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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1.12.13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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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8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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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백(5)

DUMMY

암튼 나 염소께선 헛소리나 해대는 서양놈들과 검은 머리 외국인이 날 관대하게 처분해 줄 것을 요망했다네.

심지어 헬라어로 ‘splagma(腹 중에서 차오르는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그랬다 치세. 이왕지사 말이 나왔으니, 난 워낙 은밀하게 일을 해왔기에 너희들의 TSDB (Terrorist Screening Database-테러리스트 선별 데이터베이스)에도 이름이 올라가 있지 않잖나?

비록 조금 더럽고 어두운 이권의 세계를 주무르고 있을지언정 이래 봬도 진정한 사업가라고!

저기 나를 모욕한 독일인 말마따나 너무 질서정연하고 무균의 공간은 결국엔 ‘발트슈테르벤(Waldsterben-숲의 죽음)’에 불과할 뿐이라네.

어차피 황야나 석양에선 좋은 놈, 나쁜 놈, 그러곤 추한 놈 등등이 다 섞여있는 게 세상이 아니겠나?

해서 The Good, The Bad, The Ugly 중에서 살아남은 단 한 놈이 다 가지는 게 법이고 진리잖나?


그건 그렇고. 저기 조타실에서 MI6를 비롯한 서방 정보기관 놈들과 함께 쌀쌀맞게 날 내려 보는 조선인은 바로 여무명이 아닌가.

어쩔 수 없이 비웃음이 가득 섞인 놈의 시선을 맞이해 어색한 미소를 띠며 이번 한 번만 봐달라는 제스처를 취할 수밖에.

이렇게 왕년에 소련 공산당의 전설적인 스파이에다 소련 붕괴 후엔 러시아 마피아 세계를 주름잡던 존심을 다 버리고 볼멘소리에 덧붙여 애원했걸랑.


한데 우주의 균형이 돌연 깨어진 걸까?

저것이 바로 ‘chariot of fire(불의 전차)’?

여지없이 튀어나오는 나의 외마디 비명은?

“안 돼!”


순간 빛이 치솟아 오르면서 상당히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다네.

나 염소가 잠시 온갖 해괴망측한 기생충 생각으로 멍 때리고 있을 타임에 요란한 폭발음과 함께 관자놀이에 타격감을 느끼면서 혼절했으니까.

그건 바로 우리 배인 ‘The Billy of tea’가 화염에 휩싸이면서 충격으로 날아온 선박 운전대에 맞아 정신을 잃었던 것이지 뭔가.

비록 찰나였지만 그 빛의 영향으로 다시 흐느적거림을 시작하는 해바라기의 환상을 보고야 말았다네,

1888년 빈센트 반 고흐가 그렸다는 그림과 매우 유사했지.

난데없이 먼전 가버린 친구인 푸시킨이 생각나는구먼.


그뿐만이 아닐세.

아이고머니!

끔찍하게도 마지막까지 운전대를 꽉 잡고 있던 선장의 양손이 절단된 채 달려있었으니 이를 어쩌나.

훌륭하다 훌륭해.

아무리 배가 적들에게 점거되었을 뿐만 아니라 폭파되고 있을지언정 제 소임을 끝까지 다한 책임감 있는 선장이여!

이는 세월호 침몰 당시 먼저 튄 선장이나 남조선에서 흔히 나타나는, 즉 정권의 몰락기에 앞 다퉈 탈출하려는 쥐새끼들과는 완전 딴 판이잖나.

지배계급이 아닌 우세계급에 속한 분들이 아니시겠나.

특히나 이러한 상황임에도 굿도 보고 떡도 먹겠다는 놈들이여 화 있을진저!


세상에나, 일개 선박에서 발생한 폭발이 주변 환경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니.

자산어보(玆山魚譜)에 나오는 이 동네 해양생물은 물론이거니와.

뭔가 있어 보이는 우리 배 주변을 배회하며 떡고물이나 떨어지기를 염원하던 바닷새들이 본의 아니게 거친 파도에 죽음의 세례식을 치른 거였다네.

저기 화가 잔뜩 나 넘실거리는 파도 사이의 골짜기 굽이마다 물고기 떼에 뜯기고 있는 조류들을 보게나.

갈매기나 물수리들이 연거푸 부리를 물 밖으로 내밀며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다해 보지만 이내 깊은 심연으로 끌려들어 가잖나.

