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이상한 천마가 되었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새글

장정소고
작품등록일 :
2024.08.04 20:46
최근연재일 :
2024.09.16 19:40
연재수 :
44 회
조회수 :
2,208
추천수 :
141
글자수 :
261,334

작성
24.09.01 12:35
조회
18
추천
2
글자
12쪽

경마왕(2)

DUMMY

무풍의 작명 감각에 실소가 나온 건 사실이지만, 동시에 수수께끼의 경마왕에 대해서도 알 수 없는 불안감, 긴장감이 동했다. 주옥이 재촉했다.


‘그래. 그 경마왕에 대해 말해 봐라.’


무풍이 알기 쉽게 차근차근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시다시피, 달리고자 하는 말은 많은데 한 번에 달릴 수 있는 마필 수는 정해져 있으니, 경주는 순번을 정해 돌아가지 않습니까? 그렇게 조가 짜이면, 부동의 1번 인기마는 항상 그 자의 백마였습니다. 주 선생님이 등장하기 전까지는요.”


'내가 경마왕의 독주를 끊었단 얘기로군. 그 자가 경마장의 왕이 된 건 언제부터였는데?'


"8년 전입니다. 경마장이 생긴 지 올해로 10년째니, 두 해만에 나타난 왕이 계속해서 집권중인 셈이지요."


생각보다는 오래된 강자였다. 하지만 주옥은 그 정도로 호들갑을 떨 위인이 아니었다.


‘흐음, 그렇군, 또?’


별로 감동하지 않은 듯한 주옥의 말투에, 무풍은 의아한 듯 되물었다.


“또라뇨? 대단하지 않습니까? 백섬마황 급의 명마를 8년간 계속 내보냈다는 얘긴데요. 그것도 백마로만 골라서요.”


반면, 주옥은 차분하게 대꾸했다.


‘백마만 키운다는 건 특이하지만, 그게 끝이라면 전대미문이라고 하진 않았겠지. 원래 경쟁이 체계화되면 그런 강자도 나올 수 있어. 무림의 소림파처럼.’


그러니 진짜 대단한 점을 빨리 말해. 주옥의 말에는 이런 의미가 담겨 있었다. 무풍도 납득하며 말을 이어갔다.


“흠··· 그렇군요. 사실, 말씀대로 대단한 점이 또 있긴 해요. 그의 백씨마장(白氏馬場)에서는 매년 한 마리만을 새 경주마로 내놓습니다.”


백씨마장이라. 백마만 키워내는 마장의 주인이 백씨 성을 가졌다는 얘기였다. 정말 백씨라서 백마만 키우는 것이라면, 대단한 완고함이었다. 주옥은 급히 떠오른 의문점을 짚었다.


‘잠깐, 그럼 지금 경주마 중에 백씨마장 말이 몇 마리야?’


“세 마리입니다. 마황, 천위 말고도 백무역사(白武力士)라는 말이 한 마리가 더 있는데, 그 녀석은 형제들처럼 무패는 아니지만, 여전히 강한 말입니다.”


그건 뭔가 이상했다. 매년 경주마를 한 마리씩 육성해 내는데 십 년 가량 된 경마장에 백씨마장 말이 고작 말이 세 마리라니. 다시 한 번 따져 물었다.


‘숫자가 안 맞는데. 경주마들은 못해도 오륙 년은 뛸 수 있잖아?’


무풍에게선 그 의문에 대한 대답도 어렵지 않게 나왔다.


“네 마리째가 출전할 때가 되면, 3년을 뛴 말은 기력이 남아있는지와 관계없이 은퇴 시킵니다. 대단한 건, 이 은퇴한 말을 절대 외부로 유출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종마로서 벌어들이는 수익을 아예 포기해 버린단 말입니다.”


‘그건 대단한 게 맞네.’


무풍에게 들어 알게 된 사실이지만, 경주마로서의 삶은 그리 길지 않았다. 웬만큼 뛰어난 말이라면 앞서 말한 대로 평균 오륙 년 정도 전성기를 유지했고, 은퇴 이후엔 다른 삶을 살았다. 짐마차를 끌거나 농사에 사용되도록 팔려 나가는 경우도 있었고, 부상이 심하거나 성격이 안 좋다면 도축 당하기도 했다. 그나마 말의 수요가 많은 중모현이기에, 전자가 후자보다 훨씬 많았다.


