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이상한 천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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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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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4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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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4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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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모현으로(3)

DUMMY

확신은 없었다. 증천과 의사소통을 해도 괜찮을까? 사람의 말을 전부 알아듣는다는 걸 증천이 알게 되면, 그 후폭풍이 어떨 지 쉽게 짐작하기 어려웠다. 반면, 그로 인한 이득 역시 짐작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큰 결심을 해야 했다. 원래는 자신의 능력을 숨긴 채 회영, 가능하다면 다른 야생마들과 함께 다양한 수련을 하며 견문을 넓힐 생각이었지만, 벼슬을 요란하게 받아 버렸으니 그 계획은 이미 물건너갔다. 그렇다면 현재 상황이라도 제대로 파악해야 다음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일이 어떻게 흘러갈 지는 몰랐지만, 일단 지금은 정보를 최대한 모으는 게 좋다고 판단해,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주옥이 고개를 끄덕이자 증천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몇 번을 확인해도 놀라운 광경이었다. 비록 첫 대면에서부터 이 말이 범상치 않다는 점을 느꼈고, 이 흑마가 사람만큼 똑똑하다는 장녹아의 증언도 있었지만, 이 정도라면 전혀 다른 얘기였다. 이런 길고 복잡한 이야기도 전부 이해할 줄 안다면 그건 정말 사람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장녹아의 증언조차, 증천은 곧이 듣지 않았다. 기억을 잃었던 데다 말들이 어느 정도 특별한 것은 사실이니, 두 가지가 겹쳐 그녀가 착각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거두지 못해서였다. 하지만 방금, 푸념 같은 길고 복잡한 이야기를 곧바로 알아들었으니 그녀의 증언이 온전히 옳은 셈이었다. 증천은 경이로우면서도 무서운 생각에 빠졌다.


‘이거, 그 퍼런 호랑이와 이 흑마는 크게 다르지 않은 족속인지도 모르겠군.’


불가해한 존재는 항상 두려움을 사는 법이니, 곧 눈앞의 이 흑마가 청호처럼 환수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흑마 본인에게 들킬 만큼 무르지는 않았으니, 증천은 마음을 다잡고 태연한 척 다시 말을 걸었다.


“정말 놀랍구나. 알았다. 그럼 널 사람이라 여기고 말해 주겠다.”


이윽고 그는 말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세하게 말해 주기 시작했다. 말에게 이토록 길고 복잡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모습이, 증천 본인이 생각해도 우스꽝스러웠지만 그럼에도 알려줄 것은 알려주어야 마음이 편할 것만 같았다. 그의 말을 요약하자면, 지금은 이런 상황이었다.


증천은 주옥의 용모와 힘을 보고, 혹 그가 호랑이를 죽인 게 아닌지 짐작했다. 그리고, 중모현에 돌아와 지현, 장녹아와 삼자대면을 했을 때 그 짐작을 지현에게 보고했다. 야생마가 마을을 괴롭힌 흉수를 죽였을 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자, 지현은 그 자리에서 묘수를 하나 짜냈다.


“현승, 최근 경마장 수익률이 어떤가?”


그러자 지현을 돕는 현의 2인자, 현승이 들고 다니던 두꺼운 장부를 한참 뒤적거린 뒤 대답했다.


“예. 몇 년 간 제자리 수준입니다. 개장 직후엔 급격히 성장했지만, 지금은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볼 수 있겠습니다. 특기할 만한 점은, 관 소속 경주마들의 성적이 좋지 않아 상금 수익이 많이 줄었습니다.”


증천의 머릿속은 의문으로 가득찼다. 갑자기 경마장 얘기가 왜 나오는가. 물론, 경마장은 중모현의 자랑이 맞았다.


중모현이 성장해 가면서 말들의 수요가 늘었고, 말들을 많이 가진 마주들도 몰려들었다. 돈과 말이 많은 마주들이 한데 모이니, 자연히 유흥거리로 경마가 성행했다. 물론 여기까지는 돈 많은 마주들의 허영에 불과했으니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중모현의 풍요가 날로 더해 가자 결국 문제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경마에 점점 더 많은 돈이 몰렸다. 마주들의 담합, 승부조작이 잇따라 관에 억울함을 토로하는 이들이 늘어갔고, 오가는 뒷돈도 커져 세수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이런 상황을 한 번에 반전시킨 것이 지현의 묘수, 경마장 관영화(官營化)였으니, 경마장에 대한 그의 애착도 남달랐다. 증천도 그런 지현의 애착을 모르지 않았다.


‘확실히 대단한 양반이긴 해. 회색 지대에 있던 경마장을 아예 공식적 사업의 영역으로 끌어들였으니. 그 이후 시합 진행도 투명해지고 세수도 엄청나게 늘었어. 묘수는 묘수였지.’


