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이상한 천마가 되었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새글

장정소고
작품등록일 :
2024.08.04 20:46
최근연재일 :
2024.09.16 19:40
연재수 :
44 회
조회수 :
2,202
추천수 :
141
글자수 :
261,334

작성
24.08.31 13:35
조회
17
추천
2
글자
13쪽

경마왕

DUMMY

그 말에, 무풍이 정곡을 찔린 듯 크게 당황하며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나름대로 자기 생각을 전달하는 모습이 가상했다.


“아, 아니, 제가 무슨 생각인지는 어떻게 아시고... 하지만 말입니다. 녹아가 다시는 발도 들이지 못할 정도로 경마가 잘못된 거라면, 거기서 길을 찾고 있는 저도...”


주옥이 무풍의 말을 끊었다.


‘빠르게 달리고 싶어하지 않는 짐승이 있냐? 여흥을 싫어하는 인간이 있어? 그 두 가지 욕구가 만난 게 경마일 뿐이야. 문제가 되는 건 그깟 여흥에 자기 본성을 전부 드러내는 인간들이지. 네가 천하의 모든 일을 다 책임질래? 그게 아니라면, 너는 더 빠르게 달리는 일에만 집중해라.’


마방 전체가 침묵에 잠겼다. 그 긴 침묵을 깬 것은 장녹아였다.


“나도 동감이야. 비록 그곳이 무서웠어도, 네가 무서운 건 아니야. 오히려 그런 수라장에서 나를 위해 싸워 줬으니 고마울 따름이지. 뭐, 관에서 널 고용한 거니까 떳떳치 못한 일도 아니잖아? 애초에 규정상 기수는 경마에 돈을 걸 수도 없고 말이야. 엄청 멋있었어. 주 선생님이랑 달리는 네 모습.”


이렇게 말하며, 장녹아는 무풍에게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와 눈을 마주친 무풍의 얼굴이 순간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이렇게 되자 가장 당황한 것은 중간에 낀 주옥이었다.


‘잠깐, 이거 이거, 이 분위기 뭐야? 역시 젊은 남녀인가?!’


젊은이들의 과감함에 질색하는 꼰대가 된 기분이었다. 가정을 이루지 못한 도사로 40년 가까이 살아 온 주옥이 보기에, 지금 이 상황은 낯뜨겁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따.


‘크흠, 일단은 말이지.’


이 알 수 없는 간질간질한 분위기를 그대로 방치했다간 본인의 마방에서 본인이 자리를 피해줘야 하는 상황이 올 지도 몰랐다. 그래서 주의를 환기하,자 두 남녀의 시선이 다시 흑마에게 꽂혔다.


‘가속을 선택한 이유부터 말해 보자. 복기는 중요하니까 말이야.’


“아...예! 아까 그 상황에선 말이죠. 역시 규정상 몸싸움이 부담스러웠고... 경주 전에 마황이 선생님을 노려보면서 유독 경쟁심을 불태우길래, 승부를 걸면 피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주절주절 길게 이어지는 설명을 들으며, 주옥은 만두 하나를 더 입에 넣었다. 그러면서 흘긋 곁눈질로 장녹아를 살펴보니, 그녀 역시 은은한 미소를 띤 채 무풍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두 남녀가 돌아간 뒤, 주옥은 다시 한청검을 떠올렸다. 물론 가득 쌓여 있던 만두는 전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몇 살쯤 됐을까. 사십? 오십? 척 보기로는 꽤 강해 보였는데. 말의 몸으로는 자유롭게 조사를 할 수가 없어. 게다가 무인이 엮여 있으니 무풍을 움직이기도 부담이고.’


역시 관건은 한청검을 찬 무인의 정체였다. 그리고 문제는 지금 그 자의 정체를 파헤칠 마땅할 방법이 없다는 점. 제아무리 무풍이 말을 잘 듣는다 해도, 그 정도로 강한 무인의 뒤를 캐게 하는 건 너무 위험했다. 게다가, 상대가 마교인일 가능성도 있었으니 더더욱. 결국 혼자 푸념하는 수밖에 없었다.


