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둑맞은 인생
-올해의 작곡가 수상자는!
하아......
-백장호입니다!
저 도둑 새끼.
-작곡가 백장호는 프로듀싱 회사 [J아카이브]의 수장으로, K-POP 계의 미다스의 손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그는 우주소년의 해외 진출에 포문을 연 곡인 『Short poem』,『TNT』를 비롯해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른 『Margarine』을 작곡, 현재는 해외 뮤지션에게까지 러브콜을 받고 있습니다.
미다스의 손?
직원들 곡 뺏어서 자기 이름으로 올리면서, ‘업계 관행’이라고 떠들던 저 개자식이 미다스의 손이라고?
-이런 영광스러운 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자리에 오르니, 우주소년단의 『Short poem』을 작곡했을 때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지랄.
‘작곡했을 때’가 아니라 ‘갈취했을 때’겠지.
저 새끼가 지껄이는 『Short poem』은 내가 작곡한 곡이다.
멜로디와 비트 모두.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음해와 마타도어가 저를 진창에 빠트렸지만, 진실이 저를 진창에서 꺼내주었습니다.
진실?
어디서 감히 진실을 입에 담아?
-지금처럼 정의가 승리하는 사회가 되길 진심으로 기도하며, 이 영광을 하나님에게···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리모컨을 집었다.
“이 씨발 새끼야!”
-콰과광!
TV 정중앙에 모니터가 박혔고, 곧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온 간호사는 나와 화면이 박살 난 TV를 놀란 눈으로 번갈아 쳐다봤다.
“환자분! 진정하세요!”
내가 링거를 뽑으려 하자, 간호사가 내 앙상한 팔을 잡고 나를 저지했다.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다.
폐암 말기로.
현대의 칠성신인 의사는 내게 3개월이란 수명을 부여했다.
내가 왜 암에 걸렸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보통, 암의 원인은 한 가지가 아니다.
술, 담배, 스트레스, 유전, 생활 패턴 등등.
하지만 내 경우엔 단순하다.
스트레스.
그리고 그 스트레스의 원인은 백장호 그 씨발 새끼 때문이다.
* * *
‘사람은 이름 따라간다’는 말이 있다.
그 덕분(덕분일지 때문일지)에 난 고등학교 때부터 작곡을 시작했고, 만든 비트를 큐오넷이나 리드머 게시판에 올렸다.
내 비트를 들은 몇몇 언더그라운드 래퍼들은 내 비트를 자신의 믹스테잎에 써도 되냐는 연락을 받았고, 나는 흔쾌히 허락했다.
오히려 내가 영광이었다.
무명 래퍼든 유명 래퍼든 간에, 내 비트를 좋다고 해준 거니까.
인정욕구.
그땐 그것이 전부였다.
돈?
그땐 돈에 무지했었다.
그렇게 내 비트는 여러 언더그라운드 래퍼들에게 쓰였고, 몇 곡은 실제로 발매가 되기까지 했다.
그 덕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계속 음악을 했다.
그렇게 스무 살이었던 2013년 11월, 나는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된다.
-류선율씨죠?
“네, 맞습니다. 누구세요?”
-백장호입니다.
“배, 백장호요? [J아카이브]의 백장호?”
-패기 넘치네. 바로 말 놓고.
“아, 죄송합니다. 너무 놀라서······.”
회사 내에 전속 프로듀서가 있는 SN, JIP, IG 같은 회사와도 간간이 작업을 할 정도로 업계에서 알아주는 프로듀싱 회사.
[J아카이브]의 대표가 내게 전화를 걸었다.
백장호는 나를 한국의 퀸시 존스라는 둥, 제2의 퍼렐 윌리엄스라는 둥 하며 나를 띄워줬다.
-내가 원석 감별사거든. 근데, 선율 씨 키워줄 수 있는 회사를 아직 못 만난 거 같아.
“그게 무슨 말씀인지······.”
-우리 회사랑 계약하자는 말이에요. 내가 선율 씨 대박 작곡가로 만들어 줄게.
심장이 마구 뛰었다.
호흡이 가빠져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J아카데미]의 대표인 백장호가 날 칭찬해 주는데, 기분이 안 좋을 수가 있을까.
게다가 키워주겠다니.
아이돌 음악은 음악이 아니라는 예술병 걸린 놈이 아닌 이상에야 이 제안을 거절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저, 정말요?”