그렇지만, 증천으로서도 이 흑마와 경마장을 연관지은 지현의 의도는 여전히 전혀 짐작가지 않았다. 반면 지현은 확신에 가득찬 표정으로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래. 그럼 그 흑마로 경마 사업을 다시 한 번 부흥시켜 보지. 우선은 그 말을 영웅으로 만들어야겠어.”


그렇게 된 이야기였다. 즉 주옥의 벼슬은, 위기의 경마 사업을 구하기 위한 영웅을 만들기 위해 제수된 자리. 이야기를 전해 들은 주옥의 황당함은 증천의 그것보다 더했다. 요란법석을 떨며 말에게 벼슬 자리를 주더니, 이젠 경마를 시킬 예정이라고? 정확히는, 경마를 시키기 위해 벼슬을 준 거라고? 증천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해 주었다.


“네가 그 괴물 호랑이를 죽인 건 내 추측일 뿐이라 했지만, 지현께선 상관 없다고 하셨다. 중요한 건 사실이 아니라 이야기라면서 말이야. 그 분의 발상은 가끔 엉뚱한 데가 있지만, 대부분 현에 이득이 되는 결과를 이끌어내곤 한단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게 바로 대도시 지현의 혜안이겠지.”


푸념 같은 증천의 말에, 주옥이 즉각 반박했다. 물론 머릿속으로 혼자 하는 독백이었고, 전음을 날리진 않았다.


‘그건 당신 생각이고! 당신이 경마장에서 뛸 거야? 내가 뛰어야 되잖아! 나는 지현이란 인간 전혀 모른다고.’


이런 미래가 펼쳐질 거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다. 아문에 들어오는 동안 본 말이라곤 죄다 짐마차를 끌고 있기도 했고, 관에서 자신을 사들이기까지 했으니 어련히 짐 끄는 말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벼슬을 받았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짐승에게 공무를 맡길 순 없을 테니까. 그런데 갑자기 경마?


“그러니, 넌 여기서 지내다 경기날 경마장으로 이동할 거다. 경마장에는 임시 마방이 있으니, 거기서 휴식을 취하다 출전하면 된단다. 네가 어떻게 여길지 모르겠구나. 사람처럼 생각하는 말 같은 건 만나 본 적이 없으니···”


머리가 복잡한 와중, 증천은 이렇게 말을 마쳤다. 묻고 싶은 말이 산더미 같았고, 자신을 이렇게 생각해 주는 증천이라면 웬만한 물음에는 흔쾌히 대답해 줄 것도 같아, 주옥은 고민했다.


‘지금 그냥 전음으로 대화를 해 볼까?’


고민하는 와중, 증천은 주옥의 콧잔등을 쓰다듬으며 혼잣말을 이어갔다.


“나 참, 짐승에게 이런 이야기까지 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구나. 하지만 네 능력을 직접 봤으니 믿을 수밖에 없겠지. 앞으로 필요한 게 있다면 몸짓으로 내게 알려 주거라.”


말하는 모습이 이제 곧 떠나려는 것 같았다. 말을 걸어 증천을 붙잡으려면 지금이 마지막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여기서 전음을 날린다면 그 동안 숨겨 온 주옥 자신의 능력이 들통난다. 장녹아에게처럼 비밀을 지켜달라 해야 할까? 하지만 증천은 일단 총포두라는 공직자인데다, 장녹아처럼 유대감을 쌓은 사이도 아니다. 만약 이 자가 지현에게 보고라도 올린다면? 생각했던 계획은 완전히 틀어질 것이다.


철컥-


복잡한 고민을 하는 동안, 증천이 마방을 나가 문을 잠갔다. 지금 주옥의 능력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 전음을 보낼 수는 없었으니 기회는 사라졌다. 세상 만사, 망설임을 기다려주는 경우는 원래 많지 않은 법이니 그러려니 수긍할 수밖에. 다시 짚더미 위로 몸을 누이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전음입밀을 계속 꽁꽁 숨기고 있을 수만은 없겠어. 상황에 따라서 과감히 말을 거는 게 나을 수도 있겠는걸.’


다음 날, 아침이 되자 구무관이 큰 수레를 이끌고 들어와, 각 마방에 여물과 짚을 보충해 주었다. 스무 개나 되는 마방을 혼자 담당하고 있으니 그 수고가 남다를 테지만, 그 정도 노동엔 이미 익숙해졌는지 구무원은 땀조차 흘리지 않고 수월하게 일을 마쳤다.


