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이상한 천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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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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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4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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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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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단(2)

DUMMY

지금 우리에 갇혀있는 맹수들은 당장 강호에 나가더라도 큰 분란을 일으킬 정도로 강했다. 야생 상태의 맹수들도 얼치기 무인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잡아먹을 수 있으니, 지금 내력을 가진 채 적의를 불태우고 있는 맹수들은 무림에 훨씬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 아마도 정사대전이 펼쳐지고 있을 작금의 무림에서, 백씨마장의 맹수들은 이미 대전의 향방을 가를 만한 전력이었다.


이 짐승들을 활용하면 정사대전에서 마교 측이 승리할 것이 자명한데도 아직 짐승들을 가둬두고 있다는 건, 백주귀가 그 이상의 뭔가를 지향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어쩌면, 그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해 주고 있는 마교조차 그의 속셈을 정확히 모르고 있을 지도 몰랐다. 주옥은 그 점을 파고 들었다. 환수 이야기가 나온 것은 결코 우연이나, 뜬금없는 발상이 아니었다.


'너, 네 연구로 환수를 만들려는 거 맞지? 더 궁극적으로는 그 환수를 네 맘대로 부리려는 거고. 그 계획, 마교도 알고 있냐?'


주옥의 날카로운 전음이 백주귀의 머릿속에 꽂혔다. 백주귀는 두 가지를 동시에 느꼈다. 하나는 생물의 본능이 보내는 경고, 다른 한 가지는 이 상황을 타개할 만한 유일한 동앗줄. 백주귀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대답했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대협. 이 장소의 모든 걸 파악하신 모양이시군요. 말씀하신대로 이곳은 서역 일월교의 지원 아래 운영되는 곳입니다. 이곳에 있는 짐승들도 그들의 요청 하에 기르고 있는 녀석들이 맞습니다. 짐승의 환수화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것도, 그 사실을 일월교에 숨기고 있는 것도 모두 짐작하신 대로입니다."


모든 정보를 사실대로 실토했다. 백주귀의 생각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 적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었으니 잡아떼 봤자 의미가 없었다. 그 와중, 마교라는 멸칭 대신 그들의 진짜 이름, 일월교라는 이름을 써서 백씨마장의 뒷배를 은근히 드러냈다. 비록 전음입밀을 쓰는 고수라면 마교를 두려워나 할 지는 미지수였지만, 그래도 일단은 강조해 봐야 했다.


'거기 있는 짐승들, 엄청 강하던데.'


"그렇습니다. 지금 무림의 정사대전 한가운데 풀어놓아도 제 몫을 충분히 할 놈들이지요. 하지만 아직 완전한 통제가 되지 않고... 말씀대로 제 개인적인 목표를 위해 일월교에는 진척 사항을 숨기고 있습니다. 혹 대협께선 제 연구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다행히 미지의 적은 적대적으로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백씨마장의 연구에 관심을 가지는 걸 보면, 이것이 실마리가 될 지도 몰랐다. 이어지는 백주귀의 질문이 의미심장했다. 연구 정보가 필요한가, 만약 상대가 원하는 것이 그것이라면 얼마든지 던져줄 수 있었다. 그리고 대가를 취할 수도 있었고, 더 극단적인 방법도 쓸 수 있었다.


'교류를 원한다면 모습을 보이겠지. 상황을 봐서 멸구해 버리는 방법도 있다.'


이곳의 맹수들은 말했듯 명실상부한 백씨마장의 최고 전력. 게다가 완벽한 통제가 되지 않을 뿐 이들의 대부분은 백주귀가 원하는 대로 부릴 수 있었다. 달리 말해, 상대가 모습을 보이기만 한다면 그대로 일제히 덮치라 명령할 수 있었다. 전음입밀을 쓰는 고수가 상대라 하더라도 이 많은 짐승들을 한번에 제압할 순 없을 터였다. 이게 백주귀가 믿는 가능성이었다.


하지만 주옥도 지금의 우위를 쉽게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백주귀는 어찌 됐건 지금 저자세로, 필요한 정보를 술술 불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그는 백주귀에게 전음입밀을 쓰는 정체불명의 고수일 뿐 아니라, 백씨마장의 가장 은밀한 비밀을 아무렇지 않게 파헤친 수수께끼의 인물이었다. 백주귀가 섣불리 자신을 거스를 수 없는 지금을 이용해야 했다. 그래서 물었다.


'관심이야 있지. 사실 아주 많아. 하지만 그 전에, 경마장에서는 왜 자취를 감췄냐? 넌 중모현 경마장의 왕이잖아.'


백주귀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이건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백씨마장이 두 경기 연속으로 결장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경마에 꾸준히 관심을 갖는 이들 뿐이었다. 그리고, 백주귀는 그런 사람들 대부분, 심지어 무공이 없는 경마장 단골 관중도 얼굴을 떠올릴 수 있었다. 백주귀는 필사적으로 자신이 아는 얼굴들을 되새겼다. 그들 중 이런 실력을 가진 이가 있었던가. 전음입밀을 쓰고, 자기 마장의 비밀을 밝혀낼 만한...


