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이상한 천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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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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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4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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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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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2)

DUMMY

이틀 뒤,


“속도가 좀 빠른데요? 괜찮으시겠어요?”


훈련 중 무풍이 물었다. 그는 지금 주옥 옆에서 같이 달리는 회영의 등 위에 올라 달리고 있었으나, 방금은 분명 주옥을 향해 던진 질문이었다. 의외의 질문을 받은 주옥은 어리둥절하게 되물었다.


‘응? 지금이 빠르다고? 난 평소처럼 달리는 건데?’


“하지만 여기 회영을 보시죠. 땀을 흘리고 있는데요.”


그 말대로였다. 구보 훈련은 주옥과 회영이 버거워하지 않을 만한 속력을 유지하는 데 의의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 옆에서 주옥을 따르는 회영은 땀을 흘리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평소보다 명백히 힘에 부치는 모습에, 주옥은 얼른 속도를 줄이며 전음으로 물었다.


‘힘들어?’


회영은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그 모습이 인간의 긍정 신호와 같은 이유라면, 회영과 의사소통 체계를 개편하면서 인간의 몸짓 역시 학습시켜 둔 덕분이었다. 그 고갯짓을 보자마자, 무풍에게 전음을 보내 훈련을 중단하고 휴식에 돌입했다. 그리고, 회영에게 방금의 상황을 재확인했다.


‘내가 빨라? 네가 느린 게 아니라?’


‘네가 빠르다. 무슨 일 있었나?’


회영과 무풍이 둘 다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전혀 빠르게 달릴 생각이 없었는데도 빨라졌다 하니, 그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없어 주옥도 망설이며 대답했다.


‘···밥을 잘 먹어서 그런가? 바뀐 밥, 맛있지 않았어?’


그러자 회영은 말이 지을 수 있는 가장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무슨 소리지? 밥은 바뀌지 않았다.’


응? 그렇게 맛있어졌는데 바뀐 걸 모르다니. 이 녀석, 머리가 이토록 좋아졌는데도 입맛은 영 둔한 건가? 이렇게 생각하며, 주옥은 뚱하게 대꾸했다.


‘그럴 리가. 바뀐 구무관이 쑤는 여물죽이 훨씬 맛있다고.’


‘난 다른 걸 전혀 느끼지 못했다. 네 여물죽에 특별히 뭔가 들어간 건 아닌가?’


‘그런 짓을 누가 해? 내가 요청한 것도 아닌데.’


무풍에게 말을 하면, 여물죽에 들어갈 작물의 비중을 바꿔 달라 요청할 수 있었다. 그래서 경주 훈련을 시작하자마자 콩의 비중을 높이고, 그 이후로는 여물의 비중을 조정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 누가 됐든 간에 자신의 여물죽을 굳이 바꿀 이유가 없는 것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주옥은 이렇게 생각했지만 문득 한 가지 발상이 떠올랐다.


'···가만. 확실히 내 밥을 맛있게 만들어 줄 이유는 없지. 하지만 반대라면?'


그 생각이 들자마자, 고개를 들고 먼 곳을 바라보았다. 빗자루를 들고 훈련장 한 구석을 쓸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그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회영에게 물었다.


‘회영아. 저쪽 멀리 바닥 쓰는 사람 보이냐?’


그 말에, 회영은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곧장 대답했다. 청소부의 존재 정도는 그도 진작 알아차리고 있었다.


‘보인다. 어제도 있지 않았나. 뭔가 특별한가?’


역시, 지능이 발전한 것뿐 아니라, 회영도 나름대로 매일 운공을 하고 있었다. 지금 이 말의 감지 능력은 처음 만났을 때와 차원이 다르게 좋아져 있었으니, 그 사실에 약간은 흡족해진 채 주옥이 대답했다.


‘특별이라기보단, 수상하지. 원래 청소를 훈련 시간에 하던가?’


‘아니. 그러고 보니 훈련 시간에 청소부가 들어온 건 어제가 처음이군.’


‘그래. 갑자기 왜 바뀌었을까? 또, 구무관은 왜 바뀌고?’


그 직후, 회영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이번엔 무풍에게 전음을 보냈다.


‘무풍아. 저기 저 청소부 보이냐? 바닥 쓸고 있는?’


무풍은 그제서야 청소부 쪽을 돌아보고는, 목소리를 낮게 깔고 되물었다.


‘예. 뭔가 수상한 겁니까?’


‘일단 하나 묻자. 최대한 놀라지 말고 대답해 줘. 백씨마장에서 손을 쓰면, 지금 우리가 속한 관영 마장에 자기 사람을 심는 게 가능할 것 같냐?’


“예?!”


거 참, 놀라지 말라니까. 속으로 혀를 차며 청소부를 살폈다. 다행히 거리가 있어 무풍의 반응을 인식하지는 못한 것 같았다. 무풍도 자신의 실책을 알아차리고는, 목소리를 한껏 낮추고 겨우 대답했다.


