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8년 갑질 당하는 몽골제국

장육존상과 호투(虎鬪)

* * *

“지붕 위에 살아남은 자들이 없을 때까지 자유 사격이다. 발사!”

퉁! 퉁! 퉁!

일순간 무수한 화살이 적과 아군을 구분 짓지 않고 지붕 위로 날아들었다.

쉬이익! 푹!

차장! 푹!

보명은 절제 있는 동작으로 상대의 급소만을 노리면서 제거해 나갔다. 그러다 문득 전방으로 날아오는 무수한 파공음에 본능적으로 상대의 뒤쪽으로 몸을 숨었다.

퍽! 퍽!

“컥!”

몽골병이 자신의 창이 아닌 사선으로 날아오는 무수한 화살에 꽂혀 쓰러졌다.

순간 전방이 노출되자 보명이 창을 빠르게 회전시켰다.

팅! 팅!

화살이 끊임없이 날아왔다.

‘뭐지?’

의문도 잠시 계속되는 화살 공격에 죽은 몽골병을 방패 삼아 전황을 살폈다.

“미친놈들, 피아 구분 없이 그냥 말살인 건가?”

그동안에도 교전 중 날아든 화살에 승도와 몽골병들이 대거 쓸려나가는 중이었다.

“와아아!”

지붕 위에서 상당수가 쓰러지자 아래에서도 함성이 들려왔다. 이때를 기회로 몽골병들이 대거 밀고 들어왔다.

옆에 나뒹구는 방패를 들고는 수그린 채 쓰러진 동료에게로 이동했다.

화살은 계속해서 빗발쳤다.

“눈을 떠보게.”

“정신 차려보게나.”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동료를 흔들어 보았지만 아무 말이 없었다. 그의 손은 선혈로 짙게 배어갔다.

“자네, 괜찮은가?”

피를 흘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동료를 바라보며 안타까운 시선으로 다가갔다.

“커··· 컥.”

핏물이 입안에 가득해서 말을 뱉지 못했다.

“햐··· 향···이를 부탁···하···네.”

가끔 집에 찾아가면 홀로 키우는 어린 딸의 이름과 함박웃음이 떠올랐다. 죽어서도 딸 걱정이었던지 눈을 떤 채로 어딘가를 바라보며 숨을 거두었다.

눈을 감겨주면서 흘러내린 눈물 자국까지 닦아 내렸다.

“크크큭, 크크큭.”

보명이 고개를 파묻고는 미친 듯이 웃어댔다.

“이 빌어먹을 세상. 지겹다 지겨워. 전쟁이고 저 몽골놈이고 다 싫다 싫어.”

그 와중에도 그의 앞으로 대거 새로운 몽골병들이 올라서고 있었다.

보명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화염과 시체, 괴성과 병창기 소리가 어지럽게 난무하고 있었다.

“부처님, 말세에 미륵불이 온다는 게 정말입니까? 이 지옥같은 말세에, 이 지옥같은 세상에 미륵불이고 지장보살은 뭘 하고 있습니까?”

그가 허공을 응시하며 혼자 말로 되묻고 있었다.

올라온 몽골병들은 그나마 온전하게 서 있는 놈이 실성했는지 혼자 고함을 치는 모양새를 팔장을 낀 채 지켜보고 있었다.

보명의 이글거리는 시선이 몽골병을 향했다.

“이 쳐죽일 놈들아! 지옥으로 떨어져라!”

분노한 그의 일갈을 따라 이전과는 다른 거칠고 야수같은 창날이 춤을 췄다.

“스님, 중과 부적입니다!”

“일 선이 궤멸되고 이 선도 시간문제입니다.”

이미 중금당 턱밑까지 밀려난 도연 스님 일행은 마지막 순간까지 처절한 결사 항쟁을 치르고 있었다.

목탑의 후방 지원 사격이 약해지고 지붕 등 고지대가 무력화되면서 죽창벽으로 막고 항전하던 지상의 승도들도 열세를 면치 못하고 차례로 와해 되고 있었다.

“나무 가섭불.”

도연 스님이 마지막 최후를 직감하듯 그러나 초연한 낯빛으로 눈을 감고 가섭불을 염했다.

과거부터 신라인들은 이곳 황룡사가 과거불인 가섭불이 설법하던 가람 터라 믿어왔다.

