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8년 갑질 당하는 몽골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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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민(旻)
그림/삽화
하늘민(旻)
작품등록일 :
2024.08.07 16:33
최근연재일 :
2024.08.27 22:5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7,565
추천수 :
133
글자수 :
110,837

작성
24.08.20 19:30
조회
230
추천
7
글자
8쪽

혈야(血夜)와 다향(茶香)

DUMMY

* * *





수술은 부드럽고 정교한 하모니 합주곡을 연주하듯 진행되었다.


강 소령은 그런 인공지능 메디컬 수술을 말없이 지켜보면서 한편으로 뿌듯한 감정을 느꼈다.


‘실전 데뷔치고는 지금까지는 무난하군.’


한참을 지켜보다 문득 자신이 왜 여기로 와 있는지 난감함과 의아함이 들었다.


“수피아, 이곳은 어딘 거야? 그리고 사나운 그놈들은 대체 뭐고.”


로봇 팔이 정신없이 오고 가는 와중에도 수피아의 매력적인 음색이 흘러나왔다.


“저들을 공격했던 이들은 복장이나 언어를 봤을 때 몽골군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리고 여기는 경주로 보이네요.”


“지금 저 먼 북방 몽골평원에 있던 몽골인들이 쳐들어왔다는 거야? 그리고 갑자기 경주라니?”


“21세기에 세계적인 군사 강국인 한국을 몽골이 공격해 올 수는 없죠. 단지 지금 이곳이 21세기가 아닐 가능성이 높아요.”


“여러 번 말씀드렸는데 아직 인지하지 못하신 듯하네요. 여기는 다른 시간대와 장소로 보입니다. 아마도 13세기 몽골군이 세계를 정복하던 시절이 아닐까 합니다.”


“뭐·· 뭐라고 13세기?”


설마 했지만 13세기라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 정확한 걸 알려면 나가서 저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보는 거겠죠.”


스크린에는 경내에 쓰러져 있는 시체들을 치우고 있는 승도들이 비치고 있었다.


누군가는 시체를 부둥켜안고 통곡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주검 앞에 두 손 모아 합장하며 묵묵히 일을 행하고 있었다.


“······.”


강 소령은 그런 모습을 말없이 한참을 지켜보았다.


자신이 애써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 너무도 생생하게 흘러나오고 있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술이라도 있으면 취하고 싶은 심정으로 생수병을 찾아 얼마 남지 않는 물만을 들이켰다.


그런 가운데도 선반 위는 한 청년을 살리기 위한 로봇의 움직임이 부산했다.


다른 로봇 팔은 간의 손상이 심각했든지 인공 장기로 대체하는 수술이 진행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얼굴에서 혈색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었다.




강 소령이 지켜보다 자신도 모르게 꾸벅꾸벅 잠에 빠졌다 깨어났다.


짧은 머리의 청년은 녹색 액체로 가득한 튜브에 마스크를 쓴 채로 평온하게 누워 있었다.


“소령님이 주무시길래 깨우지 않았어요.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다만 각종 뼈의 골절이 심각해서 당분간은 저 상태로 두는 게 회복에 빠르다는 판단입니다.”


“그래 수고했어. 수피아.”


야전 AI 수술이 실전 데뷔로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처한 상황이 강 소령을 마냥 웃지 못하게 했다.


꼬르륵!


“수피아, 뭐 먹을 것 없어?”


“현재 식품 보급은 챙겨 놓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래저래 나가서 저들을 만나 보긴 해야겠군.”


그가 자리를 털고 일어서면서 스크린을 주시했다.


스크린에 비친 경내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다들 초췌하고 피곤한 가운데도 묵묵히 이어지는 일련의 행위들이 사뭇 진지하고 경건하기까지 했다.


어느 듯 그날의 짙은 혈야(血夜)는 가시고 서서히 여명이 밝아 오고 있었다.








