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색
아프베어 요원들은 철저하게 장교들의 방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일단 서랍을 열기 전에는 서랍 바깥쪽을 손으로 훑어보고 특이한 장치가 있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서랍을 하나씩 천천히 연다. 서랍을 세게 열 경우 내부에서 전소되도록 장치를 설치하는 경우가 있어서 서랍은 천천히 부드럽게 열어야 했다.
아프베어 요원은 창문을 왼쪽으로 열어보고 팔을 바깥으로 내밀어 바깥 창틀을 손으로 훑어서 특이한 것이 없는지 확인해보았다. 그 다음에는 창문을 오른쪽으로 밀어서 연 다음, 팔을 바깥으로 내밀어 바깥 창틀을 만지면서 이 쪽에도 특이한 것이 없는지 확인했다.
한스는 이 느려터진 수색이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원래 이렇게 수색이 오래 걸리오?"
아프베어 요원이 말했다.
"스파이들은 새끼 손톱보다 작은 마이크로 필름으로 정보를 유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런 절차를 거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구데리안 기갑군의 임시 사령부는 원래 시청으로 쓰이던 건물이었다. 그렇기에 장교들의 방에는 책장이 있었고, 아프베어 요원들은 이 책장의 책도 모두 꺼내어 한 페이지씩 확인해야 했다. 답답함을 느낀 한스는 같이 수색을 하기로 했다.
"나도 같이 수색하면 시간이 덜 걸리겠군. 뭘 하면 되오?"
"이 담배갑을 수색해주십시오."
한스는 장교가 쓰던 담배갑에 담배를 모조리 꺼낸 다음 담배갑 내부에 마이크로 필름이 없는지 확인하고 다시 담배갑에 담배를 넣었다. 아프베어 요원이 한스에게 말했다.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아...안된다고?'
"담배 한 개피 한 개피 모두 확인해야 합니다!"
결국 한스는 장교가 쓰던 담배갑의 담배를 모두 꺼낸 다음, 담배를 말고 있던 종이를 펴낸 다음 종이에 메세지가 써져있는지 확인했다. 한스는 아프베어 요원들의 첩보 임무가 상당히 재미있을줄 알았는데 하나도 재미 없고 엄청나게 지루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도 재미없잖아!!'
아프베어 요원들은 장교들의 군복의 옷 밑단을 모조리 뜯어본 다음 그 안에 마이크로필름이 없나 확인했다. 군화의 밑창을 다 뜯어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스는 확실하지도 않은 정보로 괜히 아프베어에게 수색을 명령한 것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소련군이 우연히 그 쪽으로 항공 정찰을 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나?아니다! 내가 슈토르히를 타고 3기갑군 사령부로 시찰을 갔다면 내가 상공을 비행하고 있을 시간대에 그 항로에서 정확히 놈들 항공기 편대가 나타날 확률은 적다...그 소련군의 항공기 편대는 다른 전술적 목표도 없던 것으로 추정된다. 날 암살하는 것 이외에 다른 목적이 없었던 것 이다!'
한스가 어설픈 연기로 자신의 거짓 시찰 계획을 흘렸을 당시 회의실에 있던 장교들은 몸 수색까지 받아야 했다. 그런데 이 몸 수색 받는 과정이 참으로 고약했다. 두피 속에 마이크로 필름을 숨겨두었을 수도 있기 때문에 머리카락도 샅샅이 뒤져봐야 한다. 그리고 귀 속, 콧구멍 속, 겨드랑이 또한 살펴봐야 한다.
아프베어 요원들은 장교들의 눈까지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한스가 물었다.
"왜 눈까지 수색하는 것이오?"
아프베어 요원이 말했다.
"렌즈에 기밀 정보를 기록해두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프베어 요원들은 장교의 항문까지 수색하기 시작했다. 한스는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이런 시발!'
한스는 장교들의 방으로 가서 치약 튜브를 잘라보고, 슈납스 병의 코르크 마개를 열어보았다. 하지만 아무 것도 발견된 것은 없었다. 한스는 안 그래도 해야하는 업무가 쌓여있었는데 괜한 일을 벌인건가 싶어서 후회되기 시작했다.
'괘...괜히 아프베어 부른건가? 이러다 아무 것도 안 나오면 곤란한데...'
아프베어가 한스에게 말했다.
"그 슈납스 병의 라벨까지 모조리 확인해야 합니다!"
