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이상한 천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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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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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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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쌍승식 작전(4)

DUMMY

‘어느 쪽이든, 허연 놈이 체력을 일찍 끌어 쓰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어. 하지만 무패의 패왕이라면 직선 주로에서의 견제만으로는 여력이 남을 수도 있겠지. 그 다음 곡선 주로에서는 확실히 괴롭혀 둬야 해. 밀어내지 못하더라도 몸싸움을 건다. 여기서의 몸싸움은 직선 주로에서보다 좀더 너그러우니까, 내가 건드려 볼게.’


주옥의 계획에, 무풍이 눈을 반짝이며 대꾸했다.


“좋습니다. 규정은 설명드렸으니 주의해 주셔야 합니다. 실격 당하면 끝이에요.”


‘알았어. 규정 내에서 몸싸움 하는 것도 연습해 둘 거야. 그렇게 마지막 직선에 돌입하면, 쾌속신보가 알아서 2위까지 올라오게 돼 있어. 왠지 알아?’


“···아뇨.”


‘단서 하나를 주자면, 난 첫 직선 이후 계속해서 바깥 주로를 달릴 거야.’


“바깥이요? 왜 굳이 느린 곳을···아!”


‘그래. 이제 좀 눈치가 늘었구나.’


중후열 이하에 자리잡는 선입, 추입마들은 거의 반드시라 해도 좋을 정도로 바깥 주로를 공략했다. 해당 말들이 바짝 힘을 내는 경기 후반에는 안쪽 주로가 항상 선점당해 있기 때문이다. 그럼 그들보다 앞에서 달리는 주옥은 왜 바깥 주로를 고집해야 하는 걸까.


‘앞에 달리는 말이 바람을 맞아 주면 뒤의 말은 힘을 덜 쓰고도 속력을 유지할 수 있어.경로가 막히면 돌파하는 게 경마의 상식이라 대부분의 기수들조차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넌 기억하고 있어야지. 내 경험담을 말해준 거니까.’


“확실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말씀대로.”


즉, 계속 바깥 주로를 노려 올 쾌속신보가 체력을 비축할 수 있도록 일부러 그의 앞을 막아주겠다는 얘기였다. 이 점을 무풍 스스로 깨친 것은 확실히 진일보였지만, 주옥의 시험은 끝나지 않았으니, 그가 재차 전음을 통해 물었다.


‘좋아. 그럼 초반에 내가 허연 놈을 자극할 때, 쾌속신보가 따라서 흥분하면 어떻게 할 거야?’


난데없이 질문하자 무풍이 대답했다. 말투에는 의문이 남아있었다.


“예? 그런 일이 생길까요? 선입마들은 기본적으로 안정적인 성격인데다, 선생님과 마황이 경쟁하는 위치보다 한참 뒤에 있어서 역전을 노리기 어려울 텐데요. 쾌속신보의 기수는 신중하기로 유명한 선배님이라 도박수를 잘 걸지 않을 테고요.”


‘정답이다. 나도 그런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해. 제법이구나.’


“뭘요. 주 선생님이 알려주시는데 이 정도는 해야죠.”


시험을 통과한 무풍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주옥이 보통의 뛰어난 사부였다면 이쯤에서 만족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바라는 것이 많았다.


‘그래. 그럼 마지막 직선 주로에서 너는 뭘 해야겠냐?’


“예? 전력질주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아니지. 덮어놓고 달리면 안 돼. 또 단서를 하나 주자면, 나는 경주 중엔 뒤를 돌아볼 수 없어.’


“뒤를··· 잠시만요.”


무풍은 잠깐 사색에 빠졌다. 말이 뒤를 돌아볼 수 없다. 그럼 어떻게 될까? 자신은 그 상황에서 뭘 해야 할까? 답은 금방 나왔다.


“쾌속신보의 속력이 충분히 붙을 때까지 앞에서 바람을 맞아 주다, 거의 따라잡히면 그 때 전력질주 해야 하는군요.”


그제야 주옥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밝아졌다. 그가 이렇게 답하는 소리를 듣고, 무풍의 얼굴도 환해졌다.


‘정답. 그걸 네가 확인하고 신호를 줘야 하는 거다. 이건 앞선 판단에서도 마찬가지야. 앞뒤옆을 보면서 마군의 상태를 확인하고 달릴지 몸싸움을 걸지 생각해 보는 거다. 나는 전적으로 널 믿겠어.’


“전적으로···”


무게가 느껴지는 말이었다. 순간 환해졌던 얼굴이 다시 가라앉았다. 그 기색을 보고, 주옥이 말을 더했다.


‘봐라. 달리는 건 다리로 하는 거지, 제대로 달리는 건 머리로 하는 거야. 경주 중에는 네가 머리다. 나한테 사람의 지능이 있다지만, 몸을 부딪치고 전속력을 내는 동안에는 상황을 다 보지 못해. 제아무리 나라도 장 낭자의 집안을 도우려면 네가 필요하단 말이다.’


