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이기는 역대급 바둑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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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쿠키
작품등록일 :
2024.08.05 11:03
최근연재일 :
2024.09.03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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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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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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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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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이태석

DUMMY


어느덧 대회 개막 시간이 다가왔다.


“하..사부. 진짜 코미딘줄 알았어요”

“하하하하!! 남자라면 가슴에 영웅 하나 품고 사는법이지”


자꾸 웃음이 나왔다.

아직도 바보연기를 하는 사부를 보니 슬펐던 감정이 다 날아가버렸다.


“하..진짜 저 올해 웃을건 다 웃은거 같아요”

“이거 참. 아무리 생각해도 잘 지은거 같은데 흠..”


고개를 크게 젓고는 손으로 턱을 짚는다.

아까부터 저 과장스런 제스처가 웃겨 죽겠다.




그때 단상의 불이 켜졌다.

곧이어 한대현 총재가 옆 문을 열고 등장하더니 단상 중앙으로 나왔다.


“시작하나 봐요”


체육관의 모든 시선이 단상으로 향하고 플래시 세례가 단상을 향해 쏟아졌다.


톡톡


“아아. 잘 들리시나요?”


가벼운 마이크 테스트.


“정말 많은 분들이 와주셨군요. 대한기원의 총재로서 이렇게 큰 관심을 가져 주신 것에 먼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잠시 단상 옆으로 나와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보통의 고위 관계자에게 보기 힘든 모습에 플래시 세례가 더욱 강해졌다.


“다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우선 지금부터 대진표를 확인해주시길 바랍니다”


총재의 말에 진행위원들이 대회장 곳곳에 대진표를 붙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바둑기사들이 대진표로 몰렸다.

각자의 자리와 첫 대국 상대를 확인하고 누군가는 탄식을, 누군가는 기쁜 표정을 짓기도 했다.


“대국은 10분뒤 단상에서 보내는 신호를 사인으로 일제히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시간에 맞춰 자리에 착석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총재는 깔끔한 진행으로 대회를 진행시켰다.

언론에겐 사전에 통보한 듯, 몇몇 인원을 제외한 인원들이 대회장의 구석으로 자연스럽게 자리를 옮겼다.



우리도 이제 움직여야 한다.


“저는 자리로 가볼게요. 사부는요?”

“나도 아까 화장실 다녀와서 바로 가려고”

“그럼 이따 끝나고 봬요. 전 얼른 가서 명상 좀 하려고요. 마음 다잡고 심기일전 해야하니까”


나 역시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그리고 나는 아직 한참 부족하다. 모든 대국이 내겐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하는 대국이다.


“그래. 명상 좋지. 부담 가지지 말고 편하게 두고와”

“잘해볼게요”

“너 잘둬. 내가 보증한다”


격려하기 위해 그냥 하는 말이겠지만 힘이 난다.


빈말이든 뭐든 바둑의 신에게 인정받은거다. 나는 그 사실만을 가져가면 된다.


“네! 제자 출동하겠습니다!”

“오냐!!”


인사를 끝으로 사부는 등을 돌려 지정된 자리로 향했다.


짊어진게 많아진 그 등을 잠시 동안 바라봤다.


“고마워요 사부”


영웅이 되겠다는 말.

달래 주시기 위해 한 가벼운 말일 수 도 있다.

사부의 성격상 아니겠지만, 그냥 그럴 수 도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야 내가 강해질 수 있을테니까. 부탁하고 기대는 것에 의지하면 안되니까.


‘바둑계에 평생을 몸담아온 사람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지’


나는 성장했다.


한 꺼풀을 벗어내고 더욱 성장했다는걸 스스로도 알 수 있었다.


“국가대표? 차혜정. 너 할 수 있어”


짝!!


볼을 세게 내리쳤다.

주위의 시선이 몰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각오를 굳히고 뒤로 돌아 내 자리로 향했다.


선발전이 끝나있을때, 사부를 뺀 세 자리 중 하나엔 내 이름이 올라갈거다.

