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이상한 천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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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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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쌍승식 작전

DUMMY

아무리 초급 심법이라 해도, 아예 무공을 접한 적 없는 무풍이 첫 명상에 바로 진기를 잡아낼 줄은 몰랐다. 내심 일주일 후까지 첫 타통에 성공하기만 해도 괜찮다고 여기던 와중 한 번에 예상한 성취를 뛰어넘었으니,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흥분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아예 무풍에게 창천심결의 구결을 전부 일러주곤 받아쓰게 했다. 호기심 많은 청년 무풍은 흑 선생이 어떻게 이런 지식을 다 알고 있는 건지 물어보려 했지만, 곧 예의 눈빛과 전음으로 협박을 당하고는 질문을 삼켜 버렸다. 흑 선생이 시키는 대로 다시 명상에 집중하려 눈을 감은 무풍에게, 전음이 들려 왔다.


‘그건 일단 양맥 타통에 성공하고 나면 알려줄게. 잘 하면 오늘, 늦어도 내일이면 할 수 있을 거다.’


“예.”


그제야 무풍은 자신의 질문이 묵살당한 데도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좋아. 일단 여기에 집중하자. 내가 빨리 내력을 얻으면 그만큼 빨리 물어볼 수 있을 테니까.’


무릇 젊은 민초들에게 무인은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 점은 무풍에게도 다르지 않아, 양맥을 타통하여 내력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머릿속이 흥분으로 가득 차올랐다.


바로 그 점이 문제였다. 주옥이 보기에, 극도로 흥분한 무풍이 평정심을 되찾으려면 한참 시간이 걸릴 게 분명했다. 그런 상황에서 무림 이야기까지 해준다면, 결코 당장 좋을 것이 없었다.


집중하고 있는 무풍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주옥의 머릿속도 복잡했다. 청년의 성취가 예상보다 빠른 점은 물론 호재였지만, 그 덕에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진도를 나가야 했으니,일단 자신이 무공 구결을 외우고 있는 경위를 얼른 꾸며내야 했다. 또는, 다른 가능성도 있었다.


‘...아니면 그냥 사실대로 다 말해 주든가.'


이제 와서 거짓말에 거짓말을 덧붙여 봐야 그리 이득이 커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무풍은 흑풍암제가 말을 한다는 사실을 잘 숨기고 있고, 앞으로도 쉽게 그 사실을 공개할 리 없었다. 무풍을 제자로 여기는 이상, 이젠 모든 사실을 얘기해 줘도 크게 나쁘지 않을 지 몰랐다.


‘그래. 더 이상 숨기는 건 무의미할지도 몰라. 가급적 경주날 전에 말해줘야겠어.’


짐승의 몸을 하게 된 이래, 자신의 이야기를 남에게 털어놓는 것은 포기한 지 오래였다. 반면 눈앞의 이 젊은 기수는 벌써 주옥을 사사하고 있는 데다, 말하는 말에게도 익숙해져 있으니 과거 이야기를 사실대로 털어 놓아도 믿어줄 것 같았다. 이렇게 생각하자 주옥의 마음 역시 무풍만큼이나 부풀기 시작했다.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 이제 단전에 내력을 담는 데 성공한 무풍은 주옥과 나란히 마방으로 복귀했다. 처음으로 무인의 영역에 발을 들인 무풍은 주옥에게 모든 것을 꼬치꼬치 캐묻고 있었다. 주의해야 할 점은 없는지, 자신은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는지, 앞으로 수련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등, 처음 무공을 익힌 설렘이 그대로 전해지는 질문 공세였다.


그 마음을 알기에, 주옥은 최대한 친절하게 하나씩 대답해 주었다. 그러는 사이에 발길이 마방에 닿았다. 그제서야 무풍도 정신이 들어, 가장 궁금한 질문을 던지려 했다. 흑 선생이 어떻게 무공 구결을 알고 있는가. 하지만, 마방에 미리 와 있던 인물을 보고, 무풍의 질문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마구간 안의 수많은 마방 중, 비어 있는 주옥의 마방 문 앞에 장녹아가 서 있었다.


“녹아!”


그녀를 부르는 무풍의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반가움이 앞섰지만, 동시에 곤란해 하는 목소리. 눈치가 빤한 주옥은 그것만 들어도 대강 이 젊은 기수의 심리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자식 이거, 좋아하네. 좋아해.’


장녹아의 입장도 꽤나 어색해 보였다. 일단, 왜 온 것인지부터가 불분명했다. 주옥을 보려고? 무풍을 보려고?


그런데, 어색한 건 주옥도 마찬가지였다. 장녹아와도 대화를 튼 사이, 무풍과도 대화를 튼 사이, 그런데 젊은 남녀 둘은 상대방이 주옥과 대화를 나눈다는 사실을 모른 채, 각자 주옥의 능력을 숨겨주고 있는 관계. 기묘한 삼각 관계가 펼쳐졌다.


‘···내가 풀어야 한다.’