이 말을 듣자, 무풍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그리고는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해 보겠습니다.”


아까와는 다른 확신이 배어 나오는 목소리였다.


* * *


진행 요원이 최종 순위를 발표했다. 1등은 물론 흑풍암제. 2등과의 격차는 1마신(약 2.4m). 2등은 쾌속신보, 3등과의 격차는 목 차이(약 60cm), 3등은 백섬마황, 4등과의 격차는 대차(10마신 이상). 착차(着差: 결승점을 통과한 말들 간의 거리 차이)는 기록원의 재량에 따라 얼추 비슷하게 발표하는지라 실제와는 약간 차이가 있었다.


경주가 끝난 지 좀 됐음에도 장내의 흥분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이따금씩 외치는 소리가 마장 내의 주옥에게도 들려 왔다.


“최고다, 암제!”

“올해 최고의 경주였어!”


반면, 실망과 분노를 표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번에는 믿었는데, 쾌속신보. 조금만 더 힘내지···”

“이런 개 같은! 무슨 놈의 패왕이 2등도 못 지켜?! 다리를 확 분질러 버릴까보다!!”


그 모든 감정이 한데 어우러져, 경마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 분위기를 느끼는 동시에, 주옥은 부지런히 울타리 너머에 있는 관중들을 부지런히 살펴봤다. 장녹아를 찾기 위해서였다.


‘사람이 이렇게 많아서야, 장 낭자를 찾기도 쉽지는 않겠···음?’


찾고 있던 걸 발견했다. 그런데, 장녹아가 아니었다. 정확히는, 찾고 있었지만 찾을 거란 희망이 없어 반쯤 포기했던 것이 갑작스럽게 군중들 사이에서 나타났으니, 충격으로 온몸이 굳어졌다.


구름 같은 관중들 속에서 주옥이 발견한 것은 무복을 입은 사내. 주변 사람들이 온통 희로애락에 빠져 있는 가운데 가만히 서 있는 모습이 오히려 눈에 띄었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라면 주옥의 시선을 끌 리 없었다. 관무불가침이란 게 생각보다 느슨한 원칙이란 걸 깨달았으니, 일확천금을 노리고 경마에 돈을 거는 무인 쯤이야 얼마든지 있을 법했다.


그 사내에게서 시선이 떠나지 못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과 검집. 검푸른 빛과 자개 무늬, 게다가 결정적으로 손잡이에 음각으로 새겨진 한자 두 글자. 철응(鐵鷹). 세상에 저런 검은 한 자루밖에 없다.


‘저 자가 왜 합명의 한청검을···?’


* * *


“주 선생님! 어서 드세요. 축하할 일이잖습니까.”


‘어? 어, 그래. 알았다.’


혼자 침잠하던 주옥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다시 돌아온 아문 내의 마방, 눈앞에는 만두가 열댓 개쯤 깔린 작은 반상이 놓여 있었고, 장녹아와 무풍의 손에도 하나씩 들려 있었다. 조건으로 내걸었던 만두를 장녹아가 잔뜩 사들고 왔음에도, 좀처럼 주옥은 그 쪽에 신경을 쓸 수 없었다.


지금 그가 만두를 무시하고 있는 모습은, 말이 된 이래 부쩍 강해진 식욕을 감안하면 스스로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그러니 축하를 하러 손수 마방까지 찾아 온 장녹아와 무풍도 주옥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합명의 한청검은 마교 놈들에게 털렸어. 그 좀도둑들을 농부의 집에서 다시 만났지만, 그 땐 검을 갖고 있지 않았고···.’


한청검과 무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점창산 인근 농부의 집에서 재회한 마교 도둑들은 검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랬으니, 아마 마교 부대의 야영지에 숨겨두었을 거라 짐작했다.


당시 마교 부대는 점창파를 휩쓸고 이동 중이었으니, 매일 야영지를 설치하며 이동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주인 잃은 한청검은 어떻게 됐을까. 다른 마교인의 수중에 떨어졌을 가능성이 높았으니, 검 회수는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검을 되찾는다 해도 말의 몸으로 검을 차고 다닐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 무인, 마교인인가? 마교인이 이곳 광동의 대도시에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이렇게 생각하는 그 때, 입 속에 따뜻하고 폭신한 뭔가가 불쑥 밀고 들어왔다. 다름아닌 장녹아가 만두를 입 안에 밀어넣은 것이었다. 그녀를 잠깐 바라보다, 주옥도 이내 이미 입 속에 들어온 만두를 씹기 시작했다. 한청검을 찬 무인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분명 이 터져 나오는 육즙과 폭신하고 달큰한 만두피의 조화를 차고 넘치게 즐겼을 것이다.


“무슨 일 있어요? 약속한 대로 잔뜩 사 왔는데 입에 대지도 않으시고.”


‘잠깐 생각할 게 좀 있어서. 그건 그렇고 말인데 장 낭자.’


“예?”


