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8년 갑질 당하는 몽골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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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민(旻)
그림/삽화
하늘민(旻)
작품등록일 :
2024.08.07 16:33
최근연재일 :
2024.08.27 22:50
연재수 :
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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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글자수 :
11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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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2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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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8쪽

동경으로 온 까닭

DUMMY

* * *






“윽, 윽···안돼!”


“으아악~!”


“헉! 헉!”


강 소령은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채로 가쁜 숨을 내쉬며 깨어났다. 과거의 악몽 같은 현실과 꿈의 경계에서 여전히 비몽사몽하고 있었다.


터벅, 터벅.


벌컥! 벌컥!


일어나 탁자로 가서 주전자에 담긴 물을 쉴 새 없이 들이켰다.


끼이익!


창문을 열자 다소 차가운 바람과 밝은 보름달이 실내를 환하게 비쳤다.


그의 땀이 바람과 달빛 속에서 조금씩 차가워지면서 정신이 뚜렷해졌다.


“잠은 다 잤군.”


강 소령은 군복을 챙겨 입고는 밖으로 나갔다.


고요하고 맑은 밤공기와 환한 달빛 속 고궁같은 기와 건물들은 운치를 자아냈다.


계단에 걸터앉아서는 한참을 말없이 달빛을 감상했다.


저벅! 저벅!


누군가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잠을 못 이루는 듯하군요.”


탁.


방장스님이 호리병 하나를 내려놓으면서 옆자리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저 때문에 깨셨나 봅니다.”


“아닙니다. 저도 이리저리 생각할 게 많은 밤이군요. 칠일 장을 마치고 나니 심신이 많이 지친 듯합니다.”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생각이 많을 때는 곡주 한잔이지요. 드시겠습니까?”


호리병을 건네는 고승의 미소가 사뭇 재미있었다.


“스님도 술을 드십니까?”


강 소령이 다소 장난기 어린 말투로 호리병을 받아 한 모금을 마시며 건넸다.


벌컥.


“카!”


“잊었던 곡주를 오랜만에 마시니 이게 극락인가 보군요.”


고승이 다시 술병을 건넸다. 소탈하고 대범함 속에서도 고요함이 주위에 안개처럼 깔려 있어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제 욕심에 몹쓸 짓을 한 게 아닌가 싶더군요.”


강 소령이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냥 처음부터 이곳의 모든 걸 다 넘겨주고 알아서 몽골군에 항복했더라면 이렇게 많이 죽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곤 한답니다.”


고승의 눈에 잠시 자책하는 빛이 어렸다 사라졌다.


강 소령이 달빛 아래 웅장하게 솟구쳐 있는 구층 목탑을 바라봤다.


“그렇지는 않았을 겁니다. 스님의 불굴의 의지와 저항이 없었다면 저 목탑도 이 사찰의 많은 것들이 사라졌을 겁니다.”


“많은 사람과 함께 폐허로.”


그의 마지막 말은 확신에 찬 강한 어조였다.


강 소령은 자신이 왜 이곳, 이 시간대에 왔는지 그동안 수없이 묻고 또 물었다.


한동안은 이게 진짜 현실인지 사후의 세계인지 거듭 되묻고 의심을 품었다.


불타오르는 다비식의 경건하고 장엄한 거행식은 그에게 삶과 죽음에 대해 많은 것을 돌이켜 생각하게 했다


더불어 이미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자신이 왜 여기에 살아서 존재하는지, 모든 것이 의문이고 수수께끼였지만 점차 현실에 적응하며 부정하지 못했다.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는 강 소령을 고승이 물끄러미 바라봤다.


“제 얼굴이 잘생기긴 했지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시선을 느낀 강 소령이 머쓱한 웃음을 보였다.


“나의 불굴의 의지도 귀인이 없었다면 무용지물이었을 거외다.”


방장 스님은 알고 있었다. 이미 구층 목탑에서 자신이 그때 해탈해도 이상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 신비로운 빛무리와 함께 나타난 강 소령의 활약이 모든 전세를 일거에 뒤집었다.


그리고 그 빛무리는 자신이 선정에 들 때면 매번 마주치던 예지몽과 같았다.


“그동안 스님이 편하게 대해주신 덕분에 저도 여기서 쉽게 적응이 된 것 같습니다.”


스님의 미소 어린 입술이 말없이 부드럽게 호선을 그렸다.


자신에게 많은 의문과 질문을 할 법도 한데 방장스님은 그를 평소 알던 이웃처럼 그리 특별히 대하지도 묻지도 않았다. 그게 강 소령에는 상당한 위안과 안정감을 주었다.


“처음 왔을 때 쓰러진 승도 한 명을 안으로 데리고 간 걸로 기억하는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신비로운 보라색 빛으로 고요히 명멸을 거듭하며 빛나고 있는 K-X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만간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고승이 기분 좋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호리병을 넘겼다.


벌컥.


“깊은 밤, 고즈넉한 달빛 아래에서 먹는 술맛이 취흥을 돋웁니다. 하하하.”


벌컥.


“나도 젊은 시절에는 이곳저곳을 돌면서 많은 방황을 하다 여기 동경에 정착했답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하루하루는 수고로움의 연속이군요. 예전에 개경 일대를 둘러본 적이 있었지요. 왕성답게 불야성에 화려하더이다.”


“그런데 외곽으로 벗어나서 길을 가는데 어느 처자가 조그만 무덤과 큰 무덤 앞에서 구슬피 울더군요.”


강 소령이 조용히 경청했다.