종국에는 몇 올 안 되는 깃털만 바닷물 위에서 위태롭게 표류하고 있구나.

심지어 짝을 짓지 못하면 날지 못한다는 무소불위의 비익조(比翼鳥) 한 쌍도 그런 처지였단 말일세.

무릇 모든 일의 밑바닥엔 여자가 있는 법!


갑과 을 또는 사냥꾼과 사냥감이 전도되는 드라마틱한 광경이여!

아울러 한때 남조선 투견판을 주름잡던 도사견들이 이젠 식용으로 전락했다는 견생(犬生) 역전극일세.

역시나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구나.

이렇듯 세상은 모름지기 공짜를 탐하다가 느닷없는 변화로 인해 목숨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음을 명심할지니라.


그렇담 왜 ‘The Billy of tea’가 뜬금없이 가라앉고 있느냐, 라는 의문이 들 터인데?

혹시 북조선 잠수정의 어뢰공격?

그게 아니면 혹여 ‘시티 오부 코퍼스 크리스티’?

아닐세.

아무리 그래도 ‘그리스도의 몸’이란 뜻의 이름을 핵잠수함에 붙이다니!

망령된 양키들!

나 염소는 러시아정교를 믿는 독실한 신자니라.


그렇거나 말거나 죽은 아들 아사랴로 말하자면 시종일관 줄곧 계획이 있었던 게지. 혹시 모를 적들의 공격에 대비해서 자신의 체온이 떨어진 것을 감지해 자동으로 배가 폭발하도록 설계해 두었던 것일세.

아사랴야말로 진정한 과학도이자 물귀신이 아니겠나.

자신이 계획하고 진행한 모종의 흔적을 모조리 지우겠다는 의도일 테고.

그러고 보니 남조선에서도 누군가에 의해 정교하게 설계된 음모가 착착 진행되고 있는걸.

어떤 이들은 이를 알고나 있는지 나 원 참!


암튼 아사랴로서는 그러함으로써 배가 적에게 넘어가 각종 음모론의 희생양이 되는 걸 방지하겠다는 의도까지 있었다고 봐야겠지?

근자에 남조선은 그야말로 음모의 도가니탕이니까.

그렇다 치고!

아무리 그래도 애비가 난파선을 탈출할 시간을 줬어야지 이놈아!

이를 어쩐담.


어쨌거나 마지막으로 난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아사랴의 얼굴에 구푸려 울면서 입 맞추고 작별을 고했다네.

난 이제 다시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조선 속담을 위안 삼아 살아내야 하겠지.

그런고로 지켜낼 자식이 없으면 겁(怯)대가리를 상실한 채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화신(化身)이거나 화신(花神)이 될 수밖에 없잖은가?

물론이거니와 그 화신이 소신공양(燒身供養)을 위한 화신(火燼)이 되는 건 순식간이지만 말일세.


그것 참 저기 좀 보게나. 좀 전까지 기세등등하던 SAS(Special Air Service) 요원들이 시체가 되어 갑판 위를 무궁자재로 나뒹굴고 있거나, 설령 살아 있더라도 뇌가 정상이 아니더군 그래.

저기 자기네 영국인들이 핍박께나 하던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의 시를 주절거리는 자도 있었으니.

낙타인 양 촘촘하게 돋아난 속눈썹을 진동시키며 이렇게.

“만물이 허물어져 간다. 중심을 잡을 수가 없구나.

온 천지에 종잡을 수 없는 난장판이 펼쳐질 따름이로다.”

내가 보기에 이런 시가 남조선의 현시점에 어울리는 묘사일세 그려.

어라, 또 한 명의 대테러 요원은 자기네 나라 시인이자 역사소설가인 월터 스콧(Walter Scott)의 말을 빌려 주절거리고 있는걸.

충격으로 홀라당 벗겨진 가발을 다시 정수리에 대충 올려놓고는 저렇게.

“우리는 눈으로 조각상을 만들고선 그것이 녹는 것을 보고 운다.”

내가 보기에 이 또한 마치 남조선의 어떤 정치 세력의 후회막급(後悔莫及)한 심정을 표현한 것 같더군.

다른 건 다 제쳐두고라도 아무렴 값은 치러야지!


해서 나 염소께서도 저들 나라 인물의 말을 빌려 화답하려 하네.