한스는 슈납스 병의 라벨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아프베어가 말했다.
"라벨을 때어내서 그 뒤에 마이크로 필름이 붙어있지 않은지 확인해야 합니다!"
한스가 슈납스 병의 라벨을 대충 손으로 때어내려고 하자, 아프베어가 핀셋을 건네주었다.
"라벨이 손상되지 않도록 이걸로 주의깊게 때내십시오!"
한스는 핀셋으로 라벨을 때어낸 다음 확인해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한스는 이 상황이 짜증나기 시작했다.
'그냥 내 집무실 가서 서류나 봐야겠다.'
발가벗고 항문 검사를 받던 장교들의 몸 수색도 거의 끝나가는 것 같았다. 아프베어도 귀찮았는지 대충 검사를 마치고 이들에게 말했다.
"끝났습니다."
장교들은 속으로 욕설을 퍼부으며 옷을 입기 시작했다. 그 때, 한스가 걸어와서 한 장교에게 말했다.
"잠시만."
다른 장교들은 다들 팬티부터 입고 있었는데, 한 장교는 양말부터 신고 있었던 것 이다. 한스는 그 장교의 양말을 벗긴 다음 발바닥을 관찰했다. 발바닥에는 커다란 물집이 잡혀 있었다. 한스는 아까 전에 받은 핀셋으로 그 물집을 벗겨내보았다.
"이...이거!!!"
그 물집 속에는 마이크로 필름이 있었다. 장교는 팬티도 입지 않고 튀기 시작했다.
"저 새끼 잡아!!!"
우당탕!!! 콰광!!!!
왼쪽 발바닥 물집에 마이크로 필름을 숨겨놓은 그 장교는 결국 소련군 스파이로 밝혀졌다. 한스는 미심쩍은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과연 이 놈만 스파이일까? 분명 더 있을거다!!!'
한스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령부에 있는 녀석들 모두 스파이로 보였다. 주위를 노려보는 한스를 보며 프란츠가 한숨을 쉬었다.
아까 전에 스파이로 발각된 그 장교의 방을 더 자세하게 수색한 결과, 특이한 숫자가 적혀있는 아주 작은 쪽지가 발견되었다. 한스가 물었다.
"이 암호를 해독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오?
아프베어 요원이 말했다.
"암호 해독팀에 보내면 해독할 수 있을 것 입니다! 최소 하루는 걸립니다."
"지금 당장 해독해야 하오!"
한스는 이 장교가 작성하던 보고서를 읽어 보았다.
'뭔가 단서가 있을 터...'
그런데 보고서에 연필로 패인 자국이 있었다. 한스는 연필을 눕히고 그 보고서를 덧칠해보였다.
'여...역시!!!'
그렇게 연필로 보고서 위를 덧칠하자, 연필로 패인 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고르 야코블레프 1912.7.12]
'이게 뭐지? 1912년?'
아프베어 요원이 이를 보고 말했다.
"1912년이면 지금 28살 정도 되었겠군요. 하지만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한스는 잠시 구데리안 기갑군 사령부 밖으로 나와서 담배를 피웠다. 스파이를 잡기는 했지만 딱히 소득은 없는 상황이었다. 그 장교는 아직까지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한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본토에 불려가서 불알 몇 번 맞다보면 알아서 다 불겠지...'
그 때, 뒤에서 병사들이 쑥덕거렸다.
"저 묘지 쪽에서 유령 나온다는 소문있는거 아냐?"
"유령은 무슨..."
'묘지?'
한스가 이 병사들에게 가서 물었다.
"자네들 묘지라고 했나?"
병사들이 경례를 하고 잔뜩 긴장해서 말했다.
"네!"
한스가 이들에게 물었다.
"전사자들을 묻은 묘지인가?"
"아닙니다. 이전부터 마을 주민들이 쓰던 묘지입니다."
한스는 병사들의 안내를 받아서 묘지로 갔다. 다행히 이 묘지는 포격을 맞지 않아서 비석들이 무사했다. 한스는 비석을 하나씩 살피며 프란츠에게 외쳤다.
"이고르 야코블레프라는 이름을 찾아보게!! 아마 1912.7.12년에 죽었을걸세!!"
프란츠가 외쳤다.
"찾았습니다!!!"
[이고르 야코블레프, 1860.09.01 ~ 1912.7.12]
한스는 이 비석 옆을 살폈다. 풀을 부자연스럽게 덮어둔 흔적이 있었다.