그렇게 정했다.


“신의 제자인데, 그 정도는 껌이지”


이건 스스로에게 하는 선언.

내뱉은 말을 지키고자 하는 스스로에 대한 약속이다.


긴장된 마음을 산뜻하게 풀어낸다. 복잡한 머리 속에선 좋은 수가 나오지 않는다.



마음을 다잡고 자리에 착석했다.


이제 선발전이 시작된다.



***



“어디 보자, 내 첫 대국상대는..”



비교적 사람이 없는 한가한 안내문에서 내 이름을 찾았다.


“여깄다”


그런데.


“와, 이건 예상 못했는데”


[이태석 - 진한수]


대국 상대는 이태석九단.


시작부터 만날 줄은 몰랐는데.



고개를 돌려 자리를 확인했다. 다른 곳과는 확연히 다르게 많은 사람이 몰려있는걸 확인할 수 있었다.


저곳에서 곧 이태석 사범님과 대국한다.


“가보자”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진한수는 언제오는거야?”

“이거 참, 얼굴도 모르니까 찾을 수 도 없고”

“답답하네. 그래도 언제 나타날지 모르니까 카메라 계속 대기해라 막내야”

“네!!”


이태석과 진한수의 자리엔 아직 남은 몇몇의 기자가 진을 치고 있었다.


진한수의 정체는 빨리 올리기만 하면 조회수가 보장되는 확실한 카드.

다들 대국 시작 전에 사진이나 말 한마디라도 건져보려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그때 이태석이 먼저 등장했다.


“이태석 프로! 진한수 아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프로기사로 다시 복귀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진한수 아마의 실력이 프로기사를 능가하는게 맞습니까?”

“한마디만 부탁드립니다!!”


누구라 할 것 없이 이태석의 앞에 마이크를 들이밀기 바빴다.

복귀를 결정하고 처음으로 다시 대중 앞에 서는 자리, 한마디라도 건져야 했다.


이태석은 무표정으로 기자들을 보았다.

기분나빠 하는건 아니었으나 정말 감정이 없어보였다.


“어..이..태석..프로?”

“..한마디..아니 지금은 힘드시겠죠?”


기자들도 이태석의 분위기를 느끼고 언행이 조심스러워졌다.


하지만 이태석은 예상과는 다르게 곧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띄었다.


“오늘의 대국이 끝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도망가지 않을 터이니 밖에서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중한 이태석의 태도에 기자들은 오히려 아까보다 더 당황해 했다.


그럼에도 쉬이 물러나지는 않았다. 아직 시작한게 아니기도 하고 기자들은 다른 무엇보다 코멘트 한줄이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후..”


체념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저는 도전자로서 진한수 선수와 대국 할 것입니다”


!!


한발 물러난 이태석이 결국 기자들에게 필요한걸 던져줬다.


“그, 그럼”

“아뇨”


빠르게 다음 멘트를 들으려고 하는 기자였지만 단호한 말투로 말을 잘랐다.


“더 이상 저를 존중해주지 않으시는 분은 이후 인터뷰때 제외하도록 하겠습니다”


약간의 탄식이 들려왔지만 기자들도 더 이상 뭔갈 요구하진 않았다.

한마디 던져 준 것으로 기자들에게 예의는 갖춘 것이었기에.


“이만 뒤로 가자. 시작하나보다”


기자들이 체육관 바깥쪽으로 물러나려고 몸을 돌렸다.

저 멀리 단상에서 한대현 총재가 다시 올라오는게 보였기에 시작이 임박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기자들과 엇갈려 자리로 향하는 한 사내가 있었다.


이태석은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오랜만이구나’


어렸을 적, 그 아이가 자리로 걸어들어온다.


고요하고 잔잔하며, 끝을 알 수 없던 깊이를 보여준 아이.

바다 같던 바둑을 둔 아이.


그 아이를 이제야 다시 만난다.

20년의 세월을 넘어.


그때는 아직 작았던 바다가, 대양이 되어 내 앞에 섰다.


바로 앞에.

