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이상한 천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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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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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4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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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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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쌍승식 작전(3)

DUMMY

출발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신법을 전속력으로 펼치며 2리를 전력으로 달렸다. 이토록 어이 없는 실수를, 이토록 어이 없는 질주로 만회하리란 예상을 한 이는 아무도 없었으니, 그 등 위에 올라 있는 무풍도 마찬가지였다.


계획 상으로는, 내력을 동원해 신법을 펼치는 건 막판 직선 주로만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아직 그 이상의 시간을 버틸 정도로 무풍의 경신술이 숙달되지 않았으니 일종의 제한을 걸어 두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신법까지 펼쳐 가며 있는 힘껏 2리를 달렸으니, 무풍이 낙마하지 않고 버틴 건 사실 칭찬해줄 만한 일이었다.


단지 본인의 실수로 경주를 망칠 뻔한 주옥이 마음의 여유를 갖추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 순간, 무풍을 더 질책할 것도 없이 바로 옆에 백마 한 마리가 바짝 달라붙었다. 경주마 중 백마는 한 마리, 백섬마황뿐이었다.


‘이제 시작이다.’


곡선과 직선 주로가 번갈아 위치한 마장에서 안쪽 주로를 선점하면 그 유리함이 상당했다. 주옥이 뒤에서부터 따라붙는 동안, 마황은 진작부터 안쪽 주로를 차지한 채 달리고 있었다. 그래서,비록 암제와 마황의 흑백 마두(馬頭)가 나란히 달리고 있다 해도, 우세한 쪽은 마황이었다.


상황이 그닥 좋지 않았다. 물론 주옥 본인이 1위를 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쾌속신보를 2위로 만드는 작전이 문제였다.


본래 계획을 따르자면 첫 곡선 주로에서부터 마황과 치열하게 몸싸움을 벌이며 체력을 빼 놓았어야 했다. 초반의 출발 실수 덕에 그 작전이 아예 실패해 버렸으니, 이제 대안을 실행할 차례. 급히 무풍에게 전음을 날렸다.


‘작전대로 가겠냐, 변경하겠냐? 네 선택이다.’


수 년처럼 느껴지는 수 초가 지나고, 주옥의 옆구리에 가벼운 두드림이 두 번 느껴졌다. 무풍이 발꿈치로 허리를 차서 약속해 둔 신호를 보낸 것이었으니, 그 뜻은 곧 속도를 높이라는 의미였다. 주옥이 대답했다.


‘알았다. 나한테 맡겨.’


동시에, 주옥이 네 발에 더욱 힘을 실었다. 무풍도 엉덩이를 들고 상체를 숙인 채 전력질주에 동참했다. 천천히 백섬마황의 머리가 뒤쪽으로 물러나기 시작하고, 앞서 달리던 유일한 도주마와의 간격이 빠르게 좁혀졌다. 동시에 관중의 함성이 떠나갈 듯 울렸다.


“벌써 속도를 올리나 봐!”

“역시 영웅 말! 가라!!”


백섬마황과의 차이가 벌어질수록, 주옥은 직선 주로에서의 몸싸움을 포기하고 바깥쪽 주로로 향했다. 이렇게 되자 난처해진 것은 자기 주로를 지켜내려 몸싸움을 걸어 오던 백섬마황이었다.


출발점으로부터 3리쯤 되는 이 직선 구간에서, 그것도 자신의 바로 옆에 붙은 말에게추월을 당하는 경우는 백섬마황이 경마장에 들어선 이래 처음 겪는 일. 암제가 승부수를 던진 건 명백했다. 이젠 마황이 대응할 차례였다.


“이랴!”


백섬마황의 기수도 채찍을 들고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 신호를 전달받자마자 마황은 기다렸다는 듯 속도를 높였다. 그 속도가 죽어라 달음박질하는 흑마, 흑풍암제에 못지 않았다.


두 번째 곡선 주로에 진입하기 직전, 암제와 마황은 다시 머리를 맞대고 나란히 달리게 되었다. 선두로 달리던 도주마는 이미 3위권 이하로 처진 지 오래였다.


“와아아아!!”


경마장을 가득 메운 관중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새로 등장한 흑(黑)의 영웅과 수없이 왕좌를 지켜낸 백(白)의 패왕이 1위를 두고 경쟁하고 있었으니, 그 두 마리의 어깨에 걸린 무수한 욕망이 관중 무리를 짓눌러, 소리라도 지르지 않으면 버티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지금!’


주옥에겐 그런 함성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곡선 주로 안쪽에 딱 말 한 필 들어갈 공간을 남겨두고 진입하자, 백섬마황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다시 안쪽 주로를 차지한 마황, 그 바깥에서 딱 붙어 달리는 흑풍암제. 쾌속신보를 2등으로 만들려면, 여기서부터가 중요했다.