* * *




조용한 실내에서 강 소령이 공양을 마칠 동안 아무도 출입이 없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고기는 없었지만 정갈한 나물 음식들이 제법 먹을 만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숭늉을 입안으로 들이키고는 나름 만족한 듯 배를 두드리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사찰 승도들과의 첫 만남이 다시 생각나서다.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네,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인자한 풍모의 고승이 다기 쟁반을 들고 와서 탁자 옆에 착석했다.


“풍미가 좋은 차가 있어 가져왔습니다. 다례를 하며 담소나 함께 나누도록 하시지요.”


상대를 편안하게 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끄는 모습이 노련했다.


“이건 뇌원차(腦原茶)라는 토산품이군요. 아주 이른 초봄에 차의 어린 새싹을 따서는 찐 후에 맷돌로 아주 천천히 정성을 다해 돌려야 합니다.”


“그래야 찻잎의 손상이 덜한 최상품으로 풍미가 가득한 이런 가루가 된답니다.”


고급스러운 다기 안에는 푸른 녹색 가루가 담겨 있었다.


"이 뇌원차는 과거 거란에도 예물로 보낼 정도였군요."


귀한 고려 토산 차에 대한 자부심과 손님에 대한 예우를 함께 드러내는 말이었다.


이후는 탕관(湯罐)이라는 주전자를 들어 사발에 물을 담았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이에도 불구하고 맑고 깊은 눈의 고승이 기품있는 모습으로 다례를 하는 일련의 과정이 절로 눈길이 가지고 편안했다. 마치 말로만 듣던 예인을 가까이에서 보는 듯 사람에게서 운치가 흘러나왔다.


여기에 녹색의 찻가루를 사발에 넣었다.


그런 사발에 찻솔(茶筅)로 휘젓자 거품이 일었다. 일어나는 거품이 마치 눈 같은 흰색의 우유 같았다. 거품이 가시자 연두색의 푸른 빛을 다시 드러냈다.


실내에 부드럽고 그윽한 향기가 감돌았다.


“아.”


다례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절로 빠져들던 강 소령은 그윽한 녹차의 향기가 자신의 코를 자극하고 머리를 맑게 하자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발했다.


그동안의 번뇌와 고민이 이 순간만은 사라지고 없었다.


“한 잔 드셔보시지요.”


그런 강 소령을 향해 자애로운 미소로 사발을 건네주었다.


“음···.”


탁.


코끝을 타고 들어오는 녹차의 향이 우려내는 차보다 훨씬 진하게 느껴졌다.


“향이 정말 좋군요”


빈말이 아니었다. 공해가 없는 곳이라서 그런지 녹차의 신선함과 청량감이 남달랐다.


고승은 말없이 미소를 보내고는 본인도 차 향을 즐겼다.


간밤의 혈투가 무색하게도 지금은 너무도 평온하고 태평스러운 모습이었다.


“늦었지만 황룡사를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구명지은을 입었습니다.”


강 소령이 조용한 눈빛으로 잠시 말이 없었다.


“그들은 누구입니까?”


그 한마디에 많은 말들이 함축되어 있었다.


그동안 방장 스님은 다른 승도들과는 다르게 강 소령을 이전부터 알던 친한 이웃처럼 대해줬다. 그게 고승의 비범함을 알 수 있는 성품이었다.


“몽골군입니다.”


고승은 강 소령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깊고 고요한 눈빛에 강 소령은 자신의 의식이 빨려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몽골이 천하를 휘젓고 있지요. 고려도 이번이 세 번째 외침입니다.”


“흠···.”


강 소령이 짧은 신음 소리를 내며 눈을 감았다.


‘수피아의 말이 틀리길 바랐건만.’


차 향만이 실내에서 고요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차가 식겠습니다.”


그제야 눈을 다시 뜬 강 소령은 애써 의식의 평온함을 유지하려 애썼다.


“여기에 계신 것도 부처님의 뜻이라 생각되군요. 어디서 온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을 하고 앞으로 어디로 갈지가 더 중요한 게 아니겠습니까?”


