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8년 갑질 당하는 몽골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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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민(旻)
그림/삽화
하늘민(旻)
작품등록일 :
2024.08.07 16:33
최근연재일 :
2024.08.27 22:5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7,577
추천수 :
133
글자수 :
11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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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8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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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
추천
6
글자
11쪽

추격전

DUMMY

쿵! 쿠쿵!


사천왕도 힘에 부치는 듯 육중한 상체가 기울면서 한쪽 무릎이 바닥을 때렸다. 혹은 한 손은 땅을 짚은 채 안간힘을 쓰고 있었지만 무기를 잡은 손 역시 점차 힘을 잃어갔다.


쿵! 쿵! 쿵!


사천왕이 힘을 잃어가자 마구니가 본격적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전진했다.


그동안 버티던 둑이 한계를 이기지 못하자 폭포수를 쏟아내듯 일, 이차 관문들도 속절없이 무너지며 경내로 쏟아졌다.


‘아!’


마구니의 눈에서 솟아난 불길이 온몸을 감싸더니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모든 것을 태우기 시작했다.


천년 영화를 간직한 구층 목탑도 맹렬한 화마의 손길을 벗어나지 못했다.


영화롭고 신성하던 황룡사의 경내는 화마와 악귀의 미친 듯한 광기로 넘쳐났다.


가히 세상의 종말을 보는 듯 위태롭고 절망적이었다.


징~!! 징~!


웅! 우웅~!


그때 어디선가 맑고 은은한 기파(氣波)가 울려 퍼졌다.


중금당이었다. 황금으로 장식된 장육존상의 광배(光背)에서 빛이 점차 강해지더니 건물을 덮고 조금씩 조금씩 확장되어갔다.



땡! 땡! 땡땡땡!!!


선정에 들던 방장스님이 요란한 타종 소리에 사바세계로 의식이 빠르게 올라왔다.




* * *




동금당 앞마당에는 무장한 승려와 수원승도들이 속속 집결했다.


도연 스님이 방장 스님을 위시한 칠직(七職)스님들에게 간단한 경과보고가 이어졌다.


“알 수 없는 적이 빠르게 치고 들어오고 있습니다. 번져가는 방화의 속도로 보아 늦어도 두, 세 시진 이내는 이곳까지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역시나 몽골군인가?”


“단순한 반란군이 아닌 조직적 방화로 보아 몽골군인 듯 하지만 정확한 확인을 위해서 이미 경외로 정찰조를 보내 놓았습니다.”


“아미타불.”


방장 스님의 굵은 염주 알이 돌아갔다.


더불어 경내도 분주한 움직임이 쉴 새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니, 이 사람아, 저기와 저기로 죽창벽을 옮기게.”


“수량이 왜 이리 부족한가? 창고마다 있는 물량을 다 찾아 꺼내오게. 시간이 없어, 빨리빨리 움직이세.”


고요해야 할 사찰 내에서 타박과 고함이 커지고 있었지만 아무도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끄어엉, 우싸!


“스님, 이건 어디에 배치할까요?”


“그건 저쪽 뒤 선단 쪽으로 배치하게”


상당한 크기의 쇠뇌가 계단을 타고 올라가다 힘에 부쳤는지 휘청거렸다.


“허 허, 조심들 해야지, 여기 한 사람 더 와서 힘을 보태게.”


짙은 송충이 눈썹에 골격이 다부진 도원 스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스름한 땅거미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 * *



신라는 서라벌 자체가 월성(月城)을 중심으로 천여 년을 이어오면서 성읍국가에서 왕국으로 발전하고 팽창을 거듭했다.


남북국시대의 그 영화로움과 향락은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도성 안은 기와집으로 가득했고 개마저도 금줄을 차고 다녔으며 노래와 음악 소리가 길가에 가득하여 밤낮으로 끊이지 않았다고 전해왔다.


귀족들은 아름다운 넓은 정원에다 금으로 덮은 금입택(金入宅)을 앞다투어 지었고 고려로 왕조가 교체되어도 동경(東京)으로 중시되었다.


1012년 다시 경주로 격하되기도 했지만 그 영화(榮華)와 자부심은 여전했다.


그 중심에는 장엄한 황룡사 구층 목탑이 있었고 타지의 귀족들도 올라가 시가지의 전경을 보고는 감탄하며 풍광에 취해 시를 지었다.




잘 정비된 도로를 따라 말들이 질주했다.


이럇! 이럇!


“여기서 서로 갈라지세.”


“그러세나, 무슨 일이 생기면 확인 즉시 상황보고가 먼저네. 무슨 말인지 알겠지.”


짧은 밤송이 머리의 수원승도들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인 일조가 양 갈래로 선회하며 질주했다.


얼마를 더 가자 여기저기서 소음이 들려왔고 군데군데 연기가 피어올랐다.




* * *




“하하하! 역시나 허언이 아니구나.”


“고려에서 이곳이 개경 못지않게 화려하다고 하던 게 거짓이 아닙니다. 금으로 도배한 저택이라니 보고도 믿기지 않습니다. 크크큭.”