진한수가 있다.





***





총재가 단상에 다시 올라왔다.

대국의 시작을 알리기 위해.


“자 다들 착석하셨을까요? 이제 시작음이 울리면 다들 대국을 시작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자리를 한번 둘러본 총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승부사들에게 무운을 빌겠습니다”


수백명의 기사들이 각자의 대국을 준비했다.


“국가대표 선발전, 지금 시작합니다”


삐이이이이 - !!!


큰 사이렌이 울렸다.


그리고 이 자리에 모인 프로기사들의 대국이 일제히 시작됐다.


대국 시계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바둑돌을 놓는 소리만이 대회장을 채웠다.


그리고 진한수와 이태석의 대국도 시작되었다.







딸칵 -


시계를 눌렀다.


내 쪽이 흑 순번.


피셔. 10분에 20초 방식이다.


9 : 30

9 : 23

8 : 50


시간이 흐른다.


자리에 앉은 이후로 계속해서 터지던 플래시 세례도 어느덧 잦아들었다.


‘이태석 사범님’


20년만의 재회다.


기억 속 사범님은 젊고 강인한 모습이셨다.

마주 앉아 있기만 해도 느껴지는 태산 같은 기백에 버티는 것이 고작이었다.


‘지금은 어떻지’


어느덧 50대에 들어서 사범님이다.

여전히 강인한 모습이시지만, 머리 사이로 보이는 흰머리, 주름. 부드러운 눈빛이 세월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었다.


6 : 10

5 : 58


그때의 대국을 아직도 기억한다.


손 한번 쓰지 못했던 대국.

내가 시도하는 모든 공격이 막히고, 마지막엔 허무한 수읽기 실수로 졌던 대국.


나는 얼마나 변했을까.


나는 세계 최고의 기사다. 어떤 프로도 절대 인공지능을 이기지 못하는 걸 이제는 안다.


2 : 30

1 : 22


하지만 기억은 남는다.


눈앞의 프로기사는 내 동경의 대상이다. 그 대국에서 바둑의 아름다움을 처음 보았다.


‘베타고를 준 이유, 다시 한번 보고 싶다고 하셨지’


0 : 00


이번엔 내가 아름다움을 선물해드릴 차례다.



탁 -


우상귀 화점.


첫 수를 놓았다.






***



탁 -


우변 흑집을 갈라치고 들어온다.


탁 -


곧바로 협공.


탁 -


한 칸 뛰고 도망간다.


탁 -


도망가는 백돌을 막아서는 돌을 바로 붙인다.

이어지는 백돌의 젖힘에 곧바로 끊는다.


탁 -


탁 -


탁 -


백돌이 수세에 몰렸다. 탈출에 온 힘을 써야한다. 중간 수순에서 늘어간 묘수로 인해, 백이 도망가면서 흑의 세력이 너무 커졌고, 여전히 백은 생존을 확정하지 못했다.

죽을 돌은 아니지만, 부담감이 클 것이다.


탁 -


그런데 손을 뺏다. 지금 띄어 도망가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위험하다고.


‘그렇게 생각하겠지. 지금의 바둑 수준에선’


하지만 아니다.


지금 손을 빼도 백돌은 생존할 수 있다.

변에서 수가 나는 수순이 존재한다.

손을 돌리고 우상쪽 실리를 가져간 사범님의 수가 정답이었다.


탁 -


탁 -


백돌은 좌상에서 실리를 챙기려고 했으나 욕심을 부렸다.

남은건 흑의 정확한 수순에 따른 응징.


탁 -


탁 -


끼워 가는 수.

백돌은 실리도 세력도 잃었다.


다시 손을 돌려 좌하귀 화점을 기반으로 다시 일어서려고 한다.


좌변으로 길게 벌리는 백.


동시에 좌상의 실착을 깔끔하게 버리고 최대한 이용하고자 한다.

사석 작전을 통해 중앙 세력 확장시도.



탁 -


탁 -


탁 -


탁 -


탁 -


‘이미..’


