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물들이 착각한다 괴물 천재 피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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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유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1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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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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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3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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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터치

DUMMY

4화. 터치




이른 새벽, 로케이션 촬영지로 출발하기 전에 드라마국을 들렀다.

제작팀에 자료를 넘기고 대절 버스를 타야 했기에, 파티션 사이를 빠른 걸음으로 가로질렀다.


그런데 짐짓 드라마국 안쪽이 소란스럽다.


새벽이라 사무실에 불이 듬성듬성 켜져 있는 가운데, 안쪽 CP실에도 불이 켜져 있었다.


문이 닫혀 있어 소리는 잘 안 들린다. 하지만 적어도 안에서 두 사람이 싸우고 있다는 건 알겠다.

이 시간에 뭔 일이지?


하지만 꽤 흔한 일이라 별생각 없이 지나쳤고, 제작팀 자리에 요청한 자료를 올려뒀다.


그리고 다시 엘리베이터를 향하려는데, 누군가 CP실을 박차고 나온다.


-쾅!


씩씩거리며 나온 건 윤정문 피디였다. 문을 부실 듯 닫았음에도 분이 아직 안 풀렸는지, 남의 책상 위에 쌓인 애꿎은 서류를 밀쳐서 쓰러뜨린다.


최필립 배우랑도 한판 붙었다더니, 저 여자가 진짜 미쳤나?


서류들이 팔랑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지고, 동시에 윤 피디는 멀찍이 서 있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절로 사람을 움츠러들게 하는 눈빛이다. 나는 모른 척 몸을 돌려서 갈 길 갔다.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해 버튼을 눌렀고, 그렇게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데.


“···야. 이진혁.”


쫓아왔는지 윤정문이 말을 걸었다.


“···예?”

“너 뭐, CP한테 몰래 돈이라도 줬냐?”


···아침 댓바람부터 사람 기분 잡치게 하는 재주가 있네, 이 선배.


“······대체 뭔 말도 안 되는 소립니까? 지 CP 저 싫어하는 거 몰라요?”


날카롭게 대꾸했더니, 눈을 가늘게 뜨며 내 얼굴을 훑는다.


한참을 그러다 말없이 휙, 고개를 돌리고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자, 잠깐-”

그리고 말릴 새도 없이 문을 닫고 혼자 내려갔다.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 진짜.



*



“···자, 잠깐만요. 제가 B팀을 보라고요?”

“어. 왜. 부담돼?”


그렇게 되물은 권 감독은 소품차에서 나눠준 믹스커피를 홀짝이며 실실 웃는다.


···이래서 윤정문이 아침부터 지랄했구나. 나한테 B팀 자리를 넘겨주라는 소릴 들어서. 근데 그걸 왜 감독이 아니라 CP실에서 들었지?


“계속 보라는 거 아니고, 다음 주에 정문이가 많이 바쁘다니까 그때만 잠깐 B팀 보라고. 기껏해야 촬영 두 번밖에 안 될걸? 찍는 것도 대부분 단역일 거고.”

“예, 뭐··· 그렇다면야.”


다행히 부담스러운 촬영은 아니라서, 일단 제안은 받았다.

하지만 본 게 있어서 그런지 윤 피디가 바쁘다는 얘긴 못 믿겠다. 아무래도 지 CP가 저번 일을 알아내긴 한 거 같은데···


“짜식. 받을 거면서 괜히 빼기는.”


권 감독이 그렇게 말하며 내 옆구리를 툭 치고, 나는 쓰게 웃으며 물었다.


“근데 지 CP님은 별말 없으셨어요?”

“···어? 어, 형님은 뭐 그냥, 열심히 하라던데?”


반응이 영 이상해서 물끄러미 쳐다보자, 감독이 어색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퍽퍽 쳤다.


“야! 4년 넘게 남들 시다바리 했으면 너도 이제 한번 할 때 된 거지, 뭘 그렇게 의심해? 이게 자연스러운 거야.”

“···괜히 뒤에서 무리하고 그러시는 거 아니에요?”

“뭐? 하하하! 무리는 무슨!”


감독은 그제야 넉살 좋게 웃더니, 촬영 준비나 하라면서 제작진 쪽으로 걸어갔다.


저렇게 나오니까 또 잘 모르겠네. 괜히 나 끌어준답시고 이상한 짓만 안 했으면 좋겠는데.


어쨌든 기회가 다시 주어진 거니까, 나로서는 기쁜 일이긴 했다.

슬슬 본격적인 연출에 재미를 붙여가고 있는 참이었다.


“다음 씬 준비합시다!”


오늘 촬영지는 경기도 외곽의 한 도서관이었다. 인적 드문 시골에 지어진 예쁜 공공 도서관이고, 후문으로 이어진 눈 내린 공원길까지 통째로 섭외했다.


오전에는 윤슬, 유수현 배우 위주로 찍다가 오후에는 대기 중인 최필립 배우까지 투입된다.


