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물이 육성한 천조따리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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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허
그림/삽화
07시20분연재
작품등록일 :
2024.08.14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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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7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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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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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의 후 음악천재는 일분에 1억 23

DUMMY

23화. 1악장. 오선지 위의 피아니스트-4



* * *



[잘도 자는군.]


하루가 자신의 옆에서 기절한 듯 자고 있었다.

술집에서 방송인가 뭔가를 촬영하면서 너무 몰입했던 탓이었다.


[나 베토벤도 그런 적이 많았네. 한번 몰입하면 몇 시간이 지났지. 그 후 기절하듯 잠들었고.]


잠든 청년의 모습을 보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곳에 왜 온 건가?]


[왜 이 청년의 몸에 달라붙게 됐지?]


[무언가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네.]


자신은 분명 마지막을 맞이했다.

친구들과 제자들이 끝을 함께 했고, 나는 인생이란 무대에서 내려왔다.


분명 그렇게 믿었다.

그 순간 미완성 곡의 선율이 들렸고 어느새 강하루의 옆이었다.


어떻게 된 걸까.

신의 장난인 건가? 아니면 이 모든 게 내 꿈일 수도 있다. 죽기 전 보는 환상이나 환영일지도.

어쩌면 악마의 농간일 수도 있다.


나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 200년을 넘어 이곳에 오게 된 건 도저히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니까.


내 옆에서 하루는 색색거리며 잘도 자고 있었다.


[나 루트비히 판 베토벤을 뛰어넘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겠다고?]


그 당찬 포부에 웃음이 났다.

200년이 넘어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패기 넘치는 젊은이를 보게 되다니.

그것도 허황된 말이 아닌 그럴만한 재능도 타고난 청년이었다. 오랜만에 내 가슴을 설레게 했다.


[그런데 미완성 곡은 어떻게?]


자신이 강하루 옆에 오게 된 이유기도 했다.

죽음 직전까지 나는 끊임없이 손을 움직여 악보를 작성했다.

비록 귀는 들리지 않았지만, 내 머릿속엔 아름다운 선율들로 가득 차올랐다.

멀어버린 귓가에 들리는 게 바로 천국의 음계였다.

죽음의 순간에도 불같은 영감이 가득했다.


[하지만 완성하지 못했다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적어도 스케치북 네 권 정도는 온갖 악상으로 가득 채워야만 자신감이 일어 총보(총보는 모든 악기의 오선이 표시된 악보)를 작업할 수 있는 완벽주의적 성격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예전에 내가 했던 작업의 양은 동시에 무척 많은 곡을 작업했다.


‘프로메테우스’와 ‘보나파르트’를 비롯해, ‘베스타의 불꽃’이나 오페라 혹은 ‘감산란 위의 그리스도’의 개정 작업과 더불어 세편의 피아노 소나타 초안과 ‘삼중 협주곡’ 초고, ‘피아노 협주곡 4번’과 ‘교향곡 5번’, ‘교향곡 6번’의 작업까지 동시에 했다.


몸이 아프다 해도 1곡을 완성할 시간은 충분했다.


[그런데 곡을 완성할 수 없었다네.]


자신도 이유는 몰랐다.

분명 넘치는 영감이 머릿속에서 불같이 치솟고 있음에도 무엇을 향해 달려나가는 곡을 만들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사랑하는 여인을 향한 불같은 마음을 표현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위대한 왕을 향한 찬양을 적어야 하는 것도 아니며, 귓병을 앓아 음악의 신에게 버림받은 마음을 처절하게 하소연하는 것도 아니었다.


미완성 곡에 대한 욕망은 있지만,

달려가야 할 목적지가 희미했다.


[이렇게 고민이 많은데, 자네는 잠이 오는가?]


하루는 대답하지 않았다.

깊은 잠에 빠져 몸을 뒤척일 뿐이었다.


이 젊은 제자를 보니 예전 제자들이 떠올랐다.


[카를 체르니가 보고 싶군······.]


하루에게 물어보니, 체르니의 곡은 피아노 교육 분야에서 무척 잘 쓰이고 있다고 들었다.

피아노 학원 다니면 모두 ‘체르니 몇 번까지 쳐봤어?’라는 공식 질문이 있을 정도라고.


[그 작고 겁많은 녀석이 이토록 유명해졌을 줄이야.]


성실한 건 알아줬으니까.

나는 그를 떠올리니 기분이 좋아졌다.

음악 교수로 왕성한 활동을 했다는데, 안타까운 건 그가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는 것이다.


[아무리 내 제자라도 이 정도까지 따라 할 줄이야.]