앞으로 치고 나가며, 주옥은 어깨로 마황의 어깨 윗부분을 툭 건드렸다. 이 정도가 경마의 규정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몸싸움이었다. 그렇지만 마황은 마치 접촉 따위 아예 없었다는 듯, 그대로 이겨내고 점점 더 속도를 높여 갔다. 두 말의 덩치 차이를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었다.


‘...대단한데?’


급박한 상황임에도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강하게 부딪치면 실격 위험이 있으니 살짝 건드린 정도긴 했어도, 약간의 당황과 그로 인한 실속(失速)을 기대하고 건 몸싸움이었다. 그런 기대를 깡그리 무시한 채 오히려 더 빨라진 마황 옆에서, 주옥도 질세라 속도를 높여 머리를 나란히 유지했다.


‘앞이나 뒤에서 몸싸움을 걸면 실격이야! 이 옆 자리는 끝까지 유지해야 한다!’


방금 마황에게 돌파를 허용했다면 쾌속신보 2위는 물건너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노림수에 역으로 당할 뻔했음을 느낀 그 순간, 우습게도 이 치열한 경주와는 하등 관계없는 상념이 하나 떠올랐다.


‘이거, 그 때 그 생사결과 느낌이 비슷하군.’


청호와의 건곤일척, 죽이지 못하면 죽는 야생에서의 대결. 그 야수성이 지금 이 자리에도 살아 있었다. 어쩌면 한계를 뛰어넘은 짐승은 전부 비슷한 태도를 보이는 것일지도 몰랐다.


물론, 한계를 가장 아득히 뛰어넘은 짐승은 주옥이었다. 곡선 주로의 절반을 넘어갈 즈음, 주옥은 다시 한 번 어깨로 백섬마황을 건드렸다. 이번에도 명백히 규정 내의 접촉, 마황은 이번에도 꿈쩍하지 않았고, 다시 한 번 속도를 높여 주옥을 확실히 앞지르려 했다. 그리고 이번엔 그 시도가 성공했다.


“와아아아!!”


마황의 흰 머리가 불쑥, 암제의 검은 머리 앞으로 튀어나왔다. 머리 하나 정도의 차이긴 해도, 분명 모든 관중이 그 차이를 볼 수 있었다.


그 상태로 곡선 주로를 돌아나가니, 직선에서의 차이는 더 벌어졌다. 도착 지점까지는 대략 2리 정도의 직선 주로. 이제는 마황의 허리께에 암제의 머리가 위치했지만, 그 이상 차이가 벌어지지는 않았다. 남은 거리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뒤!’


그 순간, 전음이 무풍에게 닿았다. 그 즉시 무풍은 고개를 돌리고 뒤를 슬쩍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주옥의 옆구리를 다시 한 번 발꿈치로 찼다. 이것 역시 미리 약속해 둔 신호였다.


‘좋아. 신호 줘!’


주옥의 답이 들려왔다. 방금 전 신호는 지금 상황이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의미. 이제 마지막 승부수가 남아 있었으며, 그 열쇠를 쥐고 있는 건 무풍이었다. 남은 거리는 빠르게 줄어들어, 결승선이 가까워 올수록 함성은 커져 갔다.


“힘내, 암제!”

“마황! 마황!”


1,2위를 다투는 명마들의 이름을 연호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그에 못잖은 함성이 또 있었다.


“됐다! 쾌속신보! 달려!”


그 순간, 무풍의 발꿈치가 다시 한 번 주옥의 옆구리를 찼다. 남은 거리는 삼분지 이 리 정도, 주옥이 네 다리에 남은 힘을 싣고, 내력을 발했다.0


“와아아앗!!”


이미 진작부터 요란했던 함성 소리였건만, 이제는 장내가 떠나갈 듯 고조됐다. 이윽고 암제의 머리가 안쪽에서 달리고 있는 마황의 머리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암제의 바깥쪽에서도 말 한 마리가 따라붙었다. 3번 인기마 쾌속신보였다.


3분지 2리 정도라면, 40보 내외로 주파할 수 있는 거리였다. 거기에 경공이 더해지니 한 보 한 보가 더해질 때마다 주옥의 우세가 강해졌다. 놀라운 것은 쾌속신보의 걸음이었다. 덩치가 큰 주옥보다 보폭은 작았지만, 실린 힘과 기세가 중모현 경마장의 패왕, 마황의 것을 능가했다. 어느새 백섬마황을 1장 가까이 앞선 주옥은, 하얀 패왕이 당황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쾌속신보. 잘 따라왔다. 너도 마황에 못지 않은 명마다.’