“주성아. 공원길 얼음 낀 거 없는지 확실히 체크했지?”

“예. 미술팀이랑 돌 하나하나 샅샅이 훑었습니다.”

“그래. 박 피디는 제작진 애로사항 계속 들어주고. 할 일 없으면 핫팩이라도 들고 다니면서 나눠 줘. 멀뚱히 서 있으면 괜히 뒤로 욕 먹는다.”

“···네.”


씬 자체는 단순해서 연출부가 막 뛰어다닐 일은 없었다. 출연 배우도 오전에는 대부분 유수현 혼자였고.


유수현 스탠바이 담당인 나 정도만 조금 바쁜 정도였다.


세트 촬영과 달리 야외 로케이션은 오히려 조명이나 음향이 많이 바빠지는 편이다.

날씨, 식생, 지형, 바람, 통제해야 할 변수가 늘어나게 되니까.


그래도 오늘은 힘 꽤나 준 씬이라, 제작진도 감독급이 총출동해서 든든한 모습이다.


“이 피디님! 수현이 의상 다 돼서 이제 나온답니다.”

“아, 네.”


그쯤 도서관 앞에서 대기 중이던 내게 유수현 배우 매니저가 말했고, 나는 그걸 무전기로 감독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잠시 후, 도서관의 문을 열고 유수현이 나왔다.


차가운 이미지의 회사원답게 고급스러운 코트에 머플러를 두르고, 까만 부츠힐을 매치한 차림이다.

뭘 입혀놔도 잘 어울리는 배우지만, 오늘은 특히 더 잘 어울리게 입었다.


그런데 얼핏, 신발 뒷굽이 생각한 것보다 얇았다. 걸음걸이가 못내 불안한데.


“피디님! 저 바로 가면 될-”


아니나 다를까, 유수현이 흙길로 내려오자마자 바로 비틀거린다.


“조심하세요!”


재빨리 옆에 있던 매니저와 내가 손을 잡았고, 다행히 유수현은 넘어지진 않았다.


“아··· 죄송해요!”

“아닙니다. 근데 괜찮으시겠어요? 눈길 걷는 컷이 꽤 있을 텐데.”

“네! 괜찮아요! 힐을 오랜만에 신어서. 금방 적응해요.”


금세 중심을 잡은 유수현이 괜찮은 걸 보여주려는 듯 양발을 번갈아 바닥에 콩콩 찍는다.


“보셨죠?”

“하하, 네. 그래도 이 실장님이 공원까지 유 배우님 손 좀 잡아주세요.”


매니저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유수현의 뒤를 따라가면서, 나는 감독에게 위험 요소가 될 만한 건 빠짐없이 보고했다.


눈은 안 내리고 있지만 그래도 야외 촬영이다. 부디 별일 없이 빨리빨리 끝내야 할 텐데.



*



“컷! 쉬면서 몸 좀 녹이다 갑시다!”


생각보다 촬영이 길어졌다. 공원길에서 윤슬의 회상씬을 찍는데, 영 그림이 안 나오는지 NG가 계속 이어지는 중이다.


감독의 컷 사인이 나오자마자 매니저와 코디는 유수현에게 달려가서 패딩과 목도리를 꽁꽁 감아준다.


해는 진즉에 떴으나 아직 2월이라 야외는 바람이 매섭다.


“소품차 앞에 꿀물 있습니다!”

“핫팩 다 떨어지신 분 받아가세요!”


그나마 통째로 섭외해둔 도서관이 있어서 다행이다. 제작진 대부분이 히터 빵빵한 도서관으로 향했고, 감독과 나, 그리고 촬영감독도 안쪽에 자리를 잡았다.


스탭들이 따듯한 음료를 가지러 간 사이, 애꿎은 콘티를 뒤적이던 권태용 감독이 한숨을 푹 쉰다.


“하··· 씨. 안 나온다 안 나와. 진짜 차라리 강원도로 갔어야 했나.”

“아이고, 권 감독아. 이 날씨에 거기 가면 누구 하나 발가락 짤라야 돼.”


이번 씬은 주인공 윤슬의 고독함을 표현하기 위한 씬인데, 늘 그렇듯 답사 때는 괜찮았던 그림이 직접 오기만 하면 말썽을 부렸다.


“형님은 어때요. 지미집 위치라도 좀 바꾸면 하나 건질 수 있을 거 같아요?”


권 감독이 묻자 구영회가 옅게 숨을 뱉으며 고개를 젓는다.


“······모르겠다. 각 바꾼다고 해결될 일은 아닌 거 같은데. 유수현이도 액션 점점 느려지는 게 보이고. 부감이랑 오버헤드만 좀 더 따고 편집에 품 들이는 게 낫지 않을라나.”

“편집······ 하아. 이번 게 편집 화려하게 들어가는 스타일은 아니긴 한데.”


