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삼키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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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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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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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경 대표 (2)

DUMMY

“내가 윤검사님 말대로 가만히 내버려 두려고 했는데, 자꾸만 기어오르네요. 이래도 내가 참아야 하는 건가요?”


강재경 대표의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져 있었으나,

왠지 모를 서늘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걱정 마십시오. 대표님. 저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겁니다.”

“당연히 그래야죠. 내가 그러려고 윤검사를 부른 거니까.”


강재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일주일 동안 일 해보니까 어때요? 할만 해요?”

“예. 할만 합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카드를 안 받아가셨던데.”


망설이는 윤상신의 태도에 강재경은 지갑에서 검정색 카드를 건넸다.


“부담 갖지 말고 받아요.”

“저는 괜찮습니다.”

“받으라고요.”

“...”


윤상신이 마지못해 카드를 받아들자, 그제서야 강재경은 만족한다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제 우리는 가족이 된 겁니다. 윤검사는 그럴 자격 충분히 있어요.”

“...감사합니다. 대표님.”


강재경 대표의 카드는 마치 사료와 같다.

주인이 가축에게 먹이를 줄 수는 있어도 가축이 주인에게 먹이를 줄 수는 없는 법.

주종관계를 확실하게 하기 위한 강재경만의 방식이다.


“윤검사님.”


강재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중앙에 놓인 어항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윤상신의 이름을 불렀다.


“말씀하십시오. 대표님.”

“...제가 윤검사님을 얼마나 믿어도 되겠습니까?”


그리고 고개를 돌려 사뭇 진지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시키시는 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강재경은 어항에 손을 넣어 금붕어 한 마리를 손에 쥐고는 윤상신을 향해 내밀었다.


“먹어요.”

“...네?”

“먹으라고요. 시키는 건 뭐든 한다면서.”


장난기 하나 없는 싸늘한 강재경의 표정.

윤상신은 한 치의 고민 없이 금붕어를 받아들고 입으로 가져갔다.

펄떡이는 금붕어가 윤상신의 입에 들어가기 직전.

강재경이 윤상신의 팔을 쳐서 금붕어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키키킥. 장난이에요. 장난. 먹으란다고 진짜 먹으면 어떡합니까.”


강재경은 깔깔 웃어대며 바닥에 떨어진 금붕어를 다시 어항 안에 집어 넣었다.


“...”

“윤검사님 보기보다 시원시원하시네. 믿고 맡겨도 되겠어.”


강재경은 주머니에서 명함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쪽으로 전화하면 앞으로 뭘 해야할지 알려줄 겁니다.”


전화번호만 달랑 적혀있는 검정색 명함.

윤상신은 명함을 품에 넣고 강재경에게 인사한 뒤, 곧장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


- 여보세요?

- ...


분명 통화 연결음이 들렸는데. 수화기 건너에서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 강재경 대표님께서 이쪽으로 전화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이름.


괴이한 기계 목소리.

목소리를 변조한 것이 틀림 없었다.


- 윤상신 검사라고 합니다.

- 담연로 91 – 7.

- 예...? 갑자기 무슨...


뚝.


수화기 건너 인물은 정말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조금 미심쩍긴 하지만, 윤상신은 그가 알려준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수상한 사내가 알려준 곳으로 향하니, 지도에는 없는 작은 창고가 자리하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창고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거겠지.


끼이익 -


“...계십니까?”


한 치 눈앞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창고 안.

윤상신은 휴대폰 불빛에 의지하며 긴장감에 침을 삼키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창고 중앙쯤 도착했을 때.


쾅 -


철문이 굉음을 내뿜으며 굳게 닫혔다.

그리고.


툭 -


등 뒤로 원통 형태의 무언가가 닿았다.

윤상신이 급히 고개를 돌려 얼굴을 확인하려던 찰나.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면 죽어.”


그 순간 윤상신의 고개가 멈춰졌다.

이 상황에서 알 수 있는 건 그가 남자라는 것과.

죽이겠다는 말은 단순한 허풍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수인계 받은 거 있어?”

“없습니다.”

“한 번만 설명할 테니까 똑바로 들어.”


???.

강재경 대표의 그림자이자, 마약 유통을 총괄하는 관리자.

그의 얼굴을 본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심지어 강재경 대표조차 그의 얼굴을 직접 마주한 적이 없을 정도로 베일에 꽁꽁 싸인 인물이다.

