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이상한 천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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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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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4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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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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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씨마장

DUMMY

다음 날, 마방에 찾아 온 무풍의 얼굴이 영 좋지 않았다. 허옇다 못해 퍼렇게 질린 얼굴로 마방에 들어오는 무풍을 보자, 절로 심장이 철렁했다. 무풍이 위험해질 지 모른다는 우려가 현실이 되었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마방까지 무사히 왔으니 목숨이 위험하진 않을 터였다. 호들갑을 떨면 그의 불안감을 자극할 지 모른다는 생각에, 주옥은 짐짓 태연하게 물었다.


‘아침부터 왜 이렇게 죽상이야.’


그러자, 무풍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말도 마십시오. 어젯밤부터 복통에, 설사에... 완전 날벼락입니다.”


설사? 무풍의 말에 주옥이 멍해졌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되물었다.


‘...그게 끝? 복면 강도의 습격, 납치 및 감금, 섭혼약 억지 투약 같은 건 없고?’


그 물음에, 무풍은 시큰둥하니 대꾸했다.


“그게 뭡니까? 설마 백씨마장이 그렇게까지 하려고요?”


하긴. 백씨마장 입장에선 말 뿐 아니라 기수 역시 너무 크게 다치게 할 순 없었다. 당장 내일이 경주였으니 안 그래도 기수의 숫자가 부족한 중모현에서 하루만에 무풍의 대체자를 구할 가능성은 없었기 때문이다. 대체자를 구하지 못하면, 말의 출전도 취소된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주옥도 머쓱해져 되물었다.


‘뭐... 그렇게 못 할 것도 없지 않나? 네가 탈이 난 것도 백씨마장의 술수일 수 있잖아?’


그 말에, 이번엔 무풍도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뭔가 깨달은 듯 나지막이 대답했다.


“...그렇군요. 어제 저녁을 먹은 뒤부터 조금씩 상태가 나빠지더니 이렇게 됐습니다. 일러주신 대로 늘 먹던 것만, 먹던 곳에서 먹었는데도... 사실 그래서 지금껏 백씨마장을 의심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뻔히 먹던 걸 먹었기에 술수를 부려놨을 수도 있겠군요. 죄송합니다. 주 선생님께서 그렇게 조심하라 일렀는데...”


그래. 생각해 보니 이게 훨씬 이치에 맞다. 기수를 괜히 직접 공격하면 꼬리를 밟힐 수도 있었고, 생각보다 큰 부상을 입혀 출전 자체를 무산시킬 가능성도 있었다. 이 정도로만 괴롭혀 둬도 기수가 경주에 집중하기는 어려울 테니, 이 정도로 손을 써놓는 게 최적일지도 몰라. 이런 생각을 하며 주옥이 대답했다.


‘됐다. 진짜 백씨마장이 작정했다면 네가 어떻게 대비하든 당했을 거야. 무림에 무미무취의 약이 얼마나 많은데.아마 더 심해지진 않을 거다. 내일까징 여유가 있으니, 오늘은 아무 것도 먹지 말고 회복에만 집중해라. 그리고, 맥 한번 짚어 보자.’


그 말에, 무풍이 힘없이 오른팔을 내밀었다. 앞발을 들어 팔 위에 발굽을 올리고, 온 신경을 집중하니 두꺼운 발굽 밑에서 박동하는 맥이 느껴졌다. 문제가 생긴 쪽은 임맥의 양구혈(梁丘穴)과 천추혈(天枢穴)이었다.


‘내상이 있어. 단순한 식상(食傷,식중독)이 아니란 의미다. 백씨마장 놈들이 음식에 뭔가 손을 써둔 게 확실하군.’


심증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상태가 좋지 못한 음식을 먹는다 해서 내상을 입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니, 지금 무풍의 몸속에 남은 내상은 독을 썼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주옥이 침착함을 유지한 채 무풍에게 말했다.


‘무풍아. 당황하지 말고 들어라.’


당황하지 말라는 말이 오히려 무풍의 긴장감을 바짝 끌어올린 듯했다. 무풍이 약간 겁먹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예? 무슨 일이길래 그렇게까지 진지하게 말씀하십니까?”


‘내상이 있다. 약에 당했다는 증거지. 목숨이 위험하거나 후유증이 남지는 않겠지만, 무슨 약을 썼는지 몰라 해독을 할 수가 없다. 최선은 운공으로 독기를 몰아내는 것뿐인데... 내일까지 완전히 털어내기는 어려울 거다.’


그 말을 듣자, 안 그래도 퍼렇던 무풍의 얼굴이 더욱 새파랗게 질렸다. 지금 무풍의 상태는 다 죽어가는 얼굴로 겨우 걷기나 하는 게 한계였다. 애초에 이곳까지 온 것도, 오늘 말을 타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자기 상태를 주옥에게 보고하고, 오늘은 이만 물러가 휴식을 취하고 내일 나아진 모습으로 경주에 나가는 게 무풍의 계획이었다. 그런 그에게, 경주 때까지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는 청천벽력이나 다름없었다. 무풍은 말을 더듬으며 다급하게 외쳤다.


