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이상한 천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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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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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4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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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0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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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월담

DUMMY

이후 두 경기 연속으로 백씨마장이 출전하지 않았다. 한 번이라면 몰라도, 두 번 연속으로 출전을 거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지현의 감시 조치가 떨어지자마자 출전을 그만둔 것이 과연 우연일까. 주옥은 자신의 마방 안에서 홀로 생각에 잠겼다.


‘백주귀는 경마에 미친 놈이야. 그런 자가 경주를 포기했으니 보통 일이 아니지. 감시를 벌써 눈치채진 않았을 거고...’


지현이 증천 예하의 포쾌들을 파견한 것이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았다. 아무리 백주귀가 신중하고 조심성이 깊다 해도, 합을 맞춰 움직이는 증천과 지현이 벌써 꼬리를 밟혔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렇다면 지금 백주귀는 왜 잔뜩 움츠러들었을까. 경마에 미쳐서 말들을 백 마리씩 꼬박꼬박 죽이는 인물이.


'정보가 너무 부족해. 이 마방 안에서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야 정보가 없으면 그냥 공상일 뿐이란 말이야.'


결국 결론은 이것이었다. 정보 부족으로 인한 추리 불가. 게다가 가만히 앉아서 백주귀와 백씨마장에 관련한 모든 가능성을 떠올리다 보니, 괜한 불안감만 커져 갔다.


‘이대로 백씨마장이 물러서면 좋겠지만, 왠지 그게 아닐 것 같단 말이지.’


근거는 아직도 예감 뿐이었다. 백주귀를 처음 본 이래 딱히 근거도 없이 계속 머릿속을 자극해 온 그 불길한 예감. 그게 몇 달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답답함이 극에 달한 주옥은 가장 자신답지 않은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한 번 더 가 볼까?’


다시 한 번 백씨마장의 담장을 넘어가 안을 염탐해 볼까, 하는 생각이었다. 어차피 처음으로 월담을 했던 그 날 밤의 결정도, 결국은 떨쳐낼 수 없는 불안에 자극 받은 결과였으니 그 때와 크게 다를 것도 없었다. 차라리 다시 한 번 가 보는 게 더 수확이 클 것 같기도 했다. 드넓은 백씨마장 장원 중에는, 둘러본 곳보다 그렇지 못한 곳이 훨씬 많았으니 밝혀내지 못한 비밀은 대부분 그런 곳에 숨어 있을 게 분명했다. 백씨마장에 다시 가 봐야 했다.


‘안 돼, 뭘 가 봐야 해, 주옥 이 미친 놈아! 한 번이니까 안 걸린 거지, 그런 곳을 계속 드나들다간 반드시 걸리게 돼 있다고! 정신 차려!’


주옥은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 무모한 짓을 계속해서 벌일 수는 없었다. 발각됐을 때의 파장이 감히 계산 할 수도 없이 컸으니, 이런 무리한 수를 두는 건 자신의 방식이 아니었다. 당장은 할 일 없는 주옥은, 그저 고개를 푹 묻고 다시 휴식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 * *


그 날 밤,


‘밤 공기는 좀 차가워졌네.’


중모현의 기후가 온화하다고는 하지만, 겨울은 이곳에도 완연히, 그러나 확실히 찾아오고 있었다. 곧 경마장도 휴식기에 들어간다. 경우에 따라 백씨마장은 올해 경주에 더이상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어 보였다. 그런 생각을 하며, 흑마 한 마리가 익숙한 걸음으로 현내를 걸어 나갔다. 오늘은 달도 뜨지 않아 흑마의 모습도 더욱 눈에 띄지 않았다.


흑마는 물론 주옥이었다. 아무리 무리한 짓을 하면 안 된다며 마음을 다잡아도, 자꾸만 백씨마장 쪽으로 기우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결국은, 오늘 그는 다시 마방 문을 뛰어넘고, 마구간 문 사이 철편을 밀어넣어 빗장을 풀었다.


한 번 넘어간 적 있는 담장을 또 넘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다. 제 집 문지방 넘듯 한 장 반 높이의 담장을 뛰어넘어, 주옥은 다시 백씨마장에 입성했다. 이번에는 망설임 없는 발걸음으로, 저번에 둘러보지 못한 방향을 향했다. 역시 발소리는 전혀 없었다.


‘정확히 어디로 가야 하는 지 모르는 건 지난번과 같군.’


마장 내를 걸으며 생각했다. 정확히 어디를 가야 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무작정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우선, 어디를 가지 않을 것인지는 확실하게 정했다. 지난번에 들렀던 곳들을 다시 갈 여유는 없었다. 그리고, 정확한 위치를 모를 뿐 목적 자체는 확실했다. 백씨마장이 왜 그토록 경마에 집착하는지 밝혀낸다. 또, 가능하다면 불가사의할 정도로 마르지 않는 자금줄의 출처도 밝혀낸다. 이렇게 두 가지를 알아내야 했다.


