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이상한 천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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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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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4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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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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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

DUMMY

‘회영아.’


전음을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다시 한 번, 두 번 불러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주옥은 눈을 감은 채 전음을 보내려는 시도 중이니 그 감각이 전혀 익숙하지 않았다. 이런 짓을 하고 있는 이유라면, 수련의 일환이었다.


‘지금까지 전음은 눈에 보이는 상대에게만 보낼 수 있었지만, 구전에 의하면 이 무공의 한계는 그 정도가 아니야.’


전음입밀이라는 무공에는 이름이 여럿 붙어 있었다. 그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천리전음(千里傳音)이었으니, 말 그대로 천 리 밖으로 전음을 보낼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러니, 지금 자신의 전음입밀에는 발전의 여지가 무궁무진하게 남아 있는 셈이었다. 주옥은 이 점을 믿고 자신의 전음입밀을 계발하려는 시도 중이었다. 당연히, 처음은 여의치 않았다.


다행인 것은, 이 지루한 반복을 이미 경험해 봤다는 것이다. 봇물이 터진 듯 저도 모르게 마음 속 의사가 흘러 나오던 시절, 야생마들과 장녹아 사이에서 계속 회영을 들들 볶아 가며 결국 생각을 닫는 데 성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주옥은 다시 한 번 회영을 불렀다.


‘회영아.’


하지만 역시 답은 없었다. 당장은 성과가 보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개발해야 하는 능력에는 상대를 보지 않고 전음을 보내는 것도 있지만, 수많은 군중 속에서 한 사람을 정확히 짚어 그 자에게만 전음을 보내는 것도 있었다. 지금 주옥에게 전음입밀은 의사소통 능력 그 이상의 의미를 가졌으니, 이 능력을 갈고닦는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지든 큰 도움이 될 터였다.


특히, 백주귀를 보고 그에 대한 정보를 들은 이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불안감이 그를 자극해 왔으니, 비단 한청검 때문만은 아니었다. 본능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그보다 고차원적인 감각이 계속해서 경고를 울려오는 듯했다. 주옥은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생각했다.


‘백주귀 그 인간, 분명히 무인이었어. 검을 패용한 건 물론이고, 기도도 날카로웠지. 백섬마황이 내력을 운용하고 있으니, 그 내력을 선사한 것도 그 자일 가능성이 있어.’


백주귀와 백씨마장에 대한 정보가 더 필요했다. 그래야만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으니, 주옥은 몇 번이고 전음으로 회영을 불렀다. 물론, 그 날 하루 종일 회영을 불렀어도 대답은 듣지 못했다.


경주가 진행될 때마다 직접, 또는 회영에게 부탁하여 다른 백씨마장 말들도 내력을 가졌는지 확인했다. 역시 예상한 대로 그 두 마리 역시 내력을 이용해 달리는 중이었다. 하지만 지능만큼은 백섬마황이 독보적으로 뛰어났으니, 백씨마장의 역작(力作)으로 마황이 꼽히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경주에 나가고, 무풍과 훈련하고, 남는 시간에는 전음입밀을 갈고 닦는 일상이 이어졌다. 경주를 두 번 더 나가는 동안, 백섬마황과 다시 마주친 것은 주옥이 아니라 회영이었다. 결과는 백섬마황 우승, 회영은 1마신차 패배로 2등. 이로써 회영과 무풍에게 첫 패배 기록이 생겼다.


‘기분이 어때?’


패하고 돌아온 회영과 무풍에게, 주옥은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 대답의 차이가 인상적이었다.


‘분하더군.’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전자는 회영, 후자는 무풍이었다. 평소 성격을 생각하면 서로 반대로 말할 법한데도 이런 반응을 보인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자연에서 지낼 때는 모르던 감정이다. 바로 옆에 있는 자보다 느리다, 약하다는 걸 느끼면 인간은 이렇게 반응하는가 보군.’

“언제까지고 주 선생님과 회영 같은 명마들만 탈 순 없으니, 저도 패배에 익숙해져야겠죠. 물론 질 때마다 계속 배워나갈 생각입니다. 오늘은 질주 시점을 조금 일찍 잡았어요.”


누군가에게 경마장은 도박판에 불과하다. 심지어 그 가운데서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달리는 주옥마저도 그런 점을 부정하지 못했으니, 어쩌면 수백 년이 지나도 이곳의 마력(魔力)은 뭇 사람들의 경계를 살 지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을 초월한 교감은 분명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으니, 이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경마장의 매력이 분명했다. 인간을 닮아가는 말과 말을 닮아가는 인간을 보며, 외부에서는 절대 알 수 없는 달리기의 미학을 온몸으로 느끼는 사건이 지나갔다.


