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룡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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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1.12.13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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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3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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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백(2)

DUMMY

나 여무명은 배신을 옹호하는 아사랴의 논리에 대해서 ‘어째서’라며 뒷말을 이으려는 찰나였는데, ‘탕’ 소리를 듣고 말았다.

그러자 아사랴는 어딘가 ‘deep space(심우주)’로부터 날아온 실탄에 총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럴수록 진격의 거인답게 조금도 굴함이 없더라.

심지어 괴성까지 지르며 휘어진 형태의 긴 칼을 부여잡는 게 아닌가.

그건 레판토 해전에서 스페인의 무적함대에게 패한 오스만 제국의 해군들이 휘두르던 킬리지(Kilij)임이 분명하다.

중세 페르시아나 투르크 계통의 무슬림이 사용했다는 곡도, 즉 샴쉬르(Shamshir)의 변형을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휘어진 오래된 칼을 어디서 구했을까, 라는 의구심을 남긴 채···


하지만 그뿐이었다.

다시 한번 남조선 남서쪽 바다에서 울린 ‘탕’하는 소리는 초대형 ‘moving target’를 여지없이 고꾸라트렸다.

그랬던 것이다.

일반인을 압도하는 피지컬에 명석한 두뇌를 장착했을지라도 어디로부터 날아오는 예측 불가능한 불운의 총탄에 물거품이 되는 것이거늘.

그뿐만이 아니었다.

정체불명 저격수는 갑판 위에다 무의미한 실탄을 수차례 발사해 공포심을 자아냈다. 일종의 공갈탄으로서 속된 말로 ‘가라(空) 모션’ 또는 페인트 동작이랄까.

이는 화력에서는 우세하나 수적으로 밀리는 세력이 멧돼지 무리와 같은 적들을 일시적으로 제압하기 위해 즐겨 쓰는 수법이리라.

하지만 실패할 경우 멧돼지 떼에 사지가 찢기는 표범 신세가 될 터.

세상이 이러할진대···


그러자 선실에서 남의 코인을 몰래 낚던 불법 조업 어부들은 이제서야 혼비백산해 앞 다투어 바다로 뛰어드는 게 아닌가.

반면에 거친 파도에서 수영을 해본 적 없는 해커들은 저항이나 도망마저 포기한 채 새로운 점령군을 향해 칭송까지 마다하지 않다니.

이렇게 마치 철학자인 양 말이다.

‘저기 시대정신이 드론을 타고 오신다.’라고.

진실로 너희들은 남조선의 어떤 정치세력과 너무나 닮았도다.

그렇다. 얘들은 원대한 비전을 품고 한 방향으로 나란히 가는 동지가 아니라 단지 자발적 노예였던 것이니라.

주인이나 도련님이 자신들을 돌볼 가망성이 없다고 판단되자마자 그냥 줄행랑을 치거나 표변하는···.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그야말로 여기 ‘The Billy of tea’라는 배에는 내 조국 중국에서 악명을 날리던 ‘수조’와 ‘역아’가 득실대는구나.


그런데 아사랴는 마지막 호흡을 끝내기 직전에 뭔가 자신의 피로 혼신의 힘을 다해 휘갈겨 쓴 의뭉스러운 비밀번호를 내게 넘기며 마지막 유언을 내뱉는 게 아닌가.

“암호와 해시(hash)는 무차별 전술로 반드시 풀린다.”

이게 무슨 세상에 아직 있지도 않은 양자컴퓨터 같은 얼토당토않은 유언이란 말인가.

그러거나 말거나 마침내 저 하늘 위엔 초대형 녹색 드론에 매달려있는 인물의 모습이 달빛에 의지해 실루엣이 드러난다.

그건 그렇고.

공중 스나이퍼로 말하자면 감히 보안관 앞에서 수배범을 낚아채가는 현상금 사냥꾼이라니.

나로서는 몹시 괘씸하도다.

그잔 마치 죽음의 천사가 강림하듯이 저만치서 서서히 갑판 위로 내려오면서 한다는 말이, “that mad, wicked folly”

이 모습은 마치 ‘르네 마그리트’가 그린 그림에서나 나올 법한 중절모를 쓴 노신사였다.

그랬다.

그는 다니엘로부터 들은 바 있는 ‘ROBERT’이자 ‘Spic(스페인어 쓰는 놈)’였다.

