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차 전술
사다오가 동기 시로와 함께 숫돌에 군도의 날을 갈고 있는데, 한 상병이 외쳤다.
“일본에서 편지가 왔습니다!”
일본에 있는 어린 아이들로부터 온 위문 편지가 부대에 배송되었다. 그 편지들 대다수는 전부 나라를 위해 싸워주셔서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시로가 편지를 보며 웃음 지었다.
“그래. 애들 위해서라도 열심히 싸우다 죽어야지.”
사다오는 그 편지들이 보기 불편해서 접어서 주머니 안에 놔두었다.
‘이건 위문 편지가 아니라 죽어달라는 것 같군..’
애국심, 이념, 출세에 대한 욕심 등의 모든 대뇌 속 망상들은 처음 마주친 죽음의 공포에 흔적도 없이 스러졌다. 한스 파이퍼의 목을 가져온다는 굳은 결의는 했지만, 사다오는 알고 있었다. 어찌되었건 전사한 자신의 소대원들은 다시는 술도 못 먹고 담배도 피우지 못하고 하늘의 별도 볼 수도 없고 똥오줌을 쌀 수도 없다. 그들에겐 전쟁이 어떻게 되었건 모든 것이 의미가 없다. 사다오가 중얼거렸다.
“그 놈의 전술 알아낸다고 내 소대원만 다섯이 죽었네.”
시로가 말했다.
“잘 싸우는 녀석들로 보충될 테니 너무 걱정 말게. 유럽 놈들은 지금까지 천만명 가까이 갈아넣어서 그 같잖은 전술을 알아낸 건데, 우리는 개네에 비하면 목숨값 저렴하게 치루는 거지.”
하급 장교들이 자신의 병사들을 잃으면 늘 상관들은 “더 잘 싸우는 녀석들로 보충될걸세” 라고 똑같은 말을 하곤 했다. 사다오는 문득 그 말에 몸서리가 쳐졌지만, 아무 말 없이 계속해서 군도의 날을 갈았다. 그 때 친하게 지내던 포병 소위 야마모토가 와서 술을 권하면서 말했다.
“앞으론 우리 포병대가 더 정확한 포격을 할 수 있을 걸세.”
“그게 무슨 말인가?”
“여태까지 우리 포병대는 무작정 앞에 보이는 적을 향해서 포격을 가했네.”
“그래서 니네 포격이 늘 엉망진창이었지.”
야마모토가 땅에 돌맹이 세 개를 올려 놓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관측소를 세 군데 설치하고, 목표 지점까지 각도를 재면 이렇게 세 개의 선을 그을 수 있지.”
야마모토가 땅에 관측소를 뜻하는 돌맹이에서 세 개의 선을 긋자 모두 한 곳에서 교차했다.
“그 곳이 목표 지점이로군.”
“그렇네. 그리고 이 목표 지점의 좌표를 유선으로 아군 포병대에게 전달해주면, 포병대는 모두 이 쪽을 향해서 집중 포격을 퍼부울 수 있는 걸세.”
“그래서 프랑스랑 독일 놈들 포격이 정확했군.”
“학교에선 뭘 배웠던 건지 모르겠네. 삼십 년 전 전쟁에서나 써먹을 내용 밖에 없었으니..”
그 때, 쿠리바야시의 부관이 와서 외쳤다.
“중대장님께서 부르십니다!”
사다오와 시로가 가보니 그 곳에는 다다즈미도 있었다. 쿠리바야시가 말했다.
“독일군 전차 부대를 막기 위한 대전차 전술을 고안 중이네! 각 소대장들은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한다!”
‘조직 문화를 바꿔서 하급 장교들도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체계로 가야한다! 그렇게 하면 우리도 독일, 프랑스 못지 않는 훌륭한 전술 체계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이다!’
시로가 말했다.
“보병이 수류탄을 전차 위에 올려 놓고 오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전차 위는 진동이 어마어마하네. 올려 놓고 와도 바로 옆으로 굴러떨어질걸세. 궤도 쪽에 올려놓고 궤도를 터트리고 오는 것은 괜찮겠지만 위험 부담이 크네. 해치를 열고 그 안에 수류탄을 집어넣는 것이 확실할 걸세.”
사다오가 말했다.
“안에서 해치를 잠가 버리면 해치를 열 수 없습니다.”
다다즈미는 속이 부글부글 꿇어올랐다.
‘그런 군인답지 못한 방법 따위..’
“다다즈미! 자네도 말해보게!”
“저는! 대전차 총검술을 제안합니다!!”
촤르륵
다다즈미가 자신의 군도를 꺼내들며 외쳤다.