일형아이앤씨의 마약 사업이 적발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다.

그 누구도 마약 관리자의 정체를 알지 못할뿐더러.

실제로 강재경 대표는 마약 사업 권한을 모두 그에게 일임했으므로, 만약 검거가 되더라도 자신에게 날아오는 화살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스페인 건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끊어. 안 그래도 자꾸 수수료를 올려달라고 해서 골치 아팠는데. 마침 잘 됐지 뭐.”

“예. 알겠습니다.”


윤상신은 긴장한 듯 허리를 꼿꼿이 세워 대답했다.

딱히 총을 들이밀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에게서 무언가 거부할 수 없는 묘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그리고. 은밀한 장소 하나만 물색해봐. 방음 잘 되고, 탈 없는 곳으로.”

“왜 그러십니까?”

“마황을 재배하려면 땅이 필요하거든.”


마황이라니.

그건...


“지금 그 말씀은... 마약을 직접 제조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왜? 우리가 못할 게 어디 있어? 모종도 있고, 기술자도 있는데. 큰돈 만지려면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지.”


검사로서 무언가 양심에 찔린 것일까.

윤상신이 대답을 망설이며 고개를 떨구자, 마약 관리자에게서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왜? 못하겠어? 지금이라도 그만둘래?”


마약관리자는 총구로 윤상신의 등을 툭툭 쳐댔다.

윤상신의 입에서 마음에 드는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정말로 죽일 셈이었다.


“...아닙니다. 장소 확보되는 대로 바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그래. 기다리지.”


차마 대답을 할 틈도 없이, 뒤에서 느껴지던 인기척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제서야 뒤늦게 뒤를 돌아보았으나, 이미 마약 관리자는 창고를 떠난 뒤였다.


***


‘하... 너무 성급했어.’


사무실에 돌아온 형우는 머리를 쥐어짜내며 강재경 대표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조금만 참았더라면.

강재경 대표의 기억을 읽을 수 있었을 텐데.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한탄했다.


“강재경 대표와는 잘 이야기 나누셨어요?”


소파에 앉아 있던 서태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형우에게 다가갔다.


“자기 밑으로 들어오라고 말하더군요.”


꽉 쥔 형우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그래서요? 얼마 준데요?”


같잖은 농담에 형우가 정색하니, 서태석은 피식 실소를 터뜨리며 어깨를 들썩였다.


“농담이에요. 농담. 표정이 어두워 보이시길래.”


형우는 서태석을 지나쳐 자신의 책상에 앉았다.

원래도 그랬지만.

오늘만큼은 서태석과 쓸데없는 농을 주고 받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게 무슨 뜻이죠?”


서태석은 입가에 싱긋 미소를 지으며 형우의 옆에 섰다.


“변호사님께서 무엇을 이루려고 하시는지 여쭈어본 겁니다.”

“그야 당연히 아버지...”

“장난해요?”


형우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서태석은 고개를 저으며 말을 끊어냈다.


“10년도 넘게 지난 사건에서 정말로 증거가 남아있으리라 생각해요? 자수라도 받아낼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 같고.”

“...”


서태석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솔직히 강재경 대표를 마주하고 형우는 방향성을 잡지 못했다.

지금까지는 막연히 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찾으려고만 했지,

어떻게 처벌해야할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여태 형우가 원했던 게 진실을 밝히는 것인지,

아니면 원수를 배로 갚아주는 것인지.

선뜻 판단할 수 없었다.


“모르겠을 땐. 간단하게 생각해요. 변호사님은 강재경 대표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듭니까?”

“...분하고, 원통하죠.”

“그럼 그렇게 해요.”

“...네?”


서태석은 멀뚱멀뚱하게 형우를 내려다보며 대화를 이어갔다.


“세상살이는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선물을 내밀고, 싫어하는 사람한테는 칼을 들이밀면 됩니다.”

“그치만...”

“보기보다 솔직하지 못하시네요. 여태 변호사님이 범인을 쫓았던 이유가 뭐였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


형우는 서태석의 질문에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변호사님은 그놈이 멀쩡하게 살아가는 꼴을 보고 싶지 않은 겁니다. 부끄러워 할 필요 없어요. 이건 인간으로서 당연한 본능입니다. 어떤 호구가 자신을 괴롭힌 사람을 가만히 내버려 두고 싶겠습니까.”