말 입장에서, 은퇴 이후 최고의 삶은 종마(種馬)의 삶이었다. 경주마 시절 좋은 성적을 올린 말들은 은퇴하고 나서 종마가 되어 더 융숭한 대접을 받곤 했다. 강한 말을 갖고자 하는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었으니, 우수한 경주마가 은퇴하고 나면 자신의 암말을 데려와 돈을 주고 그 혈통을 잇게 하려는 마주들이 말 그대로 줄을 서곤 했다. 말 입장에서도 위험하고 힘든 경주보다 이런 삶이 훨씬 나았으니, 그런 생활을 몇 년만 해도 경주마 시절을 우습게 뛰어넘는 수익을 기록하곤 했다.


그런 수익구조가 자리잡았으니, 예컨대 당장 백섬마황이 종마로 전향한다면 얼마의 수익을 낼 지는 측정조차 불가능했다. 이런 말들을 8년간 꾸준히 배출하면서도 한 번도 종마 생활을 시키지 않았다면, 백씨마장이 포기한 수익의 총합은 가히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이 점이 되려 주옥의 불안감을 자극했다.


‘그렇지만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해서 혈통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가 뭐지? 단순한 마주가 아닌 건가?’


너무 과감한 행보였기 때문이다. 마주, 마장주라면 결국 말 장사꾼이다. 그런 자가 8년간 돈을 내다 버리는 듯한 행보를 이어갔다는 얘기니 대체 장사꾼에게 돈보다 더 중요한 게 무엇일지 의문이었다. 이런 의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풍은 신이 나서 이야기를 이어 갔다.


“경마장이 있기 전에도 경마 자체는 음지에서 행해졌으니 그 때도 유력한 마장들이 있었지만, 백씨마장은 아니었습니다. 아마 평범한 일꾼 말들을 길러내는 마장이었을 겁니다. 백마만 키우지도 않았고요. 그랬던 곳이 8년만에 모든 기수들의 꿈과 목표가 되었으니, 저도 주 선생님을 못 만났으면 같은 꿈을 꿨을 겁니다.”


‘그래, 고맙다.’


주옥이 간단히 대꾸했다. 백씨마장에 대한 정보와 별개로, 꿈이 바뀔 정도로 자신과의 만남을 중히 여기고 있다는 얘기였으니 분명한 진심이 느껴졌다. 잠시 생각해본 뒤, 주옥이 다시 물었다.


‘그 자의 이름은 뭐야?’


‘백주귀(白朱貴)라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자의 정보는 왜 물으세요?’


‘확인해 볼 게 있어. 우리 다음 경주가 언제지? 그 때 백주귀도 오겠지?’


그 물음에, 무풍이 의아해 하며 대답했다.


“경주는 1주일 뒤고··· 아마 올 겁니다. 그런데, 뭔진 몰라도 그 몸으로 직접 확인하실 수 있겠어요? 백씨마장과 백주귀에 관련된 정보는 온통 수수께끼인데요.”


그 말대로, 거대한 말의 몸으로 정보를 모으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일단 주옥도 생각이 있었으니, 상대를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지금 무풍의 도움을 청하는 건 여전히 위험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다.


‘응. 일단은 혼자 해 볼게. 말끼리는 대화가 통하니까, 그쪽 백마들과 얘기를 나눠볼까 싶어. 필요한 게 있으면 눈치껏 도와줘도 돼.’


“알겠습니다.”


무풍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방금의 말로, 주옥의 신뢰를 확인했으니 그보다 보람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 * *


두 번째 경주는 훨씬 쉬웠다. 이번 경주도 2번 인기마는 백섬마황이었지만, 3번 인기마는 쾌속신보가 아닌 처음 보는 말이었다. 이번에는 다른 말들의 순위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없었으니 주옥도 그저 힘껏 달렸다.


