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8년 갑질 당하는 몽골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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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민(旻)
그림/삽화
하늘민(旻)
작품등록일 :
2024.08.07 16:33
최근연재일 :
2024.08.27 22:50
연재수 :
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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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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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7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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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238년, 다가오는 전운(戰雲)

DUMMY

* * *






앳된 사미승이 다소 장난기 어린 앙증맞은 발걸음으로 중문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마주한 구층 목탑이 오늘따라 유난히도 웅장하고 신비로워 보였는지 잠시 감탄사를 발하고는 자신도 모르게 합장했다.


작은 입술로 조몰락거리는 것이 불호를 외는 듯 이내 운무로 감싸인 목탑을 돌아들어 금당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자신의 키보다 훨씬 커 보이는 양옆의 치미(鴟尾)를 받치고 있는 금당을 처음 보았을 때는 목탑만큼 눈이 동그래졌던 어린 사미승이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담담한 시선으로 열려 있는 어간문(법당의 중앙문)으로 향했다.


법당 내부에서는 십육 척은 넘을 것 같은 비현실적인 크기의 장육존상이 위엄과 자애로운 미소를 머금고 빛나고 있었다.


“큰스님···.”


“스님, 공양할 시간이에요.”


시간이 지나도 묵묵부답이라 사미승은 깨끼발을 들어 법당 안으로 몸을 쑥 집어넣고는 좌정한 큰스님의 기색을 요리조리 살폈다.


“으음···.”


애써 귀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듯한 낮은 신음 소리가 큰스님의 도드라진 이마의 심줄만큼 위태롭게 느껴졌다.


‘저런 게 심마라는 걸까?’


아침 예불을 들이고 나면 으레 평온한 좌선에 들어갔던 큰스님의 모습이 오늘따라 예사롭지 않으니 사미승도 어찌할지를 몰라 물끄러미 쳐다보기만을 반복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아침 운무를 뚫고 밝은 빛이 어간문 사이로 황금의 장육존상과 큰스님의 이마를 보드랍게 내리쬐기 시작했다.


‘아~, 큰스님의 얼굴에 이제야 미소가 돌아왔네.’


사미승은 자신도 덩달아 안도하며 함께 빙그레 웃음을 자아냈다


“소명아, 도연 스님에게 수원승도(隨院僧徒) 모두를 빠르게 불러들이라 전하거라.”


“네?”


사미승의 맑고 검은 눈동자가 부풀어 오르듯 뚜렷해졌다.


어린 소명에게도 뭔지 모를 예감이 들어설까? 맑던 얼굴이 잠시 흐려졌다.


큰스님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더니 포근한 미소로 소명의 머리를 잠시 쓰다듬었다.


“소명아, 네가 신경 쓸 일은 아니니 사형에게 빨리 전하고 너도 어서 공양을 해야지. 배고프겠구나.”


“네, 스님.”


큰스님의 말씀에 잠시 잊고 있었던 배꼽시계가 작동했는지 소명은 합장하고는 재빠르게 돌아서려 했다.


“칠직(七職)스님(각 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7명의 직책)들도 동금당으로 사시(巳詩)까지는 모이라고 전해 주겠니.”


“네, 스님.”


어린 사미승의 짧은 다리가 오늘따라 유난스럽게 더 분주해졌다.



* * *



중금당만큼은 아니라고 해도 옆에 있는 동금당 역시 상당한 규모의 건물이었다.


방장스님은 창문 너머 우뚝 솟아 있는 목탑을 차분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강해지면서 첨탑 부위의 황금색이 더욱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소금 전매 문제로 급히 처리할 게 있어 좀 늦었습니다.”


턱수염이 덥수룩하고 눈이 부리부리한 도감 스님이 굵직한 목소리를 내며 좌정했다.


“그럼 다들 모였군. 이제 시작하지.”


다들 궁금했든지 방장스님에게로 이목이 집중됐다.


“일단 개경에서 온 이 서찰을 보고 이야기하세.”


“시간 관계상 모두 들을 수 있게 지전 스님이 읽어주겠나.”


“네.”


개중에서 가장 젊어 보이는 스님이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낭랑한 음색으로 읽어 내려갔다.


“그 강성하던 금나라가 마침내 몽골군의 말발굽에 패망하고 말았습니다. 더구나 완충지대의 동진(東眞)마저 멸망하니 북방지역은 다시금 몽골의 3차 재침이 일어날지 노심초사하고 있습니다.”


시작부터 연이은 패망 소식을 듣게 되자 좌중의 스님들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폐하와 최 씨는 강화도에서 들어가 나올 기미가 없으니 개경의 백성들은 어찌해야 할지 불안한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혹은 남으로의 피난 행렬도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내용이 무거워질수록 목소리는 짙은 음색으로 젖어 들었다.