그때, 매섭고 차가운 돌풍같은 바람이 경내를 파고들었다. 도연 스님의 얼굴을 훑고 지나가며 몸이 쉴새 없이 흔들렸다.

얼마나 강했던지 경내 인명들의 몸도 휘청거렸다.

드드득!

끼이익!

쾅! 콰당!

중금당의 닫혀 있던 문도 돌개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활짝 열려버렸다.

“저길 봐라! 황금이다, 황금 불상이다!”

몽골병들 가운데 누군가가 열린 어간문 사이로 드러난 거대하고 빛나는 황금의 장육존상을 보고 외쳤다. 그러자 몽골병들의 눈은 탐욕의 불길로 번들거렸다.

“와~!”

몽골병들이 탐욕의 열기를 뿜어내며 함성과 함께 더욱 거세게 중금당으로 파고들었다.

* * *

삼 층 목탑에 올라간 승복은 전황을 살피면서 몽골병들의 후방 사선으로 돌아들어 잠입했다.

그의 움직임은 너무도 기밀해서 정신없이 싸우는 몽골병은 기척을 알아채는 이들이 없었다.

쉬이익!

푹! 푹! 푹!

그의 손에서 귀신같은 빠르기의 창술 찌르기가 시전되자 서너 명이 거의 동시에 쓰러졌다.

“컥! 커억!”

붕! 붕!

연속으로 창을 회전시키며 훑어내자 또다시 부상자가 속출했다.

너무도 갑작스럽게 발생한 후방 공격에 몽골병이 주춤하던 차에 우사르의 도끼가 승복의 창 옆을 질풍처럼 가격했다.

쾅!

우웅!

정확히 맞았다면 창 자루가 부러졌을 위력이었지만 순간 틀어 비껴내면서 마룻바닥을 쳤다. 옆면을 스치듯 두들겨 맞았는데도 창 자루가 진동을 멈추지 않았다.

승복이 왼손으로 오른손을 포개어 더욱 강하게 창 자루를 움켜잡았다.

우사르가 재미있는 물건 하나를 본 듯 씩 이빨을 드러내며 히죽거렸다.

두두둑! 두둑!

그의 우람한 목을 좌우로 풀자 기괴한 소리가 울렸다.

“사형들, 여기는 저에게 맡기고 입구를 부탁합니다.”

승복이 우사르를 향해 창날을 치켜들었다.

승복의 갑작스러운 난입으로 잠시 소강상태였던 탑 내부가 다시 격렬해졌다.

쉭! 쉬이익!

휙! 휙!

창! 창!

본격적으로 마주한 창술과 대면한 우사르는 도끼로 막으며 수비하기에 급급했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전력을 다하는 승복의 찌르기는 그가 생각했던 이상의 엄청난 빠르기였다.

쉭! 쉭!

우사르가 목탑의 중심 기둥 사이로 몸을 숨기자 창날이 허공을 가르다 돌아갔다.

거대한 황룡사 목탑을 받치기 위한 중심 기둥 역시 상당한 굵기였다.

기둥을 사이에 두고 서로 간에 미묘한 신경전과 긴장감이 흘렀다.

승복이 우사르를 쫓아 시계방향으로 회전하며 다시 찔렀다.

쉭! 쉭!

그를 따라 우사르도 회전하며 번번이 피해냈다.

쉭이익!

덥썩!

창 자루의 속도가 어느 정도 눈에 익었을까?

창이 출수 된 정점에서 다시 회수하려는 찰나 우사르의 솥뚜껑 같은 손아귀에 잡혀버렸다.

끼이익!

우사르가 완력으로 창을 끌어당기자 승복의 발이 마룻바닥을 끌며 끌려갔다. 우사르의 미소가 사악했다.

승복의 눈이 가늘고 깊어졌다.

팍!

그가 바닥을 강하게 찍으며 순간 끊어치듯 창을 앞으로 밀어냈다 손목을 빠르게 흩뜨렸다.

그러자 강한 악력의 우사르도 순간 손아귀 힘이 풀리면서 창을 놓쳐버렸다.

쉭!

위기는 역공의 순간.

당겨진 승복의 창이 엄청난 파공음으로 쇄도했다

“윽!”

우사르가 간신히 피했지만 어깨의 살점이 뜯겨 나갔다.

“이놈이 감히!”

쉭!

그러거나 말거나 승복의 창은 집요했고 끊임없었으며 매서웠다. 그동안 무서운 줄 모르던 우사르는 피하기 급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