‘제기랄. 인간 세상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하다 못해 그 무인의 거처라도 알고 있다면, 무식한 방법이라도 쓸 수 있었다. 예컨대, 밤중에 마구간을 탈출하고 그 무인을 찾아가 전음으로 심문하는 방법. 그 무인의 확실한 기량은 붙어 봐야 아는 법이지만, 일단 지금 자신의 능력이라면 웬만한 무인은 문제가 되지 않을 터였다.


물론 선호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만약 진짜 그런 짓을 저릴렀다간 뒷감당도 상당히 골치아플 테니, 웬만해선 삼가야 하는 극단적 대응이란 것도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마음 같아선 당장 그렇게 하고 싶을 정도로, 한청검은 중요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궁여지책이 하나 떠올랐다. 주옥은 전음으로 회영을 불렀다.


‘회색잔영(灰色殘影)아, 너 혹시 경주 일정 잡혔냐?’


회색잔영은 흑풍암제처럼, 인간이 마음대로 갖다 붙인 이름이었다. 바로 옆 마방에 들어가 있던 회영이 고개를 내밀고 마방 벽 위로 주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몸으로 대답했다.


‘그렇다. 2주 뒤, 기수는 무풍.’


중모현 경마장은 한 곳이었고, 경주를 하고자 하는 말은 많았으니 기수 한 명이 말 여러 마리를 담당하는 경우는 흔했다. 무풍은 회영 역시 담당하고 있었으니, 그의 첫 경주 일정도 잡혔다. 주옥이 다시 물었다.


‘경기장에 가면, 군중 속에 혹시 내가 말하는 사람이 있나 확인해 줘.’


‘어떤 특징?’


‘푸른 의복, 허리춤에 칼, 날카로운 인상...’


그 무인, 혹시 회영의 경주에도 나타나지 않을까? 어디 머무는 지 알 수 없으니, 어디에 나타나는 지에 집중한다. 만약 경마장에 계속해서 모습을 보인다면 경마와 깊이 관련있는 인물이란 얘기일 것이다. 그럼 자연스럽게 무풍에게 물어볼 수 있다. 만약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 땐 나도 모르겠다. 에라이.’


주옥이 독백을 마쳤다.


* * *


주옥이 경주마로서의 역량을 갈고닦는 동안, 회영 역시 발전을 거듭했다. 관점에 따라선 주옥과 무풍이 이룬 성장을 합쳐도, 같은 기간 더욱 많은 것을 이룬 건 회영이라 볼 수 있었다.


‘네 수준에 맞는 새로운 언어가 필요해.’


옆 마방에 살고 있는 회영에게, 주옥은 이렇게 말했다. 말들의 몸짓 언어에는 제약이 많았다. 가장 큰 문제점은 이미 알고 있는 대상만 지칭할 수 있다는 것. 짐승의 지능이라면 그 정도로도 충분했겠지만 이미 사람 이상의 사고력을 갖춘 회영에겐 어휘의 수가 턱없이 부족했다.


‘그렇군. 방법이 있나?’


회영이 곧바로 대답했다. 기존의 의사소통 수단에 문제가 있다는 것쯤, 회영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주옥과 회영은 머리를 맞대고 새 언어를 만들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반드시 소리를 표현하는 의사소통 수단이 있어야 한다는 점. 그래야 새로운 단어를 계속해서 추가해 나갈 수 있었다. 함께 지내는 동안, 말 두 마리는 각자의 마방에서 고개를 내밀고 한참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새로운 몸짓 언어가 완성됐다. 원래부터 두뇌가 비상했던 주옥이야 그렇다 쳐도,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언어를 며칠만에 습득한 회영도 대단히 영특했다. 그 능력에 감탄하며, 주옥이 전음을 보냈다.


‘좋았어! 네 이름은 회영이야. 내가 지은 이름이지. 어떠냐?’


‘좋다. 넌 오래 전부터 나를 볼 때마다 그 이름을 떠올렸겠군.’


‘맞아. 인간은 원래 그렇다고. 이름과 인물을 밀접하게 연관짓지.’


이제 회영은 이 새로운 언어를 갈청과 유성에게도 조금씩 알려줄 것이다. 이렇게 회영은 보호와 관리를 요하는 부하가 아니라 동등한 지적 수준을 가진 동료가 되었으니, 유성과 갈청에겐 이런 변화가 없다는 게 못내 아쉬울 지경이었다.


