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외천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팔복
작품등록일 :
2014.01.22 13:19
최근연재일 :
2016.04.15 13:39
연재수 :
67 회
조회수 :
180,885
추천수 :
4,542
글자수 :
258,503

작성
16.02.03 11:26
조회
1,764
추천
51
글자
11쪽

청허진인(靑墟眞人) 2

DUMMY

무당혈야 이후 무당파는 내부 정리로 인해 매우 바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무너진 전각을 다시 세우는 것도 그러하고, 사상자의 수를 파악하고 후처리를 하는 것도, 또한 무당혈야의 장본인인 신마궁에 대한 소견서를 무림맹에 전달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일도 있었다.


이렇게 일이 쌓이다 보니 무당파의 제자들은 수련에 매진할 시간이 부족해 대부분의 제자들이 수련을 포기하고 일 처리에 매진하고 있었다. 무당제일검 현검진인까지 본산을 내려가 속가문파들의 동요를 달래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무당파 내에서 홀로 수련에 매진하고 있는 한 소년이 있었다.


"천스물둘! 천스물셋! 천스물넷!"


소년의 검에서 펼쳐지는 것은 단순한 직격세였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 자세가 깔끔하면서도 절제되어있어, 소년의 수준이 상당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소년의 이름은 무성. 검천을 따라 무림행에 나선 신검문의 마지막 제자다.


"천오백!"


천오백 번의 직격세 수련을 마친 성이 크게 숨을 들이키며 흩으러지려는 자세를 가다듬었다. 무복이 땀에 흠뻑젖은 것이 열심을 다해 수련에 매진했음을 알게 해 주었다.


장문인을 비롯한 모든 제자들이 눈코뜰세 없이 바쁜 이 와중에 성이 이리 수련에 전념하고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별게 아니었다. 할 것이 수련 밖에는 없기 때문이었다.


무당파로서는 객인 성에게 시킬 것이 있을리 만무했고, 성을 무림맹에서 데리고 나온 검천은 그 나름대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어 성에게 무엇을 하라고 시키지 않았다.


그나마 이렇게 검을 휘두르고 있는 것 또한 창천이 지나가는 말로 수련이라도 하고 있으라고 말한 덕분에 하고 있었다.


하인으로 보낸 시간이 오년. 아직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찾아 행동하는 것은 아직 성에게 힘든 일이었다.


잠시 숨을 고른 성은 다음으로 찌르기 자세를 취했다. 직격세 다음으로 찌르기 천오백번이었다.


"하나!"


쇄액!


기합을 지르며 내지리는 찌르기. 그 칼끝이 살아있음이 보인다.


성도 그것을 느꼈는지 눈동자를 빛내며 다시 이검을 찌르려 할 때, 갑자기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허허, 이 나이에 칼끝을 살리는 찌르기라니 놀랍구료."


"아아!"


놀라 옆을 바라본 성은 더 큰 놀람을 받아 경직해버렸다.


"아이구야. 이거 이 늙은이가 소형제를 놀라게 해버렸구만. 미안하오."


성이 놀라 경직해 버리자 노도사가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성이 다급히 포권을 쥐었다.


무당파의 고수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어도 이 노도사의 무신의 위엄만큼은 똑똑히 지켜보아 알고 있었다.


"처, 청허진인을 뵙습니다."


"허허, 소형제가 많이도 놀라셨나 보오."


역시나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웃음을 내뱉는 청허자. 그에 긴장이 조금 풀렸는지 성이 조심스럽게 안부를 물었다.


"저, 다치셨다고 들었는데..."


"허허, 그것이 소형제의 귀에까지 들어갔소이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오. 그리 큰 부상도 아니기에 다 낳았소이다."


그 말에 성의 안색이 좀 더 편해졌다.


몇일 전, 청허자의 부상 때문에 선약당이 시끄러웠던 것이 기억에 남았었는데, 다 낳았다니 웬지모르게 안심이 된 것이었다.


성의 안색이 편안해지자 청허자의 입가에도 미소가 어렸다.


'거짓말은 본래 해서는 안되지만, 거짓말로 소형제의 마음이 저리 편해졌으니 이것 또한 도로구나.'


부상이 다 낳았다? 과연 그것이 사실인가. 절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천마신마와의 격전으로 인해 청허자가 입은 부상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외상은 크게 없을지 몰라도 내상은 그야말로 처참하여, 조금만 늦었더라면 무공을 영영 잃을 수도 있는 중상이었다.


특히나, 백오십세를 넘긴 청허자의 나이 때문에 회복이 더디다는 문제까지 겹쳐 심각하기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들어간 약들 중에는 무당파 최고의 영단 자소단이 사용되었으며, 검성 무천진인과 장문인인 현양진인이 번갈아가면서 내공치료에 들어갔다. 그러고도 부족하여 종국엔 검천에게까지 손을 벌려 그의 공력으로 겨우 치료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그게 바로 어제 밤까지의 일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완치는 아니다. 정상수준으로 회복시켰을 뿐이지, 완치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기력을 회복해 나가야만 한다.