“그건... 가능할 겁니다. 관영 마장의 인사(人事) 담당은 현승의 업무인데, 경마장은 엄밀히 말해 현내 업무 중 우선순위가 높지 않아서요. 백씨마장의 재력과 위세를 동원한다면 슬쩍 자기 사람 몇 명 심는 건 가능할 겁니다. 저 청소부가 그렇단 말씀이십니까?”


그렇단 말이지. 그렇다면 저 청소부는 물론이고, 새 구무관도 백씨마장의 간계(奸計)를 실행중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 점을 무풍에게 얘기해줘야 했다.


‘맞아. 백씨마장의 출전이 확정되자마자 못 보던 청소부가 보이지? 우리 훈련을 지켜보고 있을 거야. 상태를 지켜보면서 대응 전략을 세우려는 거겠지. 게다가 밥도 바뀌었어. 그것도 내 밥만.’


“밥이 바뀌다니, 그건 무슨 의미입니까?”


무풍이 되물었다. 백씨마장이 무슨 수를 꾸미고 있는지는 짐작도 못 하고 있는 말투였다. 그 말투를 의식하며, 최대한 별 일 아니라는 듯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답해 주었다.


‘아마 독초를 섞었을 거다. 물론 치사량은 아닐 거야. 내가 죽어 버리면 경주에서의 설욕도 못 할 테니까.내 몸상태를 악화시킬 정도로만 섞었겠지.'


무풍을 놀래키지 않으려 들인 노력이 무색하게, 그는 다시 한 번 대경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목소리를 죽인 채 되물어 왔다.


"예?! 그럼 큰일이잖습니까? 어떻게 하셨어요?"


'아, 걱정 마. 걔네들 독은 안 통해. 배부르게 먹고 소화해 버렸다.’


야생마들과 함께 다니며 먹은 것들 중, 누가 봐도 멀쩡한 것 외에는 거의 전부 다 독이 있었다. 그들 중 대부분이 인간의 몸으로는 버틸 수 없는 맹독이었고, 또 그 맹독 중 대부분을 소화해 냈을 땐 내력에 큰 진전을 보았다. 그러는 사이, 주옥과 야생마들은 자연스럽게 거의 모든 독에 대한 내성을 갖추게 됐다.


평범하게 건강한 마소는 인간보다 몸이 크니 독을 조금 먹더라도 목숨이 위험해지는 일이 드물었다. 이런 원리로, 마소를 이용해 인간용 해독제를 만들 수 있을 정도였으니 처음부터 강인했던 주옥과 야생마들은 한 술 더 떴다. 단순히 독에 저항성을 갖춘 것뿐 아니라, 독소가 체내를 자극하여 내력 쌓는 속도를 더해 주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즉, 이제 웬만혼 독은 먹을수록 강해지는 경지. 며칠 새 주옥이 눈에 띄게 빨라진 이유라면, 바로 이것이었다.


“그, 그런 것도 가능합니까? 그럼 일단 몸은 괜찮다 치고, 이제 어떻게 합니까? 염탐꾼 정도라면 그냥 둬도 괜찮겠지만 독을 타고 있다면 정말 제대로 작정한 것 같은데요.”


무풍이 걱정스러운 나머지 겁을 잔뜩 먹은 표정으로 물어 왔다. 과연, 그런 표정을 지을만 했다. 아무리 은밀하고 부유하며, 유력한 백씨마장이라지만 이런 수까지 쓰리라곤 예상치 못했다. 주옥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무풍에게 말했다.


‘일단은 놈들 장단에 맞춰 주자고. 나는 기운 없는 척 훈련에 힘을 뺄 테니까, 너는 걱정하는 척을 열심히 해라. 회영은 좀더 힘있게 달리라고 말해 둘게. 그래야 내가 상대적으로 기운 없어 보일 테니까.’


일단은 연기로 의심을 피해 보자는 작전. 하지만 무풍은 걱정이 가시지 않는 듯했다.


“그걸로 될까요? 백씨마장에서 심어둔 자들이라면 말을 알아보는 능력이 뛰어날 텐데.”


일리 있는 말이었다. 주옥이 즉시 대답했다.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일단 시도는 해야 해. 안 통하는 것 같으면 차선책을 강구해 보자고.’


진지한 주옥의 말투에, 무풍은 더이상 따지지 않고 수긍했다. 그 수긍의 이유가 자신을 믿기 때문임은 알고 있었지만, 이번엔 걱정이 가시지 않았다. 무풍의 지적이 너무나 타당했다. 백씨마장에서 심어둔 인물이라면 말에 대해 잘 알고 있을 테니 아픈 연기를 해서 그들의 눈을 속일 자신은, 솔직히 없었다. 그래도 잠입한 적들을 한나절이라도 묶어 둘 수는 있는 방법인지라, 일단은 밀어붙인 것이었다.