“대일본제국 육군으로서 군도를 들고 전차를 향해 달려들어, 전차의 기관총을 베어내거나 좁은 틈으로 놈들을 사살할 수 있습니다!!”
쿠리바야시는 다다즈미의 무식한 소리에 화가 났지만 애써 억누르고 말했다.
“전차가 기관총으로 사격할텐데 그것은 어찌할텐가?”
다다즈미가 좌우 스텝을 밟으며 외쳤다.
“이렇게 좌우로 번갈아 움직이면 기관총을 피할 수 있습니다!”
쿠리바야시가 참지 못하고 외쳤다.
“다다즈미!! 실현 가능한 아이디어를 내게!!”
다다즈미가 외쳤다.
“저는 이번 전투에서 일본이 패한다면!! 할복하기로 제 아내와 맹세했습니다! 그러므로 전차의 기관총 따위는 두렵지 않습니다!!”
사다오가 겉으로 다다즈미를 말리는 척 하면서 속으로 울부짖었다.
‘그런 아내가 어디있어!!부부가 쌍으로 이상하잖아!!’
다다즈미가 진정되자마자, 사다오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말했다.
“군도는 번쩍거리기 때문에 기습 공격을 할 때에는 적에게 위치를 쉽사리 발각당합니다. 군도에 검게 색을 칠해서 번쩍거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다다즈미가 울분을 토했다.
“군도에 색칠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군도는 대일본제국 육군의 명예입니다!”
한편 한스는 플로리안의 사이드카가 달린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직접 쌍안경을 보고 지형 지물을 관찰하며 지도에 메모를 하고 있었다.
‘저 쪽 저지대는 엄폐하기에 안성 맞춤이군..이 쪽은 전사면..’
한스는 얼마 전부터 이렇게 플로리안의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직접 지형을 관찰하고 다니며 직접 전차가 엄폐하기 좋은 위치 등을 연구했고, 다른 전차병들이야 좋았지만 플로리안은 혹시나 저격이라도 맞을까봐 무서워 죽을 지경이었다. 한스가 말했다.
“이제 돌아가게!”
플로리안은 한스를 태우고 대대 지휘소로 전력 질주했다. 그런데 돌아와보니 프란츠가 와 있었다.
“대..대대장님!! 군 사령관께서 연대 지휘소에 방문하셨습니다!”
“뭐..뭐라고?”
한스는 식은 땀을 흘리며 연대 지휘소로 걸어가보니 1군 사령관 프란츠 폰 벨로프가 있었다. 한스는 경례를 하고는 각 잡힌 자세로 서 있었다. 입이 바싹바싹 말랐고, 이렇게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도 꽤나 고역이었다. 1군 사령관 프란츠 폰 벨로프가 말했다.
“육군항공대의 플라잉 서커스단과 함께 공세를 시작하면 최대한의 속도로 밀어붙여야 하네. 놈들이 포를 재배치하거나 새롭게 방어선을 만들 시간을 주지 않고 파죽지세로 돌파해야 하네.”
한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맞는 말이야..야포는 말이 운반하니까 적군 포병대가 재배치하는데는 시간이 걸리지..그런데 전차 부대로 계속 돌파하기에는 연료 보급 문제가..’
“파이퍼 중령!”
“네..넵!”
“최근 프랑스군과 일본군의 공격을 별 피해없이 막아낸 것은 자네 전차 부대의 공이 컸다고 들었네. 앞으로 전차 부대는 어떻게 운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리히터 연대장과 브레데마이어가 속으로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저..저 망할 놈!!’
한스는 이마에 식은 땀이 흘렀지만 말을 시작했다.
“전차는 여러 전선에 소규모로 배치하는 것 보다는 한 곳에 집중적으로 전력을 밀어넣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그..그리고..”
한스는 단어가 꼬이고 말이 버벅거리기 시작했지만 그 동안 생각해왔던 것을 다시 말했다.
“보병, 공병, 포병 병과가 전차 부대를 보조해주고 최소한 연대 단위로 전차 부대를 활용해야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리히터가 이를 갈며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네 놈은 연대장 자리를 노리는 거야!!’
브레데마이어도 속으로 생각했다.
‘뭐? 보병 병과가 전차 부대를 보조해준다고? 멍청한 자식!!’
1군 사령관 프란츠 폰 벨로프는 아무 말이 없었고 브레데마이어가 속으로 생각했다.
‘멍청한 파이퍼 자식!!네 놈은 제대로 찍힌 거야!!’
한스는 각 잡힌 자세를 유지하면서 자신이 말을 내뱉은 것을 후회했다.
‘내..내가 실수했나?’