'대답 안 하냐?'


전음이 독촉해 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경마장 관련인들 중 이런 경지의 무인은 없었다. 그런 자가 대답을 원하고 있으니 일단 뭐라고든 답을 해야 했다.


"그,그것이..."


천하의 백주귀가 말을 더듬었다. 당황한 나머지 둘러댈 말이 떠오르지 않은 탓이었다. 그가 출전을 멈춘 이유 역시, 그리 떳떳한 이유가 아니었다. 오히려 무림의 도(도)에 따른다면 흉계에 가까운 계획 때문이었기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말 해, 무슨 요상한 꿍꿍이야? 네가 멀쩡한 생각으로 출전을 그만둘 리가 없어.'


다시 한 번 재촉해 오는 전음을 듣자, 한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생각해 보면 지금 백주귀 자신에게 전음을 보내고 있는 이 의문의 고수는 무림의 도에 크게 얽매이지 않는 듯했다.


상대는 분명 백씨마장이 짐승을 마음대로 뜯어고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셀 수 없는 숫자의 짐승들이 죽어나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껏 그런 점을 전혀 문제삼지 않았을 뿐 아니라, 환수를 만들어 내고자 하는 자신의 연구 결과에도 관심을 보였다. 이것 역시 명문정파에서는 사악한 기록이라 할 법했는데도 전혀 꺼리는 기색이 없었다. 그럼, 차라리 솔직하게 계획을 밝히는 게 나을 지도 몰랐다. 상대가 자신을 시험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으니. 그리 하여, 백주귀는 입을 열었다. 그리고 한 톨의 거짓 없이 경주를 포기한 이유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대협께선 인간의 관점을 초월하신 듯하니 사실대로 낱낱이 고합니다. 백씨마장이 관의 의심을 사게 되어, 이곳 중모현을 뜰 생각으로 출주를 멈췄습니다."


'그래? 하지만 관의 의심을 샀다면 어디로 마장을 옮기든 똑같은 거 아니야? 네가 전 중원에 수배될 텐데.'


사실이었다. 의심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용의자가 사라지면 즉시 비상이 걸린다. 명의 경우, 지방 군현에 일제히 용의자 수배령이 내려지기 마련이었다. 아예 민초의 지위를 포기하고 무림에 투신한다면 어느 정도 잡범은 눈감아주는 관행이 있었으나, 백씨마장과 백주귀가 그 경우에 해당할 지는 미지수였다.


짐승에게 내력을 불어넣는 것을 본업으로 하는 백씨마장은 실질적으로 무림 세력이었다. 그런 곳이 민초들의 영역인 중모현에 자리를 잡고 돈을 벌어 다시 무림을 위한 짐승 개조에 재투자 했으니, 명백히 관무불가침을 우롱하고 관의 것이어야 할 자원을 가로챈 죄가 있었다. 비록 관무불가침이 무너져 가고 있다고는 해도, 조정이 백씨마장의 경우를 어떻게 판단할지는 미지수였다. 당연히, 백주귀도 여기까지 헤아렸다. 그가 대답하기 시작했다.


"예, 그래서 후환을 없애고자 이곳의 지현과 그 수족을 암살하고 자리를 뜨려 했습니다. 아직은 저와 백씨마장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가 개시되지 않아, 지현과 현승, 그의 심복인 총포두 증천이란 자의 숨통만 끊어 놓으면 수배되지는 않을 만합니다. 인간의 법도를 초월하신 대협께서는 제가 무공 없는 하찮은 민초의 목숨 몇 개쯤 거둔들 그리 불편해 하지 않으시겠지요."


답하는 전음은 한참 동안 들려오지 않았다. 백주귀는 초조하게 답을 기다렸다. 방금의 말은 일종의 승부수와도 같았다. 상대가 정말 자신의 계획에 반대하지 않는다면, 그건 최상의 결과였다. 반면 자기 편이 아닌 자에게는 절대 유출되어서는 안 되는 계획이었으니, 상대가 자신의 계획을 꺼리거나 불쾌해 한다면 반드시 격살해야 했다. 비록 지금 당장 상대의 모습이 보이진 않아도, 저 문 밖 어둠 속 어딘가에 있는 게 분명했으니, 즉각 짐승들을 풀어 추적할 생각이었다. 그 때 대답이 들려왔다.


'...그래. 틀린 말은 아니구나. 그 두 명만 살인멸구 하고 떠나는 게 네 계획이라면 방해하지는 않겠다. 대신 짐승에 대한 백씨마장의 연구 성과를 전부 내게 바쳐라. 그럼 눈감아 주지.'


백주귀의 비열한 얼굴이 승리감에 도취된 미소를 띠었다. 도박이 통했다. 역시 상대방은 선인도, 협의지사도 아니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스스로의 이득을 가장 우선시하는 존재가 분명했다. 이렇게 생각하며 백주귀가 얼른 대답했다.