주옥의 생각이었다. 이 자리를 어색하게 만드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었으니, 상황을 풀어야 하는 것도 자신. 그래서, 두 사람 모두가 들을 수 있게 전음을 날렸다.


‘얘, 내가 말하는 거 알아. 우리만 있을 땐 그냥 편하게 말하면 돼.’


“네?”


두 사람이 동시에 놀란 토끼눈이 되어, 주옥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럴 만도 하지. 장안의 화제인 정9품 영웅 흑마가 말을 한다는 사실이 새어나갔다는 얘기였으니 주옥의 입장도 머쓱해져 덧붙였다.


‘미안, 그렇게 됐다.’


이후, 주옥은 장녹아와 무풍을 앉혀 두고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전생에 점창파의 무인이었다는 점, 그러면서도 무공은 쓰지 못했다는 점, 대신 암기력과 눈썰미로 장로가 되었다는 점, 한 번 죽었다가 태상노군을 만나 말의 몸으로 깨어났다는 점, 이후 야생마들을 만난 경위와 이곳까지 흘러들어 오게 된 경위까지. 긴 이야기가 펼쳐졌지만, 장녹아와 무풍은 한 순간도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요술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가 없네요, 흑 선생님.”


믿기 어려운 이야기인지, 무풍은 넋두리 하듯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장녹아가 문득 무풍에게 물었다.


“···흑 선생님? 주 선생님이 아니라?”


“응. 왜 주 선생님이야? 흑풍암제인데.”


“그런 촌스러운 이름은 누가 지었어?”


대화를 듣고 있자니, 장녹아에게는 인간 시절 이름을 말해 주었지만 무풍에겐 그렇지 않았다. 얼른 자신의 이름, 주옥을 말해 주자 무풍도 그제서야 이해하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럼 앞으로는 주 선생님이라 부르겠습니다.”


‘그래. 맘대로 해라.’


주옥은 간단히 대꾸했다. 그 사이 의문을 참지 못하고 장녹아가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과거 이야기는 갑자기 왜 해 주시는 거예요?”


“아, 그건 있지. 오늘 내가 주 선생님한테 기가 막힌 걸 배웠는데···”


답을 가로챈 것은 무풍이었다. 잔뜩 들떠서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을 보니 영락없이 장녹아를 만나 신이 난 모습이었다. 누가 봐도 오래 알고 지낸 친우 사이. 그리고 그 이상의 감정이 전해져 왔다. 지켜보는 주옥의 마음 한구석도 왠지 훈훈해졌다.


‘좋을 때다.’


무풍은 한참 오늘 있었던 일들을 설명해 주었다. 그가 첫 타통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하자, 장녹아는 화들짝 놀라 즉시 질문했다.


“뭐? 그럼 너도 무인이 되는 거야? 주 선생님의 제자로?”


“그건··· 모르겠어. 사실 무림에 투신하고 싶진 않아. 일단 지금은 기수니까, 기수로서 실력을 키우고 싶어.”


“응···그렇구나. 잘 됐네. 축하해.”


이렇게 대답하는 장녹아의 말투에서는 어쩐지 일말의 안도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무인이 된다면 일반 민초인 자신과는 거리를 두게 될 테니, 일단은 지금의 생활을 유지하겠다는 무풍의 말에서 안도감을 느끼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아, 맞다.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야?”


무풍은 갑자기 생각난 듯 뒤늦은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을 듣자 주옥도 퍼뜩 의문이 되살아났다. 장녹아가 갑자기 마방에는 왜 찾아온 것일까? 장녹아는 가볍게 대답했다.


“아, 소문을 들었어. 마을을 구한 영웅 흑마가 곧 첫 경주에 나온다고. 주 선생님은 나한테도 생명의 은인이니까, 잘 지내고 계신가 확인하러 왔지. 그런데 네가 기수일 줄은 몰랐어.”


“기수 소문은 안 퍼진 거야?”


“응. 아무도 관심 없는 것 같던데.”


어쩐지 분위기가 약간 썰렁해졌다. 대단한 말이 첫 경주에 나선다는 소문이 퍼졌으면, 그 기수에 대한 궁금증도 생길만 한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럴 만한 이유라면···


‘아마 내 인기가 너무 대단한가 보지?’


기수 따윈 궁금하지도 않을 정도로 말의 인기가 압도적인 걸지도 몰랐다. 무풍의 표정도 그리 나쁘지는 않은 걸로 보아, 오히려 부담을 한결 던 것처럼 보였다. 약간 마음을 놓고, 주옥이 장녹아에게 물었다.


‘그래서, 녹아 너는 잘 지내는 거냐? 관에서 돈은 잘 챙겨 줬고?’


이제부터는 일부러 무풍에게도 들리도록 동시에 전음을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장녹아는 약간 난처한 표정이 되어 대답했다.