‘우리 쪽에서 회피 이외의 대응은 할 수가 없어. 청소부와 구무관이 백씨마장 사람이라는 증거도, 우릴 견제하기 위해 파견됐다는 증거도 없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노골적으로 적들의 수를 회피하는 것도 위험했다. 경주일까지 남은 나흘, 여물에 독을 타는 작전이 실패했다는 걸 백씨마장 측이 알게 되면, 그 다음 작전에 나설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그새 회영을 살피고 있는 무풍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주옥이 생각했다.


‘그 다음 작전이라는 게 문제지. 내가 백씨마장이라면 그 다음은 기수를 노린다. 사고를 일으키든지, 약을 먹이든지. 혹은 사고를 일으킨 뒤 약을 먹일 수도 있지. 말 먹이에 독초를 섞는다는 음침한 생각을 하는 놈들이니, 인간에게는 선을 지키리란 보장이 없어.’


즉, 주옥 자신이 백씨마장을 속여 넘기지 못하면 그 다음 목표가 되는 것은 무풍일 가능성이 높았다. 필사의 아픈 척 연기를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이유였다. 그와 별개로, 백씨마장의 황당한 술수에 의문이 계속해서 피어났따.


백씨마장은 계속 이런 식으로 1인자의 위치를 지켜왔던 것일까? 백씨마장 말들의 기량을 보면, 이런 치사한 수가 없어도 어렵잖게 왕좌를 지켜낼 법했다. 흑풍암제가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이례적으로 이런 술수를 부리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기엔 스무 마리의 말 중 딱 암제 하나에게만 독초를 탄 여물죽을 주고, 그 경과를 살펴보려 염탐꾼까지 심어놓는 술수가 너무 주도면밀했다. 대체 백씨마장이라는 집단은 어떤 곳이길래 이런 수를 펼치는 걸까. 백씨마장의 주인, 백주귀는 대체 어떤 인물인 걸까.


‘그 자식, 역시 심상치 않아. 한청검 때문이 아니었나.’


백주귀를 처음 본 순간, 그가 이미 한청검을 차고 있었으니 그 모습이 곱게 보이지 않았다. 편견이 개입한 걸지도 모른다 여기며 그에 대한 나쁜 인상을 애써 잊어 보려 했지만, 지금 주옥에게는 그 나쁜 인상 그대로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바램과 달리 자신의 기이한 위기감이 적중하는 것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 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 * *


일은 기대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힘이 점점 빠져가는 듯, 기운이 점점 사라지는 듯 혼신의 연기를 펼쳤지만 상대는 역시 백씨마장이었다. 새 구무관, 그리고 청소부 둘 다 말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이들이 분명했다. 결국 경주 이틀 전, 여물죽이 바뀌었다.


‘독초가 없잖아? 포기했나?’


아무래도 문제의 독초가 빠지니 맛이 예전만 못했다. 약간 실망한 채 여물죽을 씹으며, 주옥은 생각했다.


‘역시 속여 넘기지 못했어. 오늘까지만 넘어가주기를 바랐는데···’


훈련장에 나갈 때마다 속도를 내지 못하고, 갈지자로 걷는 척을 해 봤지만, 역시 백씨마장을 속여 넘기고 있다는 확신은 들지 않았다. 독초를 꾸준히 먹고 하루가 다르게 힘이 차올라, 털의 윤기와 근육 상태가 도저히 아픈 말 같지 않았던 것이다.


안 그래도 오늘 낮 훈련 시간, 자신의 상태를 살피던 청소부의 눈빛이 심상치 않더니 결국 여물죽에서 독초가 사라졌다. 만약 오늘이 경주 전날이었다면 계획 성공이라 봐도 무방했지만, 경주까진 아직 이틀 밤이 남아 있었다. 바로 그 점이 주옥의 위기감을 자극했다.


‘그토록 철저한 백씨마장에서 남은 하루를 허투루 보낼 리가 없어. 반드시 다른 방해 공작이 들어올 거다.’


주옥 본인이야 이제는 해를 입을래야 입기 어려운 정도로 내가, 외가 공부(功夫) 양쪽을 엄청나게 쌓아 올린 상태였지만, 무풍을 노린다면 달랐다. 이제 겨우 내력을 쌓아 올리기 시작한 데다 가진 무공이라곤 경마에 도움 되는 신법이 전부인 그에게, 대항력이라곤 전혀 없었다. 게다가 정체불명의 위기감이 계속 무풍 쪽이 불안하다고 알려 오고 있었다.


‘몸 조심하라고 일러두긴 했지만 ··· 백씨마장이 작정하고 나선다면 과연 방법이 있을까?’


도울 방법이 없었다. 훈련이 끝나면 주옥은 마방에 갇혀 혼자 시간을 보내는 처지라, 만약 위기가 닥친다면 무풍이 혼자 뚫어내야만 했다. 근심에 젖은 오후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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