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vs 마녀(153)
마지막 담금질
앨빈의 눈빛이 살짝 뒤틀어졌다.
"쥐도 새도 모르게라···. 무슨 특별한 방법이 있는가?"
"장로님도 잠을 자야 하고 먹으면 싸야 하지 않습니까? 저는 목표의 틈을 찾을 것이고 인내심을 가지고 틈을 노릴 수 있도록 훈련받았습니다. 제가 말씀드렸다시피 정면 대결은 분명히 패합니다. 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틈을 노린다면 완벽히 성공하게 할 자신이 있습니다. 저의 손길을 피하시려면 잠을 주무시지 않고 심지어 화장실 사용도 하지 못하실 겁니다. 그리고 식사에 독이 들어 있을지 모르니 매번 확인해야 하실 겁니다. 제가 쓰는 독은 특별한 것이라 확인하기 매우 어려우실 겁니다."
"허, 가장 비열한 방법만 배운 거군. 정면 승부가 안되니 뒤를 노린다는 건가? 그건 의미 없는 짓이다. 아무리 쥐새끼가 무서워도 인간을 죽일 수는 없지."
"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을 쓰도록 훈련받았습니다. 정면 대결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교주님께서 말씀하시길 첫 만남에서 장로들이 너를 의심할 거니 네 실력을 잠깐 보여 주어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 방에 들어올 때 이미 독을 풀었습니다."
그 말에 장로들은 물론 메흘린까지 화들짝 놀랐다.
"매리엔!"
"저는 괜찮아요."
테드버드와 앨빈은 즉시 내공을 끌어 올렸다.
"엇."
"큿! 이게 뭐냐? 왜 내공이 모이지 않지?"
"내공이 모이지 않아."
"말도 안돼 이 무슨 일이?"
모그룩은 허리에 찬 검을 뽑아 들었다.
"이제부터 제가 마음만 먹으면 이 방안의 사람은 다 죽습니다."
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테드버드는 아가므네를 바라봤다.
독에는 세상에서 적수가 없다는 그녀다. 그녀의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두 독이다.
"아가므네?"
"저도 중독된 것 같습니다. 처음 보는 독입니다. 이건 아마도 보통 사람이 아닌 내공을 익힌 자에게만 작용하는 특별한 독인 것 같습니다."
"저를 뭐라고 부르던가요? 처분자입니다."
앨빈은 내공을 끌어모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내공이 모이지 않으면 무공은 무용지물이다.
내공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끌어 올리면 순식간에 풀어져 버렸다.
"아무런 느낌도 없었어.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테드버드도 놀란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제가 말씀드렸다시피 무색무취무미의 독입니다. 이건 내공을 끌어 올리지 못하도록 막고 있어요."
"제가 처분자로서 여러분과 정면 대결을 할 수 없으니 확실하게 처리하려면 힘을 봉인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이렇게 되는 겁니다."
모그룩의 신형이 번개같이 움직였다. 검이 앨빈의 목을 치고 지나갔다. 앨빈은 알고 있으면서도 반응할 수 없었다.
모그룩이 천마비행을 펼치는 것도 알았고 그가 탈혼마검의 일초식을 사용하는 것까지 알아봤다. 하지만 내공이 모이지 않으니 신체 반응이 모그룩을 따라잡지 못했다.
"제가 마지막 순간 검을 회수하지 않았다면 앨빈 장로의 목을 취했을 겁니다. 이 방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을 죽이는 데 다섯 번만 휘두르면 됩니다."
앨빈은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검신을 느끼며 소름이 돋았다.
"이럴 수가! 어떻게 내공이 이렇게 간단히 제압당할 수 있다는 말이냐?"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이걸 배우기 위해 몇 년 동안 바닥을 기어 다녔습니다."
"됐다. 자네의 능력은 잘 알았어. 이제 장난은 그만두도록 하지."
모그룩은 앨빈의 목덜미에서 검을 회수했다. 검이 검집에 들어가서 찰칵 소리가 나자 모그룩이 말했다.
"방금 여러분은 해독되었습니다."
"아니, 미친!"
앨빈은 즉시 내공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해일처럼 내공이 끌어올려졌다.
오른손바닥에 은형마환장의 내공이 모였다.
"말씀드렸다시피 그걸로 저를 치신다면 저는 죽을지도 모릅니다. 정면 대결은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앨빈은 입술을 씰룩이며 은형마환장을 풀었다.
"거참, 신기한 능력을 지녔군. 갑자기 자네가 무서워지는군. 그래"
"이 기술은 단 한 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교주님께서 허락하셨고 지금 이 순간부터 저는 이 기술을 사용할 수 없으니 처분자의 직위를 박탈당했습니다. 이제는 정상적인 마교의 제자입니다."
