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8년 갑질 당하는 몽골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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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민(旻)
그림/삽화
하늘민(旻)
작품등록일 :
2024.08.07 16:33
최근연재일 :
2024.08.27 22:50
연재수 :
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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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글자수 :
110,837

작성
24.08.11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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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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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9쪽

인(因)과 연(緣)

DUMMY

* * *





“오랜만에 뵙습니다.”


“지전 스님도 그동안 무탈하셨는지요.”


짙은 송충이 눈썹의 도원 스님이 특유의 박력 있는 인사를 건넸다.


“어디 멀리 출타하셨나 봅니다.”


“방장 스님이 알아보라는 것이 있어 잠시 개경 쪽에 다녀왔습니다.”


“아, 그래요, 근데 옆에 있는 이 소년은 처음 보는 듯합니다.”


“평주 쪽에서 거둔 아이입니다.”


지전스님이 잠시 아이를 눈여겨보았다. 이목구비가 반듯하나 넋이 나가 있는 듯 초점이 흐렸다.


“아이의 상태가···.”


“북쪽에서 큰 사단(事端)이 났습니다.”


순간 지전 스님의 눈이 커졌다.


“몽골이 발톱을 드러냈어요. 북쪽은 완전 풍비박산이 났습니다. 저도 겨우 빠져나와 평주를 지나다 목불인견을 보게 되었군요.”


도원 스님이 그때의 참상이 떠올랐는지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


“인근에 쥐새끼 한 마리도 살려두지 않고 몰살당했습니다.”


“아미타불···.”


지전 스님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어미가 아이만을 살리려고 했는지 부둥켜안고 죽어있더군요.”



그것이 도원 스님과 승복의 첫 만남이었다.


참혹한 참화 속에서 어미의 선혈을 뒤집어쓴 채 겨우 살아남아 뱃길로 스님을 따라 경주로 내려왔다.


마음의 상처가 깊어서일까? 제대로 밥도 먹지 않고 멍한 상태였다.


“이 녀석아, 그래도 공양은 해야지. 지금 전국에 먹지 못해 죽는 이들이 몇인지 아느냐?”


딸그락, 딸그락.


스님이 숟가락으로 밥그릇에 담긴 밥을 마지막 한 톨까지 빡빡 끌어서는 입에다 억지로 집어넣었다. 헐렁한 소맷자락으로 드러난 소년의 앙상한 팔이 대비되었다.




“이놈아, 또 멍하니 하늘만 보고 있어!”


소년의 귀를 잡아끌고는 법당으로 들어갔다.


제법 아플 법도 한데도 소년의 입에선 아무런 반응도 나오지 않았다.


“오늘은 삼백 배다. 나를 따라 해 보거라.”


똑! 똑! 똑! 또르륵!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고는 일 배를 했다. 이후 일 배를 할 때마다 죽비를 쳤다.


승복이도 말없이 기계적으로 따라 했다.


몇 달이 흘렀다.


소년의 살도 제법 올랐다. 도원 스님과의 삼백 배는 매일 행해졌다.


이제는 습관이 되었다. 절을 하다 보니 잡념도 과거도 점차 사라졌다. 하체도 알게 모르게 튼튼해져 갔다.


황룡사를 찾던 신도들 중에는 매일 와서 따라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그해 겨울은 함박눈이 펄펄 내렸다. 도원 스님과 소년의 삼백 배는 추운 엄동설한에도 계속되었다. 그리고 다시 개울가 얼음이 녹고 새로운 봄이 찾아왔다.


그날도 습관처럼 법당에서 절을 하던 소년은 기온이 올라가면서 이마에서 제법 땀이 배어 나왔다.


마지막 삼백 배를 마치고 무릎을 꿇은 채 잠시 휴식을 취했다.


나른한 오후, 산들바람이 법당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아!’


‘장엄하구나.’


수개월을 찾던 법당이건만 소년의 마음은 여전히 닫혀 있었고 주변의 풍광은 무의미했다.


그러던 그날 십육 척에 이르는 장엄하고 웅장한 장육존상이 소년의 의식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 장육존상의 미소가 도원스님과 어딘가 닮았다고 생각했다.