“고생은 했지만 계속해서 남하하길 잘했군.”


“네, 시내 안으로 들어갈수록 약탈할 게 넘쳐나지 않겠습니까?”


불길과 비명이 커질수록 몽골장수와 부하들은 탐욕과 약탈에 안광이 번들거렸다.


남송을 치기 위해 남하하던 몽골군은 탕구타이에게 군을 내어주고는 고려를 향해 3차의 재침을 시작했다.


온수(溫水), 대흥(大興) 등에서 고려의 격렬한 저항에 타격을 받기도 했지만 남하(南下)는 지속되었다.


가을이 깊어가는 동경에도 마침내 몽골군의 군마(軍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침공은 주력 섬멸보다 약탈과 방화, 유린이 목적이다.”


“네, 그런데 역시나 고려의 저항이 만만치 않습니다. 고려 놈들은 어찌 된 게 왕은 섬에 처박혀 나오지도 않는데 백성들이 이리 죽을 둥 살 둥 저항을 해대니···.”


“그래, 희한한 나라긴 하지.”


아름다운 정원에서 한가롭게 이야기가 오고 갔지만 눈앞은 인세의 지옥을 방불케 했다.


칼을 쥐고 쓰러진 한 장년의 가슴팍은 고슴도치 화살로 신음했고 젊은 사내는 처절한 비명 속에 피를 토하며 죽어갔다. 여기저기 살육의 흔적과 채 굳지 않은 피들이 바닥에 흥건했다.


“저기를 뒤져봐”


한 허름한 헛간을 발견한 몽골병들이 거침없이 들어가 수색했다.


“이상하거나 의심나는 곳은 가차 없이 찔러서 확인해.”


푹! 푹! 푹!


"아악!"


여기저기를 들쑤시다 날카로운 여성의 비명이 흘러나왔다. 몽골병들은 사악한 미소를 짓고는 다가갔다.


턱 짓을 하니 병사 하나가 강하게 외벽에 발길질을 가했다.


좁은 빈 공간에서 한 여성이 어깨에 피를 흘리며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오, 제법 반반한데.”


초췌한 가운데도 값비싼 고급 비단옷과 미색을 감출 수는 없었다. 병사 하나가 욕정이 발동했는지 침을 삼키면서 다가갔다.


“멈춰!”


십호장(十戶長)이 눈이 뒤집힌 병사의 옆구리를 발로 찼다.


“민한(천호장)께 끌고 가!”


병사의 투박한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십호장의 얼음장같은 눈빛을 보자 절로 고개를 숙였다.


“안돼! 놔라, 놔!”


질질 끌려 나가며 잠시 반항을 하자 한 병사가 냅다 둘러메고는 헛간을 나왔다.


뜰에는 값비싼 물건들이 한가득 쌓여 수레에 실려 나갔다.


“이제 다른 곳으로 움직인다. 신속 집결!”


천호장(千戶長)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뜰을 메웠다.



* * *



까까머리의 두 남정네가 소음이 점점 가까워지자 말에서 내려서는 조용한 발걸음으로 움직였다.


"으아악! 컥!"


"아악!"


투박한 괴성부터 날카로운 비명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만곡도(蠻曲刀)에 노인과 중년의 남자들이 가차 없이 도륙당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짐짝처럼 발길질을 가했다.


“여기도 몽골군이군요.”


“그래, 목불인견이야.”


“아직 주력이 당도하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라니···.”


승복의 속에서 신물이 올라왔다.


“다른 곳도 둘러보세.”


담장 너머로 정찰하던 이들이 조용히 사라지려다 끌려 나온 한 처녀와 눈이 마주쳤다.


“살려주세요, 제발!”


반항의 목소리가 커서인지 한 몽골병이 머리채를 더욱 우악스럽게 틀어쥐고는 처녀의 저고리를 마구 풀어 헤쳤다.


"카악!"


앳된 여성의 애처로운 눈빛이 더욱 짙어졌다.


그 눈빛을 보자 젊은 승복의 몸이 절로 튀어 나가려 했다.


“자네 잊었는가? 우리는 정황을 살펴 빠르게 보고하기 위해 온 걸세. 어서 가세.”


승복의 어금니가 강하게 다물어졌다.


“안돼! 제발! 제발! 이러지 마세요!”


처녀의 눈물과 비명이 커질수록 누른 치아를 드러낸 몽골병의 말초신경을 자극했다.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리를 떠나려던 승복의 발걸음이 순간 멈췄다.


“안되겠어요.”


“허허! 자네 왜 이러나! 이런 중차대한 시국에. 시간이 없어.”


힘이 실린 나지막한 음성이었다.


“저 처자는 제가 아는 사람입니다.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요. 여기는 제가 어쩌든 수습을 할 테니 노형이 수고 좀 해주시구려.”


쓴소리를 더 하려다 승복의 얼굴을 보고는 입을 닫았다.


“무탈하게.”


승복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쇠뇌에 활을 장전했다.


노형의 발자국 소리가 등 뒤로 멀어졌다.