그러면서도 중간중간 알게 모르게 속도를 조절해 백섬마황과 1마신 차이로 들어오는 걸 잊지 않았다. 회영의 우승을 포함해 이걸로 중모현 아문의 3연승이었으니, 경마장의 판도도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거, 이제 백섬마황도 끝 아니야? 지난번 3위부터 불안하더니, 오늘도 우승을 못 하잖아?”

“역대 백씨마장 말들 중에서도 가장 빠르다는 놈이... 어디가 아픈 건가?”


군중들이 웅성이는 소리를 뚫고, 백섬마황이 주옥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꽤 긴 시간을 들여 인간은 알아볼 수 없는 몸짓을 취했다. 이례적인 상황에 백섬마황의 기수도 당황하는 듯 보였지만, 곧 말의 심정을 이해했다.


즉 자신을 꺾은 숙적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을 간파했으니,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게끔 놔두었다. 말과 기수가 함께한 시간이 충분하면 이 정도의 소통이 가능한 모양이었다. 물론, 백섬마황이 이런 복잡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줄은 전혀 깨닫지 못했다.


‘넌 나보다 빠르군. 하지만 포기하지 않겠다. 다음엔 더 빠르게 달려서, 이곳의 왕이 누구인지 증명하겠다.’


이렇게 말하고 돌아서는 백섬마황에게, 주옥은 급히 전음을 보냈다.


'잠깐!'


돌아서서 가려던 백섬마황이 다시 주옥을 돌아봤다. 물어보고 싶은 것은 산더미 같았지만, 너무 오래 붙잡고 있다가는 기수의 의심을 사거나, 참을성이 다할 지 몰랐다. 부담감을 안은 주옥이 전음을 보내려는 그 순간, 무풍의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선배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기수들 사이에서 무풍의 평판은 그리 좋지 않았다. 생초짜에 불과한 소년이 석연찮은 이유로 관에 고용돼 최고의 명마를 배정받았으니, 그를 향한 의혹과 질투의 시선이 만발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풍이 먼저 선배 기수에게 말을 건넨 이유라면 하나 뿐, 바로 주옥에게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였다. 흑마와 백마가 서로 가까이 다가서는 그 순간, 말들 사이에 뭔가 의사소통이 있음을 눈치껏 깨달은 무풍은 바로 지금이 자신이 나서야 할 때임을 느꼈다.


‘고맙다. 시간 좀 더 벌어 줘.’


주옥은 재빨리 무풍에게 감사 인사를 한 뒤, 눈앞의 백섬마황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 사이 머리 위로는 선후배 기수들 간의 어색한 인삿말이 오갔다.


‘넌 엄청 빠르고 똑똑해. 영약을 먹으며 자란 내 동료보다 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뭐가 널 그렇게 만든 거냐?’


마황은 예의 그 도도한 자존심을 굽히지 않은 채 대답했다.


‘주인님의 철저한 훈련과 관리. 그건 너도 마찬가지일 텐데?’


‘아니, 그러니까 네 주인은 그 관리를 어떻게 하냐고. 뭔가 특별한 게 있을 거 아냐?’


단순히 빨리 달리는 게 전부였다면 주옥도 이렇게 궁금해 하진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백섬마황의 표현력과 사고력은 회영의 그것에 뒤지지 않았으니, 지능 역시 인간에 필적했던 것이다. 다른 명마, 이를테면 쾌속신보는 이 정도의 지능을 갖추지 못했으니, 큰 위화감이 느껴지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백섬마황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특별한 건 아무 것도 없다. 나는 태어난 이래 모든 훈련을 일상적으로 받아 왔으니 그 모든 훈련과 관리는 내게 평범할 뿐이다.'


‘이런 미친.’


주옥이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마황의 말인즉, 자신은 평생 한 가지 방식으로만 훈련과 관리를 받아 왔으니 뭐가 특별하고, 뭐가 일상적인지 판단조차 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처음에는 이 머리 잘 굴리는 짐승이 대답을 회피하는 건가 싶어 약이 슬쩍 올랐지만, 생각해 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전음을 끄고 주옥이 스스로 되뇌었다.