-그러지 말고 만나서 얘기하죠. 주소 보내줄 테니까 시간 될 때 와요. 작업실 구경 시켜줄게요.
“지금 가도 되죠?”
-하하하. 이 친구 정말 마음에 쏙 드네. 그래요, 지금 오세요. 다행히 오늘 내가 잡힌 미팅이 없으니까.
전화를 끊자마자 백장호가 보내준 주소로 향했다.
도착한 작업실은 화려했다.
지하라고는 상상도 못 할 만큼 쾌적했고, 주황색 간접 조명은 공간을 포근하게 만들었다.
“반가워요. 전화로 얘기 나눴었죠?”
백장호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185는 되어 보이는 키에 떡 벌어진 어깨, 나이스한 인상의 남자였다.
“잘 생기셨네요.”
“대표님이 더 잘생기셨는데요.”
우리는 서로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작업실을 구경 시켜주던 그는 마지막으로 그의 개인 작업실로 날 데려갔다.
작업실을 본 내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5천만 원 가까이하는 ATC 스피커와 2천만 원짜리 베어풋 서브 스피커, 10대가 넘는 아날로그 신시사이저, 일렬로 자리한 아웃보드 하드웨어까지.
부티가 흐르다 못해 넘치는 작업실이었다.
방의 방음 역시 완벽했다.
너무 고요해서 내 심장 소리가 들리는 착각까지 일었으니 말이다.
백장호는 그 적막을 깨고 내게 A4용지 서른 장 분량의 계약서를 내밀었다.
“여기에 이름을 쓰면 선율 씨도 프로 작곡가가 되는 거예요.”
프로 작곡가.
나도 모르게 침이 꿀꺽 넘어갔다.
내가 계약서를 읽어보려고 하자, 백장호는 계약서 위에 손을 올렸다.
“어차피 다 형식적인 거예요. 어른들의 말장난. 예술가는 이런 글자에 휘둘리면 안 돼요. 중요한 건 영혼이잖아.”
그의 말에 나는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그가 내민 인주에 내 엄지를 파묻었다.
그곳이 내 무덤이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 * *
회사에 들어가고 처음 썼던 곡, 『오딧세이』가 당시 활발한 활동을 하던 XO의 타이틀곡으로 발매되었다.
하지만, 작곡가엔 내 이름 대신 백장호의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대표님.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뭐가?”
“제 이름이 안 올라오고 왜 대표님 이름만 올라와 있냐고요.”
“그렇게 하기로 했잖아?”
“···네?”
그는 내게 계약서를 내밀었다.
“여기 쓰여 있잖아.”
[계약 기간 동안 을의 작업물의 저작 인접권과 저작권은 회사에 귀속되며, 을은 회사에서 정해진 일정 금액의 월급만을 받는다.]
“아, 아니 이게······.”
나는 그 밑에 적힌 조항도 읽어 내려갔다.
[갑의 특별한 요구가 없을 시, 계약은 자동으로 갱신된다.]
[계약 기간 도중 해지를 요구할 시, 지금까지 을이 벌었던 수익금의 세 배를 갑에게 위약금으로 지불한다.]
[위약금은 한 해에 벌어들인 회사 수익금에서 계산한다.]
갓 스무 살이 된, 여전히 교복이 익숙한 나이가 뭘 알겠는가.
계약서를 보는 눈도, 읽는 방법도 모르거니와 사람을 의심하는 법도 몰랐다.
순진하게 당한 것이다.
“뭐해? 할 말 끝났으면 작업하러 가.”
그 후로 나는 하루 14시간씩 작업실에 갇혀 일했다.
회사를 나가려고 시도했었다.
그러나.
“위약금 물고 그냥 나가고 싶으면 그냥 나가. 근데, 두 번 다시 이 바닥에 발 못 붙일 거야.”
실제로 [J아카이브]에 위약금을 지불하고 나간 작곡가들이 있다.
그들은 작곡과 전혀 관련 없는 일을 하며 빚을 갚아나가고 있다.
터무니없는 위약금을 지불하기 위해 빚까지 진 것이다.
20세기도 아니고, 21세기에 이런 노예 계약이 말이 되냐고?
윤일병 사망 사건, 위디스크 양X호 사건, 남X 유업 대리점 상품 강매 사건.
이 모든 일도 21세기에 벌어진 일들이다.