* * *




옥희의 가녀린 팔이 더 이상 힘에 부쳤는지 널브러져 흐느낌만이 흘러나왔다. 입술은 핏자국으로 불어 터져 있었다.


“고년, 앙칼진 게 제법이구나. 크크큭.”


허리띠를 풀어 헤치고는 덮쳐오자 옥희는 눈을 감고 엄마를 불렀다.


"컥!"


쿵!


다소 육중한 소리에 놀라 가늘게 눈을 뜬 옥희는 쓰러진 몽골 병사를 보았다. 등짝에는 심장 쪽 급소를 뚫은 화살이 깊숙이 박혀있었다.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옥희의 눈에 한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이내 목소리가 나오려다 남자의 검지가 입술로 올라가 있는 걸 보곤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뒷간에서 바지춤을 주섬거리며 나오던 몽골 병사 하나가 쓰러진 동료를 보고 움찔하는 순간 목이 꿰뚫렸다.


"컥! 컥!"


입가와 목에서 피를 흘리며 주저앉았다 쓰러졌다.


집안 내에서 더 이상의 기척이 들리지 않자 승복이가 다가왔다.


“괜찮으니? 너도 살아있었구나.”


“흐흐흑.”


그제야 참았던 눈물이 흘러나왔다.


옥희와 승복이는 옆 동네에 살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옥희야,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다. 빨리 피신하렴.”


“여기 말곤 마땅히 갈 데가 없어요.”


“그럼, 건천 부산성으로 일단 피신해 있거라.”


승복이 손을 내밀어 옥희를 세워주었다.


“혹시 모르니 저쪽 반대편 외곽으로 돌아서 가는 게 더 안전할 거야.”


마당에는 덩그러니 남은 몽고마(蒙古馬)가 있어 옥희를 태워주었다.


“오라버니는 같이 안 가시나요?”


“나는 맡은 일이 있어, 어서 가거라.”


문을 나오려다 여러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쉭!"


“안 되겠다, 내가 일단 시선을 유도할 테니 그때 빠져나가거라.”


옥희의 눈동자에 불안감과 걱정이 뒤섞였다.


“꼭 살아 돌아오세요.”


승복의 한쪽 입가가 살짝 올라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눈을 번들거리면서 막 다른 집을 들쑤시고 나온 몽골군 다섯 명이 자기 안방처럼 군마를 타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헉!"


옆에 있던 동료 하나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말에서 뚝 떨어졌다.


“기습이다!”


“저기다! 잡아라!”


화살이 날아온 방향의 골목 모퉁이를 돌아 도망가는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뒷문으로 남아 있던 몽고마(蒙古馬) 하나의 볼기짝을 철썩 때리자 혼자 좁은 골목을 미친 듯이 질주했다.


“옥희야! 지금이야, 어서!”


몽골병이 정신없이 추적하는 사이에 옥희도 반대 방향으로 달아났다.


그제서야 승복은 자신이 타고 온 말이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저기 있다! 잡아라!”


이내 속은 걸 안 몽골병들이 돌아오다 멀리서 승복이를 발견하고는 괴성을 질렀다.


그때부터 쫓고 쫓기는 숨 막히는 추격전이 시작됐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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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파우스트 +2 24.08.27 231 4 11쪽
25 폭풍의 프리틀웰 +1 24.08.26 238 4 9쪽
24 친구와 금발의 이방인 24.08.25 239 6 11쪽
23 동경으로 온 까닭 +2 24.08.22 235 6 8쪽
22 미지의 인물 24.08.22 237 7 13쪽
21 혈야(血夜)와 다향(茶香) +2 24.08.20 231 7 8쪽
20 운명의 조우 +2 24.08.19 233 5 10쪽
19 불벼락 24.08.18 226 5 10쪽
18 황룡사를 구원하소서 24.08.17 220 5 7쪽
17 장육존상과 호투(虎鬪) 24.08.16 227 5 7쪽
16 첩첩산중 24.08.15 229 3 9쪽
15 위기의 목탑 24.08.14 226 4 9쪽
14 사투(死鬪) 24.08.13 232 4 10쪽
13 치열해지는 공방전 24.08.13 235 4 9쪽
12 황룡사로 몰려드는 몽골군 24.08.12 244 5 10쪽
11 인(因)과 연(緣) +1 24.08.11 248 5 9쪽
10 서원(誓願) 그리고 이별 24.08.11 246 4 8쪽
9 사면초가 24.08.10 249 5 9쪽
8 물고 물리는 시가전(市街戰) 24.08.10 250 4 9쪽
7 떠나보내는 부정(父情) +1 24.08.09 269 5 12쪽
6 덫을 놓다 24.08.09 298 6 10쪽
5 구출작전 24.08.09 352 5 11쪽
» 추격전 24.08.08 401 6 11쪽
3 전화(戰火)의 불길 24.08.08 470 6 6쪽
2 1238년, 다가오는 전운(戰雲) 24.08.07 569 6 11쪽
1 2050년, 운명의 쌍둥이 혜성 +1 24.08.07 701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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