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8년 갑질 당하는 몽골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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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민(旻)
그림/삽화
하늘민(旻)
작품등록일 :
2024.08.07 16:33
최근연재일 :
2024.08.27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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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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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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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파우스트

DUMMY

* * *






그날 가공할 빛의 벼락이 스쳐 지나간 이후 합라는 겨우 탈출하여 죽을 것 같은 통증과 고열에 시달려야만 했다.


막사에서는 침묵만이 감돌았다. 외팔이가 된 합라의 수척한 얼굴을 탕구타이는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정체가 뭐지?”


“······.”


좌중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쾅!


탕구타이가 팔걸이를 거칠게 내려쳤다.


“아무나 말해 보란 말이다. 뭐가 어찌 된 거냐? 분명히 우리가 이기고 있었거늘.”


그날의 엄청난 폭음과 무너지는 담장들 사이로 자신의 부하들이 알 수 없는 공포에 질러 미친 듯이 도망쳐 나왔다.


그리고 자신도 일순간 공포에 감염되어버렸다. 이후 전의를 깨우지도 못하고 정신없이 퇴각했다.


잘 도망가는 것도 전술로 생각하는 게 몽골군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뭔가에 홀리듯 어처구니없었다.


“합라, 너가 말해봐.”


“······.”


“목탑을 점령하고 마지막 상층부에 올라갔더니 늙은 중이 한 명 앉아 있었습니다.”


합라의 얼굴이 여전한 통증에 살짝 일그러졌다. 그의 입술도 메마른 대지처럼 갈라져 있었고 음성도 건조했다.


“한 놈도 살려두지 말라는 명령에 칼을 들고 마지막 한 놈을 베려는 순간 거대한 빛무리가 황룡사 일대를 감싸듯 밀려왔습니다.”


“뭐라고? 밖에서는 그런 게 없었어. 이놈 정신이 나간 거 아냐?”


탕구타이의 힐난에 합라는 침묵한 채 좌중의 다른 제장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닙니다. 저도 후방의 거대한 불상이 있던 법당에서 빛무리가 마치 물결치듯 밀려왔던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서 있던 무리 중에 아질이 대답을 대신했다.


탕구타이가 잠시 턱을 만지면 생각에 잠겼다.


“그래서, 고작 빛무리에 놀라 도망쳐 나온 거냐?”


“그 빛무리가 사라지고 육중한 덩치의 괴물이 등장했습니다. 보라색 눈을 가진.”


합라의 설명이 거듭될수록 점입가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 용맹하고 천하장사인 우사르와 수십 명이 합세해서 아무리 도끼질을 해도 흠집 하나 나지 않았습니다.”


탕구타이의 눈이 갈수록 의구심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 괴물의 몸에서 빛의 화살이 발사될 때마다 피하지도 막지도 못하고 죽어갔습니다.”


“잠깐!”


투사르의 눈은 당시의 공포가 다시금 떠올랐는지 약간 넋이 나간 듯 읊조렸다.


“그게 혹시 대금 놈들이 쓰던 비화창이 아니더냐? 화약 무기 말이다.”


과거 칭기즈칸이 이끌던 몽골군은 명장이었던 수부타이를 앞세우고도 대금과의 공성전에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결국 투석기로 돌만 날리다 중도에서 물러난 일이 있었다.


더구나 하남의 왕가사(王家寺)에서 주둔하다 금나라의 고작 수백 명의 야습으로 거의 4천여 명이 몰살당하는 충격적인 패배를 맛보았는데 이때도 진천뢰와 비화창이라는 화약 무기가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그건 아닙니다. 그놈은 사람의 형상도 아니었고 비화창 같은 화약 무기도 아니었습니다.”


아질이 다시 나서 말했다. 그의 상처 난 빰과 목 부위가 말할 때마다 꿈틀거렸다.


“이후 화공에도, 거센 불길 속에도 죽지 않았습니다.”


탕구타이는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자니 답답함이 치밀었다.


쾅!


“그렇다고 천하의 대몽골군이 그 한 놈? 그 괴물 하나에 도망을 쳐와? 병신들아.”


“그 괴물에 달린 대들보에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굵기의 빛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앞을 막는 모든 것은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저기 합라의 한 팔도 그때 당한 겁니다.”


아질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합라를 보면 마지막 말을 끝내고는 침묵했다.


탕구타이도 합라가 혼수 상태에 있을 때 그의 상처를 본 적이 있었다.


그건 칼에 베이거나 무엇에 뜯겨 나간 흔적이 아니었다. 그냥 뭉텅 녹아버렸다고나 할까?


지금의 시대에선 상상이 가지 않던 상처 자국이었다.


팔걸이에 한쪽 턱을 괴고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탕구타이가 좌중을 내려다봤다.


