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vs 마녀(179)
가중된 혼란(混亂)
파니는 외관상 괜찮아 보이는 즉 부유해 보이는 건물 안으로 숨어 들어갔다.
그녀는 세븐 어쌔신에다 천마잠행까지 배웠으니 숨어드는 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물 만난 고기랄까.
더군다나 교주가 직접 가르쳤기에 단점이 보완된 완벽한 버전의 천마잠행을 구사했다.
어렵지 않게 구해온 옷가지는 모그룩의 신체 치수와 거의 같아서 움직이는 데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모그룩은 그녀의 눈썰미에 대해 칭찬했다.
두 사람은 아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민의 복장을 하고서야 마음이 편하게 거리를 돌아 다닐 수 있었다.
아가므네는 항시 주변을 살피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어 스쳐 가는 사람 하나하나도 경계의 눈빛을 끄지 않았다.
하지만 외관상 모습은 할 일 없이 어슬렁거리는 평범한 시민이다.
세렌의 팀이 머무는 곳이 얼마 남지 않았다. 거리에는 무장한 용병과 모험가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케이사르 후작이 내건 현상금 사건이 아직 철회되지 않았기에 그들 모두 눈에 쌍심지를 끼고 돌아다녔다.
이 상태에서 약간이라도 틈을 보이면 꿀 항아리에 모여드는 개미와 같은 꼴이 날 것이다.
"이대로 들어 가려고요?"
"그럼 달리 방법이 있나?"
"조금 있으면 어둠이 내려 앉을 건데 상점 구경이나 하면서 기다리죠. 분위기도 볼 겸."
모그룩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무래도 어둠이 내려앉으면 그만큼 감시의 눈도 줄어 들 테니까."
***
"스승님은 어떻게 되셨습니까?"
포탈에서 나온 스카레이는 기다리고 있던 메흘린의 소맷자락을 붙잡고 물었다.
"동탑의 힐러가 치료 중이니 아무 문제 없을 거다. 테세라는 이미 회복하여 정신을 차렸다."
스카레이는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떨리는 감정을 추슬렀다.
"자네들에게 들을 이야기가 많아. 레베카님도 기다리고 계시네."
"제딘 너는 나와 같이 가자. 나머지 제자들은 동탑으로 엘빈 장로님을 찾아가도록 해라."
레베카는 뜨거운 찻잔을 인원수대로 테이블에 올려놓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스카레이는 레베카를 처음 본다. 그리고 여지없이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말로는 들었지만, 실제를 보니 더욱 놀라웠다.
열 살 안팎의 이 귀여운 꼬마가 마교의 안주인이라니.
"뭘 멍하니 있어? 자리에 냉큼 앉지 않고?"
"아, 네 알겠습니다."
"보고 들은 건 단 하나도 빠짐없이 내게 이야기해."
스카레이는 이 귀여운 꼬마 숙녀의 말투가 거슬렸지만, 감히 마교의 안주인이니 그런 내색은 단 일도 얼굴에 올릴 수 없었다. 군사 메흘린도 매우 공손한 자세로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초대장을 받은 것은 엘빈 장로였습니다. 스승님은 망설이지 않고 그 초대에 응했는데···."
스카레이의 이야기는 천천히 진행됐고 그는 꼬마 숙녀를 위해 될 수 있는 한 또박또박 발음에 신경 썼다.
"그래? 케이사르가 그런 위력의 힘을 사용했다고?"
"그렇습니다. 엘빈 장로도 어찌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정말 간발의 차이었습니다. 저는 엘빈 장로를 구하겠다는 마음이 커서 주변을 잘 살피지 못했는데 어느새 모그룩과 아가므네가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들은 은밀히 움직이는 것이 특기라 저희가 눈치를 채지 못한 것 같습니다."
"모그룩이 케이사르와 그 부관들을 상대했다고?"
"그 위세가 대단했습니다. 기사 네 명은 아가므네의 독에 당했고 모그룩은 부관을 상대했는데 그들을 압도했습니다."
"너희들은 두 사람에게 일을 맡기고 엘빈 장로를 구해 탈출했다 이 말이지?"
"모그룩이 저더러 엘빈 장로를 모시라고 했는데 그때는 경황이 너무 급한지라 사정을 보거나 경황을 살필 겨를이 없었습니다. 스승님의 생명이 위중한 상태였기에 빨리 그곳을 벗어나는 것이 급했습니다."
"엘빈 장로가 그 정도로 될 만큼 위험한 상대였는데 모그룩과 아가므네 둘이 막았단 말인가?"
"레베카님께서는 그 장면을 보고 있지 않으셨습니까?"
"반사르의 성은 심각하다 싶을 정도로 보호 마법이 걸려 있어. 쥐는 내성에 들어갈 수도 없어. 에르제베트의 퍼밀리어가 다니는 통로를 벗어나면 그 즉시 신호가 끊어져 버려. 하늘 위 까마귀도 마찬가지지 일정 거리 안으로 들어가면 힘을 잃어버려. 아마도 킹덤 오브 소서러스 정도의 마법사가 상주하는 거겠지. 아니면 위치 헌터가 있거나."