다만 모자를 벗고 조준경에서 얼굴을 떼자, 예상과 너무나 다르더라.

히스패닉 계통의 남자가 아닌 스페인 출신의 중년 여성이었으니 그의 말이 곧 Queen’s Speech랄까?

그녀는 저격용 장총을 든 채 장엄하게 쓰러져있는 아사랴의 배 위에 한 발을 올려놓으며 말하길.

“Armada Invencible(무적함대) Visca(만세)!

난 REAL MONEY가 아닌 fake money를 만드는 놈들을 처단하러 온 ‘a saltos(깡충깡충 뛰는, 돌격대)’라오.”

그러더니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사랴 시체에 대해 허겁지겁 몸수색한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찾지 못하자, 생존한 각양각색의 해커 12명을 갑판에 일렬종대로 세워놓고 영어와 서반아어를 주저리주저리 섞어가며 겁박하기 시작하더라.

마치 여자 돈키호테처럼 이렇게!

“이건 원, ‘Estetica de la Promiscuidad(잡탕의 미학)이라니!

Are you silent(대답 안 해)?

Are you afraid, you cowards(겁쟁이들 겁먹었나)?

Then know that I am your enemy(그렇다면 내가 너희들의 적인 줄로 알라)”


그녀는 조무래기 해커들을 조져봤자 끝내 원하는 바가 나오지 않자 어디서 배웠는지 포로들에게 일명 원산폭격을 시킨 채 날 돌아봤다.

“Hello, my good friend(이봐요, 친구)

Where the donkeys in your pocket(네 호주머니에 당나귀가 있나)?

I have lost three donkeys which were as good as three castles(세 개의 성에 맞먹는 당나귀를 잃어버렸다고)

Ah, you thief(야 이 도둑놈아)!

Away from my Dapple(내 당나귀를 내놔)!”


나 여무명은 나에게까지 공격적으로 나오는 ’tocado(반쯤 미친)’ 여성 전사를 일단 진정시키면서 정상적인 대화로 유도해 나갔다.

그랬더니 그녀는 그간 서러움에 북받쳤는지 흐느끼며 토로하더라.

그렇더라도 그렇지 파이프 담배까지 멋들어지게 피워가면서 말이다.

반광녀(半狂女)의 얘길 대충 요약하면 이렇다.

젊은 시절 해병대에서 목숨 걸고 싸운 대가로 모은 돈에다 대출받아 집을 샀더니 2008년 금융위기 사태로 벼락거지가 되었다면서···,

종국엔 집에서 쫓겨나 노숙하면서 블랙브로스(시커먼 수프)로 때우길 십여 년이었으니 매수한 집은 진정 집이 아니었단다.

다시 말해 그녀의 집은 그려진 이미지였지 실재가 아니었으리라.

따라서 그렇게 서민들을 혼동시키는 거대한 해적 자본의 이미지 조작 마술에 속았다면서 분해하더라.

마치 자기 자신은 레판토 해전에 참전했다 귀국 도중 해적에게 잡혀 2년간 노예생활을 했던 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와 같았다면서···

그게 다 클린턴 경제팀이 금융주도 세계화 세력에 저당 잡혀 규제를 완화한 결과인데다 오바마는 주택 소유자들이 집을 압류당하는 걸 방치한 채 은행만 살려주었다며 비난의 소릴 높였다.

이게 다 입으로는 침도 안 바르고 ‘Putting People First(사람이 먼저다.)’를 내세우는 민주당 진보진영 새끼들 때문이라면서···

그러므로 ‘Let no debt remain outstanding, except the continuing debt to love one another.(피차 사람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라는 거룩한 말씀까지도 전하더라.

더불어 ‘Do not puts up security for debts(남의 빚에 보증이 되지 말라.)’는 잠언 22장 26절 말씀을 거역하면 개인이나 금융기관이나 다 망할 것이라는 저주까지도 퍼부으면서.

내가 보아도 실로 지당하신 말씀이도다.

이 나라에 레알(real) 빚보증으로 인한 지옥이 곧이어 열릴 것이기에···real estate를 조심할지니라.

그러더니 자기의 비밀 작전 암호명이 Rozinante(로시난테)였다는 사실까지 밝히더라.


그러면서 자신의 족보에 대해서까지 언급하길, 증조부는 스페인 내전 때 왕당파였단다.