이렇게 생각하며, 흑마가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했다. 백섬마황과 쾌속신보의 경쟁은 한 장쯤 뒤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가능하면 뒤를 돌아보며 2,3등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온 힘을 다해 달리던 주옥보다 등자에 발을 딛고 서 있던 무풍이 빨랐다. 뒤를 돌아본 무풍은, 그 즉시 허리를 숙여 주옥의 귀에 말했다.


“성공이에요.”


더 이상 커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시끄러웠던 함성이 더욱 커져, 주옥의 밝은 귀로도 무풍의 말소리를 겨우 분간할 수 있었다.


* * *


일주일 전, 쾌속신보가 백섬마황을 이기게 만들겠다는 작전을 세우자마자, 주옥은 두 경쟁자에 대한 모든 정보를 요구했다. 말들이 평소에는 어떻게 경기를 운영하는지, 기수의 성향은 어떤지 등이었다.


무풍은 이틀에 걸쳐 해당 정보들을 어떻게든 알아 왔고, 그 모든 정보를 전해 들은 주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이렇게 말해 왔다.


‘좋아. 아주 유익했어. 그럼 잘 들어 봐.’


“예? 예. 선생님.”


무풍이 얼결에 대답했다. 이번에도 주 선생님의 신기묘산(神機妙算)이 발하는 것인가, 기대하며 무풍은 눈을 반짝였다.


‘백섬마황은 선행(先行: 마군의 선두에 서서 경주를 진행하는 유형), 쾌속신보는 선입(先入: 선행마의 뒤에 붙어 경주를 진행하는 유형)이야. 여기서 알 수 있는 백섬마황의 성격은?’


“예? 성격이요?”


‘그래. 말들이 자리잡는 걸 보면 성격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 일류 기수가 되려면 이걸 꼭 기억해 둬라.’


무리를 이뤄 달릴 때, 우두머리는 자연스럽게 앞에 나서서 대열을 이끈다. 경마에서 그 위치는 선행마가 차지했다. 달리 말해, 선행으로 달리는 말들은 우두머리 기질이 있는 성격. 반대로 선두와 그리 떨어지지 않는 중후열 선입 자리는 모나지 않은 보통 말들이 선호하는 위치였다.


도주(逃走: 마군에 관계없이 시작부터 가장 앞으로 나서서 경주를 진행하는 유형)나 추입(追入: 선입마보다도 뒤, 마군 후미에 머무르며 경주를 진행하는 유형) 자리는 이 두 가지에 해당하지 않는, 조금은 별난 말들이 선호했다.


물론 예외가 있긴 했지만, 무패의 패왕, 번번이 쾌속신보를 꺾어 온 백섬마황이라면 충분히 자존심을 부릴 만했다. 그 정도 근거면 충분했다.


‘봐. 최선은 첫 곡선주로에서 몸싸움으로 그 허연 놈을 떨쳐내는 거지만, 성공하리란 보장이 없어. 그럼 그 다음 이어지는 직선 주로가 관건이다.’


“예. 듣고 있습니다.”


‘직선에서의 몸싸움은 규정상 실격 위험이 높아. 그래서 돌아나온 다음이라면 몸싸움은 차선. 여기서 최선은 그 허연 놈을 슬슬 긁어서 흥분시키는 거야. 이 경우 그놈이 흥분하지 않으면 말짱 꽝이지만, 몸싸움을 하다 걸려도 마찬가지지. 그래서, 선택은 네가 해라.’


“제가 그런 중요한 결정을 한다고요?”


‘아이고, 이 아둔한 놈아. 이건 원래 기수가 해야 되는 결정이야. 그 판단을 하라고 지금껏 훈련을 한 거고. 네가 언제까지 내 위에서 달릴 것 같아?’


그 대답에, 무풍이 조용히 입을 닫았다. 주 선생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이상한 능력을 잔뜩 가진 주 선생을 만나서 망정이지, 원래 예정대로 평범한 말을 만나 첫 출주를 하게 됐다면, 이 모든 작전을 떠올리고 수행해야 하는 건 무풍 본인이었다.


비록 그 모습이 사람을 타박하는 흑마에 불과하긴 해도, 주 선생을 만난 건 인생에 다시 없을 행운일지도 몰랐다. 말 입장에서 경주를 이해할 뿐 아니라, 인간 이상의 통찰력으로 요점을 전해줄 수 있는 이는 온 천하에 주 선생 한명 뿐일 터였다. 마음을 굳게 먹고, 무풍이 대답했다.


“맞습니다. 판단은 제가 해야지요. 필요한 것들을 알려 주세요.”


그러자, 주옥도 한결 편해진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래. 하지만 일단 작전을 다 설명한 뒤에.’


이 정도면 훌륭한 제자였다. 비록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깨치는 천재는 아니었지만, 의도를 곧잘 파악하고 필요한 것을 요구하는 자세는 충분히 합격이었다. 주옥은 흡족한 심정으로, 작전을 마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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