"지금 모그룩의 행방은 알고 있습니까?"
"아니 그들이 반사르성에 침입한 이후로는···."
"테드버드에 전령을 띄워 놓았습니다. 즉시 모그룩과 아가므네를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다만 케이사르가 걸어놓은 현상금 때문에 서쪽 지역에서 건너오기가 벅찬 모양입니다."
"그들의 시선이 반사르와 일루엠 길드에 쏠리면 세렌이 움직이기 훨씬 수월해. 진정한 목표는 운명의 등불을 밝히는 것임을···."
"그럼 오늘 저녁에 세렌을 움직이는 것으로?"
레베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메흘린은 스카레이와 제딘 때문에 말을 아낄 수밖에 없었다.
"성황 잉그람께서 우리 마교에 의뢰하신 임무다. 그것을 달성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마교의 향후 운명이 판가름이 날 정도로 중요한 임무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그 임무만큼은 반드시 완수해야 한다."
레베카는 조금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자꾸 모그룩이 눈에 밟혀. 내게 비밀이 없는 그 사람이 모그룩의 존재에 대해 단 한마디도 없었거든."
"그는 처분자라 하여 교주님께서는 모두에게 비밀로 한 자이기 때문일 겁니다."
"스카레이 너는 세렌의 능력을 잘 알지? 마족과 싸우는 것을 본 적도 있을 거니."
"물론입니다. 솔직히 실력으로 놓고 보면 세렌 장로가 제일이라."
"그럼 세렌과 모그룩을 비교한다면 어떻게 생각해?"
"음, 글쎄요. 둘 다 장단점이 있지만, 순전히 싸움 실력 하나만으로 보면 세렌 장로가 위일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다른 세세한 부분은 모그룩이 훨씬 위인 것 같습니다. 상황 판단 능력이나 순간 대처 능력은 혀를 내두를 지경이니까요. 마치···."
"마치?"
"그니까 마치 교주님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야, 교주님이 직접 가르쳤으니 그렇지 않을까? 자신의 그림자라 하지 않았던가? 모름지기 그림자는 주인의 행동과 똑같아야 하니까."
"그럼 다행이지만, 모그룩 그자는 은연중에 나의 감시망을 알고 피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누가 레베카님의 감시망을 피한다는 겁니까?"
"내가 다른 쪽에 가 있을 때만 골라서 움직인 것도 그렇고. 보고서도 아직 올라오지 않았지? 반사르성에서 책의 정보를 획득했는지 어쨌는지 즉각적인 보고도 없어."
"혹시 반사르성에서 어떤 일을 당했을 수도?"
"아니, 내가 즉시 성에 가 봤어. 에르제베트의 손바닥 위까지 올라갔었는데 눈치를 챘는지 그녀를 데려가 버리더군. 그건 모그룩이 정상적으로 임무를 수행한 결과일 거야."
"너무 과한 의심이 아닐까요? 그는 마교의 충실한 제자이며 특히 교주님이 직접 가르친 인재입니다. 그가 움직인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며 마교에 이로운 우면 이로웠지 해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겠지. 그가 직접 가르친 제자이니.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그의 성격이 교주와 상당히 닮았어. 무슨 일을 접해도 당황하지 않고 문제의 속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미 답을 내놓고 행동한다. 남들보다 서너 수는 먼저 앞질러 나가는 것도 그렇고 나도 당황할 때가 많아. 옛날 교주님 성격으로는 상상도 할수 없는 행동력이야. 모그룩과 교주님은 한 사람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인걸"
"교주님은 동탑에서 사령인 레번을 조종하고 있지 않습니까? 교주님을 직접 만나 뵙고 오지 않았습니까?"
"물론, 내 눈으로 확인했고 그와 대화도 나눴지. 그는 분명 동탑 수련자의 광장에 계시는 것은 맞아."
"그럼 무슨 문제가 될 것이 있을까요? 오늘은 세렌 장로가 무사히 임무를 완수하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그래, 내 걱정이 기우일 뿐이라 생각해야지. 군사 말대로 가장 중요한 것이 이제 막 시작됐어."
***
아가므네는 탁자 위에서 편지를 쓰는 모그룩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그룩은 잠시 정리할 것이 있다며 여관이 투숙했다.
모그룩은 첫 번째 서신을 보낼 때 가장 중요한 책에 관한 정보는 보고하지 않았다.
아가므네도 그 사실을 매우 궁금하게 생각했다.
에르제베트로부터 책에 관한 정보를 들을 때 자신도 곁에 있었으니까.
아이언 캐슬에 갔던 일도 에르제베트가 전해준 정보를 토대로 갔던 것이다.
