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이상한 천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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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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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4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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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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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씨마장(3)

DUMMY

“그게 다 무슨 뜻일까요? 개조품이라느니, 새 주인이라느니.”


무풍이 물었다. 그가 타고 있는 흑마가 전음으로 대답했다.


‘새 주인이란 말엔 별다른 의미가 있진 않을 거야. 말 그대로 나를 손에 넣고 싶은 거겠지. 문제는 개조품 쪽인데···’


그들은 현재 경주를 끝마치고 아문으로 복귀중이었다. 뒷간에 가느라 시상식을 놓친 무풍에게, 주옥은 그 사이 백주귀와 얽힌 일을 전부 다 알려주었다. 무풍이 심각한 자세로 이야기를 듣는 동안, 주옥은 아문 마방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언제나 마음을 부풀게 만들었던 도시의 전경도 지금은 별반 위로가 되지 않을 정도로, 백주귀의 남긴 수수께끼 같은 말은 파급력이 컸다. 정확히는, 말의 의미보단 그런 말이 나온 배경이 수수께끼였다. 주옥은 계속해서 무풍에게 전음을 보냈다.


‘사실 개조품이란 말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단 말이지. 문제는 왜 그런 이유로 나를 탐내느냐, 그거야.’


“무슨 의미입니까, 개조품이란 말은?”


그 물음에, 주옥은 벌써 몇 주 전 백섬마황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백섬마황. 그 녀석도 너나 나처럼 내력을 운용하고 있었어. 그 덕에 여태껏 패왕으로 군림했던 거지. 그래서인지 지능도 아주 뛰어나. 사람과 비슷할 정도로.’


“확실히 주 선생님이 오기 전 마황은 빠르기도 했지만, 작전도 철두철미했어요. 그게 기수가 아니라 말의 작전이었다는 말입니까?”


‘나처럼 인간과 말을 할 순 없으니까, 그건 아닐 거야. 마음에 안 드는 작전을 거부하면서 달리는 정도였겠지.’


“오오, 그럴 수 있겠네요.”


뭘 이제야 깨닫고 있는 거야, 이 초짜 녀석. 굳이 전음을 보내지 않고 마음속으로 핀잔을 먹인 뒤, 다시 개조품 이야기로 되돌아갔다.


‘짐승이 내력을 가졌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야. 그런 짐승은 날 빼면 딱 둘, 청호랑 회영밖에 없었거든. 그럼, 과연 백섬마황이 나처럼 인간의 두뇌를 타고 나서 심법을 수련한 걸까?’


대답을 바란 질문이 아니었다. 그랬을 확률이 극히 미미하다는 것 정도는 무풍도 잘 알고 있었으니, 그는 잠깐 멈칫 하며 생각에 잠겼다. 회영과 관련된 이야기라면 그도 주옥에게서 전해 들은 지 오래여서 내력이 있다는 점, 두뇌가 비상하다는 점,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뭔가 깨달은 듯 의미심장하게 되물었다.


“잠깐, 회영의 내력은 주 선생님이 불어넣으신 거 아닙니까? 만약 백섬마황이 내력을 스스로 터득한 게 아니라면...”


무풍도 감을 잡았다. 흐려진 뒷말은 주옥이 마무리했다.


‘그래. 누군가 타통해 줬겠지. 정확히는 어떤 인간이. 그 인간은 당연히 백씨마장 사람일 거고. 어쩌면 백주귀 본인일지도 몰라.’


그게 백씨마장이 끊임없이 명마들을 키워낼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무풍은 적잖이 충격 받은 듯, 나지막히 되뇌었다.


“그래서 개조품이라고... 하지만 경주마를 키우는 입장에서 어떻게 말을 품(品, 물건)이라 지칭할 수 있겠습니까?”


‘그게 그 자가 경주마를 대하는 태도란 거겠지. 태도와 성적은 항상 비례하지 않는 모양이야. 바람과는 다르게.’


충격이 가시지 않았는지, 무풍은 더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그 심정을 이해하는 주옥도 굳이 더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대신, 혼자 속으로 되뇌었다.


‘그럼 오늘에서야 비로소 움직인 이유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 내가 백섬마황을 대차로 누를 정도인지는 몰랐을 테니까.’


주옥은 경주에 나갈 때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그랬다간 경주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다른 말들을 압도해 버릴 테니, 아예 경주 참가가 금지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늘 상황이 급박해 대차승을 거둬 버리자, 시상식을 보는 관중들의 분위기는 어딘가 묘했다. 백주귀도 오늘 처음으로 흑풍암제의 진가를 확인한 거라면, 덜컥 그에 대한 욕심을 드러냈을 법했다.