‘맘 같아선 백주귀의 집무실에서 장부라도 뒤져보고 싶지만, 이 몸으론 무리겠지.’


내심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자금줄을 밝혀내는 일이라면, 사람의 기록을 뒤져보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 분명했으나 지금 그의 몸이 거대한 흑마가 되어 있으니, 사실상은 불가능한 일. 주옥이 생각하는 차선책은 사람에 가장 가까운 내부자에게 접근하는 것으로, 구체적으로는 백섬마황을 뜻했다. 백섬마황의 마방을 찾는 주옥의 네 발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은, 예상했던 시간이 흐른 뒤 백섬마황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훈련장 근처의 건물들, 그 중에서 지난번에 가 보지 않았던 곳들을 몇 군데 들러 보니 곧 백섬마황의 마구간이 나왔던 것이다. 작은 마구간 하나를 열어 보니, 지금 현의 경마장에서 뛰는 현역 경주마 세 마리의 마방만이 마련되어 있었다.


‘찾았다. 백섬마황, 백두만세, 백가쟁명.’


왠지 뒤의 두 이름은 틀린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상관은 없었다. 이렇게 생각하며, 주옥은 잠들어 있는 백섬마황에게 전음을 보냈다. 가장 똑똑한 우두머리하고만 이야기를 하면 충분했다.


‘야, 일어나 봐. 소리 내지 말고.’


백섬마황은 곧장 눈을 떴다. 자고 있는 상대에게도 전음은 어떻게든 전달되는 모양이었다. 말들은 원래 겁이 적잖아, 백섬마황도 뜬금 없는 불청객에 놀란 건 확실했지만 소란을 피우지는 않았다. 아마도, 자신이 강자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었다. 그가 미처 몸을 일으켜 이리저리 말의 언어로 말하기 전에, 재빨리 전음을 보내 마황을 안심시켰다.


‘걱정 마. 해치러 온 게 아니야. 그랬다면 굳이 널 깨우지도 않았겠지?’


백섬마황이 납득했다.


‘맞는 말이군. 그럼 여기서 뭘 하는 거지?’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궁금해 하지 않는 건가. 마황이 생각보다 침착해 여러 모로 다행이었다. 이 말을 깨우는 순간까지도 혹시나 난동을 피우지 않을까 일말의 걱정이 있었지만, 상대가 침착하니 주옥도 덩달아 침착하게 대꾸했다.


‘이건, 그러니까. 조사를 나온 거야. 네가 경주에 안 나와서, 무슨 일이 생겼나 하고.’


‘과거엔 그런 일이 없었다. 게다가 그건 인간의 일 아닌가? 왜 네가 온 거지?’


썩 정교한 거짓말이 아니란 건 스스로도 알았지만, 백섬마황은 생각보다 핵심을 정확히 짚었다. 그래도, 평생을 인간으로 살다 이제 막 짐승이 된 주옥의 거짓말을 완벽히 간파할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특별하니까. 너도 느끼고 있었겠지만, 사실 나는 반인반마(半人半馬)거든. 지금 이렇게 너랑 얘기하는 것처럼, 인간이랑도 얘기가 통해. 그래서 경마장에서도 특별히 날 보냈어.’


백섬마황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거짓말을 간파하는 능력은 지능보다도 경험을 통해 계발되는 법이었다. 말들의 세계에 존재하는 거짓말은 인간의 그것보다 훨씬 단순한 것뿐이었으니, 주옥의 거짓말을 간파하는 건 무리였다. 백섬마황이 곧 수긍했다.


‘그렇군. 넌 인간의 친구인 것인가.’


‘뭐, 비슷해. 어떤 인간들과는 친구지. 아, 네 주인님이랑도 친구야.’


뒷말은 급작스럽게 덧붙인 것이었다. 백섬마황은 백주귀를 주인님이라 불렀다. 백주귀와 자신이 친구라는 말을 믿는다면, 백섬마황이 더 귀중한 정보를 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말에 백섬마황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놀랐다는 의미의 몸짓은 말과 인간이 똑같았다.


‘주인님의 친구? 의외다. 마장 외에는 친구가 없는 줄 알았다.’


그 말이 도리어 의외였다. 마장 안에는 친구가 있단 얘기? 그 백주귀가? 이런 작은 마을만한 장원에서 왕처럼 군림하면서, 고작 경주마를 얻기 위해 수없는 목숨을 갈아넣고, 원하는 건 남의 것이라도 반드시 손에 넣으려는 놈이 친구가 있다니. 이 점은 짚어봐야 했다.


“마장 안에 사는 친구는 누구인데?”


이 질문에, 백섬마황은 어렵잖게 대답했다.


“우리들. 그리고 다른 짐승들.”


아, 그럼 그렇지. 그런 자가 인간을 친구로 둘 리 없었다. 그리고 십중팔구, 짐승들조차 친구로 여기는 게 아닐 것이다. 이 백마가 착각하고 있을 뿐. 지금은 그런 것보다도, 백섬마황의 대답이 더 신경쓰였다. 그 점을 재차 질문했다.