“그게, 시간이 좀 걸리나 봐요. 증 총포두님은 항상 잘 대해 주시니까 떼먹히진 않으리라 믿지만, 공금(公金)이라는 게 처리하는 시간이 좀 걸린다고···”


흠, 장녹아가 야생마들을 관에 넘긴 지 벌써 몇 주인데 아직도 대금을 못 받았다고? 있을 수야 있는 일이지만, 흔한 경우는 아니었다. 이렇게까지 처리가 늦어지는 이유라면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었다. 담당자가 늑장을 피우고 있거나, 아니면 재정에 구멍이 났거나.


‘예삿일은 아니구나. 나랑 무풍이 한 번 알아볼게.’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사실 아버지 병세가 악화되셔서 약값이 좀 필요하거든요.”


“뭐? 진짜? 많이 안 좋으신 거야?”


무풍이 끼어들어 물었다. 진심으로 걱정하는 말투였다.


“위독하신 건 아니지만, 약은 빨리 쓰면 좋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대답하는 장녹아의 얼굴에는 적잖은 근심이 서려 있어, 과연 정말 여유가 있는 건지 의심을 품게 했다. 돈 때문에 걱정하는 처지라. 주옥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두 사람에게 동시에 전달했다.


‘방법이 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주옥을 돌아봤지만, 먼저 질문한 것은 장녹아였다.


“네? 무슨 방법이요?”


‘급전(急錢)을 당겨올 수 있는 방법. 대신, 조건이 있어.’


이렇게 답한 주옥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 * *


매일 훈련장과 아문 내 마구간만을 오가던 주옥에게, 경주날은 구경거리로 가득한 설레는 날이었다. 경마장에 마련된 임시 마방으로 향하는 길에는, 생전 본 적 없는 대도시의 풍경이 가득 들어차 있었으니, 그걸 구경하는 것만 해도 혼이 나갈 지경이었다.


대조적으로, 고삐를 잡고 있는 무풍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토할 듯 굳어 있었다. 무풍은 나지막히 주옥에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물어 왔다.


“정말 괜찮을까요? 아무리 선생님이라지만 백섬마황, 쾌속신보도 보통이 아니라고요.”


‘어허, 걱정 뚝. 벌써 몇 번 말했냐.’


무풍을 보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 대도시의 화려한 전경은 보고 또 봐도 계속 새로운 풍경의 연속이어서,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반면, 일주일 전 장녹아가 있을 때 함께 세운 계획을 곱씹는 무풍의 속은 타들어갔다. 당시 주옥은 대뜸 두 남녀에게 이런 말을 전해 왔다.


‘삼쌍승식(三雙勝式)에 돈을 걸어. 1등은 나, 2등은 쾌속신보, 3등은 백섬마황. 죄다 인기마들이라 각자 배당은 떨어지지만, 삼쌍승식이라면 많이 벌 수 있을 거야.’


장녹아와 무풍이 의문 가득한 눈으로 주옥을 돌아봤다. 삼쌍승식이란 경마에서 돈을 거는 방식으로, 1,2,3위로 들어올 말들을 순서까지 전부 맞혀야 돈을 딸 수 있었다. 맞히기 어려운 만큼 배당도 어마어마하게 높아, 경마판에서 잔뼈가 굵은 도박꾼들, 내지는 본인이 그렇다고 믿는 멍청이들이나 이렇게 돈을 걸곤 했다.


“돈을 세 마리한테나 걸라고요?”


예상대로 장녹아는 아예 삼쌍승식이라는 말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반면 무풍은 주옥에게 급히 질문했다.


“선생님은 우승한다 쳐도, 2등, 3등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게다가 최고 인기마인 백섬마황이 3등이요? 백섬마황은 첫 경주 이래 지금껏 1년간 무패예요! 별명이 무려 경마장의 패왕(霸王)이라고요!”


‘패왕이고 뭐고, 내가 그렇게 만들면 돼.’


“그건 승부조작이에요!”


‘말이 무슨 승부조작이야. 짜고 달리는 것도 아닌데.’


“그럼 내부정보 유출이죠! 그것도 안 된다고요!”


‘아니지. 난 그냥 권고하는 거라고. 실제 경주에서 1,2,3등이 어떻게 될 지는 나도 몰라. 그냥 그런 작전을 쓰겠다고만 했을 뿐이야.’


이렇게 대꾸한 뒤, 주옥은 장녹아에게만 순간적으로 따로 전음을 보냈다. 무풍은 듣지 못하는 소리였다.


‘이건 그냥 하는 소리야. 내가 확실히 그렇게 만들 테니까 돈만 걸면 돼.’


전음을 들은 장녹아가 슬며시 웃음을 짓는 사이, 무풍은 필사적으로 반박할 말을 찾았다. 하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아까 조건이 있다고 하셨죠. 그건 뭔가요?”


질문한 것은 장녹아였다. 그러고 보니 돈을 벌게 해 주는 대가로, 조건을 하나 걸었었다. 주옥이 곧장 전음으로 대답했다.


“만두. 최소한 열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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