기수와 경주마는 한참을 침묵 속에서 걸어갔다. 아문 마방에 거의 도착할 즈음, 무풍에게 주옥의 전음이 들려왔다.


‘무풍아. 백씨마장의 위치가 어디냐?’


“예? 그건 갑자기 왜···”


무풍은 뭔가 불안한 듯 알려주길 주저했다. 그 반응에 주옥은 내심 뜨끔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태연히 답했다.


‘좋은 발상이 하나 떠올라서.’


이건 사실이었다. 침묵에 잠겨 걷는 동안, 주옥은 백주귀의 속셈을 파악할 방법을 고민했고, 결국 떠올려냈다. 문제는 무풍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며 복귀했다는 점이었다. 그는 이제 주옥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되어 있었기에, 그가 인간의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무모한 짓 하시면 안 됩니다.”


무풍의 말에 주옥은 괜히 발끈하여 대답했다.


‘안 해. 네가 날 걱정할 배분이냐?’


“배분을 떠나 걱정이 되죠. 삼쌍승식 작전 때처럼 상상도 못한 발상을 하시잖아요, 주 선생님은.”


‘됐고, 위치나 알려줘 봐. 너한테 피해 안 가게 할 테니까.’


“그 말이 가장 두려운데요. 뭔가 저지르기는 할 거란 말이잖습니까.”


한참을 옥신각신하던 둘은, 마방에 들어간 뒤 한참이 되어서야 결론을 냈다. 권위와 언변을 앞세워 무풍을 어르고 달랜 주옥의 승리였다. 무풍은 허튼 짓 하지 않겠다는 주 선생의 다짐을 받은 뒤, 백씨마장의 위치를 알려주고 말았다. 사실 워낙 크고 유력한 곳이다 보니 정확한 위치까지도 필요 없이, 대략적인 방위만 알려주었을 뿐이었다.


“서쪽으로 가다 보면 중모현에서 가장 큰 대문이 있고, 열두 시진 내내 보초가 지키고 있을 겁니다. 거기가 백씨마장입니다.”


‘알았다. 약속대로 허튼 짓 안 할게.’


주옥이 대답했다. 절대 허튼 짓은 하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그건 주옥 본인 기준. 스스로 평가하기에 자신의 세운 계획은 철저히 이성적이었고 성공 가능성도 높아, 전혀 허튼 짓이 아니었다. 잠시 후 마방에 혼자 남아, 이런 생각에 잠겼다.


‘그래도 이렇게 큰 도시에서 가장 큰 대문을 세운 게 마장주라니, 기대 이상인걸.’


대문의 크기는 곧 지역 내에서의 위세를 반영했다. 그래서 백씨마장의 대문 크기는 의외였다. 그들이 경마장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은 분명 대단할 테지만, 현에서 그 위세로 수위를 다툴 정도일 줄은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경마장의 인기가 날로 치솟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그래도 일단 역사부터가 10년으로 짧았고, 도박성이 짙은 시설이이라 취향이 맞지 않는 현민은 아예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게다가 관영 시설인 이상, 일개 참가자인 백씨마장의 수익 지분도 한정되어 있었으니 진짜 돈을 빨아들이고 있는 건 아문 쪽이었다.


그런 백씨마장이 대상인과 대부호가 모인 이곳 중모현에서 가장 위세가 가장 높다?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번득 깨달음이 찾아왔다.


‘경주마 사업 말고도 뭔가 있는 거야.’


만약 백씨마장이 정말로 말들에게 내력을 불어넣어 끊임없이 경주마를 양산하고 있다면, 백씨마장이라는 집단은 반드시 무림과 연이 닿아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짐승에게 내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능력, 그런 짐승을 원하는 대로 부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정사를 불문하고 모든 무림 일파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얻으려 할 게 분명했다.


그러니 백씨마장의 능력도 무림일파의 눈에 들었다고 보는 게 타당했다. 그렇게 본다면 아귀가 맞았다. 백씨마장이 수상할 정도로 돈이 많은 것도, 위세가 높은 것도, 그토록 모든 게 비밀스러운 것도.


‘백씨마장과 연관된 무림일파 쪽에서 자금을 지원하고, 대가를 받아간다. 그리고 이런 관계를 숨기려 유난스럽게 비밀을 지키는 거야. 그리고...’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피어올랐다. 마교 수중에 떨어진 한청검을 백주귀가 차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설마 그 '무림일파'의 정체가...


‘여기까진 너무 나간 건가? 오늘 두 눈으로 확실히 확인해야겠어. 미안하다, 무풍.’


