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vs 마녀(129)
위기의 군단
"자, 자. 진정들 합시다. 우리가 흔들리면 어떻게 합니까?"
"얀샨 백작은 가족이 어반마르스에 있으니까 그런 소리가 쉽게 나오는 거요."
"그걸 리가 있습니까? 부인과 식솔은 아칸의 귀족 지구에 있습니다. 저라고 걱정이 안 될 것 같습니까? 하지만 그 전에 군단 병력의 통솔자입니다. 그에 대한 책임감을 잊지 말자는 것입니다."
제이미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꺼야 움직일 수 있을 겁니다. 저희의 병력은 거의 오만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고작 이백 명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믿겨 지십니까? 마족을 상대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아칸으로 보낸 인커전의 소식만 기다리고 있다니 한심한 노릇입니다."
노르딕은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제이미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과연 마교가 호응해 줄지 의문이오만."
"마족이 왜 롱홀드로 오는지? 그 목적이 우리일 수도 있고 아니면 마교일 수도 있습니다."
얀샨의 말에 그놈 장군이 대답했다.
"놈들이 이곳 지리를 알고 움직이는 것은 아닐 거요. 목적을 가지고 파견된 것이 분명한 움직임이었고 군단이 주둔하는 것도 잘 알고 있을 거라는 이야기요. 놈들을 지휘하는 자가 있고 최종 목적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거요."
제이미는 탁자 위에 놓인 메흘린의 서신을 가리켰다.
"마교는 그 누구보다 마족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철저히 연구해 놓았다는 것은 마족을 일찌감치 적으로 생각하고 준비를 해오고 있었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들은 이 싸움에 개입할 것이 확실합니다."
"마족에 대한 그 기록은 우리 테일리아드에서 조사한 것이오. 마교와는 관계없소. 마교의 누군가가 군단을 돕기 위해 그것을 보낸 모양인데 마교에서 잔꾀를 부린 것에 불과하오. 군단이 마족을 막아 주면 득이 될 것이고 패배한다 해도 마교의 병력에 피해를 줄 것이니 여러모로 마교에 이득이오."
노르딕이 잠시 지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 루엔의 성을 통과하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한쪽은 남서쪽 엘드리치 요새로 또 하나는 북서쪽 엠버스피어로 가는 길이오. 만약 남쪽 길을 택한다면 테일리아드가 목적일 것이고 북쪽의 길을 선택한다면 목표는 엠버스피어일 것이오."
그놈은 고개를 흔들었다.
"테일리아드는 확실히 아닌 것이 국가 상대로 이백 명의 인원을 보내서 왔다고는 말이 안 되오. 이번 놈들은 엠버스피어를 치기 위해 온 것이 분명하오. 내가 마교에 있을 때 알아낸 바에 의하면 마교의 교주라는 자가 몬테그레 숲에서 마족을 죽였다고 했소. 어쩌면 이번 출정은 그 복수인지도 모른단 말이오."
그때 얀샨이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그럼 굳이 우리가 로엔의 성에서 방어진을 구축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후퇴하여 남쪽 엘드리치 성까지 빠졌다가 놈들의 움직임을 보고 단 다음 행동해도 늦지 않을 겁니다. 놈들이 남쪽으로 내려오면 목표가 테일리아드 일 테니 테일리아드에 원군을 요청하면 될 것이고. 북쪽으로 가면 마교와 싸울 것이니 적절한 시기에 우리가 놈들의 뒤를 치면 되는 일이 아닙니까?"
"오, 과연! 차라리 그 수가 훨씬 좋을 것 같습니다."
얀샨 백작의 말에 호우란 백작이 찬성하고 나섰다.
"음, 그 수가 훨씬 이득인 것 같긴 한데···."
"솔직히 그런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닙니다. 아칸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르는데 전진은커녕 후퇴라니요. 저희는 일개 마족 이백 마리와 싸우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최대한 빨리 마족을 척살하고 아칸으로 진군할 생각을 하셔야죠. 뒤로 후퇴라니 가당찮지도 않습니다."
제이미의 화난 목소리에 그놈 장군이 짓궂은 말을 던졌다.
"당신들이 미적거리니 우리가 먼저 출병이 아니오? 여기는 우리나라가 아닌 당신들 나라요. 한심하기가 끝이 없구려."
노르딕의 눈썹이 확 지켜 올라갔다.
"다들 진정하십시오. 여러 곳으로 인커전을 보내 났으니 곧 정보가 모여들 겁니다."
"후퇴도 문제가 있습니다. 여기서 마족을 잡자고 시간을 허비하면 할수록 아칸은···."
