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이상한 천마가 되었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새글

장정소고
작품등록일 :
2024.08.04 20:46
최근연재일 :
2024.09.16 19:40
연재수 :
44 회
조회수 :
2,209
추천수 :
141
글자수 :
261,334

작성
24.08.28 15:35
조회
24
추천
3
글자
13쪽

삼쌍승식 작전(2)

DUMMY

다시 경주날, 주옥은 경마장에 딸린 임시 마방에 들어간 뒤였지만 무풍의 근심은 이어졌다.


‘만두 열 개라니. 그 정도는 나도 사드릴 수 있는데 굳이 녹아에게 부탁했으니 뭔가 의미가 있는 게 분명해. 하지만 일단은 오늘 경주부터 잘 치러야겠지. 주 선생님 작전은 따라가기 쉽지 않아. 냉정하고 침착하게...’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은 무풍의 몸 속에서 잔잔히 내력이 흘렀다. 이것 역시 주옥이 당부한 대로였다. 경주에 출전하는 기수들에겐 당일 대기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지만, 지금 무풍은 그곳에서 나와 한적한 구석에서 운공을 하고 있었다. 선배 기수들이 무풍을 곱게 볼 리가 없었으니, 경주 직전에 불필요한 압박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내력이 체내의 요혈을 한 바퀴 순환하자 마음이 가라앉고 눈빛이 반짝 빛났다. 첫 경주에 나서는 청년 치고는 꽤 무인다운 눈이었다.


반면, 주옥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채 인접한 마방을 속속 채워 가는 말들을 바라보았다. 남다른 덩치 때문에 마방 문 위로 머리가 올라와 원한다면 얼마든지 밖을 내다볼 수 있었으니, 적들의 상태를 살피는 데도 용이했다. 그 때 눈부시도록 새하얀 백마 한 마리가 마구간에 들어왔다.


‘누가 봐도 저 놈이 백섬마황이군.’


전신이 빛나는 흰색에 건장한 체구. 뿐만 아니라 강자 특유의 분위기까지 풍기고 있었으니 과연 최고 인기마라 할 만했다. 정확히는 이번에 처음으로 경주에 나서는 흑풍암제에 밀려 2번 인기마가 된 신세였지만, 배당 자체는 흑풍암제와 거의 비슷했으니 체면이 크게 상하진 않았을 터였다.


백마는 의기양양한 눈으로 마구간 안을 둘러보더니 한쪽 마방에 입성했다. 그 모습을 전부 지켜본 다음에야, 작은 의문이 동했다.


‘···그런데 난 언제부터 말의 기도(氣度)를 읽을 수 있게 된 거지?’


무공을 연구하고 무인을 살피는 데 평생을 바친 주옥은, 무인을 보는 순간 그 수준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대방이 사람일 때 기준. 어느 새 그 안목이 짐승에게도 적용되는 모양이었다.


‘눈썰미도 짐승의 기준에 맞춰진 모양이군. 오히려 잘 됐어.’


강자를 알아볼 수 있다는 데서 손해 볼 게 없는 능력이었다. 문제는 백섬마황 이후로 들어온 말들에게서는 비슷한 기도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는 점. 이렇게 되자 외려 점차 초조해졌다. 기존의 2번 인기마, 지금은 흑풍암제 때문에 3번까지 밀려난 쾌속신보 때문이었다.


‘쾌속신보···최소한 백섬마황에 준하는 실력이 있어야 할 텐데. 만약 지금까지 들어온 말들 중에 쾌속신보가 있다면, 이미 낭패다.’


삼쌍승식을 노리는 계획이 수월하게 진행되려면 쾌속신보도 어느 정도 실력은 있어 줘야 했다. 무풍에게서 듣기로는 확실히 빠른 말이라 했지만, 지금은 말들이 거의 다 임시 마방에 들어왔음에도 백섬마황을 빼곤 딱히 빨라 보이는 말이 없었다.


중모현 경마장의 경주에는 말 8마리가 나서서 전체 6리의 거리를 달린다. 자신을 포함해 임시 마방에 들어서 있는 말은 7마리. 마지막 남은 한 마리가 반드시 쾌속신보, 그것도 다른 말들보다 확연히 강한 쾌속신보여야만 했다. 그 때, 마구간 문이 열리며 대망의 마지막 말이 들어섰다.