“천도한 강화도에서 흘러 들어오는 소식을 들으니 중앙군은 웅크린 채 성을 축조하고 간척지 개간에 몰두하다 보니 백성들의 고초가 말이 아니라고 합니다.”


“끄응.”


“쯧쯧.”


여기저기서 한탄같은 신음과 혀 짧은 소리들이 울려 퍼졌다.


“북방 몽골군의 움직임도 부산해지고 있다고 하니 걱정이 태산입니다. 모쪼록 남부의 스님들이나마 부처님의 가호로 무탈하시길 바라며 마칩니다.”


지전 스님이 서찰을 접어 방장스님 앞으로 다시 건너 주었다.


좌중의 분위기가 가라앉은 가운데 눈썹이 호선을 그리며 내려앉은 유연 스님이 깊은 탄식과 함께 나지막한 불호가 흘러나왔다.


잠시의 정적을 깬 이는 자명 스님이였다.


“대장경이 불타는 참화도 있었지만 일, 이 차를 나름 잘 막지 않았습니까?”


“무엇보다 처인성 전투에선 승장의 활약으로 사령관인 살례탑(살리타이)까지 사살하는 성과를 내지 않았습니까? 몽골군도 우리 고려를 함부로 경시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다시 재침을 해온다고 해도 막혔던 경기도보다 더 남쪽 깊숙한 이곳까지 오기는 몽골군도 힘들지 않을까요?”


율장 스님이 한마디를 곁들었다.


한번 물꼬가 터지자 여러 말들이 오고 갔다.


대체로 우려하는 목소리에도 애써 동경(東京: 경주)은 참화를 피하지 않을까 하는 다소 앞선 희망들이었다.


“방장 스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정갈한 느낌의 소지 스님이 상석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듣고만 있던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제야 눈을 뜬 방장스님의 깊은 안광만큼 목소리에도 묘한 울림이 있었다.


“이미 들은 분들도 계시겠지만 도연 스님에게 수원승도(隨院僧徒)들을 집결하라고 시켰네.”


“무슨 짐작 가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이미 최우의 도방에 백성들의 민심이 이반된 지 오래지 않나. 앞서 대거란전은 폐하와 군민의 합심으로 이겨낼 수 있었지만 지금은 대군을 운용할 처지도 아니니···.”


"일, 이 차전이야 요행이 따라 격퇴시키는데 성공했지만 지금의 고려가 저 강맹하던 금나라도 멸망시킨 기세를 어찌 감당할지 아득하군.”


방장스님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며칠 전부터 좌선에 들면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지속되었다네. 그리고 오늘은 너무도 선명하고 기이한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장면들을 보았네.”


스님들의 눈동자가 커지거나 누구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염주(念珠)을 말없이 굴렸다.


당시 방장스님의 예지력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신통해서 타지에서도 종종 회자되곤 했다.


“앞으로 수원승도를 대대적으로 확충하고 훈련도 이전보다 주기적으로 시키려 하네. 알 수 없는 적의 기세가 이렇게 노도같이 선정에 파문을 주고 있으니 좀 더 방비를 확충하려고 하니 다들 협조를 부탁하네.”


방장스님의 눈과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율장 스님은 나가는 즉시 도연 스님이 모아온 수원승도들을 전시체재의 항마군으로 재편시키게. 그리고 목탑에 올라가 교대로 전방 주시에 힘쓰도록 조치하게나.”


잠시 한 호흡을 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무슨 변고가 있을 시는 즉시 타종을 치도록 준비하게. 그리고 다들 언제든 즉각적으로 대비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두길 바라네.”


“저번에 일러두신 대로 행하면 되겠지요”


율장 스님이 마른침을 삼키며 되묻자 방장 스님이 말없이 고개를 끄떡였다.


“자 시간이 없으니 각자 맡은 대로 움직이고 이 시간부로는 다들 불필요한 외출은 삼가도록 하게.”


곧 일어나며 스치는 스님들의 장삼 자락 소리만이 실내를 조용히 메웠다.



* * *





“좀 천천히 올라가자.”


박 씨는 계단 난간에 손을 잡고는 짐짓 엄살을 떨었다.


“형님 이러다 교대 시간 늦겠소. 안 그래도 경내 분위기가 좀 살벌해야지, 또 몬 소릴 들을껴요.”


“늙은이 괄시냐? 이 구층 목탑이 좀체 높아야지.”


헉! 헉!


마지 못해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늦가을을 지나고 있었지만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다.


꼭대기에는 허리에 검은 띠로 동여맨 짧은 머리의 이들이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올라오는 이들의 인기척이 들리자 다소 날카로운 시선으로 돌아봤다.


“박 씨, 왜 이리 굼벵이처럼 늦어? 저번처럼 도연 스님에게 단체로 혼나봐야 다들 정신 차릴껴.”