필리프 백작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고작 이백을 어찌하지 못해 후퇴 논의나 하고 있으니 한심하오. 한심하오."
"그러는 그놈 장군은 그렇게 막강하다는 베틀 워락을 반수나 잃고 후퇴하지 않았소?"
"흥, 연계가 있었다면 우리가 밀리지 않았을 거요. 근접 전투 병력이 마족을 막아 주기만 했어도···."
"그럼 아군의 머리 위로 메테오를 떨굴 생각이었소?"
"그 방법이 아니라면 마족을 어떻게 잡겠다는 거요? 최소한의 희생으로 마족을 잡을 방법은 그것뿐이외다. 아니라면 다른 방법을 설명해 주시겠소?"
"성벽 위에 마법사들을 배치하고 놈들이 성벽으로 달려 들 때를 노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놈은 고개를 흔들었다.
"저번 싸움의 경험으로 보면 개개인의 움직임이 이미 인간의 움직임을 아득히 넘어서는 괴물이었소. 메테오가 떨어지기도 전에 선두의 놈들이 본진으로 뛰어들어 아군을 짓밟기 시작했소."
제이미도 거들었다.
"놈들의 몸에는 평범한 검과 창이 통하지 않습니다. 제가 공주님으로 받은 이 검만이 놈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었습니다."
그놈은 제이미가 차고 있는 검을 바라봤다.
"어디 내게 보여 줄 수 있겠소?"
제이미가 허리만 검을 풀어 주자 받아든 그놈은 검을 뽑아 들었다. 한동안 검신을 살피던 그놈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왕실에서 전해 오는 명검이군. 잉겔리움으로 만든 검이오."
"잉겔리움? 허 그런 말도 안 되는 비싼 금속으로 만든 검은 왕가의 사람 정도나 사용하지. 저도 아직 손에 잡아 본 적이 없는 검이외다."
"잉겔리움이 마족에게 통한다? 확실한 이야기오?"
"제 손으로 마족 여섯을 베었으니 답은 충분할 것입니다."
그놈은 제이미 백작을 아래위로 훑어봤다.
"음, 그대와 비슷한 냄새가 나는 사람이 있는데···."
"누구를 말하는 겁니까?"
"마교 교주요. 그는 대단한 사람이오. 나조차 압도될 만큼 대단한 무력을 지닌 자요. 그와 무언가 비슷한 냄새가 나오. 그럼 마족을 벨 수 있는 사람은 여기서 제이미 백작뿐이란 말이오? 심각한 일이군."
얀샨 백작은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건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격입니다. 확실한 승기를 잡아 오려면 그에 따르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아니면 마교의 도움을 반드시 끌어내야 할 겁니다."
"마교가 이번 전투에서 어떻게 나와 주느냐에 달려 있다는 건가?"
노르딕의 한숨 섞인 자조가 끝나갈 때쯤 밖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
테츠는 기지개를 켜고 밖으로 나왔다. 아리스토틀은 언제나 그렇듯이 둥근 탁자에 앉아 허브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었다.
그는 테츠가 다가온 줄도 모르고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현자는 늘 책을 읽고 있군요. 지겹지도 않습니까?"
갑작스럽게 들려온 음성에 아리스토틀은 깜짝 놀라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이고 저런 제가 너무 놀랬나 보군요. 하하."
"아, 아닙니다. 성과는 있으셨습니까?"
테츠는 작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아리스토틀은 순간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테츠가 예전에 보던 테츠가 아니 전혀 다른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 전 테츠를 볼 때는 거대한 산이 있는 것처럼 무거운 압박감을 받았었는데 지금은 전혀 그런 압박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 마져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하군요. 누구에게도 방해를 받지 않으려고 보호막을 펼쳐 두고 있었는데 기척도 없이 제 뒤로 오셨다니···."
"하하, 모든 것에게는 이치가 있습니다. 그 이치를 거스르지 않고 받아들인다면 그것과 동화가 될 수 있는 겁니다. 자 그럼 저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지라. 하하."
큰 웃음소리와 함께 테츠는 미끄러지듯이 아리스토틀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무슨 일이 있으신 것 같은데···. 사람이 완전히 달라 보여."
동탑을 나온 테츠는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테츠는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서서 가만히 눈을 감았다.
"느껴진다. 이건."
테츠는 즉시 내성을 향해 천마비행을 펼쳤다.
메흘린과 아드리안은 회의실로 들어오는 테츠를 맞이했다.
"병력이 조금 필요해."
"아. 군단을 도와주실 생각입니까?"
"아니 그건 아니고 더 급한 일이 있어."
"얼마나? 무슨 일입니까?"