‘됐어!’


주옥이 환호했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말의 기도는 백섬마황보다는 좀 약했지만, 다른 말들은 가볍게 압도했다. 거기다 말의 생김새도 전해들은 것과 같았으니, 붉은 기가 도는 갈색 체모에 이마에서 시작된 흰 반점이 코까지 길게 내려온 적로(的盧)가 특징적이었다. 무풍이 말해준 쾌속신보의 생김새 그대로였다. 그 말은 마황과 달리 마구간을 살피지 않고 곧장 마방으로 들어섰다.


‘준비는 끝났어. 이제 출전이다.’


예상했던 대로 판이 깔렸으니 이제 첫 경주에 나서는 자신과 무풍의 합만 맞으면 성공이다. 차분히 마음을 가다듬으며 기다리자 바깥이 점점 소란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 순간, 마구간 문이 열리며 여덟 명의 남자들이 들어왔다. 키 작은 일곱 명, 그리고 그들보다 머리 하나쯤은 큰 한 명이 일사불란하게 각 마방으로 흩어지더니 각 말에 올라탔다. 기수들이었다. 주옥의 등에도 무풍이 올라탔다.


“···갑니다.”


무풍이 나지막이 말해 왔다.


마구간의 중앙에는 길게 통로가 뚫려 있었으며 그 통로 양 끝에는 문이 자리했다. 여태껏 말과 기수가 드나든 문이 닫히고, 반대쪽 문이 열리자, 평생 들어본 적 없던 함성과 환호 소리가 마구간을 뒤덮었다.


오늘 첫 출전인 한 명과 한 마리를 빼고는 모두에게 익숙한 소음. 말과 기수 일곱 쌍이 아무렇지 않은 듯 문 밖으로 힘차게 뛰쳐 나갔다.


‘잠깐, 원래 경마 인기가 이 정도야?’


함성 소리에 더해 열린 문 너머 경마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의 모습이 보이자, 주옥은 크게 당황해 무풍에게 물었다. 이렇게 큰 소리를 들은 적도, 많은 사람을 본 적도 없는 그였다.


“평소보다 훨씬 많이 왔어요. 정 9품 영웅 말을 보러 몰려들었겠죠.”


무풍이 굳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도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지만 첫 출전이 주는 부담감을 완전히 떨쳐낼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는 사이 마구간 밖 경기장에서는 관중들이 박자에 맞춰 소리치기 시작했다. 외치는 소리가 지축을 울렸다.


“암제! 암제!”


그 소리에, 말 한 필과 청년 한 명의 가슴도 울렸다. 무풍이 나지막히 말했다.


“선생님을 부르는 소리예요.”


‘그러네.’


“나가죠.”


‘그래.’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치 않았다. 셀 수 없이 많은 관중의 외침에 화답하려면, 이제 흙이 깔린 경기장에 나서야 했다. 쏟아지는 함성과 햇살 속으로, 주옥이 걸어 들어갔다. 소리를 막아주던 마구간 벽을 벗어나자, 함성은 두 배쯤 커졌다.


“와아아아!!”


마지막으로 입장한 말의 위풍당당한 검은 빛이 관중을 열광시켰다. 미리 입장한 말들은 순서대로 출발선 앞을 배회하다가, 관중의 환호를 듣고는 전부 시선을 흑마에게로 돌렸다. 마치 흑풍암제와 맞서기 위한 결사대라도 되는 듯, 일곱 말과 일곱 사람의 스물여덟 개 눈이 호승심으로 불타올랐다. 가장 뜨거운 것은 물론 백섬마황의 두 눈. 가벼운 소름과 동시에 약간의 긴장감이 올라왔다.


‘이거 이 안에선 우리가 완전 악역인데.’


“저희 작전을 알면 진짜 악역 취급 받을 걸요.”


대꾸하는 무풍의 말을 듣자 약간 머쓱해졌다. 그 말대로,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말들의 순위까지 결정지으려 하는 본인의 계획은 확실히 선량하다고 보기 어려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사정을 봐 줄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 우리가 악당인 걸로 하자.’