‘몇 배를 번 거야?’


젊은이들을 앞에 두고 너무 오래 상념에 빠져 있었다. 어쨌거나 완벽한 승리를 거둔 직후였고, 장녹아에게는 필요해 마지않던 돈이 주어졌으니 짚어볼 가치가 있는 대사건이다. 장녹아가 허공을 올려다보며 배당을 읊었다.


“어디 보자··· 흑풍암제 우승···1.1배, 쾌속신보 2위는 3.3배, 그리고 백섬마황 3위가··· 11.5배.”


‘그럼··· 40배 정도 되려나?’


“예. 세금을 겸한 수수료는 떼고, 이미 금은괴로 전액 지급받았어요. 아버지 드릴 약도 샀고요.”


장녹아는 짐짓 쾌활하게 대답했다. 실제로 꽤나 즐거워 보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어딘가 불편함이 남아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무풍 역시 그 기색을 읽고 의문 섞인 눈으로 장녹아를 바라보았다. 반면, 주옥은 외려 그 불편함에 한 시름을 놓고 되물었다.


“그래. 어때, 그 정도면 충분하지?”


그러자, 장녹아도 예의 그 불편한 기색을 숨긴 채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 충분 그 이상이에요. 그 큰 돈을 받아드는데 손이 얼마나 떨렸다고요.”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손이 떨렸다는 이야기를 하는 말소리조차 약간 떨렸다. 확실히 어딘가 불편한 모습. 주옥은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내 말은, 다시는 경마장에 안 들어설 정도로 충분하냐는 얘기야.’


“네? 다시는요?”


장녹아와 무풍이 동시에 되물었다. 기다렸다는 듯, 주옥의 지체 없는 대답이 이어졌다.


‘그래. 장 낭자가 그곳의 위화감을 느꼈다면 이해할 거다.’


“잠깐만요. 위화감이란 게 뭐죠?”


즉각 대답한 것은 장녹아가 아닌 무풍이었다. 일생을 말과 경마 옆에서 자라 온 이 청년은 느끼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대로 장녹아는 평생 자신이 노동하는 만큼 돈을 벌어 온 인물이었으니 같은 현장이라도 느낀 바는 천양지차였다. 미처 대답하기 전, 장녹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네. 다시는 안 갈게요. 무서웠거든요. 그 많은 감정, 그 큰 돈이 순식간에 오가는 게···”


결연한 말투였다. 그 말투가 주옥의 걱정을 한시름 놓게 했지만, 그마저도 완전히 안심이 되지는 않았다.


무림이건 아니건, 돈을 버는 일이 손쉬울 리 없다. 특히 장녹아는 평생 정직하게 돈을 벌어온 여인이니, 이번 경험은 큰 충격이 되었을 것이다. 너무 짧은 시간, 너무 적은 노력을 들여 벌어들인 너무 큰 돈. 그녀가 일생 지켜온 가치관을 뒤흔들기 충분했으니, 염려되는 점은 그것이었다.


‘어쩌면 장 낭자를 위한답시고 큰 짐을 지워버린 걸지도 모르겠어. 앞으로는 쉽고 빠르게 돈을 벌고 싶은 유혹과 싸워야 할 테니 말이야.’


주옥이 솔직한 심경을 말했다. 기실, 경마장이 그런 곳인 줄 알았다면 애초에 다른 방법을 택했을 지도 몰랐다. 큰 돈이 오가며 사람을 짐승보다 더 짐승답게 만드는 곳. 아무리 점창의 장로였다지만, 평생 산 속 박혀 대도시도, 도박도 모르고 살아온 주옥이 경마장의 속성을 미리 알기란 불가능했다.


“...솔직히, 맞아요. 돈을 받아드는데, 여태껏 나는 왜 쥐꼬리만한 품삯을 받아 가며 남의 집안일을 해 줬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어요. 그 순간이 가장 무서웠고요.”


장녹아도 솔직한 심경을 고백했다. 그나마 그녀가 이렇게 경각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다행이라 여기며, 주옥이 대답했다.


‘무서움을 느꼈다면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해.’


“노력해야죠.”


굳게 다짐하는 장녹아의 옆에서, 무풍은 고개를 떨구고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충분히 짐작이 갔다. 주옥은 무풍을 부르며 물었다.


‘무풍! 아까 직선에서는 왜 가속을 선택한 거냐?’


“에,예?”


무풍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말을 더듬으며 답했다.


‘우린 경주를 복기해야지. 선수들이니까. 안 그러냐?’


“그, 그렇습니다.”


얼결에 대답한 무풍이었지만, 경주 이야기는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그 이유를 짐작하는 것 역시 전혀 어렵지 않았으니, 주옥이 먼저 나서 무풍의 고민거리를 짚어 주었다.


‘설마 방금 장 낭자에게 한 말이 신경쓰이는 건 아니겠지? 경마가 마력(魔力)을 지닌다 해서, 기수와 말이 잘못했단 얘기는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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