‘좋지 않아. 다들 공포에 잠식되어 있다. 특히나 손발로 움직여야 하는 일선 부장 놈들은 더욱 심하군.’


‘쯧쯧. 이대로 물러가면 여기 놈들은 전사로서의 생명은 끝이다.’


그가 일어나 내려왔다.


저벅! 저벅!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합라의 곁으로 다가 갔다.


“윽.”


탕구타이가 그의 목을 움켜쥐고는 고개를 치켜세웠다.


“합라, 잊었느냐?”


짝! 짝!


탕구타이가 양손으로 거세게 합라의 뺨을 연속으로 후려쳤다.


“대몽골 전사의 생명은 끊임없는 투쟁심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공포를 심어줄지언정, 우리가 먹지는 않는다.”


“너를 잠식한 공포를 저기 고려 놈들에게 쏟아부어라. 그리고 거칠 것 없이 짓밟고 빼앗아라!”


그는 단순히 합라만을 두고 말하지 않았다. 좌중의 모두를 보고 벼락처럼 일갈했다.


“그러지 않으면 여기서 내 칼에 먼저 죽을 것이다.”


스르륵!


그가 서늘한 은빛의 칼을 치켜올리며 크게 외첬다.


“위대한 칭기즈칸이여, 영원하라!”


그들을 잠식하던 공포도 그들의 위대한 대칸, 칭기즈칸이란 이름 앞에선 그 모든 것을 이겨내는 꺼지지 않는 불꽃이자 그 이상의 무엇이었다.


그러자 좌중의 모두가 칼을 빼 들었다.


“위대한 칭기즈칸이여, 영원하라!”


"내가 바로 천벌이다. 너희들이 큰 죄를 짓지 않았으면 신께서 나같은 벌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칼날 속을 걸으며 탕구타이는 한 자, 한 자 힘주어 말했다. 초원을 질주하던 칭기즈칸의 말을 되새기고 더 높였다.


”다시금 기억하라!“


"가장 좋은 삶이란, 너의 적들을 쳐부수고 그들이 네 발 앞에 쓰러지는 걸 보며, 그들의 말과 재산을 빼앗고, 그들의 여자들의 울음소리를 듣는 것이다!“


“대몽골군이여, 투쟁하라!”


그들의 위대한 칭기즈칸이 남기고 간 말 한마디 한마디가 탕구타이를 통해 막사에서 울려 퍼지자 제장의 눈빛도 다시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대몽골군이여, 투쟁하라!”


“와! 와!”


그것은 마치 피에 굶주리고 광기에 사로잡힌 광신도 집단 같았다. 다시금 몽골군 내에서 피 끓는 투쟁의 본능이 더욱 잔인하게 되살아나고 있었다.




* * *







번쩍! 쾅! 쾅!


낙뢰는 한층 사나운 섬광을 금발의 남자에게 때려붓고 있었다.


덜썩, 덜썩.


낙뢰를 맞을 때마다 남자의 몸은 경련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남자의 몸이 그런 경련마저 멈추고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흐흐흑!”


애나의 울음소리가 더욱 커져가면서 그녀는 이 남자의 시체만이라도 온전히 거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두려움은 어느새 사라지고 그 남자의 곁으로 다가가 널브러져 있는 남자를 젖 먹던 힘을 다해 집으로 다시 끌고 가기 시작했다.


한밤의 낙뢰에다 현관문 소리에 잠이 깬 토마스는 딸의 모습에 놀라서는 달려왔다.


“어찌 된 거야?”


“우선 도와주세요.”


힘겹게 끌고 있던 애나는 긴 말을 할 경황이 없었다.


“어, 그러마.”


토마스는 이 한밤중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일단 이 정체불명의 남자를 집안으로 다시 끌고 들어갔다.


그를 옮겨 다시 침대에 눕혔다. 옆에서 애처롭게 눈물만 흘리다 지친 애나는 자신도 모르게 잠들었다.




다음날 기적이 찾아왔다.


벼락에 온몸의 옷가지까지 타서 죽은 줄만 알았던 금발의 남자는 일어나 잠든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나.”


자다 깬 애나는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는 기척에 잠시 놀랬지만 이내 그의 얼굴을 보고는 환한 웃음을 보였다.


“살아나셨군요. 오, 하나님.”


애나는 세인트 메리 성당을 향해 평소 안 하던 기도를 올렸다.


그런 모습을 남자는 말없이 지켜보다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고마웠어. 덕분에 살았군.”


‘아, 목소리도 감미롭구나.’


실제로는 감미로운 음성은 아니었다.



애나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뭘 좀 드릴까요? 한동안 아무것도 안 드셨는데.”


“그보다 옷을 좀 구할 수 없을까?”


“아. 그렇죠. 잠시만요.”