그 날 밤, 수위마저 귀가한 중모현 아문의 정문에서 커다란 검은 형체 하나가 튀어나왔다. 발소리를 완전히 죽인 채, 네 발을 재촉하는 검은 형체는 물론 주옥이었다. 모두가 잠든 야심한 시각, 주옥은 어떤 어려움도 없이 마방 문을 뛰어넘었다. 그의 입에는 얇은 철편(鐵片)이 하나 물려 있었으니, 쇠스랑의 날을 하나 부러뜨려 챙겨둔 것이었다.


마방을 빠져나온 주옥은 마구간 문틈 사이로 철편을 밀어넣은 뒤 그대로 위로 끌어당겨 빗장을 열고는 아무 소리 없이, 유유히 아문을 빠져 나왔다. 밤이 깊어 호롱불마저 꺼진 채 어스름한 달빛만이 비치는 대도시 중모현, 이제 이곳 전체가 놀이터나 다름없었다.


‘밤 공기가 기분이 좋네. 가끔씩 이렇게 밤 산책을 나오는 것도 좋겠어.’


흑마는 여유를 부리며 발걸음을 놀렸다. 발소리가 나지 않도록 주의하느라 그 걸음이 아주 빠르진 않았지만, 그건 말 기준이었다. 어둠 속에 깃든 흑마는 사람보다 월등히 빠른 속도로 이동하여, 현내를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칠흑 같은 모색이 밤과 하나 되어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았으며, 발소리는 누구의 귀에도 들리지 않았다.


무풍의 말대로 경마장에서 서쪽으로 15리쯤 가다 보니 과연 높고 넓은 대문이 나타났다. 번화가에서 한참 벗어난 곳이니 도시의 시설과 민가는 하나도 없고, 외딴 곳에 백씨마장만 덜렁 놓여 있는 모습이었다. 바로 그 곳에 서 있는 대문은 현내에서 본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높아, 1장 반 가까이 되었다. 점창파에서도, 중모현에서도 이런 규모의 문을 본 일이 없었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문 양 옆으로 길게 펼쳐진 담장이었다. 벽돌과 진흙을 발라 세운 담장은 대문과 그 높이가 같았고, 척 보기에도 견고했으며 대문 앞에서는 양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범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대체 내부의 모습이 어떻길래 저렇게까지 높은 벽을 세워야 했을지 절로 궁금증이 생길 지경이었다. 무인의 기도를 풍기는 남자 두 명이 보초를 서고 있다는 점이 더욱 수상함을 자아냈다. 지금은 아문의 보초들도 귀가하고 내부 건물의 순찰 당직을 서고 있는 늦은 시간인데도, 호롱불 하나 없이 짝지어 보초를 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의 밝은 눈에는 달빛만 겨우 받고 있는 보초들의 모습이 똑똑히 보였지만, 보초들은 어둠 속에 완전히 몸을 맡긴 흑마를 알아보지 못했다.


‘역시 들었던 대로야. 한밤중이 이 정도라면 낮에는 볼 것도 없겠지.’


마장이 위치한 장소는 외딴 곳이지만, 대문과 담장은 으리으리하다. 생각해 보면, 이 두 가지는 서로 충돌하는 모순이었다. 사람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 외딴 곳에 자리잡은 백씨마장이 왜 대문과 담장만은 저리 위압적으로 지어놓은 것일까. 주옥은 금방 그 해답을 알아냈다.


마장에는 마방이 여럿 딸린 마구간 뿐 아니라, 말들이 훈련할 수 있는 공간도 필요했다. 물론 부지가 작은 마장들은 공동으로 훈련장을 쓰거나, 주인 없는 공터를 이용하기도 했지만 백씨마장은 아니었다. 경주마를 육성하는 모든 과정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는 이 자들은, 분명 마장 안에 훈련장을 놓았을 것이다.


부지가 커지면 자연히 담장도 길어진다. 이런 환경에서 취할 수 있는 차선책이 바로 지금의 요새 같은 모습이었다. 불순한 목적을 띠고 이곳까지 온 주옥이었지만, 감탄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마장주가 아니라 궁주(宮主)라고 해도 되겠어, 이 정도라면.’


감탄도 마쳤으니, 계획을 실행에 옮길 차례였다. 주옥은 조용히 담장을 따라 걸으며 보초들의 감지 거리에서 벗어났다. 그리고는 담장을 면밀히 살피기 시작했다. 관리 상태도 좋았고, 역시 견고했다. 이 정도면 박차고 뛰어넘을 만했다.


‘충분히 가능할 거야. 시험해본 적은 없지만.’


말의 몸이 된 이래, 종(縱)으로 뛰어오르는 신법은 그리 많이 써 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바로 그런 종류의 신법을 써야 할 시점이었다. 내력을 끄집어낸 뒤, 네 발에 속도를 붙인 흑마가 정면의 담장을 향해 달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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