점차 팽팽해지는 긴장감 속에서, 주옥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 직후 진행 요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 기수, 출발점으로!”


단순히 목청만 좋은 게 아니라 머릿속을 약간 울리는 게, 내력이 실린 목소리였다. 마장에 들어선 다른 말과 기수들은 이 소리에 익숙한 듯했지만, 주옥은 아니었다.


분명 이 중모현은 조정의 아문이 설치된 관의 영역이었고, 이 경마장을 유지하는 자본 역시 조정의 것이다. 그런데 내력을 목소리에 담는 이가 존재한다? 작금의 무림에서 관무불가침이란 원칙에는 점점 많은 예외가 생겨나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경주가 시작되기 직전. 감상에 젖을 여유가 없었다. 출발점에 들어서려 하는 그 순간, 유일한 경쟁 상대라 할 수 있는 백섬마황이 앞을 가로막았다.


‘넌 강하군. 하지만 나는 지지 않는다.’


백섬마황은 몸짓으로 이런 뜻을 전한 뒤, 주옥의 반응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출발점으로 향했다. 감상에 빠지지 않으려 했건만, 이번에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주옥의 두 눈이 동그랗게 커지고, 발걸음은 굳어 버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완벽한 문장으로 말을 해?’


회영 말고도 저 정도 지능을 가진 말이 또 있다니. 그나마 회영은 옆에서 지능을 얻게 된 과정을 지켜라도 봤지. 저 백마는 대체 정체가 뭐길래?


“···선생님!”


다급한 무풍의 목소리 덕에 주옥의 정신이 다시 경기장으로 향했다.


“무슨 일이에요? 갑자기 굳어져서는. 이제 경주 시작이라고요.”


무풍의 말대로 다른 말들은 벌써 출발점에 속속 들어서고 있었다.


‘어어, 아니야, 아무것도. 작전... 잊지 마라.’


마황이 어떤 연유로 지능을 갖게 됐든 간에, 지금은 그 생각에 빠져 있을 여유가 없었다. 장녹아의 돈이 걸려 있는 판이었고, 무풍의 평판이 걸려 있는 첫 출주였다. 뿐만 아니라 흑풍암제라는 경주마의 가치 역시 이 경주로 결정될 터였으니, 한눈을 팔기엔 걸려있는 게 너무 많았다.


‘···저 마황 자식. 정체가 뭐야? 저놈도 상단전이 열린 건가? 어쩌다 그랬지?’


물론, 쉽게 마음이 다잡힐 리 없었다. 회영과 비교해도, 백섬마황의 대화는 더 인간적이었다. 말들의 몸짓 언어에서 투쟁심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니. 이건 새로운 충격이었다. 저 백섬마황이라는 말의 과거를 알아내야만 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와중에도, 다리는 움직여 출발선 뒤에 섰다. 말 여덟 마리가 머리를 나란히 두고 서자, 그 많은 관중이 일순간에 고요해졌다. 출발 신호로는 폭죽을 터뜨릴 것이다. 그 소리가 들리는 순간, 말과 사람 여덟이 동시에 뛰쳐나간다.


일련의 과정을 모두가 알고 있었으니, 어림 잡아도 만 명이 넘는 대군중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침묵에 빠졌다. 이토록 많은 사람이 어떤 소리도 내지 않으니, 소름끼치도록 낯선 감각이 온 몸을 사로잡았다.


펑!


폭죽이 터졌다. 고요했던 세상이 온통 환호성에 얼룩지는 동시에, 주옥의 시야에는 빠르게 멀어져 가는 말 엉덩이 일곱 개가 보였다.


'웬 엉덩이? 작전에 의하면 저런 게 보일 리가 없는데?'


“뭐 해요?!”


의아해 하는 주옥의 머리 위에서 필사적으로 다그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출발이 늦었다.


그 사실을 인지항과 동시에 네 다리를 바쁘게 구르기 시작했지만, 앞서 나간 일곱 마리는 이미 한참 거리를 벌린 뒤였다. 뒤늦게 속력을 붙이고 나서야, 무풍에게 전음으로 사과를 할 수 있었다.


‘미안, 실수했다!’


“사과는 나중에! 일단 작전상 위치부터 확보하죠!”