결국 성을 안심시키기 위해 청허자는 거짓말을, 그것도 매우 큰 거짓말을 한 것이다.


"소형제는 어찌하여 이런 외진 곳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오?"


"그, 그것이 다, 다른 분들은 다들 바쁘시고, 딱히 할 것이 없어서..."


"헛, 아무리 바쁘다고 할지라도 이리 객을 홀로 내버려 두다니 이 늙은이가 본파를 대표하여 사과드리외다."


"아, 아닙니다."


고개를 숙이는 청허자에게 성이 기겁을 하며 난색을 표했다.


"크흠, 사죄의 표현이라 하기는 그렇지만, 이 늙은이가 소형제의 수련을 도와주어도 괜찮겠소이까?"


"예, 예! 되, 됩니다."


청허자의 사죄에 기겁한 성은 뭐라 말하는지 제대로 듣지도 않고서는 청허자의 청을 수락했다. 그리고는 자시가 무슨 말을 했는지를 깨닫고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하지만 말을 번복할 사이도 없이 성의 검은 청허자의 손에 들려있었다.


"호오! 이것은 검천 도우의 검이 아닌가? 도우께서 가지고 있지 않아 이상하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소형제가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구려."


성이 손에서부터 가져온 검이 검천의 애검임을 깨달은 청허자가 안광을 빛냈다.


"제, 제 검이 부러져서 거, 검천 대협께서 빌려주셨습니다."


"호오!"


청허자의 두 눈이 빛났다.


검사가 검을 빌려주었다. 그 큰 의미를 이 어린 소년은 알지 못하는 듯 했다.


그 눈빛이 부담스러웠던 성이 입을 열려 했으나, 어느새 들린 청허자의 손에 입을 닫았다.


스윽.


천천히 어느 한 검법의 기수식을 취하는 청허자.


성에게도 상당히 익숙한 삼재검법의 기수식이다.


'허억!'


청허자의 기수식을 본 순간, 성은 숨이 턱 막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역시나 청허자. 검을 든 무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삼재검법으로 빈틈없이 완벽한 검세다.


"검사라면 검을 다룰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다오."


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첫 째, 검 끝은 흔들리지 말아야 하오. 검 끝의 흔들림은 힘의 수발이 어긋난다는 뜻. 검 끝의 흔들림이 적어질수록 검은 더 자유로운 검로를 걷게 될 것이오."


쇄애액!


깔끔하게 허공을 가르는 횡참격.


들리는 소리만 하여도 상당한 힘이 담긴 듯한 일검인데 마치 허공에 붓으로 선을 긋는 듯 했다.


"둘 째,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든지 검은 스스로가 목표했던 지점에서 멈춰야 하오. 검을 다스리지 못한다면, 원하지 않는 피를 흘리게 될 것이오."


파아앙!


근처 나무를 향해 찔러 들어간 검. 그러나 자세히 보면 정확히 한촌의 간격을 두고 멈춰섰음을 확인할 수 있다.


"셋 째, 검을 휘두를 때는 단호해야만 하오. 검을 뽑기 전에는 세번 생각해야 하지만, 검을 뽑은 후에는 단호해야 하오. 검은 장난감이 아니오. 검을 뽑는 순간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진지해야만 하는 것이 바로 검사의 자세요."


촤아악!


하늘에서 땅으로 곧장 내려치는 직격세.


바로 앞을 가르고 지나가는 검세에 성은 순간 죽음을 느꼈다.


'아아...'


"이 세가지를 기억하고 실천한다면 소형제는 천하 어디에서든지 가슴을 펼수 있는 한 명의 검사가 될 것이외다."


청허자의 검이 다시 한번 움직였다.


면면부절. 베고 찌르는 단순한 검로가 부드럽고, 유려하게 끊임없이 이어지며 그 검로를 허공에 수놓는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성의 두 눈에 그리고 뇌리에 깊숙히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이것은 신검진인, 청허자의 검학. 그의 후계자인 검성 무천진인조차 사사하지 못한 것이다. 최근의 깨달음이었다.


일각.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시간, 청허자는 성을 위해 그 검무를 추고 가르침을 내려주었다.


그것을 끝으로 청허자는 성에게 검을 돌려 준뒤 자리를 피했다.


성은 청허자가 자리를 피한 뒤에도 잠시동안 물끄럼이 그가 서있던 자리를 쳐다봤다.


겨우 세 가지 뿐이었으나 누군가에게 검술에 대해 지도받는 다는 것이 사부가 죽은 뒤, 처음이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성은 자신이 받은 가르침이 무엇인지 아직은 알지 못했다.