“자, 너도 이제는 밥값은 제대로 해야지. 이 녀석아.”


소년에게 목봉 하나를 가져와 손에 쥐어 줬다.


본래 도원 스님은 수원승도들의 무예 등을 담당하고 있었다.


“나를 따라 해보거라.”


“다리는 편하게 앞뒤로 벌리고 목봉은 이렇게 쥐고···.”


“옳지, 그렇지 그렇지.”


“이놈 봐라. 처음인데도 제법 잘 따라 하는걸. 허허허.”


소년은 무예가 좋았다기보다는 스님이 허허롭게 웃는 소리가 듣기 좋아서 열심히 했다. 그러다 보니 소년의 키도 무예도 일취월장 해져갔다.




* * *







“자, 오늘은 실제 창을 가지고 하는 실전같은 훈련이다. 다들 사고 없도록.”


“보명, 자네가 승복이 창술을 좀 받아 주게.”


“네.”


강인한 인상의 보명 승도가 절도 있는 자세로 나와 승복이와 대결을 시작했다.


“들어 오게.”


웅! 웅!


훌쩍 커진 승복의 키만큼 그의 창도 거칠 것 없는 파공음을 그리며 몸을 풀었다.


탁!


창! 차장!


바닥을 두드린 창의 반동을 이용해서 쇄도한 승복의 유려한 창술로 선공이 시작됐다. 보명은 여유롭게 맞받아치며 응수했다.


‘짧은 시간에 제법이군. 그럼 어디 좀 더 세게 나가 볼까.’


보명의 창이 방어적 자세에서 공세적으로 찔러댔다.


팍! 팍!


창! 차장!


처음의 호기롭던 승복이 이리저리 뒷걸음질 치면서 막기에 바빠졌다.


그렇다고 승복의 눈빛이 당황한 건 아니었다. 어느 정도 창끝의 변화와 속도가 눈에 익자 조금씩 맞받아치기 시작했다.


보명의 공세가 한층 매서워졌다. 그러자 서로 간의 공방이 점차 가열되었다.


은빛 창날이 서로의 시야를 어지럽히며 무수한 잔상을 그려갔다.


쇄애액! 쇄애액!


승복의 창이 무서울 정도로 파공음을 그리며 보명의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쇅!


창끝이 보명의 귓볼을 아슬아슬하게 빗겨 갔다.


“그만!”


굵직한 외침이 들려왔다.


그러나 승복의 창날은 살기를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찔러 들어갔다.


보명이 후퇴하며 어지럽게 빗겨냈다.


쾅!


보다 못한 도원 스님이 사이에 끼어들어 승복의 창을 사선으로 세차게 쳐냈다.


딱!


얼마나 강하게 쳐냈던지 승복의 창 중간이 부러지면서 튕겨 나갔다.


“괜찮은가?”


“네.”


보명의 귓불이 살짝 찢어져 핏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자네는 얼른 치료부터 받게나.”


“오늘은 이만 하지.”


주위의 나머지 승도들도 자리를 떠났다.


도원 스님의 눈은 화를 내기보다는 안쓰러운 시선이었다.


“승복아, 아직도 털어내지 못한 것이냐.”


승복의 눈은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공방이 가열되고 금속 빛이 어지럽게 펼쳐지자 승복은 과거의 참혹했던 전장의 기억들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어느 순간 승복의 시야는 그때의 피비린내 나는 시체 한가운데에서 학살하던 몽골군과 싸우고 있었다.


‘우리 엄마는 아무도 해지지 못해. 네놈들은 한 발자국도 여기에 들어올 수 없어.’


승복의 작은 손이 그런 몽골군을 적의 가득한 시선으로 홀로 감당하고 있었다.



짝! 짝!


우두커니 주저앉아 있는 승복이가 손뼉 소리에 조금씩 의식이 돌아왔다.


미루어 짐작하고 있는 도원 스님이었지만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엄중했다.


“이놈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구나.”


“우리가 무예를 배우는 것은 단순한 살생이 목적이 아니라 불법을 수호하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몇 번을 말했더냐!”


“오늘부로 너는 내가 그만할 때까지 매일 삼천 배를 하거라! 그리고 일 배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염불하거라. 알겠느냐!”