1군 사령관 프란츠 폰 벨로프는 한스의 의견에 딱히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는 앞으로 공세에 대해 말하고는 연대 지휘소를 떠났다. 그러자 리히터가 한스를 비꼬았다.
“파이퍼 중령은 연대장이 되고 싶은가 보군.”
리히터의 말에 브레데마이어를 포함한 다른 보병 대대장도 껄걸 웃었다. 한스는 열 받았지만 억지로 화를 참고, 며칠 전부터 생각하던 아이디어를 말했다.
“전차와 보병의 협동을 위해서 보병들도 모두 전차의 신호기 색상을 암기해야 합니다! 모든 보병들이 이를 암기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보병 소대장, 분대장은 전차의 신호기 색상을 암기해서 빠른 의사 전달이 가능해야 합니다!”
브레데마이어가 비웃었다.
“미안하지만 보병 병과는 바빠서 그런걸 암기하느라 낭비할 시간은 없을 것 같네.”
한스는 브레데마이어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싶었다.
‘저 멍청한 새끼는 중요한 공세가 코 앞인데 병과간 알력 다툼 따위나 신경쓰다니!!’
한스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했다.
“제 전차병들은 한 시간 만에 신호기 색상을 모두 암기했지만 하긴 보병들로서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뭐..뭐야?”
브레데마이어는 한스의 말에 이를 갈았다. 리히터 연대장 또한 눈썹이 실룩거렸다. 잠시 뒤, 각 보병 대대의 소대장들은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각 보병 대대의 소대장은 전차 신호기 색상을 한 시간 만에 암기한다!!이는 연대장님의 명령이다!”
한스는 포병 대대장을 찾아가서 각 전차의 약점에 대해 상세하게 말했다.
“슈네데르 CA 전차 같은 경우에는 후방에만 연료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전면의 좌측에도 연료통이 보관되어 있기 때문에 이 곳을 명중한다면 쉽게 격파할 수 있습니다.”
포병 대대장은 직접 독일군이 노획한 슈네데르 CA를 보면서 한스가 말해준 정보를 확인했다.
“알겠네.”
포병 대대장은 슈네데르 CA 안 쪽에 들어가보고 기겁했다.
“아니, 여기서 싸운다고?”
슈네데르 CA의 내부는 바닥부터 천장까지 높이가 90센치였다. 그나마 조종수는 계속 앉아있을 수라도 있었지만 장전수, 포수, 전차장은 90센치 높이의 그 폐쇄된 공간에서 허리를 숙이고 근무해야 했다. 한스가 말했다.
“슈네데르 CA의 경우 전차 내부에 열기가 심하기 때문에 전투 도중에도 근처에 적 보병이 없으면 이렇게 해치를 열고 진격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근처에서 유산탄이나 고폭탄이 터져도 내부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습니다.”
포병 대대장이 슈네데르 CA 내부로 들어가서 해치를 열고 자리에서 일어서 보았다. 그랬더니 상반신이 전부 상부 장갑 위로 올라왔다.
‘난 포병 병과라 다행이군!’
“생각보다 장갑이 얇은걸?”
한스가 말을 이었다.
“슈네데르 장갑은 아군 K탄에도 관통 당합니다. 또한 슈네데르 CA, 생샤몽의 경우는 폭이 1.75m보다 넓은 대전차호는 건널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곡괭이 등을 비치해두고, 대전차호가 있을 때는 보병들이 삽과 곡괭이로 전차가 지나갈 길을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슈네데르, 생샤몽이 대전차호 앞에 멈추어있을 때 그 쪽을 향해 유산탄을 발사한다면 큰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포병 대대장이 말했다.
“일본군 전차 부대는 어떠한가?”
“그들은 훈련이 덜 되어있기 때문에 포격 정확도가 떨어집니다.”
“내가 듣기로 일본 보병들은 군도를 들고 다닌다고 들었네. 칼날이 번쩍거릴 테니 기습 작전은 무리겠군.”
한편 전차병들은 조만간 있을 공세에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에밋이 천천히 고기 스프를 음미하며 먹으며 중얼거렸다.
“이것이 마지막 저녁 식사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바그너가 중얼거렸다.
“재수 없는 소리는 하지 마라.”
하지만 에밋은 계속해서 지껄였다.
“어쩌면 지금 이 밤이 제가 경험하는 마지막 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내일도 저 별을 볼 수 있을지..악!”
“사기 떨어지는 말 하지 말라니까!”
한편 슈네데르 CA에 배치된 신병 전차병들이 투덜거렸다.
“생샤몽은 슈네데르보다 엔진이 덜 뜨겁다던데..”
그 때, A7V의 한 전차병이 울부짖었다.
“니네는 우리보단 낫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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