[아, 혹시나 더 필요한 가르침이 있다면 검천께 물으시구려. 이 늙은이가 장담하건데 아주 친절히 알려주실 거외다.]


마지막으로 귓가로 들어온 전음성.


성은 그가 사라진 자리를 향해 뒤늦게나마 포권을 취했다.


===


"고맙습니다. 사숙."


"허허, 사숙이라... 검천께 그런 말을 들으니 이거 적응되지가 않습니다."


"청백 사부께서 무당을 사문이라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청허 사숙만은 사문의 어르신으로 모시라 하셨습니다."


"음..."


청백. 이 얼마만이 들어보는 사형의 이름이던가.


이제는 자신 말고는 아는 사람이 없는 유일한 사형의 이름. 너무나 오래되어 잊어버릴 것만 같은 이름에 추억을 되살아났다.


"허허허, 헌데 어찌 이 늙은이에게 부탁을 하셨는지 알 수 있겠소?"


평대.


이것이 현재의 청허자의 한계인 것이리라.


검천도 처음부터 모든 것을 받아들이리라고 생각지 않았기에 담담했다.


"아직은 저 아이에게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대가 그리 생각했다면 그런 것이겠지."


청허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하의 고수인 청허자이나 검천은 그보다 더 뛰어난 고수. 그 자체만으로 검천의 선택을 믿는다. 그렇기에 더 이상의 언급은 필요 없으리라.


청허자는 발걸음을 다시 옮기려다 검천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사형은 어디에 모셨소?"


"광동 성도에 가시면 구인장(九人張)이란 서원이 있습니다. 사부들께서 도가의 예로 그곳에 안치하셨습니다."


"그렇구려. 고맙소."


그것을 끝으로 청허자는 무당의 전각들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청허자의 등을 향해 검천은 포권을 쥐었다.


검천은 느꼈다. 이로서 선사로부터 내려온 유언 중 하나가 끝났음을. 그리고 무당파에서의 청허자와의 인연 또한 끝났음을.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천외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청허진인(靑墟眞人) 2 +1 16.02.03 1,765 51 11쪽
38 청허진인(靑墟眞人) 1 16.02.02 1,572 41 6쪽
37 십이신마(十二神魔) 1 +3 16.02.01 1,940 43 13쪽
36 승패병가지상사(勝敗兵家之常事) 2 +3 14.04.18 2,402 70 9쪽
35 승패병가지상사(勝敗兵家之常事) 1 +2 14.04.14 2,512 82 8쪽
34 신검진인(神劍眞人) 2 +3 14.04.11 2,820 66 10쪽
33 신검진인(神劍眞人) 1 +2 14.04.07 2,749 64 10쪽
32 무당혈야(武當血夜) 4 +3 14.04.04 2,936 63 8쪽
31 무당혈야(武當血夜) 3 +2 14.03.31 2,665 73 9쪽
30 무당혈야(武當血夜) 2 +3 14.03.28 2,687 69 8쪽
29 무당혈야(武當血夜) 1 +3 14.03.24 3,076 69 10쪽
28 무림맹주(武林盟主) 2 +4 14.03.21 2,694 73 13쪽
27 무림맹주(武林盟主) 1 +2 14.03.17 2,691 69 7쪽
26 지도추적(地圖追跡) 2 +3 14.03.14 2,811 73 7쪽
25 지도추적(地圖追跡) 1 +3 14.03.09 2,865 71 8쪽
24 추적개시(追跡開始) 3 +3 14.03.07 2,898 75 9쪽
23 추적개시(追跡開始) 2 +2 14.03.03 3,020 80 8쪽
22 추적개시(追跡開始) 1 +4 14.02.28 3,330 75 9쪽
21 무량진식(無量陣式) 3 +2 14.02.24 3,076 85 11쪽
20 무량진식(無量陣式) 2 +2 14.02.21 3,314 93 8쪽
19 무량진식(無量陣式) 1 +2 14.02.17 3,589 88 11쪽
18 시례지훈(詩禮之訓) 3 +3 14.02.14 3,375 99 9쪽
17 시례지훈(詩禮之訓) 2 +3 14.02.10 3,324 89 9쪽
16 시례지훈(詩禮之訓) 1 +3 14.02.07 3,338 84 6쪽
15 오호질풍도(五虎質風刀) 4 +4 14.02.04 3,416 101 3쪽
14 오호질풍도(五虎質風刀) 3 +3 14.02.03 4,088 101 10쪽
13 오호질풍도(五虎質風刀) 2 +2 14.02.02 3,453 99 8쪽
12 오호질풍도(五虎質風刀) 1 +2 14.02.01 3,988 108 9쪽
11 검도일도(劍刀一賭) 4 +3 14.01.31 3,965 111 7쪽
10 검도일도(劍刀一賭) 3 +2 14.01.30 3,846 116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