계속해서 시간은 흐르고, 일상은 반복됐다. 주옥의 전적은 3전 3승(우승), 회영은 3전 2승이 되었으나, 쌓여가는 전적은 그닥 중요치 않았다. 중요한것은 시상식. 3위 내로 경주를 마치면, 말과 마주가 함께 시상대에 오른다. 백씨마장의 말은 출전했다 하면 3위 내에 들었으니, 주옥에겐 그 때가 곧 백주귀를 옆에서 관찰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를 몇 번씩 관찰하며 가장 놀란 점은, 그가 어떤 소리도 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말소리는 물론이고, 그에게선 숨소리나 옷 뒤척이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가끔씩 우승한 주옥을 바라보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 눈빛에도 감정이 전혀 담겨있지 않아 숫제 목각인형이 생각날 정도였다. 그런 모습을 확인할 때마다, 주옥의 불안감은 조금씩 커졌다.


그런 일상을 보내던 중, 하루는 무풍이 마방에 들어오며 말했다.


“일주일 뒤 출전입니다. 백씨마장에선 세 마리 다 출전한대요.”


‘응? 왜 그런 짓을?’


이런 식의 출전 소식은 완전히 뜻밖이었으니, 주옥도 놀라 대꾸했다. 말의 평판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우승 수, 그리고 우승률이었으니, 같은 마장의 말들을 한 경주에 출전시키는 건 제 살을 깎아먹는 하책(下策)이었다.


우승할 수 있는 건 언제나 한 마리로 정해져 있으니, 최소한 한 쪽 말에는 패배가 확정된 채 경주를 시작하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둘도 아닌 셋을 동시에 출주시키는 건, 보통 미친 짓이 아니었다. 무풍도 백씨마장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듯 의아해 하며 대답했다.


“공식적으로 발표한 바는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해 보길··· 감정적으로 움직인 것 같습니다.”


‘감정적이라고?’


주옥의 의문 섞인 대꾸에 무풍도 지체없이 자신의 추측을 말하기 시작했다.


“예. 아문에서 말 두 마리를 출전시켜 얻어낸 전적이 도합 6전 5승입니다. 그 중 4번 백씨마장 말을 이기고 우승했고요. 백씨마장 측에서 이런 전적은 비상 사태일 겁니다. 그러니 세 마리를 함께 출전시켜서 몸싸움을 붙이든, 진로를 막든 해서 주 선생님을 꺾으려는 거 아닐까요?”


‘그건 규정 위반이잖아? 경마는 개인전이라고.’


“엄밀히는 아닙니다. 대놓고 경주를 방해하면 물론 실격이지만, 규정의 허점을 피해갈 방법은 많아요. 동료 말이 아니라 자기 순위를 위해 몸싸움을 했다고 하면 그만입니다. 게다가 경주 후 심사에는 정치력도 개입하니까 더 쉽지 않죠.”


그렇단 말인가. 그럼 무풍의 추측도 신빙성이 갔으니, 주옥도 맞장구를 쳤다.


‘정치력이라면 돈과 명성을 따르는 법이니 백씨마장이 나선다면 질 리가 없겠군.’


“그렇습니다.”


잠깐 동안의 적막이 찾아왔다. 그 적막을 깬 것은 다시 무풍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이번엔 정말 조심하셔야 할 지도 모릅니다. 백주귀는 망동하는 자가 아니에요. 모든 게 은밀하고 계산적인 사람이 이런 도박수를 던질 정도라면, 이미 승리를 자신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함께 지내온 시간이 있으니, 주옥은 무풍의 판단을 믿었다. 그 동안의 자신이 나간 경주에서, 백주귀는 항상 관중석에 나타났었다. 특히, 한 번은 백씨마장의 말이 출전하지 않은 경주였음에도 그러했으니, 분명 주옥 자신의 경주를 지켜보러 온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주시해 온 자신과의 승부에서 이런 도박수를 던진다는 건,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 주옥이 나지막히 대답했다.


‘네 말이 맞을지도 몰라. 경주 전까지 너도 조심해라. 먹는 거, 입는 거, 전부 다. 밤길도 혼자 다니지 말고.’


그 말에, 무풍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예? 저를 노릴 거란 뜻입니까?”


‘알 수 없으니 조심하잔 거야. 뭐, 전담 기수가 출전 불가가 되면 말의 출전도 취소되니까 그 정도로 망가뜨리진 않겠지만.’


“망가뜨리다뇨, 전혀 위로가 안 되는데요. 하지만 알겠습니다. 조심하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뒤, 경주 훈련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고 무풍은 물러갔다. 그리고 그 날 저녁, 곧바로 일이 터졌다.