"한 번밖에 사용하지 못한다고?"
테드버드의 말에 모그룩이 답했다.
"그렇습니다. 마교의 배신자를 죽이기 위한 최후의 수법입니다. 처분자는 이 기술을 이용하여 높은 내공을 가진 목표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테드버드는 빙그레 웃었다.
"교주님께서 우리에게 훈시를 하는 거구먼. 딴마음 먹지 말도록." "딴마음 먹을 일이 있을까? 그런 놈이 있다면 내 손에 먼저 죽을 거야."
앨빈의 화난 투정을 뒤로 하고 테드버드는 모그룩을 바라보고 말했다.
"처분자로서의 이 기술은 이번 임무와는 관계있어 보이지는 않는군."
"그렇습니다. 한 번만 사용 가능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미 써 버렸으니 의미 없습니다. 제 다른 능력은 숨어들어 정보 수집을 하는데 특화되어 있습니다. 어쌔신과 시커의 능력을 합쳐 놓은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방금 사용한 무공이 천마행공과 탈혼마검인데···. 웬만한 당주는 능가하는 실력이야."
"저는 당주를 상대하도록 훈련받은 것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제 목표는 장로입니다."
"듣기 매우 거북한 소리만 자꾸 하는군. 교주님이 직접 그렇게 말씀하셨어도 서운했을 거야."
"자네는 우리를 묶어둘 기술을 이미 소진했어. 자네 말이 거짓이 아니라면···."
"네 거짓이 아닙니다. 그 기술은 단 한 번만 사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기술이 원래 그런 건가? 아니면 교주님께서 한 번만 사용하도록 허락하신 건가?"
"자세한 것을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저는 처분자로서의 힘을 잃었으니 이제 처분자는 아닙니다. 제 다음으로 임무를 맡을 처분자를 위해 자세한 것은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앨빈의 눈에 쌍심지를 켰다.
"뭐? 또 처분자가 있다고?"
"저도 자세한 것은 알지 못하나 교주님의 말로는 그런 것 같습니다. 물론 저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단 그가 지금 맨시티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으, 소름이 다 돋네. 아니 교주님은 우리를 그렇게도 믿지 못하시나. 정말 서운한걸."
"믿고 안 믿고의 이야기가 아니야. 교주님은 우리보다는 마교 전체를 보고 계시는 거야. 사람이 사는 세상이고 언젠가는 배신자도 나오게 되어 있어. 우리가 아니더라도 말이지. 지휘자로서 그런 일을 산정하고 미리 대비하는 것도 현명한 일이지. 앨빈도 그렇고 나도 그렇지만 마교를 배신할 생각 따위 해 본 적이 없으니 처분자가 있든 말든 상관할 일은 아니지."
"그래, 테드버드 말 잘했다. 우리와는 상관 없는 거야. 내 말이 그 말이지."
"넌 조금 흥분한 것 같군."
"흥분이라니 아. 조금 화난 것은 있어. 나도 인간이다 이 말이야."
"이번 임무가 중요하니 교주님은 숨겨 놓은 패를 꺼내 주셨고 모그룩은 우리 앞에 나타나 단 한 번 사용 가능한 힘을 보여 주는 것으로 처분자의 중임을 벗어 던진 거구나."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잠자코 있었던 메흘린이 입술을 움직였다.
"이제 상황 정리된 거로 알겠습니다. 모그룩과 아가므네 당주는 앨빈 장로의 밑으로 들어가 호흡을 맞추는 것으로 수련을 시작하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빠지고 작전 회의실에는 세 사람이 남았다.
"모그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내 생각은···."
"동시에 말해 볼까?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저도 끼어도 될까요?"
"좋아. 그럼 세 사람이 동시에 말해 보지. 하나, 둘, 셋!"
"그림자의 왕"
"하츠 린네."
"그림자왕!"
메흘린, 아드리안, 메리엔 세 사람의 입에서 나온 인물은 모두 한 명을 가리키고 있었다.
칠무신의 일곱째 그림자의 왕 하츠 린네
"다들 같은 생각인가?"
"애초에 처분자라는 인물이 있을 수 없지 않은가? 교주님이 우리에게조차 말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드는군요. 칠무신 하츠 린네라면 굳이 숨길 이유가 없지 않았을까요? 그것도 처분자라는 이상한 명칭을 사용하면서까지?"
"그건 우리가 모르는 어떤 비밀이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
"그렇다고 확정 짓지는 마세. 단지 우리의 추측일 뿐이니까."
"교주님 입장에서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라면 역시 칠무신밖에 없겠죠.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인물은 그림자 왕뿐이고."
"국경을 넘으면 기술을 사용하긴 힘들 테지만 또 그림자로서 어디로 숨어드는 것은 그 누구보다 뛰어나긴 하지."