“그, 그럼 어떻게 하죠?! 이 상태로 경주에 나갔다간 그야말로 대참사가 날 겁니다!”


‘그래. 나도 내 등 위에서 대참사가 터지는 건 사양이야.’


대참사라는 표현으로 돌려 말하고 있었지만, 지금도 진정되지 않은 아랫배를 움켜쥐고 있는 무풍을 보면 그 구체적인 내용이 뭔지는 자명했다.


무풍의 존엄성을 위해서도 피해야 하지만, 그를 등 위에 올리고 달려야 하는 주옥 역시 필사적으로 막아야 하는 대참사. 상상하기도 싫을 정도로 역겨운 대참사를 막아내려면, 즉시 행동에 나서야 했다.


주옥은 일단 무풍에게 가부좌를 틀게 시키고, 등 뒤에 발굽을 얹은 채 내력을 슬쩍 흘려 넣었다. 이 역시 벌모세수의 응용으로, 주옥의 내력이 무풍의 몸속을 타고 흐르며, 내상으로 인해 막힌 혈행을 돕기 시작했다.


‘운공에 도움이 될 거다. 완치까지는 못 해도 말이지.’


전음을 통해 이렇게 말해 봤지만, 무풍은 안심하지 못한 듯했다. 호흡이 차분히 가라앉지 못해 운공을 명백히 방해했다. 평소와 다르게 무풍을 꾸짖을 수 없는 이유는, 주옥 역시 쉽사리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 * *


경주날, 출발선에 들어서기 직전 주의할 점을 빠르게 되짚었다.


‘아무것도 안 먹은 거 맞지? 물도?’


“...예.”


‘그래, 그럼 가능한 한 내력을 쓰지 말고 버텨라. 그 몸으로 섣불리 내력을 일으켰다간 대참사다.’


“예.”


‘오늘 경주 작전이 평소와 다른 건 알지? 낙마하지만 않겠다는 생각으로 버티는 거다.’


“저기, 주 선생님.”


‘왜?’


“힘들어 죽겠습니다. 경주는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그래, 알았다.’


주옥이 전음을 끊었다. 무풍은 하루동안 운공을 거듭해 내상을 조금 다스린 뒤였다. 하지만 반대로 먹은 게 없는 데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 기력은 어제보다 더 빠져 있었다. 숙련된 무인이라면 물과 음식 없이 하루 정도는 너끈하게 버텨냈겠지만, 무풍은 아직 그런 경지에 이르려면 한참 더 공부를 쌓아야 했다. 고삐만 겨우 붙잡은 채 앉아 있는 듯한 무풍의 무게를 느끼며, 주옥은 생각했다.


‘그만큼 오늘은 내 역할이 더 중요하다.’


앉아있는 게 한계인 무풍에게 평소 같은 판단을 요구할 순 없었다. 지금이라면 그저 그가 버텨주기만을 바라면서 혼자 경주에 임하는 게 최선. 그러기 위해선 평소와 다른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지난 세 번의 경주를 거치며, 경주마들 사이에서의 서열이 확실해졌다. 주옥이 알아서 출발 위치를 찾아 들어가는 사이, 다른 경주마들이 그의 시선을 피했다. 백씨마장 말들 역시 평소와는 다르게 그리 경쟁심을 불태우지 않는 모습을 보고, 그나마 조금 마음을 놓았다.


'좋아. 저렇게 나와 준다면 오늘 작전도 쉽게 운영할 수 있겠어.'


여덟 마리 말들이 도열한 가운데, 세상은 다시 한 번 완전한 고요에 잠겼다.


펑!


출발을 알리는 폭죽음이 터져 나왔다. 모든 말이 그 즉시 달려나가기 시작했지만, 그 속력에 차이가 있었다. 검은 머리 하나가 마군 사이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아앗! 흑풍암제! 평소와는 달라! 처음부터 치고 나온다!”


군중 속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오늘의 전략이었다. 몸싸움을 걸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처음부터 달려 나가 선두를 유지하는 것. 평소 상위 마군의 선두, 선행(先行) 위치를 선호하던 것과 달리 오늘은 영락 없는 도주(逃走) 위치를 잡은 주옥이었다. 물론, 백씨마장은 평소와 다른 주옥의 전략에 당황하면서도, 손쉽게 보내주진 않았다.


퍽!


주옥은 좌우 아랫배에 둔탁한 충격을 느꼈다. 머리는 마군 틈새를 비집고 나왔지만, 아직 몸은 완전히 빠져 나오지 못한 상황. 왼쪽과 오른쪽에서 동시에 자신의 아랫배를 들이받는 말들이 있었다.


‘백은천위, 백무역사!’