다른 제자 중 ‘이그나츠 모셸레스’는 ‘멘델스존’이란 유명한 음악가를 키웠다고 들었다.

기분이 묘했다.


[누군가의 스승이 된 제자라니······.]


사실 제자 중 가장 보고 싶은 건 페르디난트 리스였다.

그는 제자인 동시에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내게 주눅 들지도 않았고 베토벤이란 명성이 현혹되지도 않았으며 정직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작곡가 겸 악보 출판업자로 활동했던 리스.


그는 나를 실무적으로 많이 도와주기도 했다.

감독하는 과정을 보조하고, 자금의 입출금을 관리했으며, 조판업자가 보내오는 교정본 검토까지 했다.


온전히 음악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하루도 언젠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해질 것이다.


[이 시대엔 소속 음악가들을 도와주는 회사들이 있다고 자네가 말하지 않았나? 그들의 지원을 언젠간 받아야 할걸세.]


예술가는 온전히 예술에만 집중해야 했다.

음악 외에 다른 것들은 맡길 수 있는 자들이 필요했다.


[잘하기 위해선 말일세!]


과거 나는 오로지 뜨거운 음악에만 몰입했었다.

음악을 잘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중요한 건 경험이었던 것 같다.


창작은 영감에서 비롯되니까.

특히 사랑을 할 때 무수히 많은 아이디어가 샘솟았다.


혼자 처소에 있을 때, 생판 모르는 젊은 여인이 들어왔다.

나는 리스에게 달콤한 곡의 연주를 부탁했고.

구슬픈 음악도, 격정적인 연주도 함께 요청했다.

비록 모르는 여인이었지만, 그 순간의 음악적 영감은 대단히 나를 흥분시켰다.


그뿐이 아니었다.

내가 사랑한 여인들도 한몫했다.


[귀차르디, 요제피네로 인해 나의 심장은 뜨겁게 박동했지.]


당시 연쇄 호색마였던 리히노프스키 공작 또한 내 사랑을 응원했다.


나는 하루를 보며 말했다.


[자네도 사랑하게 된다면, 더 깊은 음악을 연주할 수 있을 걸세!]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다.

강하루는 누구와 사랑을 할 것인가.

몇몇 후보들을 머릿속에 떠올려 봤다.


‘다이아 수저라는 최원영? 성악과 프리마돈나 여서희? 아니면 쾌활한 홍세린? 다른 숙녀분일 수도 있겠군.’


온화한 영혼이 다른 온화한 영혼을 사랑하는 경험이 필요하기에.


그때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가 들렸다.


[비가 오는군.]


내겐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이 있었다.

빗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시기.


나는 청력 손실이 왔을 때, 음악으로 고통을 해소했다.

‘피아노 소나타 17번 D단조’의 레치타티보(대사를 노래하듯이 말하는 형식)을 통해 청력을 잃었던 순간을 곡에 담았다.


마치 자신만의 지하 감옥에 갇힌 막막함.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 그럼에도 단절된 소리의 바깥을 그리워하는 애절함.


이건 당시 오페라 ‘레오노레’의 주인공과도 같았다.

벽 속에 갇혀 바깥세상의 소리와 단절된 채로 살아야 하는 남자가 나처럼 느껴졌다.


[무시무시한 적막이었지.]


산책을 하며 혼자서 흥얼대고 때론 울부짖었다.

특정 선율을 노래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위아래로 떠다니는 음계를 입으로 부르짖었다.

그러곤 소나타의 마지막 악장의 주제가 떠오르면, 헐레벌떡 집으로 뛰어갔다. 모자를 벗는 것도 잊어버리고 피아노 앞에서 몇 시간씩 연주를 하는 게 일상이다.


절망 속에서 오선지 위 음표를 잡았다.


[물론 소리는 들리지 않았네.]


귀는 단절되어도 가슴속에 피어나는 음계의 꽃들은 내 눈에는 언제나 만개했었다.


[너무 선명해서 문제였지.]


나만 들리는 이 생동감 넘치는 음을 표현하고자 하면 언제나 트러블이 일어나곤 했다.

고전 시대 음악이 내세우는 방침을 대놓고 거슬렀달까.


딸림7화음의 현악군이 트레몰로로 발전부 대목을 들어갈 때면 독주 호른이 삼화음 선율로 도입부에 연주해서 불쑥 끼어들게 하는 방식으로 화성을 맞지 않게 전개했다고 비판을 받았지.


[하얀 가발을 쓴 멍청한 자들이 뭘 안다고 떠드는지.]


밤은 깊었고, 비는 창가를 두드렸다.

달빛은 흐렸지만, 가슴을 시원하게 하는 비가 내렸다.