말의 식사 시간은 하루 두 번, 아침과 저녁이었다. 그리고 경주를 일주일 앞둔 그 날 저녁, 갑자기 담당 구무관이 바뀌었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구무관이 바뀐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도 없었고, 성실히 일을 잘 하던 그가 갑자기 바뀔 이유도 없었다.


‘마방 스무 개를 한 번에 관리할 전문가는 그리 많지 않을 텐데··· 왜 바뀌었지?’


의문을 떠올리는 주옥은 아랑곳않고, 새로 바뀐 구무관이 여물죽이 담긴 수레를 끌고 말들의 식사를 챙겨주기 시작했다. 다행히, 신속하게 밥을 주고 마방을 정리해 주는 모습이, 이전 구무관과 크게 실력 차가 나 보이진 않았다. 주옥은 여물죽을 받을 차례가 되자, 새 구무관은 어떻게 생겼는가 싶어 그의 얼굴을 살펴봤다.


그런데, 구무관은 한시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푹 떨군 그대로 그저 여물을 퍼서 주옥의 통 안에 넣어주는 모습이, 꼭 주옥의 시선을 피하는 것 같았다.


‘...사람이 말의 눈을 피해? 내가 그렇게 무서운가?’


청호마정을 흡수한 지도 꽤 시간이 되었으니, 자신의 기도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조금씩 느끼고는 있었다. 보아 하니, 자신의 모습에서 일종의 위압감 같은 게 새어 나오는 듯했다. 말들은 물론이고 심약하거나 민감한 인간들도 간혹 자신을 보고 기가 질리는 경우가 있었으니, 이번 구무관도 그런 경우인가 싶을 뿐이었다. 어느새 여물을 주고 멀어지는 구무관을 바라보며, 주옥은 생각했다.


‘그래도 그렇지, 말을 관리하는 게 직업인 사람이 말을 보고 쫄면 되나...응?’


이상한 감각이 혀로부터 전해져 왔다. 그 사이, 주옥은 자신도 모르게 여물통으로 입을 가져가 자동으로 식사를 시작한 터였다. 그런데, 늘상 먹어 왔던 여물의 맛이 평소와는 달랐다.


‘잠깐, 확실히 이상하다. 이건 설마...!’


온 몸에 돋는 소름. 황급히 여물죽을 살펴 본 주옥은, 평소와 다른 점을 발견했다.


‘역시 달라. 못 보던 풀. 이런 걸 넣다니.’


여물죽 안에서 평소에 못 보던 풀줄기가 보였다. 아무리 말이 된 후 식사량과 식욕이 강해졌다 해도, 자신이 뭘 먹는지 정도는 항상 확인해 왔던 주옥이었으니 이전에 못 보던 풀줄기를 구별해 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먹이가 달라진 것을 확인하자, 온몸이 오싹할 정도의 전율이 올랐다.


그리고는, 다시 여물통에 고개를 처박고 게눈 감추듯 여물을 비우기 시작했다.


‘그래서 훨씬 맛있어진 거였어!’


처음 농부의 집에서 건초 더미를 먹었을 때와 버금가는 충격이 되살아날 정도로, 새 여물죽의 맛은 훌륭했다. 이 정도면 간혹 장녹아나 무풍이 사 오는 만두보다 크게 모자랄 게 없었다. 고작 풀떼기에 물을 붓고 끓인 게 온갖 재료를 넣고 빚은 만두와 동급의 맛을 내다니, 이건 요리계의 혁명이 분명했다. 여물통을 다 비우고 나서야, 서서히 제정신이 돌아왔다.


‘휴, 또 정신 놓고 먹어 버렸네. 새 구무관, 여물죽 쑤는 솜씨가 명인 급이잖아? 전임자에겐 미안하지만 이 정도라면 바뀌길 잘 했는걸.’


물론 여물죽을 더 맛있게 쑨다고 구무관을 바꿀 리가 없다는 것쯤 잘 알고 있었지만, 이미 맛있는 밥을 먹고 마음이 넉넉해진 주옥은 더 이상의 의심을 거두었다. 사실, 앞으로는 이런 맛있는 여물죽을 계속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부풀 지경이었다.


들뜬 마음으로 마방 안을 한참 서성이던 주옥은, 시간이 꽤 지나서야 아까 전까지 안고 있던 우려를 떠올릴 수 있었다.


‘아, 맞다. 백씨마장이 뒷작업을 들어올 텐데. 무풍한테도 조심하라 일러 놓고 내가 방심하면 안 되지. 일단 오늘은 아닌 건가?’


뒤늦게 경계심을 되찾았지만, 지금으로서 딱히 경계할 대상은 없어 보였다. 내일부터는 한 시도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겠다 결심하며, 주옥은 저녁 운공에 들어갔다. 같은 시각, 새 구무관은 아문 내를 가로질러 바쁜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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