‘다른 짐승이라고? 이 안에?’


‘그렇다. 말들과는 먼 곳에 산다. 갈 일도, 볼 일도 거의 없다. 나도 한 번 가 봤다. 주인님을 태우고.’


이 수많은 말들을 키우면서 또 다른 짐승까지 키운다. 대체 무슨 짓이란 말인가. 그만한 돈과 인력, 여유가 어디서...


‘잠깐만.’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그 동안 풀리지 않던 의문을 풀어줄 실마리를 잡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급히 백섬마황에게 질문했다.


‘그 동물들이 뭐였는데? 너나 나 같은 말이 아니었단 거지?“


‘말이 아니었다. 무서운 녀석들. 거대한 고양이 같은 놈들이나, 말과는 비교도 안 되게 덩치가 큰, 코가 엄청나게 길고 엄니가 길게 나 있는 놈. 늑대도 있었다. 너도 그렇겠지만, 나는 웬만한 짐승이 두렵지 않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짐승은 하나같이 두렵더군.’


맹수들이었다. 이곳 백씨마장 안에서 맹수들을 키우고 있다는 얘기. 이건 단순히 말들의 목숨을 우습게 아느니, 어쩌느니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려 했다. 뭔가 새로운 정보를 얻으러 왔고, 실제로 그런 정보를 얻었지만 당황은 감출 수가 없었다.


‘맹수들을 키우고 있다고? 대체 왜? 그리고 왜 널 거기까지 데리고 간 거야? 위험하잖아.’


‘어릴 때, 주인님이 날 타고 그들의 집 앞까지 갔다. 문틈 사이로 그 짐승들을 봤다. 그런데도 등골이 오싹했다.’


등골이 오싹하다는 일개 백마의 표현력은 둘째 치고, 아주 중요한 정보들이었다. 백섬마황은 비록 건장하긴 해도 겨우 한 살이 조금 넘었을 뿐이다. 그런 그가 어렸을 때라고 한다면 고작 몇 개월 전이었다.


‘가 봐야겠어. 무슨 짓을 꾸미는 건지, 백주귀는 무슨 생각인지.’


이후 맹수들이 사는 곳은 어디인지, 백주귀가 지내는 곳은 어디인지 등 백섬마황에게 여러 가지를 물었다. 백섬마황은 비록 종의 한계 때문에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해도, 경험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것들을 전부 말해 주었다. 주옥은 마장을 나서며 백섬마황에게 전음을 보냈다.


‘네 주인님은··· 여기 네 동료들한테는 친구겠지만, 다른 사람이나 짐승한텐 아닐 지도 몰라. 알아보고 나서 그대로 말해 줄게. 네가 좋아하지 않는 얘기가 될지 모르지만.’


백섬마황은 그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을 뿐, 별다른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주옥도 이어질 의문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그대로 돌아서서 마구간을 나갔다.


'백섬마황 너도, 백호군단도, 백주대낮도. 감당할 수 있는 진실이었으면 좋겠다.'


발걸음을 재촉하는 주옥이 씁쓸한 감상에 빠졌다. 백마들의 이름을 조금 틀린 것 같았지만 별 문제는 없었다.


백섬마황이 말해준 대로 마장의 북쪽으로 이어진 긴 오르막길을 오르자, 여태까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건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장원의 남쪽은 비슷비슷한 용도를 가진 비슷비슷한 분위기의 건물들이었지만, 지금부터는 높은 벽과 작은 창, 심지어는 담장이 둘러진 건물도 있었다. 이미 장원 전체에 드높은 담장이 드리워진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보안 수준이었다.


‘저 건물들 중 하나인가.’


주옥이 찬찬히 전경을 돌아보며 생각했다. 백섬마황의 말에 따르면, 오르막길이 끝나는 곳에 맹수들의 거처가 있었다. 곧 그곳이 보였다.


‘여기가 확실해. 잠들어 있지 않아.’


굳게 닫히고 빗장까지 걸린 문 너머로 기세등등한 살기가 느껴졌다. 인간과 말이 모두 잠든 한밤중, 이 건물에 살고 있는 짐승들은 한 마리도 잠들어 있지 않았다. 정확히 몇 마리인지까진 알 수 없어도, 하나같이 상대를 죽일 듯한 살기를 내뿜고 있어 문 너머로도 그 기운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본능이 경고를 발했다.


‘···청호만한 놈은 없겠지.’


하지만, 청호를 맞닥뜨렸을 때만큼은 아니었다. 백섬마황이 이곳에 왔을 땐 지금보다 어리고 약할 때였다. 지금의 주옥은 그 때의 백섬마황보다 훨씬 강한데다, 내력과 무공도 있었다. 마음을 굳게 먹고, 주옥은 빗장을 풀고 머리로 문을 밀어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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