여물은 각종 풀을 넣고 쑨 죽으로, 먼지 덮인 새끼줄마저 맛있다고 먹던 주옥에겐 산해진미가 따로 없는 맛이었다. 게눈 감추듯 여물통을 싹 비운 주옥은,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 하며 마방 안을 걷기도 하고, 자리를 잡고 앉아 운공을 하기도 했다.


아직 해가 중천에 닿지 않은 오전, 드디어 기다리던 인물이 마구간에 들어섰다. 그리고, 기다리지 않던 인물도 한 명 있었다. 증천, 그리고 못보던 젊은 남자. 두 명이 마구간 문을 열고 들어섰다.


“자, 무풍(武豊)아. 저 쪽 끝에 딱 봐도 덩치 큰 흑마 있지? 저 녀석이다.”


증천은 먼발치에서 주옥을 가리키며 곁의 젊은 남자에게 말했다. 무풍이라 불린 젊은 남자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채 대답했다.


“와, 대단하네요. 들었던 대로.”


그 말을 듣고, 주옥은 무풍의 역할을 대강 짐작했다. 구무관은 말이 건강하도록 마구관을 총괄하는 관리. 경마를 하기 위해선 그 이상이 필요했다.


‘저 청년이 기수(騎手)인가?’


무풍의 모습을 보니 키도 훤칠하고, 생긴 것도 준수한 게 미남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았다. 하지만 주옥을 바라보는 눈에는 어딘가 겁먹은 듯한 인상이 남아있어 첫인상은 조금 유약해 보였다.


이윽고 마방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함께 들어섰다. 주뼛거리고 있는 무풍에게, 증천이 가볍게 말했다.


“어때? 멋지지? 게다가 머리도 아주 좋다. 네 첫 짝으로 손색이 없을 거야.”


잠깐, 첫 짝? 이건 좀 이상했다.


‘첫 짝이라고? 그럼 저 무풍이란 청년은 기수 경험이 일천하단 얘기? 그런 풋내기를 내 위에 태우겠다고?’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 무풍에게서 뜻밖의 대답이 흘러나왔다.


“···손색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과분한 걸요. 제가 과연 이런 말을 감당할 수 있을지···”


무풍이라는 청년의 표정과 목소리에선 자신감이 크게 줄어 있었다. 그제야 주옥은 자신이 아까 무풍에게서 읽은 유약함의 근원을 깨달았다. 자신의 용모와 분위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용은 이미 초보 기수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초원에서 헤매던 장녹아를 태웠을 땐, 그녀에게 정체를 다 밝히고 의사소통도 충분히 한 뒤였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압박감을 주는 일이 없었지만, 무풍은 말과 자신을 극한까지 몰아붙여야 하는 기수였다. 아무리 초보라 해도, 말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남다를 수밖에 없으니 압박감도 더 크게 받는 듯했다.


‘그래. 감당 못 하겠다면 바꿔. 나도 숙련자 쪽이 마음 편하다고.’


말 입장에서도 경험이 풍부한 기수가 좋았다. 비록 아직 산 사람보다 시체를 더 많이 태워 본 주옥이었지만, 장녹아를 태워 본 바, 기수의 기량 차이가 분명 존재할 것이라 예상할 수 있었다.


말을 타 본 적이 없는 장녹아를 태우고 이동할 땐, 시체를 옮길 때보다 훨씬 주의할 점이 많았다. 혼자일 때처럼 전속력으로 달렸다간 요동치는 전신 근육에 그녀가 날아가 버릴 것 같아 제대로 속도를 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니, 경마를 할 것이라면 숙련된 기수가 좋았다. 하지만, 증천은 그런 기대를 무참히 짓밟았다.


“감당해야만 한다. 지현께서 직접 정한 기수가 너야. 머리가 보통 좋은 말이 아니니, 알아서 경주할 거다. 낙마만 안 한다는 생각으로 타면 돼.”


···아니, 아무리 그래도 기수한테 그렇게까지 말해도 되는 거야? 기수가 말을 타는 게 아니라, 말이 기수를 얹고 달리란 얘기잖아?


역시, 무풍은 한껏 기가 죽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거겠지. 주옥은 무풍의 기죽은 얼굴을 바라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지현의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는 처지일 테니 결국 저런 어정쩡한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잠깐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무풍은 겨우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그런데 지현께서는 왜 저를 콕 집어 기수로 삼으신 겁니까? 전 경험도 실력도 일천한데 말입니다.”


그 질문에, 왜인지는 몰라도 증천이 동요했다. 당연히 나올 법한 질문인데도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 의문을 품는 사이 증천은 큰 결심이라도 한 듯 굳은 목소리로 답했다.


“언젠가 알게 될 테니 솔직히 말해 주겠다. 네가 선택받은 건, 네 용모 때문이야.”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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