‘하긴, 다른 말들이 어떻게 훈련하는 지 얘가 어떻게 알겠어. 다르게 질문해야 할 지도 몰라. 이를 테면...’


주옥은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다시 물었다.


‘너도 혹시 몸 속에 기운이 흐르냐?’


다시 말해, 내력을 습득했냐는 질문. 만약 내력이 상단전을 자극해 머리가 좋아진다는 예측이 맞다면, 이 말도 내력을 운용하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마황의 답이 모호했으니 대화를 좀더 이어가야 했다.


‘기운이라면, 안 흐르는 경우도 있나?’


‘그러니까, 숨을 들이쉴 때 같이 섞여 들어오는 미묘한 기운을 몸 속 곳곳에 보낸단 말이지?’


‘그렇다.’


좋아. 내력이 흐른단 얘기로군. 일단 오늘은 이 정도면 됐어.


‘그래. 알았다. 또 보자.’


이렇게 말한 뒤, 주옥은 먼저 쌩 고개를 돌려 걸어 나갔다. 그 덕에 선배 기수와 힘겹게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던 무풍이 급히 말을 마쳐야 했다.


“앗, 그, 그럼 이만! 감사했습니다아-!”


무풍의 목소리가 선배 기수와 백섬마황에게서 멀어져 갔다. 선배 기수가 황당해 하며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뭘 좀 알아내셨습니까?”


잠시 후, 시상대에 오르기 직전 무풍이 주옥에게 물었다. 백섬마황과의 대화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묻는 질문. 주옥은 간단히 대답해 주었다.


‘알아냈지. 백주귀 그 놈, 뭔가 터무니 없는 짓을 하는 것 같아. 아직 확신할 순 없지만...’


“도리에 어긋나는 짓입니까?”


‘그럴 지도 몰라. 일단은 준비를 좀 하자고.’


이렇게 대답하며, 주옥과 무풍이 시상대에 올랐다.


“와아아아!”


경마장을 가득 메운 군중이 떠나가라 함성을 질렀다. 또 다시 경마장의 가장 영예로운 위치에 올라선 것은 중모현의 정9품 주부, 흑풍암제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조금 이상한 천마가 되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골드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24.08.27 17 0 -
공지 연재 시각 : 매일 19시 40분(저녁 7시 40분) +1 24.08.04 50 0 -
44 환수 NEW 19시간 전 5 0 13쪽
43 처단(4) 24.09.15 10 0 13쪽
42 처단(3) 24.09.14 7 0 13쪽
41 처단(2) 24.09.13 8 1 13쪽
40 처단 24.09.12 9 1 13쪽
39 재월담(2) 24.09.11 11 1 13쪽
38 재월담 24.09.10 10 1 13쪽
37 협상(2) 24.09.09 11 1 13쪽
36 협상 24.09.08 13 1 13쪽
35 백씨마장(4) 24.09.07 12 2 12쪽
34 백씨마장(3) 24.09.06 16 2 12쪽
33 백씨마장(2) 24.09.05 13 2 13쪽
32 백씨마장 24.09.04 14 3 13쪽
31 예감(2) 24.09.03 18 3 12쪽
30 예감 24.09.02 17 2 13쪽
» 경마왕(2) 24.09.01 19 2 12쪽
28 경마왕 24.08.31 18 2 13쪽
27 삼쌍승식 작전(4) 24.08.30 19 2 13쪽
26 삼쌍승식 작전(3) 24.08.29 23 3 12쪽
25 삼쌍승식 작전(2) 24.08.28 24 3 13쪽
24 삼쌍승식 작전 24.08.27 28 3 13쪽
23 무풍(2) 24.08.26 27 4 13쪽
22 무풍 24.08.25 36 4 13쪽
21 중모현으로(3) 24.08.24 40 4 13쪽
20 중모현으로(2) 24.08.23 48 3 14쪽
19 중모현으로 24.08.22 51 3 13쪽
18 새로운 만남(2) 24.08.21 54 4 13쪽
17 새로운 만남 24.08.20 53 4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