[걷고 싶군.]


비가 내리는 게 뭔 상관인가.

이미 난 영혼 상태이다.

게다가 걷는 걸 좋아했다.


참을 수 없어 나는 벽을 지나 밖을 나가려 했다.


쾅.


[나갈 수가 없네.]


전에도 하루가 잘 때 밖을 나가려 했지만 번번이 어떤 경계선에 막혀버렸다.


[4피트가 한계인가.]


하루의 몸에서 나갈 수 있는 건 4피트가 한계였다.

자신의 키보다도 작은 범위였다.


정말 신의 장난인 건가?

젊은 청년에게 속박되게 만들었다.

신의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한때 나는 신이 내게 축복을 내렸다고 생각했다.

누구보다 음악을 사랑하고 즐기며 연주할 수 있는 건 신의 사랑을 받아서라고.

청력을 잃었을 땐 그 반대로 신을 저주했고.


[그렇다면 이 젊은이에게 신이 주려는 건 무엇인가.]


거장이라 불린 자신을 붙여서까지 바라는 게 있을 것이다.

설령 신의 의도라 할지라도 자신은 뜻대로 굽히고 싶진 않았다.


눈앞에서 황족이 지나가도 고개를 뻣뻣이 들었다.

모자를 벗지 않고 갈 길을 갔다. 특권층의 후원으로 먹고사는 음악가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괴테도 나의 고집에 한 수 접을 정도였다.


나는 창밖을 쳐다봤다.


[왜 나인 겁니까?]


세상에 많은 음악가들이 있었다. 모차르트, 바흐, 리스트, 라흐마니노프, 슈베르트, 브람스 등등······.

그런데 내가 굳이 이 젊은이에게 오게 된 이유를 모르겠다.


나는 곤히 자는 하루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오늘부터 제 목표는 아저씨예요.


-아저씨의 피아노를 뛰어넘을 거예요.


천재인 모차르트를 봤을 때 나는 더욱 뜨겁게 타올랐다.

하루도 내 연주를 듣고 나, 베토벤을 뛰어넘겠다 선언했다.

그는 좌절을 넘는 방법도, 음악을 대하는 자세도 모두 닮아 있었다.


그는 나와 닮아 있었다.


자신처럼 불같은 예술가의 혼을 가진 음악가였다.


[그런 거였군.]


내가 쓴 음표는 절대로 잊어버리는 법이 없다.


같은 모티프를 가진 음을 소나타에도 쓰고, 협주곡에도 사용했으며, 교향곡에도 활용했다.

‘베스타의 불꽃’을 쓸 때 애먹은 선율을 ‘레오노레’로 옮겨 환상적인 곡을 만들었고, ‘요제프 2세의 장송 칸타타’의 서두에 사용한 악구를 관현악 전주곡에 넣어 활용했다.


내겐 악상이 언제나 주변을 떠돌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적절한 선율에 적합한 악상을 넣어 곡을 완성했다.

그게 내가 가진 재능이었다.


[아직도 선명하다.]


불같이 타오르며 활공하는 연주.

그러면서도 생동감 넘치게 맥동하는 선율의 흐름.

마치 하나의 자연처럼 모든 게 조화로운 하루의 피아노는 200년 전 내가 피아노를 칠 때 느꼈던 설렘이 떠올랐다.


신의 장난이 아닐지도 모른다.

죽기 전 꿈은 더더욱 아니고.

악마의 농간이라고 믿고 싶지도 않다.


어쩌면 이건 내게 준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신의 축복인가.]


나는 빛나는 재능을 가진 젊은 청년을 봤다.


왜 이제껏 미완성 곡을 완성하지 못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이 청년에게 온 이유가 선명히 보였다.


다시 들려오는 음악.

그리고 내게 생긴 마지막 제자.

나와 똑 닮은 불같은 영혼을 가진 젊은이.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연주를 재연할 수 있는 유일한 자.


[이제서야 알았네. 생이란 경이로운 것을. 그게 내가 쓰고 싶은 주제일세.]


삶과 죽음을 경험해야지만 알 수 있었다.

자신과 닮은 빛나는 재능을 목도해야 깨달을 수 있었다.

살아 있다는 게 얼마나 경이로운 축복인지.


미완성 곡을 완성할 것이다.

하루의 연주 속 선율을 떠올리며.

그의 요동치는 음계의 화음을 기억하며.


나와 닮은 불같은 영혼의 주인과 함께.


‘경이로운 생의 축복’을!


작가의말

“음악은 영혼을 울리고, 이야기는 마음을 움직입니다. 여러분의 선호와 추천이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함께 이 여정을 걸어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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