“너무 서럽게 울길래 발길이 절로 멈추게 되었습니다. 왜 그러느냐고.”


벌컥.


그때가 생생하게 다시 생각났던지 고승이 호리병에서 한 모금을 들이키며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돌아온 답변이 얼마 전 아이를 겨우 낳았는데 먹을 게 없어 아이가 결국 굶주려 죽었다더군요.”


스님의 목소리가 살짝 격앙되었다.


“남편은 뭘 하고 그렇게 된 거냐고, 그랬더니 먹을 것을 구하려 다니던 남편은 어느 무인 집단의 한 가병의 횡포에 맞아 죽어 싸늘한 시체로 돌아왔답니다.”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더이다. 힘없는 고려의 민초들은 그저 하루하루 살아남으면 족한 세상에 젊은 시절 울분이 치솟더군요.”


“그래서 산속에 들어가 혼자 무예를 연마하며 난을 일으킬 생각까지 했군요. 그러다 우연히 만난 게 열반하신 스승님입니다.”


그의 그리운 눈빛이 달빛을 받아 부드럽게 빛났다.


그런 그리움을 간직한 스님의 눈빛이 문득 자신의 처지와 어딘가 닮았다고 생각했다.


“나의 스승님을 통해서 세상과 자비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실제 살아있는 부처님을 보았지요.”


“오갈 데 없는 아이들과 나병 환자들을 돌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통해 선정의 오의(奧義)를 배울 수 있었군요.”


고승의 눈빛은 다시 맑고 고요했다.


“어찌해서 동경까지 흘러와서 토함산 기슭의 암자에서 혼자 수행하며 지내다 이곳 전 주지스님의 거듭된 부탁으로 부족한 방장 생활을 하게 되었답니다.”


“몸소 여러 번 찾아왔지만 극구 사양했는데 마지막 날에 그런 말을 하더군요. 황룡사는 썩었다고.”


“하하하.”


고승의 웃음소리가 시원했다.


“그때 얼마나 찰지고 신랄하게 자기가 몸담은 사찰을 욕하던지. 허허허.”


“그때 그분이 그러더군요. 당신만 깨끗하면 만사 그만이냐고. 내가 죽고 밑의 어느 놈이 하던 더 똥구덩이가 될 게 뻔하다고 하더군요. 당신 같은 사람이 나서서 한자리 하고 있어야 그나마 덜 나빠지지는 않을 거 아니냐고 하면서.”


“그 순간 망치로 머리를 두들겨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고승이 강 소령을 다시금 말없이 쳐다보았다.


그 깊은 눈빛에 강 소령은 처음 만날 때처럼 순간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일었다.


고승이 자리를 툴툴 털고 일어섰다.


“나 혼자 두서없는 말들을 많이 한 듯하군요. 아침에도 일이 있어 나는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그가 돌아서 가다 등을 지고 잠시 멈췄다.


“언제고 당신이 오길 기다렸습니다.”


쿵!


강 소령의 눈이 벼락을 맞은 듯 흔들렸다.


“저의 스승님은 언제나 천기를 읽고 계셨지요. 저도 스승님 곁에서 계속 함께하고 싶었지만 어느 날 그분이 저를 불러 조용히 말하더군요.”


“동경으로 가거라. 너희들의 간절함이, 서원이 커질수록 그곳에 운명의 파도를 타고 시간의 빛을 거슬러 귀인이 올 것이다. 그때 네가 편하게 맞이하거라.”


저벅! 저벅!


그의 발걸음을 따라 달빛도 함께 하는 듯 고요히 비취고 있었다.


고승이 남기고 간 뒷말에 강 소령은 목석이 된 듯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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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1238년 시대 배경과 주요 인물상 +2 24.08.20 233 0 -
26 파우스트 +2 24.08.27 231 4 11쪽
25 폭풍의 프리틀웰 +1 24.08.26 238 4 9쪽
24 친구와 금발의 이방인 24.08.25 238 6 11쪽
» 동경으로 온 까닭 +2 24.08.22 235 6 8쪽
22 미지의 인물 24.08.22 237 7 13쪽
21 혈야(血夜)와 다향(茶香) +2 24.08.20 231 7 8쪽
20 운명의 조우 +2 24.08.19 233 5 10쪽
19 불벼락 24.08.18 226 5 10쪽
18 황룡사를 구원하소서 24.08.17 220 5 7쪽
17 장육존상과 호투(虎鬪) 24.08.16 227 5 7쪽
16 첩첩산중 24.08.15 229 3 9쪽
15 위기의 목탑 24.08.14 226 4 9쪽
14 사투(死鬪) 24.08.13 232 4 10쪽
13 치열해지는 공방전 24.08.13 235 4 9쪽
12 황룡사로 몰려드는 몽골군 24.08.12 244 5 10쪽
11 인(因)과 연(緣) +1 24.08.11 248 5 9쪽
10 서원(誓願) 그리고 이별 24.08.11 246 4 8쪽
9 사면초가 24.08.10 249 5 9쪽
8 물고 물리는 시가전(市街戰) 24.08.10 250 4 9쪽
7 떠나보내는 부정(父情) +1 24.08.09 269 5 12쪽
6 덫을 놓다 24.08.09 298 6 10쪽
5 구출작전 24.08.09 352 5 11쪽
4 추격전 24.08.08 400 6 11쪽
3 전화(戰火)의 불길 24.08.08 470 6 6쪽
2 1238년, 다가오는 전운(戰雲) 24.08.07 569 6 11쪽
1 2050년, 운명의 쌍둥이 혜성 +1 24.08.07 701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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