‘걔들,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 머리가 트였으면 좋겠단 말이지. 이대로 둘,둘 갈라지는 것보단.’


물론 암말들도 짐승 치고는 영특한 편이었지만, 회영처럼 겉모습은 말, 머릿속은 인간이라는 입장을 이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시간이 갈수록 회영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점점 가까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회영 같은 동료가 둘이나 더 늘어난다면 반갑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 회영이 마방에 입실했다. 주옥이 즉각 물었다.


‘어떻게 됐어?’


회영은 힘든 기색도 없이 곧장 대답했다. 지금 이 회색 말은 자신의 첫 경주를 마치고 거처로 되돌아온 참이었다.


‘경주? 남자?’


‘둘 다.’


회영은 과연 우승을 했는가? 한청검을 가진 남자는 또 나타났는가? 이 두 가지를 뜻했다. 회영은 두 가지 모두를 천천히 대답해주기 시작했다.


‘일단 우승. 코 차이. 상대는, 백은천위(白銀天威). 하얀 말이었다.’


백은천위라는 이름은 고사하고, ‘호랑이’라는 일반명사도 말할 수 없던 회영이, 이젠 소리나는 대로 얼마든지 말을 할 수 있게 됐다. 자연히 대화도 거침없어졌다.


우선, 코 차이라면 경쟁마보다 코 길이 차이만큼 앞서서 우승했다는 얘기였다. 즉, 6리를 달려 겨우 한두 치 앞섰다는 얘기였으니, 상당히 놀라운 일이었다. 함께 달려보고 판단한 결과, 회영의 달리기는 백섬마황과 쾌속신보 사이 정도는 충분히 되었다. 달리 말해, 중모현 경마장의 패왕 백섬마황만 피하면 회영과 대등하게 맞설 말은 없을 줄 알았던 것이다. 게다가, 경쟁마의 이름도 마음에 밟혔다.


‘백섬마황과 같은 백마에, 이름도 백은천위라. 느낌이 너무 비슷한데.’


중모현 경마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진작에 파악이 끝났다. 말들의 이름이 하나같이 손발을 오그라들 정도로 거창하고 유치하긴 했어도, 그 이름을 짓는 건 인간이었다. 그 말인 즉슨, 형제 말들은 형제 인간처럼 비슷한 이름을 가지는 경우가 흔했다. 백은천위 정도라면 백섬마황의 형제 말로 부족함이 없는 이름이었으니, 계속해서 질문했다.


‘그리고 말해준 인상의 남자는? 칼도 차고 있었나?’


‘그렇다. 그 남자, 경주가 끝나고 관중석에서 내려왔다. 백은천위를 만지고 말을 걸었다.’


‘어라? 경주마를 만지고 말을 걸어?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칼 차고 있던 거 맞지?’


‘확실하다. 그렇다면 지체나 신분이 비범한 자겠군.’


이제 회영이 이 정도 추론을 하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 추론의 내용 역시 틀리지 않았으니, 경주 직후에 이어지는 시상식 동안 말을 만질 수 있는 인물은 둘 뿐이었다. 방금 경주를 끝낸 기수, 그리고 마주. 즉 백은천위를 만진 그 남자가 기수가 아니라면, 마주일 수밖에 없었다.


‘그 남자, 경주 직후에 관중석에서 내려왔다고 했지?’


주옥의 질문에 회영이 대답했다.


‘그렇다. 기수는 아니었다.’


지금 중모현에서 활동중인 기수들의 숫자에는 여유가 없었으니, 기수들은 매 경주마다 말 위에 올랐다. 그렇다면 말에서 내린 게 아니라 관중석에서 내려온 그 한청검의 무인은 백은천위의 마주일 수밖에 없었다. 만약 백은천위와 백섬마황이 예상대로 형제 말이라면, 백섬마황의 마주이기도 할 것이다.


‘대단한 놈이잖아? 그런 명마를 둘이나 키워냈다니.’


만약 추측이 맞다면, 기수인 무풍이 그 자를 모를 리 없었다. 그래서 다음날, 무풍에게 물었다.


‘어제 회영한테 진 백은천위라는 말, 혹시 백섬마황과 형제냐?’


“예? 아, 맞긴 한데, 어떻게 아셨죠?”