"예, 예. 물론입니다. 허나 저 역시 하나의 청이 더 있으니, 아문에 무풍이란 이름의 젊은 기수가 있습니다. 그 놈까지 마저 살인멸구 하고 담당 경주마인 흑풍암제란 놈을 제가 데려가고자 합니다. 여기까지 눈감아 주실 수 있으시다면, 백씨마장이 10년간 쌓아 온 연구 성과를 숨김없이 전부 알려드리겠습니다."


무풍을 죽이고 그의 담당 흑마를 취한다. 여기까지 해낼 수 있다면 백주귀가 세워 둔 계획이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생전 처음 보는, 사실은 보지도 못한 이에게 허락을 구하는 모습이 백주귀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상대는 자신보다 강하고 자신의 비밀과 계획을 꿰고 있으니, 훼방 놓지 않겠다는 약조를 받아내야 했다. 전음이 되물었다.


'좋은 말은 너한테도 많잖아? 그 놈이 그렇게 대단하냐? 사람을 죽이고 데려갈 만큼?'


"그렇습니다. 제가 키운 말들이 뛰어나기는 하나, 그 흑마에 비하면 봉황 옆의 메추리에 불과합니다. 제가 본 어떤 짐승보다도 환수에 가까우면서, 인간의 통제를 완벽하게 따르고 있지요. 그 놈을 손에 넣으면 연구 성과가 10년은 우습게 앞당겨질 겁니다."


'그럼 기수는 왜 죽이려는 거냐? 그냥 훔쳐가면 모를 거 아니야?'


"아, 사실 그것은, 그 기수도 저희 백씨마장을 의심하고 있을 듯하여 그렇습니다. 지현이 저를 의심하고 있으니, 경마장에서 저를 대적할 수 있는 그 자에게도 언질을 해 뒀을 가능성이 높겠지요, 게다가 10년 전 일로 그 젊은 놈과 백씨마장이 한 번 얽힌 바가 있으니, 후환을 고려하여 확실히 정리해두고자 합니다."


전음은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는 잠시 후 다시 물었다.


'그래? 어떻게 얽혔었는데? 그냥 코흘리개 기수가 아니란 말이야?'


"예, 그것은 조금 긴 이야기입니다."


백주귀가 대답을 시작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상대가 왜 그런 것까지 궁금해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은 의문을 해소해 주는 편이 좋은 인상을 남길 것 같아서였다.


10년 전이라면 무풍이 중모현에 처음 흘러들었던 시기였다. 그는 마적 두목의 한혈마를 훔쳐 타고 기진맥진한 채 마을에 입성했다. 그리고, 마을 어귀에 진입하자마자 정신을 잃고 쓰러져 낙마했다. 그 모습을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당시 평범한 마장주였던 백주귀였다. 그가 주목한 것은 소년이 아니라, 소년이 타고 온 순백색 한혈마였다. 비록 당시에는 소년만큼이나 지쳐 비틀거리는 모습이, 목숨이 경각에 달한 듯 보였지만 한 눈에 봐도 천하에서 비할 데 없는 명마라는 사실 또한 알 수 있었다.


백주귀는 쓰러진 소년을 내버려 두고, 한혈마만 마장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극진한 보살핌으로 건강을 회복시킨 뒤 경주마를 키워내기 위한 종마로 삼았다. 그 한혈마에서 뻗어 나온 뿌리가 지금의 백씨마장 백마들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주변에는 과로한 한혈마가 쓰러져 죽은 것으로 이야기했다. 그 말이 사실은 무풍의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무풍과도 공을 나눠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백씨마장이 유력 마장으로 떠오르자, 마교 측에서 접촉을 해 왔고 그 결과 지금의 모습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 무풍이 흑풍암제의 기수가 되어 애착을 형성하는 듯하니, 흑풍암제가 사라지면 자신을 의심할 것이고, 백씨마장 경주마들의 혈통에 얽힌 비밀에도 그 의심이 닿을 지 몰랐다. 그래서 마을을 떠나는 김에, 무풍을 확실히 주살하고 훗날 의심받을 위험을 없애고자 했다.


'...너, 진짜 나쁜 놈이구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전음이 물어 왔다. 질책하는 말이었지만, 백주귀에겐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이미 그는 상대가 자신과 동류라고 여기고 있었기에, 그런 말을 들었음에도 경각심이 일지는 않았다. 오히려 감탄하는 말로 들리기까지 했다. 백주귀는 사악한 미소를 지은 채 대꾸했다.


"대협께서는 선악을 판단하지 않으시잖습니까? 제겐 그런 역사가 있으니, 제 계획을 방조하시겠다는 약조만 해주신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서고로 달려가 본 마장의 연구 성과를 보여드리겠습니다."


한참 뒤, 전음이 다시 대답해 왔다.


'좋다. 그렇게 하지. 그럼 모습을 보이겠다. 약조란 건 서로 눈을 보면서 해야 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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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경마왕 24.08.31 20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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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삼쌍승식 작전(3) 24.08.29 25 3 12쪽
25 삼쌍승식 작전(2) 24.08.28 27 3 13쪽
24 삼쌍승식 작전 24.08.27 31 3 13쪽
23 무풍(2) 24.08.26 29 4 13쪽
22 무풍 24.08.25 40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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