해서 축구팬으로서도 레알 마드리드를 응원한다고 강조한다.

real은 스페인어로 왕실 소유라는 royal이라고 친절히 가르치면서 바르셀로나에는 빨갱이들이 너무 많다면서···

이는 마치 UFC 여성 스트로급 챔피언이자 리투아니아 이주민 출신 ‘로즈 나마유나스’가 얼마 전 “빨갱이가 되느니 죽는 게 낫다.”라며 중국 선수와의 경기를 앞두고 투지를 불태우던 모습과 흡사하구나.


참고로 리투아니아는 반러시아 정서가 심하다는데, 느닷없이 최근 명품 쇼핑거리로 유명해졌단다.

그래서 증조부 고향인 스페인에서도 중저가 브랜드인 자라(ZARA)를 고집한다는 너, 로시난테여!

진정한 보수이자 민족주이자로다.

하지만 그녀 가문은 프랑코 장군이 ‘pronunciamiento(쿠데타)’에 성공했음에도 거기에 끼지 못한 채 미국으로 온 가족이 이민을 왔다는구나.

이유는 자기들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또는 무정부주의자들에 맞선 우파에 속했지만 스페인은 가톨릭 국가여서 종교적으로는 프리메이슨이었던 가족력 때문이란다. 프리메이슨까지 나오면 너무 해골이 복잡하므로 일단 넘어가자.


마지막으로 그녀는 빨리 임무를 마무리하고 미국으로 돌아가 부정선거로 대통령 자리를 도난당한 트럼프를 암살로부터 지켜야 한다고 말하다니.

나 여무명은 뭔 소리인진 모르겠으나 그녀의 표정에서 장엄함을 느낄 수 있다.

내가 보기에 남조선에서도 한때 거세게 일었던 부정선거 논란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아무튼 온데간데없기에···


그런데 내가 여자 저격수의 넋두리를 들어주고 있는 가운데 원산폭격 자세로 조신하게 있던 해커들이 자국 억양이 가미된 각국 영어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Listen to her gibberish(저 여자가 횡설수설하고 있어)!

Brothers, what shall we do?(형씨들 어찌할까)

It’s time(이 때다)!”

그들은 갑판에 보관 중이던 연장을 꺼내 들었던 것이었으니.

그것은 좀 전에 아사랴가 들고 있었던 아랍풍의 곡도였다. 그것도 길이가 긴 장검!


그러자 Rozinante(로시난테)는 근접전이어서 저격용 총이 무용지물임을 직감하고는 즉시 칼을 빼어 들었다.

나 여무명은 자연생태계의 먹고 먹히는 싸움에는 끼어들지 않는다는 나름의 규칙이 있으므로 잠시 지켜보기로 하자.

비록 열두 명이 킨 칼을 들고 날뛰고 있지만 특수훈련으로 단련된 로시난테가 사용하는 양날 단검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녀는 상대방의 사정거리를 벗어나거나 롤링 동작을 통해 장검의 베기를 가볍게 피하면서 단검의 찌르기 거리로 단박에 들어가 무참히 칼을 꽂는 것이었다.

싸움의 기술이 이러할진대 권력다툼도 예외일 수 없다.

아마추어 식으로 서로 감정만 앞세운 채 눈감고 주먹을 휘두르다가는 상대방 러키 펀치에 당하는 꼴이 되리라.


내가 내리는 관전평은 이렇다. 광활한 광야에서 기병끼리 싸움이 아닌 좁은 배에서의 혼전(混戰)에선 빠른 속도로 찌르고 빠지는 양날 단검이 오히려 효율적이라는 것. 이는 이미 오래전에 로마의 스키피오와 카르타고의 한니발 간 싸움에서 입증되었다. 스키피오는 로마 중무장 보병의 주무기였던 외날 장검을 스페인 원주민이 사용하던 양날 단검인, 글라디우스(Gladius)로 교체함으로써 승리를 견인했던 것이다.


자, 이제 그녀는 “maricones!(호모 새끼)”라는 괴성을 내지름과 함께 마지막 해커의 가슴팍을 찌르면서 상황을 종료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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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 염백(4) 23.10.30 18 0 12쪽
206 염백(3) 23.10.09 1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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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갱백(5) 23.08.10 1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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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갱백(2) 23.07.07 2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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