중얼거리며 뒷머리를 긁던 감독이 이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진혁이 네 생각은 어때. 혹시 봐둔 그림 좀 있나?”

“음··· 없진 않죠.”


잠시 고민하다가, 막내가 가져온 꿀물을 두 사람에게 내밀면서 대답했다.


“근데 감독님이 지금 망설이는 게, 이번 씬 콘티가 너무 잘 나온 탓도 있는 것 같은데요.”

“······맞긴 해. 현장에서 그림이 이렇게 예쁘게 떨어지진 않지.”


감독이 짐짓 어두운 얼굴로 콘티를 내려다보자, 나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너무 예술 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느낌을 살리고 싶으면 세트까지 쓰는 게 낫지 않냐는 거죠.”

“···세트까지?”

“글···쎄다. 크로마키 깔아서야 이게 되려나?”


반신반의하며 되묻는 감독들에게, 나는 콘티의 그림 사이사이를 가리키며 덧붙였다.


“지금 찍은 걸 기본으로 깔고, 세트에서 구현한 걸 보정 쳐서 몽타주로 잠깐잠깐 넣으면 느낌 살지 않을까요?”

“아, 그 뭐냐. <태양의 신부>처럼?”

“네.”


촬영분에 단 몇 프레임을 끼워넣기 위해 제작비를 거의 두 배로 쓰자는 말이나 다름없었지만, 감독은 작게 감탄하며 턱을 쓰다듬었다.


“허어······ 과감하긴 한데. 보는 입장에선 그게 훨씬 느낌이 오긴 하지.”


어쨌든 편집으로 해결 보자는 말과 비슷한 맥락인지라, 촬영감독도 음료를 후룩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거기다 지금 더 찍어봐야 배우 제작진만 지칠 것 같은 분위기다. 감독의 마음이 어느 쪽으로 더 기울지는 뻔했다.


“···그래. 나중에 가서 바꾸더라도 일단 그렇게 가닥을 잡자. 어차피 오후 씬도 있고, 잠깐이라도 쉬는 게 낫겠다.”


그래도 이번 것만 넘기면 오후엔 대부분 도서관 내부 촬영이라 한숨 돌릴 수 있다.


내 어깨를 탁탁 두드리며 일어난 감독이 촬영 재개를 선언했고, 그동안 몸이 좀 녹았는지 스탭들이 이리저리 관절을 풀면서 도서관을 나간다.


앞서서 쭉 찍었기에 촬영은 빠르게 세팅됐고, 이내 모니터 앞에 앉은 감독이 소리쳤다.


“부감부터 빠르게 치고 빠집니다! 메인 스탠바이- 액션!”


사인과 함께 유수현이 첫발을 내딛었고,


“아-”


발목을 휘청이더니 중심을 잃고 옆으로 쓰러진다. 헤드폰 없이도 퍽, 소리가 들릴 정도로 엎어졌다.


“어어!”

“카메라 스탑, 스탑!”


감독과 다수의 제작진이 소리치며 유수현을 향해 뛰었고, 나는 다급히 대기 중인 의료팀을 불렀다.


촬영을 구경 중이었는지 차 밖에 서 있던 응급구조사가 바로 뛰어왔다.


“저, 저 괜찮아요!”

“이런, 수현 씨 안 괜찮아! 피나잖아!”


피가 난다고? 뒤늦게 뛰어간 내가 훑었을 때는, 다행히 머리에서 피가 나진 않았다. 피가 흐르는 건 일단 손이다.


하지만 모른다. 특히 겨울 낙상사고는 겉으론 괜찮아 보이는 게 다수니까.

주연 배우에게 골절이나 뇌진탕이라도 생기는 순간 대형사고다.


구조사가 들것을 가져오긴 했지만, 괜찮다면서 유수현은 매니저의 부축을 받고 일어났고, 앰뷸런스 차량을 향해 걸었다.


하지만 문제는 발이었다. 유수현이 한쪽 발을 제대로 못 딛는다.

넘어지면서 그랬는지 부츠힐 한쪽 굽이 달랑거리고, 발목 부분은 부어있는 게 밖으로 보일 정도다.


아차 싶었다. 저걸 계속 신기는 게 아니었는데. 그때 도서관 앞에서, 내가 넘어지려던 걸 잡아주기까지 했는데. 그때 말리기만 했었어도-


그 순간, 뒷목으로 소름이 돋았다.


······잡아준다고?


호프집에서 막내도 내 팔을 잡아줬었다. 스튜디오에서 감독도 내 어깨에 손을 얹었었고.


지금까지 내게 벌어졌던 두 루프 모두, 누군가와 접촉한 순간 벌어졌다는 게 갑자기 떠올랐다.


···설마?


침을 삼킨 나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뒤로한 채 유수현에게 다가갔고,


유수현을 둘러싼 사람들을 비집고 마침내 그녀의 등에 손을 뻗었을 때.


확-!


반가운 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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