착!


“상구~보리”


“하화~ 중생.”


절하면서 상구보리를 일어나면서 하화중생을 소리 내었다.


착!


중금당에는 죽비 소리와 두 문구만이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저녁 예불이 다되어서야 삼천 배는 끝이 났다. 어느 때는 체력이 부쳐 예불 시간을 넘을 설 때도 있었다. 빠르게 해도 대략 세 시진 이상이 걸렸다.


다음 날 아침에도 일어나 맡은 업무를 했다.


거대 사찰인 만큼 공양을 준비하는데도 많은 일손이 필요했다.


인근 밭에서 심은 채소를 가져와 씻고 삼아 대치고, 설거지 등 많은 일을 해내야 했다. 그 외에도 뒷간 청소를 하는 등 절에서의 크고 작은 소일거리는 반복되었고 삼천 배 역시 계속되었다.


착!


“상구~보리, 하화~ 중생.”


착!


착!


초여름에 접어드니 기온이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스님, 그만해도 되지 않을지요?”


보명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절을 하고 있는 승복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도원 스님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은 아니네. 이걸 이겨내야 승복이가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네.”


쿵!


백여 일의 강행군에 젊은 승복이라도 결국 체력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눈을 떠보니 방안에 누워 있었다.


승복이 일어나려 하자 도원 스님이 저지했다.


“좀 더 쉬거라.”


“······.”


“내가 원망스럽게 구나.”


“아, 아닙니다. 스님. 다 제 잘못인걸요.”


“···.”


“승복아, 너와 내가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듯 모든 게 다 이 인(因)과 연(緣)으로 만나고 다하면 헤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다.”


도원 스님의 음성이 한층 부드럽고 따스했다.


“언젠간 너와 나의 인연도 그렇게 헤어질 날이 있지 않겠느냐? 그것이 세상의 이치이자 순리구나.”


헤어질 날이라는 말이 승복의 가슴에 박혀 왔다.


“흐흐흑.”


“엉, 엉, 어엉.”


그동안 승복의 가슴에 박혀 있던 무엇인가가 터져 나왔다.


토닥, 토닥.


스님이 서럽게 울며 들썩이는 승복의 가슴팍을 어루만져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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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1238년 시대 배경과 주요 인물상 +2 24.08.20 233 0 -
26 파우스트 +2 24.08.27 231 4 11쪽
25 폭풍의 프리틀웰 +1 24.08.26 238 4 9쪽
24 친구와 금발의 이방인 24.08.25 239 6 11쪽
23 동경으로 온 까닭 +2 24.08.22 235 6 8쪽
22 미지의 인물 24.08.22 237 7 13쪽
21 혈야(血夜)와 다향(茶香) +2 24.08.20 231 7 8쪽
20 운명의 조우 +2 24.08.19 234 5 10쪽
19 불벼락 24.08.18 227 5 10쪽
18 황룡사를 구원하소서 24.08.17 220 5 7쪽
17 장육존상과 호투(虎鬪) 24.08.16 227 5 7쪽
16 첩첩산중 24.08.15 230 3 9쪽
15 위기의 목탑 24.08.14 226 4 9쪽
14 사투(死鬪) 24.08.13 232 4 10쪽
13 치열해지는 공방전 24.08.13 235 4 9쪽
12 황룡사로 몰려드는 몽골군 24.08.12 244 5 10쪽
» 인(因)과 연(緣) +1 24.08.11 249 5 9쪽
10 서원(誓願) 그리고 이별 24.08.11 247 4 8쪽
9 사면초가 24.08.10 250 5 9쪽
8 물고 물리는 시가전(市街戰) 24.08.10 250 4 9쪽
7 떠나보내는 부정(父情) +1 24.08.09 270 5 12쪽
6 덫을 놓다 24.08.09 298 6 10쪽
5 구출작전 24.08.09 352 5 11쪽
4 추격전 24.08.08 401 6 11쪽
3 전화(戰火)의 불길 24.08.08 471 6 6쪽
2 1238년, 다가오는 전운(戰雲) 24.08.07 569 6 11쪽
1 2050년, 운명의 쌍둥이 혜성 +1 24.08.07 701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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