"모우루리 채석장에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다. 그곳에 세워 두었던 골렘이 날뛰고 있어."
"네? 모우루리 협곡이라면? 그곳에 골렘 말입니까? 벌써 다녀오셨습니까?"
"아니 골렘의 기척이 느껴진다는 말이야. 그곳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 분명해."
아드리안이 고개를 갸웃하는 메흘린 사이로 끼어들었다.
"병력은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어느 규모로?"
"음, 한 백 명 정도면 될 것 같아. 세렌과 장로 세 명 이상을 포함해서 레베카의 별장으로 보내. 난 레베카에게 먼저 가 있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테츠가 나가고 난 다음 메흘린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모우루니 협곡에 골렘이 날뛴다고? 아니 여기서 거리가···. 어떻게 아실 수 있다는 거지?"
"그건 나중 일이고 어서 장로들에게 연락이나 취하게."
레베카는 제단을 향해 앉아 있었다. 앙증맞은 몸체에서 범상치 않은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아칸에는 아직 많은 수의 퍼밀리어가 있었고 그것을 통해 아칸의 정세를 살피는 중이었다.
"어때 뭐라도 알아낸 것이 있나?"
갑작스럽게 들려온 소리에 레베카는 화들짝 놀라 어깨를 움찔했다.
"아니 어떻게 들어온 거죠? 전혀 느끼지를 못했는데?"
"하, 그 결계 말이야? 뭐랄까 그것도 다 법칙이 존재하는 거니까 그 법칙을 건드리지 않고 순응하면 간단히 통과할 수 있지."
"말도 안 돼. 그 결계는 생명체가 접근하면 바로 신호를 보내는 술식인데···."
"그건 그렇고 아칸은 어때?"
"할 이야기는 많아요. 먼저 성황께서 어떤 명령을 내릴지 기다려 보고요."
"넌 내 아내야. 남편이 보다 시아버지 말이 더 우선인 거야?"
"아직은요. 개는 주인의 말을 잘 따라야 먹히지 않아요. 아니면 나중에 사냥감이 될 수도 있다고요."
"섬뜩한 말이군. 온두라스와 마크라스의 움직임은?"
"온두라스는 내성으로 들어갔어요. 그가 쳐 놓은 방어막은 대단히 완고하고 우리가 아는 기술이 아니라 뚫을 수 없어요. 까마귀로 하늘 위에서 지켜보고 있으나 아직 다른 움직임은 없어요. 귀족 지구도 마찬가지로 마족 때문에 거의 봉쇄된 상태예요."
"마족이라면 아칸 시티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인데 남쪽의 경비와 기사들만 잡아먹고 나머지 그대로 놔둔다? 이건 누구 명령한 것일 테지."
"아마도요. 마음만 먹는다면 아칸 시티는 금방 점령할 수준이죠. 귀족 지구는 물론 서쪽의 평민 지구. 북쪽의 천민 지구도 그냥 두고 있어요."
"마족도 신경 쓸 일이 한두 개가 아니군. 온두라스는 마족과 전혀 관계없는 인물이다. 마족도 당연히 신경 쓰일 테지."
"마족이 온두라스와 마크라스에 덤볐다가 큰 피해를 봤으니 지휘부에서도 난관에 부딪쳤을 거예요. 케이사르가 어디까지 계획을 꾸몄는지 알수가 없네요. 그가 이런 계획을 꾸몄다면 통제 가능한 수단도 분명히 생각해 뒀을 겁니다. 지금 마족이 남쪽 지구 이상 건드리지 않는 것은 다 케이사르 때문이겠죠."
"그의 계획은 계속 빗나가고 있어. 자신의 손아래 둔 마녀조차 완전히 통제하고 있지 못하니. 그 마녀는 왜 아그니스 공주를 통해 온두라스 일행을 불러왔는지 무슨 의도일까?"
"세상에서 가장 못 믿을 것이 마녀예요. 조금의 틈만 보여도 파고들 거예요."
"너도 마녀야."
"그건 그렇고 당신에서 나는 냄새가 상당히 바뀌었네요. 이상한 기운이 더 느껴져요."
"누가 마녀 아니라 할 갈까 봐 눈치는 백 단이구나. 작은 변화가 있었어. 쉽게 설명하면 내가 가르치는 무공이란 것은 수련하면 계속 레벨을 올릴 수 있고 일정 레벨에 도달하면 새로운 힘을 깨우칠 수 있지."
"당신은 도대체 그 무공이란 것을 어떻게 습득했죠? 하루 이틀 사이에 되는 것이 아닌데? 도대체 그 무공은 어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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