"그래요. 그림자 능력을 사용하면 인간이 들어가지 못하는 곳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단 말이에요. 어쩌면 이번 임무에 가장 어울리는 인물이에요. 세 권의 책을 찾는 임무는 오직 하츠 린네만이 할 수 있겠죠. 저는 그래서 모그룩을 그림자 왕이라고 본 거예요."
"비약적인 생각이지만 단정은 짓지 말자고. 모그룩이 그림자의 왕이 아니라 진짜 처분자일 수도 있으니까. 괜한 추측으로 분위기를 흩트리지 말자고."
아드리안 턱에 손을 괴고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아가므네의 행동이 조금 수상했어. 그녀가 내공이 모이지 않는다고 했지? 그녀는 내공을 끌어 올린 적이 없었거든."
"아가므네는 최근 교주님 밑에서 제이미 백작과 함께 수련했었지? 교주님께서 직접 가시지 못하니까 여러 가지 부탁을 하신 모양인데."
"우리 세 명은 조심해야 합니다. 교주님의 신분이 노출되면 세 국가에서 엄청난 압박을 해 올 겁니다. 이제 황제 자리의 후계자 선임이 몇 달 남지 않았습니다. 성황께서는 그 전에 이번 사태를 해결하려 합니다. 저희의 임무가 막중하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올해가 기한이다. 신성불가침 조약의 내용을 보면 성황 잉그람의 황제 기간은 정확히 명시되어 있다. 조약에 따르면 성황은 올해 신 황제를 공표해야 한다.
하루 뒤 레베카의 전령이 작전 회의실에 달려왔다.
며칠 전 퍼밀리어를 이용해 엠버스피어로 출병했던 마족의 지휘자 머리를 아칸 왕궁으로 배달했었다.
그 후 마족이 어떤 행보를 벌이는지 모두의 촉각이 곤두서 있었다. 마족의 움직임으로 이번 임무의 시작점이 바뀌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족은 배달된 머리로 인해 엠버스피어 공략이 실패했음을 인지했을 것이다. 레베카는 이들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과연 복수를 위해 재차 마른 마족이 파견될 것인지 아니면 겨울이 완전히 물러 날 때를 기다리는 것인지 아니면 카이악으로 구성된 부대를 파견할 수도 있다.
레노번은 카이악의 비행 능력을 그리 좋게 보지 않았다. 카이악의 날개는 박쥐 날개로 깃털이 달린 새와 같이 오랜 시간을 비행하기 힘든 구조였다.
특히 몸체의 무게가 상당하므로 장거리 비행도 어려웠다. 엠버스피어까지 날아가더라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파악했다. 그리고 단독으로 카이악을 보내기 힘든 이유는 어차피 전투가 벌어지면 지상으로 내려와야 한다.
지상군 위주로 파견된 마족들이 전멸한 것으로 보아 카이악만으로 구성된 부대는 무리수가 있었다. 그들은 매우 놀랐을 것이다. 엠버스피어를 점령 아니 말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신경도 쓰지 않았을 테니까.
이들은 이 세계에 건너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인원도 소수다. 원활한 통신 체계가 있을 수 없었다. 당연히 엠버스피어를 박살을 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부대 지휘관의 잘린 머리통이 떨어졌으니.
이것은 명백한 마족에의 도전장과 같은 것이었다.
메흘린은 레베카의 전령이 가져온 편지를 읽었다. 다 읽은 그는 아드리안에게 건넸다.
아드리안은 편지 내용을 파악하고 매리엔에게 넘겼다.
"우리의 예측이 살짝 빗나가는군요."
"흠, 마족을 꾀어내길 바랐는데 의외로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군."
"여기서 고민을 해 볼 수밖에 없네요. 겨울이라 그런 건지 아예 움직일 생각이 없는 건지."
"어떻게 생각해? 여기서 움직이는 것은 힘들지 않겠나?"
"힘들다고 봐야 합니다. 마족은 외성에 죄다 포진하고 있을 겁니다. 세렌 팀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곳을 뚫는 것은 무리수죠. 어떻게 하든 마족의 머릿수를 줄여야 하는데···."
"눈밭 때문에 나가지 않는다는 것은···."
"마족의 신체 능력을 고려할 때 눈밭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아요. 그들이 복수를 생각한다면 당장 출병 했어야 정상일 거예요."
"섣불리 움직이기 힘들게 됐습니다. 우리는 인내심을 시험받게 됐군요. 일단 길이 열릴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 보고는 어반마르스에 들어갈 겁니다. 그쪽에서 어떤 명령이 내려올지 모르지만 우리는 성황의 결정에 따라야 할 상황까지 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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