"야전삽 가져오게!!"
한스가 야전삽으로 비석 옆을 파냈다. 그 안에는 작은 상자가 있었다.
"역시!!!"
그 상자 속에는 첩자 역할을 했던 독일군 장교에게 보내는 명령서와 기타 장비 등이 들어있었다. 이렇게 한스는 2기갑군 사령부에서 첩자를 잡아내는 것에 성공했다. 한스는 사령부 건물 앞에 서서 지나가는 병사들의 얼굴을 모조리 기억해두었다.
'저 녀석은 아까부터 계속 왔다갔다하는군...'
뿐만 아니라 한스는 사령부로 드나들때도 계속 다른 출입구로 드나들었다. 사령부 인근에 마련된 장성급 장교 식당에 갈때도 계속해서 다른 경로로 이동했다. 부관 프란츠는 한스 때문에 골머리가 아팠다.
한편, 현재 포위된 만토이펠 대대는 계속해서 소련군의 포격을 받고 있었다. 소련군 포병대는 현재 만토이펠 대대가 대피소로 쓰고 있는 건물만 용캐 골라내서 박격포를 퍼부었다.
쿠궁!! 쿠과광!! 쿠궁!!
소련군의 포격은 점점 정밀해지고 있었다. 에밀이 지하실에서 엎드린채로 울부짖었다.
"도대체 저 새끼들은 어떻게 우리가 있는 건물만 포격하는거야!!"
만토이펠 대대는 눈에 띄지 않는 건물들을 대피소로 이용하고 있었음에도, 소련군은 정확히 만토이펠 대대가 이용하는 대피소 건물에 박격포탄을 날렸다.
"누가 정보 빼돌리는거 아냐?"
"로스케들도 지속적으로 침투하겠지!! 우리쪽 군복 입은 녀석들도 로스케일 수 있으니 잘 살펴봐!!"
마티아스가 주위를 살펴보고는 말했다.
"우리 부대에 로스케 출신들 있지 않은가? 혹시 그 친구들이?"
알프레트가 말했다.
"데니스 저 녀석은 절대 아니야!! 우리보다 로스케를 훨씬 더 증오한다고!!"
요하네스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구석에 있는 바실리를 보고 말했다.
"저 친구는 의대까지 다녔었다는군."
"의대까지 다녔으면 글을 쓸 수도 있을거고 우리 위치를 소련군에게 몰래 전달하는...악!!"
오토가 마티아스의 대가리를 쳤다.
"저 녀석은 나랑 같이 있었네! 아마 민간인들이 소련군에게 정보를 전달하는거겠지."
지금 교전 상황으로보면 독일군의 정보가 시시각각 소련군에게 전달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결국 오토는 데니스, 비르타넨, 폴스터를 데리고 인근 주택을 수색하기로 했다.
바실리는 모처럼 임무에 투입되지 않았기에 대피소에 드러누워서 휴식을 취했다. 하지만 에밀, 마티아스, 알프레트, 요하네스는 여전히 바실리를 의심했다.
"우리가 교대로 저 녀석을 감시하자고!"
바실리는 잠을 자다가 일어나서 밖으로 걸어나갔다. 에밀이 속으로 생각했다.
'소련군에게 정보를 빼돌리려는거다!!!'
하지만 바실리는 오줌만 싼 다음에 돌아와서 계속 휴식을 취했다. 에밀, 마티아스, 알프레트, 요하네스는 자신들도 쉬고 싶었지만 계속해서 번갈아서 바실리를 감시하는 바람에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
오토 소대원들이 헛짓거리를 하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이 때, 오토는 데니스, 비르타넨, 폴스터와 함께 인근 민가를 수색했다. 오토가 러시아어로 민가 주인 아주머니에게 외쳤다.
"집을 수색해야하니 잠시 협조 부탁합니다!"
당황한 표정의 아주머니를 뒤로 하고, 오토는 데니스, 비르타넨, 폴스터와 함께 집에 들어갔다. 아주머니가 외쳤다.
"여긴 우리 집이에요!"
오토가 자신의 군인 신분증을 보여주며 말했다.
"수색만 하는 것 입니다! 빨리 끝낼테니 잠시만 협조해주십시오!"
비르타넨이 속으로 생각했다.
'뭔가 수상하군...'
Comment ' 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