“아구, 미안하이. 계단이 워낙 많아야지. 여튼 수고했네. 어서 내려가서 참이나 드시게.”


박 씨가 미안했든지 다소 실없는 웃음을 흘리면서 인사를 건넸다.


“졸지 말고 잘들 보게. 도연 스님이나 도원 스님이 불씨에 한 번씩은 올라오니 책잡히지 말고.”


“이 사람이 또 잔소리 시작이군. 알아서니 어서 내려가게.”


쿵쿵 내려가는 발소리가 점차 멀어지자 다소 여유를 찾았는지 담소가 이어졌다.


“위에 올라오니 바람이 좀 차가워도 시원한 게 좋긴 하구먼.”


“그렇게요, 날씨는 맑은데 시절이 어수선해서 기분이 참···.”


“이런 구석까지 별일이야 있겠어?”


“형님, 그 이야기 못 들었소?”


“뭔 얘기?”


“대금이랑 동진(東眞)이 망한 건 들었지요?”


“그 사단 때문에 우리가 지금까지 개고생하는 것 아니냐.”


심드렁한 박 씨의 대답이었다.


“그게 다가 아니니 문제 아니유.”


여전히 태평한 박 씨의 모습에 한숨을 쉬었다.


“동진(東眞)의 패잔병까지 몽골에 붙어서 동해 일대를 휘젓고 단녔다네요. 평안도의 어느 성은 몽골이 성내 주민을 쥐새끼 한 마리 남기지 않고 몰살시켜버렸답니다.”


“어구, 정말?”


박 씨가 순간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에이, 형님 침 튀잖슈.”


“허허, 미안하이. 근데 이거 심각하긴 하구먼.”


박 씨가 까칠한 턱수염을 매만지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평안도가 그렇게 속절없이 당했다는 건 남쪽도 위태롭다는 말인데···.”


“소문에는 전라도에서도 민란으로 난리였답니다. 최 씨는 강화도에 처박혀서는 백성들이 죽든 말든 지들 호사나 부리고 있다니 참···.”


“나무 아미타불.”


“크크, 형님도 늙었나 보오. 절에 매여 살면서도 그리 지극정성으로 염불하는 소리는 처음 들어 보네.”


“이거 왜 이래, 나도 열열한 부처님 신봉자야. 절밥 먹은 게 얼만데 그러나. 우리 윗대 어른은 과거 윤관 장군을 따라 여진족 정벌에도 항마군으로 따라나섰지. 그래서 혁혁한 공을 세운 바도 있잖나.”


“아고, 또 시작이네.”


홍술은 애써 듣기 싫다는 듯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전방을 주시했다.


“카, 오늘따라 경치 한번 죽이는구나.”


늦가을로 접어드는 산세가 알록달록한 색깔로 아름다움을 더했다.


“어, 형님 저게 모데요?”


홍술의 체중이 자신도 모르게 난간 앞으로 쏠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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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파우스트 +2 24.08.27 231 4 11쪽
25 폭풍의 프리틀웰 +1 24.08.26 238 4 9쪽
24 친구와 금발의 이방인 24.08.25 239 6 11쪽
23 동경으로 온 까닭 +2 24.08.22 235 6 8쪽
22 미지의 인물 24.08.22 237 7 13쪽
21 혈야(血夜)와 다향(茶香) +2 24.08.20 231 7 8쪽
20 운명의 조우 +2 24.08.19 234 5 10쪽
19 불벼락 24.08.18 227 5 10쪽
18 황룡사를 구원하소서 24.08.17 221 5 7쪽
17 장육존상과 호투(虎鬪) 24.08.16 227 5 7쪽
16 첩첩산중 24.08.15 230 3 9쪽
15 위기의 목탑 24.08.14 226 4 9쪽
14 사투(死鬪) 24.08.13 232 4 10쪽
13 치열해지는 공방전 24.08.13 235 4 9쪽
12 황룡사로 몰려드는 몽골군 24.08.12 245 5 10쪽
11 인(因)과 연(緣) +1 24.08.11 249 5 9쪽
10 서원(誓願) 그리고 이별 24.08.11 247 4 8쪽
9 사면초가 24.08.10 250 5 9쪽
8 물고 물리는 시가전(市街戰) 24.08.10 250 4 9쪽
7 떠나보내는 부정(父情) +1 24.08.09 270 5 12쪽
6 덫을 놓다 24.08.09 298 6 10쪽
5 구출작전 24.08.09 352 5 11쪽
4 추격전 24.08.08 401 6 11쪽
3 전화(戰火)의 불길 24.08.08 471 6 6쪽
» 1238년, 다가오는 전운(戰雲) 24.08.07 570 6 11쪽
1 2050년, 운명의 쌍둥이 혜성 +1 24.08.07 701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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