너무 많이 기울었다.


백은 실리도 세력도, 무엇하나 챙겨가질 못했다.

우변의 백돌은 겨우 목숨만 부지했고. 좌변의 집을 챙겼지만, 중앙으로 나온 백돌은 모두 죽었다.


중앙 삭감을 나왔을 때 이미, 백돌이 죽는 수순을 모두 찾아냈다.


그리고 이제는 사범님도 읽어낼 수 있을 정도로 수순이 진행됐다.


그런데도 계속 둔다.


탁 -


중앙 백돌이 우변 쪽으로 뛰어 맛을 찾는다.


하지만 그건 통하지 않는 수다.

붙이는 수로 백의 노림수를 차단했다.


탁 -


탁 -


탁 -


중앙 삭감을 들어온 백 대마의 죽음이 선고됐다.

좌변이 끊겼고, 우변 쪽 노림수도 막혔다. 수가 날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계속해서 두지만 변하지 않는다.


‘이제 돌을 거두시겠지’


끝난 바둑이다.


더 둬봤자 의미 없다.

남은건 돌을 던지는 것 뿐.

방금 수 로 대마가 죽었으니 이제 던지실거다.


탁 -


..뭐야


탁 -


탁 -


멈추지 않고 계속 두신다.


탁 -


탁 -


이제 끝내기다.

확정 수순으로서 정해진 마무리.


탁 -


끝내기 수를 잘못보셨다.


방금 사범님이 보신 곳보다 상변의 끝내기가 강하다.

상변에서도 흑돌 백돌이 얽힌 복잡한 구조가 되어있어 계산이 힘들지만, 이곳이 1집 크다.


탁 -


사범님이 내 수를 받았고

나는 다시 아까의 자리를 받았다.


탁 -


탁 -


차이가 더 벌어진다.

끝내기에서도 두 집이 벌어졌다.


탁 -


탁 -


마지막이다..공배다.


공배를 하나씩 메운다.

그리고 곧이어 사범님의 마지막 수로 모든 공배를 메웠다.


대국이 끝났다.


‘집은, 쉰 세집 반..’


덤을 제외하고 50집이 넘는 차이로 이겼다.


애초에 계가까지 오지 말았어야 하는 바둑이다.

프로의 대국에서도 대마가 잡히는 일은 많다. 하지만 결단코 계가까지 가지 않는다. 승부가 정해진 바둑을 더 끌고 가는 것은 무의미하니까.


무의미하다..?


아.


그랬구나.


그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바둑의 의미를.


“좋은 대국이었습니다”


사범님이 고개를 가볍게 숙이며 패배를 선언했다.

그리고 나 역시 고개를 깊숙이 숙이며 응답했다.


“좋은 대국이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젊었을 적 사범님은 이미 지나가버렸다.


누구도 오르기를 거부했던 태산도 언젠가는 변한다. 부드럽고 포용하는 산이 되기도 하겠지.


변하셨다.

하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멋있는 바둑이네요”


바둑의 내용도. 기력도. 기백도 달라졌지만.

19년전과 같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구나”


“보고싶었다”


나를 아름다움의 세계로 이끌어줬던 그때의 그 아저씨 그대로.


“저 역시 보고싶었습니다”


이태석의 바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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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승부사 24.08.21 266 5 12쪽
18 바둑의 미래 24.08.20 286 4 12쪽
» 이태석 +1 24.08.19 283 5 13쪽
16 내 이름은? 24.08.18 283 3 12쪽
15 각오 24.08.17 273 3 13쪽
14 폭풍 24.08.16 294 3 13쪽
13 이정호 24.08.15 379 3 12쪽
12 국가대표 선발전 +2 24.08.14 303 5 13쪽
11 돌아왔구나 +4 24.08.13 311 5 12쪽
10 오늘의 바둑 +1 24.08.12 304 5 12쪽
9 제의 +1 24.08.11 311 5 12쪽
8 치팅? +1 24.08.10 311 6 13쪽
7 일치율 24.08.09 320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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