그러고는 애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특유의 명랑한 얼굴로 돌아가 집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무엇인가를 잔뜩 챙겼다. 이후 남자의 신체 사이즈를 재고는 열심히 바느질을 했다.


그런 모습을 말없이 쳐다보던 금발의 남자는 차가운 듯한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어설프게 생겨났다 곧 사라졌다.




“오! 역시 체형이 좋아서 평범한 튜닉도 멋져요.”


애나가 나름 공들여 만든 옷을 차려 입고 서 있는 금발의 남자를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박수를 치고 좋아라 했다.


“근데 키가 커서 호즈(Hose : 바지)가 좀 짧은 것 같은데 괜찮아요?”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데. 고마워.”


“뭘요.”


애나의 볼이 살짝 붉어지며 몸을 배배 꼬았다.


신발은 여기 웬만한 귀족보다 좋은 가죽 구두라서 따로 준비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전 애나에요. 살아서 정말 기뻐요.”


애나가 정식으로 자신을 소개하며 머리를 살짝 숙였다. 그녀의 밝은 미소속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걸 느꼈을까?


“나의 아버지는 날 데우스(Deus)라 불렀지. 그러나 애나는 날 파우스트(Faust)라 불러주면 좋겠어.”


파우스트의 얼굴에 예전보다 옅은 미소가 살짝 더 지속되었다.


“네, 파우스트. 우리 집에 온 걸 환영해요. 하하하!”


애나의 밝은 웃음소리가 떠나질 않았다.




토마스가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뒷마당으로 가보니 큰 피쉬 색(Fish sack : 물고기 담는 부대 자루)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고 비린내가 풍겼다.


“이게 다 뭐냐?”


“아, 그거요. 파우스트가 아침 일찍 해안가로 가서 잡아 온 물고기에요.”


애나가 집으로 들어온 아빠를 발견하고는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이걸 혼자 다 잡았다고?”


토마스가 살짝 놀라는 눈치였다.


“그러게요. 하하하. 오늘은 맛있는 포티지(국물요리)와 피쉬 스튜를 마음껏 해드릴게요. 호호호.”


토마스가 손으로 귀를 살짝 막았다.


말괄량이 애나가 그 남자가 오고는 목청껏 웃는 소리가 더 잦아졌다.


절레절레.


“그런데 그 친구는 안 보이는구나.”


“뭐 좀 구한다고 다시 나가서요.”


“그래? 그래도 부지런한 건 마음에 드는구나. 남자란 모름지기 가정을 위해 먹여 살리려면 근면해야지.”


그냥 스치듯 한마디 한 말인걸 아빠의 이야기를 들은 애나의 얼굴이 붉어졌다.


“애나야, 어디 아프니? 왜 몸을 그리 배배 꼬니?”


토마스가 걱정스러운 듯 애나의 이마에 손을 가져갔다.




* * *




강 소령은 팔짱을 낀 채 스크린의 화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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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우스트 +2 24.08.27 231 4 11쪽
25 폭풍의 프리틀웰 +1 24.08.26 237 4 9쪽
24 친구와 금발의 이방인 24.08.25 238 6 11쪽
23 동경으로 온 까닭 +2 24.08.22 234 6 8쪽
22 미지의 인물 24.08.22 236 7 13쪽
21 혈야(血夜)와 다향(茶香) +2 24.08.20 231 7 8쪽
20 운명의 조우 +2 24.08.19 233 5 10쪽
19 불벼락 24.08.18 226 5 10쪽
18 황룡사를 구원하소서 24.08.17 220 5 7쪽
17 장육존상과 호투(虎鬪) 24.08.16 227 5 7쪽
16 첩첩산중 24.08.15 229 3 9쪽
15 위기의 목탑 24.08.14 225 4 9쪽
14 사투(死鬪) 24.08.13 231 4 10쪽
13 치열해지는 공방전 24.08.13 235 4 9쪽
12 황룡사로 몰려드는 몽골군 24.08.12 244 5 10쪽
11 인(因)과 연(緣) +1 24.08.11 248 5 9쪽
10 서원(誓願) 그리고 이별 24.08.11 246 4 8쪽
9 사면초가 24.08.10 249 5 9쪽
8 물고 물리는 시가전(市街戰) 24.08.10 249 4 9쪽
7 떠나보내는 부정(父情) +1 24.08.09 269 5 12쪽
6 덫을 놓다 24.08.09 297 6 10쪽
5 구출작전 24.08.09 351 5 11쪽
4 추격전 24.08.08 400 6 11쪽
3 전화(戰火)의 불길 24.08.08 470 6 6쪽
2 1238년, 다가오는 전운(戰雲) 24.08.07 569 6 11쪽
1 2050년, 운명의 쌍둥이 혜성 +1 24.08.07 700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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