백마 두 마리는 흑풍암제보다 한참 뒤처져 있었으니, 단단한 앞어깨로 암제의 부드러운 아랫배를 들이받는 형국이 되었다. 몸싸움이 벌어진 위치도 절묘했으니, 여덟 마리가 각자 별개의 마군으로 분리되기 전, 혼란한 와중에 벌어진 일이어서 아무도 그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외부의 시선으로는, 그저 약간 격한 몸싸움을 벌인 정도로 보일 뿐이었다.


보통 말이라면 단순히 실속에 그치지 않고, 그대로 쓰러질 수도 있을 만한 위험한 반칙이었다. 등 위에 올라있는 무풍은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서도 주 선생이 곧 쓰러질 것이라 예감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으니, 놀랍게도 튕겨나간 쪽은 좌우에서 주옥을 들이받은 백마 두 마리였다. 두 마리 모두, 마치 단단한 벽에 어깨를 들이받은 듯 크게 휘청이며 순위를 잃었다.


“큭!”


백마 기수들의 곤란해 하는 신음성을 뒤로 하고, 주옥은 거리를 더욱 벌렸다. 초반의 몸싸움은 노림수대로 흘러갔으니, 이제 빠르게 달리기만 하면 됐다. 그 때 머리 위에서 괴로워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욱...”


‘조금만 참아!’


급히 무풍에게 전음을 보냈다. 방금 전, 초반 직선 주로에서 몸싸움이 벌어질 것 정도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바였다. 그래서, 주옥은 내력을 잔뜩 끌어올린 채 충돌로부터 몸을 보호했다. 온몸을 두텁게 감싸는 내력의 벽에 어깨를 들이받은 백마 두 마리는, 그 반탄력에 도리어 자신들이 튕겨 나갈 수밖에 없었다. 계획의 완벽한 성공, 그러나 더 중요한 계획은 '대참사' 없이 완주를 해야 한다는 것. 무풍의 몸이, 그 중에서도 아랫배가 반드시 버텨줘야 했다.


‘기껏 백마 두 마리를 떨어뜨려 놨는데 네가 대참사를 내면 안 되지!’


주옥의 마음이 급해졌다. 무풍이 낙마하지 않을 정도의 최고 속력을 유지하며 달리기 시작하니, 마군과의 격차가 점점 커졌다. 관중들의 함성소리도 마찬가지였다.


“와아아아!!”


하지만, 장내가 떠나가라 울리는 그 함성소리는 전혀 귀로 들어오지 않았다. 머리 위에서 들리는 작은 신음소리가 온 신경을 뺏어갔기 때문이다.


“으으윽...”


‘뭐, 뭐야? 왜 이렇게 괴로워 해? 아무것도 안 먹었다며?’


황급히 전음으로 묻자, 달리는 와중에도 무풍이 답하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사실 물을 한 모금 마셔서...으윽! 배가...!"


'이런 젠장! 알았어! 조금만 참아! 거의 다 왔으니까!'


무풍의 고백을 듣고도 노여워하거나 배신감을 느낄 만한 여유가 없었다. 지금은 필사적으로 무풍을 달래며 달리는 게 유일한 방책이었을 뿐이다. '대참사'를 막아내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오로지 주옥의 네 발에 달려 있었다.


'터지면 끝이야! 기수는 물론이고, 인간으로서도 사실상 끝이 나 버릴 거야! 물론! 나도 받아내고 싶지 않고!"


필사적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면서도, 흘긋 관중들을 살펴보았다. 오늘도 만 명은 충분히 될 듯한 구름관중이 모여들어 1위로 달리는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대참사를 터뜨린다? 그건 재기할 수도 없는 완전한 나락을 뜻했다. 주옥의 네 발에 내력이 한층 실렸다.


곧, 주옥이 결승점을 통과했다. 당연히 누구보다도 빠른 압도적인 1위였다. 하지만 1위를 기록한 이후에도, 주옥은 걸음을 멈추지도, 속도를 줄이지도 않았다.


‘곧바로 뒷간까지 간다! 꽉 잡아!’


“으윽... 한계입니다.”


‘젠장할! 내 등 위에선 안 돼! 관중들 앞에서도 안 되고!’


무풍과 이런 대화를 나누며, 경마장을 달려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구름처럼 모여든 관중은 일순간 정적에 빠졌다. 3위까지의 말들은 원래 경주 이후 시상식에도 참여해야 했다. 그런데 1등 말이 도망치듯 경마장을 탈출해 버렸으니,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흑풍암제와 그 기수가 빠져나간 경마장에서, 일단 진행 요원이 순위를 외쳐 확인했다.


“에... 일단, 1등. 흑풍암제, 대차! 2등. 백섬마황, 대차! 3등, 백은천위. 1마신차!


1등과 2등 사이 격차가 대차(10마신 이상), 2등과 3등 사이 격차도 대차. 이 두 마리가 얼마나 빨랐는지, 또 이 두 마리 사이에 얼마나 큰 격차가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착차(着差)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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