분명 좋은 의도로 충고를 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서태석의 말은 마냥 틀리지만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저지르고 보는 겁니다. 그쪽이 아버지를 빼앗긴 것처럼. 그쪽도 강재경 대표가 쌓아올린 모든 것을 끌어 내리는 거죠. 어때요? 꽤나 재밌을 것 같지 않아요?”


서태석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형우에게 손을 뻗었다.

하지만 형우는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저으며 곧장 사무실 밖으로 향했다.


“흐음... 제가 조금 도와드려야겠네요.”


형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서태석의 입가에는 섬뜩한 웃음이 지어졌다.


***


강재경 대표와 접선한 이후.

형우는 며칠 동안 방 안에 틀어 갇혀 깊은 고민에 빠졌다.


“형우야. 밥 먹어라.”

“...입맛 없어요.”


어머니 마리아에게 솔직하게 털어 놓을까도 고민했으나,

또 다시 그날의 아픈 기억이 반복될까 두려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요즘 출근도 제대로 안 하는 것 같은데.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아니에요.”


형우는 급하게 표정을 풀고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형우야. 무슨 일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엄마는 네가 자신감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


마리아는 그런 형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짧게 한숨을 내쉬며 대화를 이어갔다.


“여태 잘해왔잖아. 그러니까 앞으로도 뭐가 됐든 네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해. 엄마는 형우를 믿어.”


형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사뭇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만약 나쁜 짓을 하게 된다면요?”


순간 아차 싶었다.

어머니께 괜한 걱정을 끼쳐드리는 건 아닌지.

재빨리 표정을 풀어 상황을 모면하려 했으나,

오히려 마리아는 태연히 고개를 끄덕이며 싱긋 웃음 지었다.


“말했잖아. 엄마는 너를 믿는다고. 만약 네가 나쁜 일을 벌인다고 해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거니... 생각할 거야.”


예상치 못한 반응에 형우는 멍하니 마리아와 두 눈을 마주했다.


“정 마음이 찝찝하다 싶으면 엄마를 믿어. 나는 아무 이유도 없이 나쁜 짓을 저지를 만큼 너를 악하게 키우지 않았어.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그 순간.

복잡했던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졌다.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가슴이 시키는 대로 저지를 것이다.


“감사합니다. 엄마. 저 잠깐 어디 좀 다녀올게요.”

“그래. 조심히 다녀와라.”


형우는 황급히 겉옷을 걸치고 사무실로 향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복수와 관련된 일은 서태석이 전문가니까.


...


잠시 후.

사무실에 도착하고, 다급히 서태석의 이름을 불렀으나 좀처럼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때.

주머니에서 전화벨소리가 들려왔다.


- 여보세요. 남형우 변호사님 되십니까?

- ...

- 여보세요?


순간 형우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졌다.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면.

수화기 건너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강재경 대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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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강재경 대표(3) 24.09.16 30 3 11쪽
» 강재경 대표 (2) 24.09.13 42 3 12쪽
26 강재경 대표 (1) 24.09.12 35 2 11쪽
25 배신자 (5) 24.09.11 44 3 12쪽
24 배신자 (4) 24.09.10 40 3 13쪽
23 배신자 (3) 24.09.09 43 3 12쪽
22 배신자 (2) +1 24.09.07 44 4 12쪽
21 배신자 (1) 24.09.06 43 3 14쪽
20 진실 24.09.05 47 3 12쪽
19 안의균 검사 (2) 24.09.04 47 4 11쪽
18 안의균 검사 (1) 24.09.03 55 3 12쪽
17 재회 (2) 24.09.02 56 5 11쪽
16 재회 (1) +1 24.08.31 62 5 11쪽
15 홍승호 (1) +1 24.08.30 65 4 15쪽
14 오해 (3) +1 24.08.29 77 5 11쪽
13 오해 (2) +1 24.08.28 87 4 12쪽
12 오해 (1) +1 24.08.27 89 4 11쪽
11 서태석 (3) +1 24.08.26 93 4 12쪽
10 서태석 (2) +1 24.08.24 98 6 11쪽
9 서태석 (1) +2 24.08.23 111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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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또 너야? (1) +2 24.08.21 122 4 11쪽
6 김누리 검사 (5) +1 24.08.20 129 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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