대답했다.

서걱- 서걱-

‘너무 얕다..’

전투에 대해 경험이 적은 세현이 보기에도 트롤의 몸에 나는 상처가 너무 얕았다.

당장 낮의 리자드맨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표피가 단단한 게 분명했다.

“괜찮아요.”

세현의 표정에서 불안함이 드러났는지 세아가 세현의 손을 꼬옥 잡으며 말했다.

“그럼. 괜찮을 거야.”

하지만 목책까지 남은 거리는 겨우 20m 정도였다.

쿠웅-

... 쿠웅-

‘발걸음이 더뎌지기 시작했다..!’

얕은 상처들이 쌓이고 쌓여 출혈이 늘어나자 트롤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두란! 피해!!!”

이대로면 목책까지 도달하지 못할거라 판단했는지 트롤은 목표를 바꿔 두란에게 몽둥이를 휘둘렀다.

후웅-

“허억.. 허억..”

가까스로 트롤의 공격을 피해냈지만 두란은 수 없이 단검을 휘둘러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안 되겠어. 용병단 합류고 뭐고 두란이 위험해..”

세현이 창을 들고 두란에게로 다가가려 했다.

“영주님!!”

두란의 외침에 세현은 발걸음을 멈췄다.

“제가.. 허억.. 허억.. 끝까지! 허억..”

두란은 트롤의 공격을 피하며 계속해서 단검을 휘둘렀다.

“믿어주십시오!!”

-두란이 [사생결단]을 익힙니다-

세현의 눈앞에 알림창이 떴다.

헌데 전과 뭔가가 미세하게 달랐다.

‘분명 처음 단검술을 익혔을 땐 아무 색이 없었는데 왜 이번 스킬은 노란색이지..?’

“우와아!!!”

세현이 알림창에 한 눈 팔려있는 사이 모두가 함성을 질렀다.

숨죽이며 두란을 지켜보고 있던 방금과는 대조되는 상황이었다.

‘무슨 일이야.’

세현이 급히 알림창을 닫자 두란이 기운을 차린 모양인지 트롤을 압도하고 있었다.

서걱- 서걱- 서걱- 서걱-

트롤의 공격을 한 번 피할 때마다 단검을 몇 번씩 휘두르는지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더 놀라운 것은 출혈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트롤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얕은 상처가 아니었다.

“두란! 조금만 더!”

모두가 힘을 모아 두란을 응원했다.

이윽고..

“우워어어어!”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휘두른 일격을 두란이 피하자 트롤은 무릎을 꿇었다.

쿠웅--

“허억.. 허억..”

트롤이 쓰러지자 두란은 오른손을 하늘 높이 들었다.

두란의 양팔과 단검은 피로 흠뻑 젖어서 마치 한 몸인 것처럼 보였다.

***

두란(남)

전투계열

세현이 두란에게 다가가며 상태를 확인하자 등급이 올라 3성이 되어 있었다.

“고생했어. 오늘은 푹 쉬자.”

세현이 두란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영주님.”

“내일은 던전 가야지.”

“... 네..”

목책 안에 있던 인원들이 몬스터들의 장비와 마석 수급을 맡았다.

아쉽게도 트롤의 마석은 나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면 내일 아침까지 부탁드릴게요.”

“진짜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다음엔 기간 좀 여유 있게 주세요..”

이샤르와 아란이 무언가 얘길 나누고 있었다.

“그럼 저희는 가볼게요. 세아는..”

“아르르르-”

“내일 또 보자!”

주연은 지치지도 않나 보다.

“영주님. 웨이브를 무사히 막아내신 걸 축하드립니다.”

디그리온이 다가와 말했다.

“감사해요. 어떻게.. 생각은 정리되셨나요?”

“솔직히 제 마음은 이미 결정 나 있었고 저 친구가 문제죠.”

디그리온이 케샤를 가리켰다.

케샤는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긴 듯 가만히 서있었다.

“조금 더 시간을 주세요. 아마 던전엔 함께 갈 것 같은데 아직까지도 뒤숭숭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오늘은 그만 쉬시죠.”

.

.

.

날이 밝자 영지민들은 일찍부터 던전 공략 준비로 부산스러웠다.

무기와 방어구를 점검하고 간단하게 식량을 챙기는 중이었다.

“저희 왔어요.”

어제 이샤르에게 제대로 전달받았는지 주연 일행도 도착했다.

“부탁드린 건요?”

“급하다는데 당연히 준비해 왔죠. 잠도 별로 못 잤어요.”

아란이 이샤르에게 뭐가 들어있는지 알 수 없는 작은 주머니를 건넸다.

“다들 준비는 끝나셨나요?”

이샤르가 주변을 둘러보며 사람들을 모았다.