방금 전 온 세상이 죽은 듯한 고요에 빠진 그 순간, 주옥의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세상이 이렇게 조용할 수 있나. 지금 누가 방귀라도 뀐다면 그거 꼴이 아주 웃기겠는걸...’


그리고, 천천히 시간이 느려졌다. 사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지만, 머릿속에 떠오른 한 가지 생각 때문에 상대적으로 시간이 느리게 느껴졌다. 이런 생각이었다.


‘가만, 방귀 소리? 침묵을 깬다? 그건 나도 할 수 있잖아. 그것도 아무 증거 안 남기고, 깔끔히 방해만 할 수 있을 텐데?’


전음을 뜻하는 말이었다. 지금처럼 고요한 순간, 백섬마황의 머릿속에 전음을 날려 집중을 깨뜨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반칙이겠지? 마황이 실수해 준다면 작전은 더 수월해지기야 할테지만... 저 유달리 똑똑한 백마 녀석한테 이런 얕은 수가 먹힐까? 지능이 그렇게 높다면 집중력도 남다를 텐데...


일곱 말들의 엉덩이가 보인 것은 바로 여기까지 생각한 순간이었다.


‘젠장, 딴 생각이 과했어! 이런 어이 없는 실수를 하다니!’


자책을 하며 있는 힘껏 발을 굴렀다. 첫 경주에 나서는지라 모든 게 낯설고, 백섬마황의 지능이 충격적이긴 했다. 그래도 이런 기초적인 실수를 저지른 건 온전히 자신의 책임이었다.


경주 거리는 전체 6리. 주옥은 2리를 내리 달려 제 위치를 찾아 들어갔다. 제 위치란, 저 멀리 앞서 가는 한 마리를 제외한 2등 언저리의 위치였다.


흑풍암제가 2리만에 따라붙자, 마군(馬群)을 형성하고 있던 여섯 마리가 동요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너는 왜 동요하는 거야!’


등 뒤에 올라탄 무풍이 가장 많이 동요했다. 출발 직후 실수한 주옥을 다독이며 냉정히 목표를 제시하던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 없이, 등자를 밟고 있는 발을 후들거리며 무풍이 겨우 대답했다.


“너, 너무 빠른데요!”


아이고, 이 화상 같은 놈. 그렇게 훈련을 시켰건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조금 이상한 천마가 되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골드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24.08.27 17 0 -
공지 연재 시각 : 매일 19시 40분(저녁 7시 40분) +1 24.08.04 50 0 -
44 환수 NEW 19시간 전 5 0 13쪽
43 처단(4) 24.09.15 10 0 13쪽
42 처단(3) 24.09.14 7 0 13쪽
41 처단(2) 24.09.13 8 1 13쪽
40 처단 24.09.12 9 1 13쪽
39 재월담(2) 24.09.11 11 1 13쪽
38 재월담 24.09.10 10 1 13쪽
37 협상(2) 24.09.09 11 1 13쪽
36 협상 24.09.08 13 1 13쪽
35 백씨마장(4) 24.09.07 12 2 12쪽
34 백씨마장(3) 24.09.06 16 2 12쪽
33 백씨마장(2) 24.09.05 13 2 13쪽
32 백씨마장 24.09.04 14 3 13쪽
31 예감(2) 24.09.03 18 3 12쪽
30 예감 24.09.02 17 2 13쪽
29 경마왕(2) 24.09.01 19 2 12쪽
28 경마왕 24.08.31 18 2 13쪽
27 삼쌍승식 작전(4) 24.08.30 19 2 13쪽
26 삼쌍승식 작전(3) 24.08.29 23 3 12쪽
» 삼쌍승식 작전(2) 24.08.28 25 3 13쪽
24 삼쌍승식 작전 24.08.27 28 3 13쪽
23 무풍(2) 24.08.26 27 4 13쪽
22 무풍 24.08.25 36 4 13쪽
21 중모현으로(3) 24.08.24 40 4 13쪽
20 중모현으로(2) 24.08.23 48 3 14쪽
19 중모현으로 24.08.22 51 3 13쪽
18 새로운 만남(2) 24.08.21 54 4 13쪽
17 새로운 만남 24.08.20 53 4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