훈련을 앞두고 말들을 살피러 온 무풍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답했다. 주옥은 계속 말했다.


‘대충 찍었어. 그런데 우리 경주 땐 왜 안 내려온 거야? 보통은 시상 때 마주와 기수가 함께 상을 받으러 나오잖아. 우리야 관 소속이니까 마주가 없다 쳐도.’


주옥이 먼저 백마들의 마주에 관심을 가진 건, 무풍에게도 의외인 동시에 약간은 흥분되는 일이었다. 성심껏 대답해 주는 그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그 땐 성적이 마음에 안 들었나 봅니다. 어제 회영의 경주 때는 내려왔어요. 2등이긴 했지만 천위도 굉장히 잘 싸웠으니까요. 회영도 계속 정진하지 않으면 천위한테 질 지도 모릅니다.”


운좋게도 회영의 경주용 이름이 회색잔영으로 정해지는 바람에, 두 글자로 줄이면 그대로 회영이었다. 무풍은 주옥이 그저 말들의 실력을 비교하려는 줄로만 안 듯했지만, 알고 싶은 건 누가 강하고 약한지가 아니었으니, 그 점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 마주, 어떤 사람이야?’


“아, 주 선생님은 모르시겠군요. 쉽게 말하자면, 이 중모현 경마장이 생길 때부터 활약해 온 큰 손입니다. 기수고 마주고 구무관이고, 중모현 경마와 관련된 이라면 전부 그 자를 알 겁니다.”


쉽게 말해 이곳 중모현 경마의 왕이란 얘기. 흥미를 더해 계속 캐묻게 되었다.


‘형제 백마를 키워낼 정도면 대단할 거란 생각은 했지만. 그 정도인가.’


“예. 전대미문의 경마왕입니다.”


‘그건 네가 지은 별명이냐?’


“예. 별명은 설명 드리려고 방금 제가 지었습니다만, 대단한 사람인 건 진짜입니다.”


새파랗게 어린 초보 기수 무풍이었지만, 별명을 짓는 감각은 이미 경마장의 방식을 완전히 터득했는지 유치찬란한 수식어를 들이민 뒤 멋쩍게 웃었다. 반면, 듣고 있는 주옥은 웃어넘길 수 없었다. 이 어린 기수마저 망설임 없이 경마왕이라 칭할 정도면, 한청검을 찬 무인은 대체 얼마나 큰 손이란 말인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조금 이상한 천마가 되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골드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24.08.27 17 0 -
공지 연재 시각 : 매일 19시 40분(저녁 7시 40분) +1 24.08.04 50 0 -
44 환수 NEW 19시간 전 5 0 13쪽
43 처단(4) 24.09.15 10 0 13쪽
42 처단(3) 24.09.14 7 0 13쪽
41 처단(2) 24.09.13 8 1 13쪽
40 처단 24.09.12 9 1 13쪽
39 재월담(2) 24.09.11 11 1 13쪽
38 재월담 24.09.10 10 1 13쪽
37 협상(2) 24.09.09 11 1 13쪽
36 협상 24.09.08 13 1 13쪽
35 백씨마장(4) 24.09.07 12 2 12쪽
34 백씨마장(3) 24.09.06 16 2 12쪽
33 백씨마장(2) 24.09.05 13 2 13쪽
32 백씨마장 24.09.04 14 3 13쪽
31 예감(2) 24.09.03 18 3 12쪽
30 예감 24.09.02 17 2 13쪽
29 경마왕(2) 24.09.01 18 2 12쪽
» 경마왕 24.08.31 18 2 13쪽
27 삼쌍승식 작전(4) 24.08.30 19 2 13쪽
26 삼쌍승식 작전(3) 24.08.29 23 3 12쪽
25 삼쌍승식 작전(2) 24.08.28 24 3 13쪽
24 삼쌍승식 작전 24.08.27 28 3 13쪽
23 무풍(2) 24.08.26 26 4 13쪽
22 무풍 24.08.25 35 4 13쪽
21 중모현으로(3) 24.08.24 40 4 13쪽
20 중모현으로(2) 24.08.23 47 3 14쪽
19 중모현으로 24.08.22 51 3 13쪽
18 새로운 만남(2) 24.08.21 54 4 13쪽
17 새로운 만남 24.08.20 53 4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