“어제 얘기했던 것처럼 영지엔 주연 님과 모리 님, 필립이 남는 걸로 하고 나머지 인원은 전부 던전 공략에 투입하겠습니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남은 인원들은 손을 흔들어 배웅했고 나머지 인원은 목책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걱정했던 케샤도 동행했고 디그리온의 몸도 거의 회복된 것 같았다.

“말과 바이슨은 일부러 두고 가는 거야?”

선두에서 이샤르와 걷던 세현이 물었다.

“이렇게 작은 규모의 영지는 조금만 손실이 생겨도 치명적이니까요.

게다가 몬스터들과 마주하면 말들이 겁먹고 날뛸 수 있기도 하고요.”

이샤르의 대답에 세현은 고개를 끄덕이곤 계속해서 걸었다.

“여기서 잠시 쉬었다가 가죠.”

숲이 모습을 드러내자 이샤르가 멈춰 서며 말했다.

다들 짐을 내려놓고 편하게 앉아 마지막 휴식을 취했다.

“근데 던전까지 안전하게 이동할 방법이 있다고 했었는데 그게 뭐죠?”

“아아. 이겁니다.”

케샤의 질문에 이샤르는 아까 아란에게서 건네받은 주머니를 들어 보이곤 말을 이어갔다.

“리자드맨의 마석을 이용해서 은신 효과가 있는 가루를 제작했거든요. 숲 입구부턴 이걸 뿌리고 이동할 겁니다.”

‘5성 제작계열은 저런 것도 가능하구나..’

“그러면 다시 이동하실까요?”

잠깐의 휴식 후 일행은 숲으로 향했다.

남은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아서 금방 숲 입구에 도달했다.

“한 명씩 제 앞으로 나오세요.”

순서에 맞춰 한 명씩 나가자 이샤르는 마치 세례를 하듯 가루를 몸에 뿌려주었다.

“다행히 부족하진 않았네요. 효과가 사라지기 전에 빨리 이동하죠.”

여기부턴 세아가 선두에 섰다.

세아는 몬스터들을 탐지하며 던전 입구까지 곧장 향했다.

“저기예요.”

세아가 멈춰 서며 손가락으로 나무뿌리를 가리켰다.

‘이게 던전 입구..?’

어제는 두란만 잠깐 확인한 거라 세현은 던전 입구를 처음 보았다.

‘그냥 아무것도 없는 것 같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조금의 일렁임이 느껴졌다.

“두란과 샤쿠 님이 먼저 진입합니다.”

이샤르의 말에 둘은 망설임 없이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둘의 몸이 통과하자 일렁임이 조금 커지더니 이내 잦아들었다.

“이제 순서 상관없이 한 명씩 들어가시죠.”

세현의 차례가 되었고 천천히 진입하자 물속에 몸을 담그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흡!”

본능적으로 숨을 참았고 눈을 뜨자 전혀 다른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던전..”

울창한 숲은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수많은 무덤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이제부터 던전의 핵을 영주님이 잡기 전까진 한 치의 실수도 방심도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이샤르가 말하자 다들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언데드 던전으로 예상되며 출몰 몬스터는 스켈레톤과 구울입니다.”

주변을 횃불로 밝히며 이샤르가 말했다.

“스켈레톤의 약점은 뼈 사이에 드러난 핵, 구울은 머리를 완전히 파괴하셔야 합니다.”

그때 수 많은 인기척이 주변에서 느껴졌다.

“왼쪽이랑 오른쪽에서 엄청 많이 와요!”

세아가 외쳤다.

주변을 살피자 엄청난 양의 스켈레톤들이 뼈를 달그락 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모두 정면으로 달려요! 둘러 쌓이면 끝이에요!”

이샤르의 말에 모두 전방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아직 거리가 있어서 여유롭네. 스켈레톤은 움직임도 느린 것 같고.’

다행히 일행은 양쪽에서 파도처럼 덮쳐오는 스켈레톤들을 따돌렸다.

“방심하지 말고 계속 움직여요. 저 정도 숫자면 잡히는 순간 끝납니다.”

“저기. 저거 던전 핵 아니에요?”

디그리온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자 제단같이 생긴 곳에 어두운 녹색 구체가 빛을 발산하며 둥둥 떠 있었다.

“핵이 저렇게 눈에 띄는 곳에 있어도 되는 거야?”

세현이 말했다.

“아마 등급이 낮은 던전인 것 같네요.”

“등급이 낮다기엔 몬스터 숫자가 말도 안 되잖아.”

“그냥 오랫동안 방치됐을 수도 있고요.”

이샤르가 대답하며 일행을 이끌고 조심스레 제단으로 향했다.

쿠구구궁--

일행이 제단에 가까워지자 제단 뒤쪽에서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리며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드드드드드-

던전 전체가 진동하는 듯했다.

“뭐지? 함정인가?”

“함정은 아닌 것 같아요!”

일행이 혼란에 빠져있을 때 제단 뒤에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아.. 누가 잠들어 있는 왕가의 보물을 탐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