180도 안 되는 월급을 받으며 내 곡을 백장호에게 갈취당했다.
말 그대로 갈취였다.
내가 쓴 곡을 저작권 협회에 등록할 때, 내 이름이 아닌 백장호 이름으로 올린다.
그 저작권료는?
당연히 회사로 들어온다.
내가 낳은 자식이 다른 부모의 손에 농락당하는 걸 지켜보는 기분은······.
“업계 관행이야. 나중에 너도 네 후배들 들어오면 나처럼 할 걸?”
백장호는 당연하다는 듯 내게 말했다.
그래도 내 곡이 차트에서 1위를 했을 땐, 기분이 좋았다.
자식을 반으로 갈라 나눠 가지라던 솔로몬의 판결에, 눈물을 머금고 자식을 떠나보내려고 했던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반기를 들 생각도 못 했다.
나를 포함해, 회사에 소속된 모든 작곡가들은 족쇄에 묶인 코끼리처럼 체념의 사슬에 종속되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6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내가 쓴 곡이 계속해서 발매됐지만, 여전히 난 월급 180만 원을 받았다.
그리고 2019년, 내가 쓴 『Short poem』이 빌보드 차트에 올랐다.
빌보드 차트.
작곡가라면 한 번쯤 꿈꾸는 목표.
분명 나의 곡이었지만, 내 곡이 아니었다.
협회에 등록된 작곡가 이름은 백장호였으니까.
이건 아니었다.
더 이상 참지 못한 나는 내 권리를 찾기 위해 백장호를 고소했다.
처음으로 든 반기였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음악을 그만두는 한이 있더라도 내 권리는 챙기려 했다.
내 후임이었던 승진이는 날 만류했다.
“형. 그냥 위약금만 물고 나가는 게 좋지 않을까. 고소까지 하면 앞으로···”
“평생 이렇게 살 바엔 그냥 저 새끼 죽이고 나도 죽는 게 나아.”
법정에서 마주한 백장호는 무표정한 얼굴로 날 쳐다봤다.
‘쫄지마. 내 권리를 찾는 거니까.’
내 권리는 나와 함께 고통받았던 작곡가들이 증인석에서 백장호의 편을 들었을 때 사라졌다.
마치 상장폐지가 된 주식처럼.
그 후,
1년간의 긴 재판 끝에 내려진 판결.
무죄.
법은 백장호의 손을 들어주었다.
나는 소송 비용과 위약금을 빚으로 떠안았다.
그 후로 나는 어떻게 되었냐고?
백장호의 말마따나 그 어느 엔터도 내 곡을 초이스하지 않았다.
줄어드는 건 잔고와 머리숱이었고, 늘어나는 건 흡연량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한국에서 팔 수 없다면 미국으로 간다.
백장호의 입김이 닿지 않는 곳으로.
그렇게, 신인의 마음으로 미국 시장에 뛰어들었고, 다행히도 몇몇 로컬 가수들에게 곡을 팔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깜깜한 터널의 끝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이 보였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었다.
그런 줄 알았는데······.
“폐암 말기입니다.”
폐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억울했다.
이제야 내 길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제야······.
나는 내 인생을 통째로 도둑맞은 것이다.
백장호에게.
* * *
“환자분! 정신 차리세요!”
아.
내 앙상한 어깨를 잡고 나를 말리던 간호사다.
몸이 계속해서 쉬고 싶다고 말한다.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진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가.
내 수명은 아직 한 달이 남았을 텐데.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 맞다.
과거의 좆같았던 추억을 떠올리니 수명이 줄어들잖아.
그것도 한 달씩이나.
백장호······.
죽이겠다.
아니지, 아니지.
죽이는 건 너무 단순해.
지금 내 모습을 봐.
이 얼마나 하찮은가.
죽음이란 건 너무 쉽다.
내 복수는 그렇게 평범하지 않을 거야.
나는 너를 천천히 잡아먹을 거야.
아주 느긋하게.
내가 차가워지는 만큼, 너는 점점 달아오르겠지.
속에서부터 널 익힐 거야.
네 속이 네 분노로 맛있게 익을 때쯤, 네 배를 갈라 내장을 씹어먹을 거야.
뭉크의 절규보다 더 절망스러운 네 표정을 보며 네 피를 잔에 담아 음미할 거야.
백장호······.
백장호······.
“백장호!!!”
-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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