가장 말도 안 되는 어려운 미션은 토렘의 서를 케이사르 본인이 직접 몸에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토렘의 서를 회수하려면 말 그대로 케이사르를 쓰러트리든지 아니면 그가 잠을 자거나 목욕을 하는 등 책을 몸에 떼어놓을 때를 노려야 했다.
하지만 모그룩은 간단하게 토렘의 서를 회수했다. 그것도 완벽한 진본이었다.
그날 아가므네는 스카레이와 제딘의 탈출을 도울 수밖에 없었다. 모그룩 혼자 그곳에 남겨 놓은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그는 자신보다 더 천마잠행을 능숙하게 펼쳤기에 시간을 벌고 그곳을 탈출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탈출했을 뿐만 아니라 토렘의 서까지 회수해 왔다. 토렘의 서는 케이사르가 직접 지니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모그룩은 그에 대한 부가적인 설명은 하지 않았다. 그가 운 좋게 전투 중 케이사르가 흘린 책을 주웠을 수도 있고 말하지 않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보고할 때는 책의 내용에 관한 사항은 일절 하지 않았다.
두 번째 마탄의 서도 해결되었다. 마탄의 서 원본은 성황이 가지고 있고 필사본은 불태웠으며 내용을 암기하고 있던 아르마할도 결국 모그룩 손에 생을 마감했다.
아이언 캐슬의 제이콥도 지금쯤이면 세상을 달리했기에 케이사르 측이 알아도 증거를 수집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르마할이 죽었다는 것을 알면 어떻게 행동할지는 모를 일이다.
"왜 책에 관한 사항은 보고하지 않은 거죠?"
"세 권이다. 교주님으로 받은 임무는 세 권의 책을 찾으라는 것이다. 이제 두 권을 찾았고 한 권이 남았지. 임무를 완수하고 난 다음 보고하려고 생각했을 뿐이다. 하지만 나머지 한 권은 이미 아칸 시티를 떠났으니 이제 정리해서 보고할 참이다."
"당신은 과정은 중요하지 않고 결과만 중요시하는군요."
"당연히 임무에 관한 결과가 중요하지. 과정이야 술자리에서 안주 삼아 푸는 거고."
"그럼 아칸에서 우리의 임무는 끝이네요? 그렇죠? 그런데 왜 세렌 장로와 함께 할 생각인 거죠?"
"나야 선택의 권한이 있을까? 교주님이 시키는 대로 할 뿐. 나는 그의 그림자야."
"교주님의 명령이에요?"
모그룩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오기 전 교주님이 내게 명령하신 여러 가지 명령 중 하나야."
"여러 가지 명령?"
"바보야. 계획이 생각한 대로만 갈 수가 있나? 여러 가지 변수가 있을 테고 그때마다 행동해야 할 지시를 따로 받았을 뿐이다."
"그렇군요. 그럼 책의 보고를 미룬 것도?"
"당연히 교주님의 지시한 바지. 운명의 등불을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족과 온두라스와 관계된 책을 회수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하셨다. 그 일을 오롯이 나에게 일임하셨고. 내겐 과정을 보고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임무를 성사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다시 한번 묻겠어요. 그때 저를 기절시킨 것은 마테니 장로 때문이라고 하셨는데? 저와 마테니 장로 사이를 어떻게 그리 자세히 알고 있죠? 교주님 성격상 그런 일을 시시콜콜하게 설명하실 분은 아니실 텐데요?"
"자신의 그림자가 되기 위해서는 똑같이 행동하고 똑같이 생각하라 하셨어. 같은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어야 이런 사고가 가능한 법이지. 만약 너와 마테니 장로의 일을 알지 못했다면 그런 조처를 하지 못했을 거야. 그 비밀을 절대 네가 들어서는 안 되는 비밀이야. 나를 네 인생을 구제한 은인이라고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
"좋아요. 그 정도 선까지 이해하도록 하죠. 하지만 당신의 몸에서 비밀의 냄새가 가득하게 묻어나요."
"신경 쓰지 않으면 네 행복 지수가 올라가."
"아마도요. 그렇게 보이네요. 그럼 세렌 장로 팀에 합류해서는요? 케이사르 일로 조용해질 때까지 움직이지 말라는 권고가 내려지긴 했지만···. 케이사르는 절대 조용히 있지 않을 거예요."
"지금 내성을 공격하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지. 케이사르가 마족은 물론 온두라스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어쩌면 내성의 온두라스에 연락을 취했을 수도 있으니 시간을 두고 상황을 살피는 것이 좋아. 맨시티에도 그렇게 보고 할 거야."
모그룩은 보낼 서신을 다 적은 뒤 까마귀 전통에 넣을 수 있는 크기로 접었다.
"이걸 여기서 보낼 수는 없고 테드버드 장로에게 부탁해야겠다. 너는 여기 있어. 나 혼자 서쪽 지구에 다녀올 테니까."
"저를 혼자 떼놓을 생각인가요? 같이 움직이죠."
모그룩의 눈에 귀찮은 빛이 잠시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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