고승은 선문답하듯 고요한 음성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현기(玄機)가 담겨 있는 그의 목소리는 강 소령의 흔들리는 마음을 조금씩 안정시켜주고 있었다.


“오늘은 할 일이 많군요. 내 집처럼 편안하게 쉬시면서 심신을 회복하길 바랍니다.”


고승은 그가 전해 준 뇌원차의 차 향처럼 진한 화두를 남기고 조용히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실내는 차를 마시며 사색에 잠긴 한 남자만이 남아 있었다.


얼마 있다 그윽한 차 향을 비우고는 일어났다. 창가로 가 문을 열었다.


신선한 공기와 함께 다비식을 준비 중인 경내는 또 다른 분주함을 품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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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72 kd***
    작성일
    24.08.20 21:16
    No. 1

    흠~
    고려의 도로가 자주포의 무개를 감당하련지,도강은 또 어떡하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 하늘민(旻)
    작성일
    24.08.22 08:06
    No. 2

    전차 등은 아스팔트보다는 비포장 흙길에서 주행하기에 더 편한걸로 알고 있군요. 이는 부드러운 흙길이 전차의 무게를 고르게 분산시키는 역할에다 바퀴격인 궤도의 접지력에도 흙길이 좋아서 주행하기에 더 편합니다.

    보통 우리가 보는 국군의 날 행사 때의 시가 행진에서 이런 육중한 전차 등도 선보이는데 이때는 상당히 천천히 주행합니다. 고속 주행시는 아스팔트가 깨질 위험이 높아지군요.

    그리고 여기 나오는 KㅡX 흑표는 보조 레이저포 뿐 아니라 주포도 레이저 캐논으로 더 이상 기본의 재래식 화약 포탄을 쌓아 둘 필요 없는(장갑차처럼 내부 공간 활용이 가능) 혁신적 전차로 1화를 다시 참조하시면 좀 더 이해하시기에 편할 것입니다.

    힘나는 성원과 관심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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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파우스트 +2 24.08.27 230 4 11쪽
25 폭풍의 프리틀웰 +1 24.08.26 237 4 9쪽
24 친구와 금발의 이방인 24.08.25 238 6 11쪽
23 동경으로 온 까닭 +2 24.08.22 234 6 8쪽
22 미지의 인물 24.08.22 236 7 13쪽
» 혈야(血夜)와 다향(茶香) +2 24.08.20 231 7 8쪽
20 운명의 조우 +2 24.08.19 233 5 10쪽
19 불벼락 24.08.18 226 5 10쪽
18 황룡사를 구원하소서 24.08.17 220 5 7쪽
17 장육존상과 호투(虎鬪) 24.08.16 227 5 7쪽
16 첩첩산중 24.08.15 229 3 9쪽
15 위기의 목탑 24.08.14 225 4 9쪽
14 사투(死鬪) 24.08.13 231 4 10쪽
13 치열해지는 공방전 24.08.13 235 4 9쪽
12 황룡사로 몰려드는 몽골군 24.08.12 244 5 10쪽
11 인(因)과 연(緣) +1 24.08.11 248 5 9쪽
10 서원(誓願) 그리고 이별 24.08.11 246 4 8쪽
9 사면초가 24.08.10 249 5 9쪽
8 물고 물리는 시가전(市街戰) 24.08.10 249 4 9쪽
7 떠나보내는 부정(父情) +1 24.08.09 269 5 12쪽
6 덫을 놓다 24.08.09 297 6 10쪽
5 구출작전 24.08.09 351 5 11쪽
4 추격전 24.08.08 400 6 11쪽
3 전화(戰火)의 불길 24.08.08 470 6 6쪽
2 1238년, 다가오는 전운(戰雲) 24.08.07 569 6 11쪽
1 2050년, 운명의 쌍둥이 혜성 +1 24.08.07 700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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