요딴 식으로 말일세.

“조너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께서 말씀하시길,

나는 사악해진 사람을 보고 놀라지 않지만,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놀란다.”

그 유명한 걸리버 여행기를 쓴 작가라네.

좌파 페미니스트들이 게거품을 물고 욕지거리를 할 만한 여성혐오주의자일세.

듣거라!

이제 곧 아사랴가 설계한 최종 폭탄이 작동함으로써 선박이 완전 박살날 예정이니 얼른 피할지니라.

끝!




저 다니엘은 아사랴와 그의 친부인 염소를 생포하기 위해 선발대로 보낸 여무명이 현재 실종상태라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답니다.

게다가 파이브 아이즈(Five Eyes)의 국제공조체제하에 긴급히 꾸려 보낸 본진마저도 바다에서 표류하고 있다는 후속 비보도 연이어 받았고요.

그러하온즉 벌써 전남 완도군 명사십리해수욕장 해변에는 난파선 잔해와 시신들이 발견되고 있대요.

듣고 전하는 소식에 따르자면 일부 생존자들은 배에서 불길이 ‘saeva indignatis(맹렬한 분노)’와 같이 솟아올랐다고 울부짖는 등 아직도 패닉 상태래요.


듣자 하니까 아사랴 부자가 운영하던 특수선박인 ‘The Billy of tea’가 결국 자살을 택해 용왕님께 소신공양을 했다지 뭐예요.

이로 인해 각국에서 파견 나온 요원들은 졸지에 객지에서 분사(焚死)했거나 조만간 물귀신이 될 위기에 처한 것이죠.

이는 마치 밀렵자들을 추적하던 산림감시인들이 산불이 뿜어대는 화마에 변을 당한 꼴이었으니 이를 어쩌면 좋을까요.

그러므로 각양각색의 감시인들은 항상 고사성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해요.

아무려면 당랑박선(螳螂搏蟬)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을 정도니까요.

자기가 지닌 무기가 날 선 양날 검이 아닌 한낱 사마귀의 도끼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진즉에 깨우쳤어야죠.


그나저나 아사랴와 염소회장이 어떻게 이런 선박을 매수해 운영할 수 있었을까요, 서방정보기관에 따르면 그 배는 일찍이 우크라이나의 곡물수송선이었는데 요새 러시아와의 전쟁 통에 역할을 할 수 없어 헐값에 팔린 거래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중국이 자랑하는 최초의 항공모함인 랴오닝함도 우크라이나에서 고철 취급을 받던 것을 저가에 사들여 개조한 것이라는 걸.


저는 서둘러 남해 바다의 사고현장에 도착했고 처참한 장면을 목도하게 되었답니다. 음계(陰計)와 뒤틀린 탐욕이 가득했던 특수선박은 망망대해에 잔해와 퉁퉁 부어오른 자색의 시신들을 흩뿌렸군요.

이를 보고 있자니 갑자기 베드로전서 5장 8절이 떠오르네요. 그것도 라틴어로요.

‘Sicut leo rugiens circuit quaerens quem devoret.’


그랬대요.

컴퓨터 전문가인 아사랴가 이 배에서 직접 채굴과 해킹을 통해 암호화폐를 대량으로 모을뿐더러 불법적인 시세조작에도 관여했음이 밝혀졌대요.

쉽게 말해서 그간 한국에서 봉이 김선달 식으로 돈을 벌어온 불법 공매도 세력과 같았던 것이죠.

여기 대한민국에선 원래 이러한 조작과 작업엔 크게 괘념치 않거나 관대하잖아요. 에로스를 좋아하는 왼쪽 날개나 프시케를 버린 라이트 윙, 모두가요.

어쩌겠어요.


이번 사건에선 뭐니 뭐니 해도 친구인 아사랴의 죽음이 너무 안타까워요.

아사랴가 서양의 제대로 된 가문에서 출생해 양육되었다면 그의 최첨단 과학도로서의 능력에 비추어 충분히 ‘Minister of the Future(미래 장관-스웨덴에서 신설) 쯤은 따 놓은 당상일 텐데요.

다만 그는 전략전술적인 마인드가 다소 부족한 데다가 하다못해 보편타당한 처세술로 갖추지 못해 비참한 결과를 초래한 것이죠.

저 같으면 아일랜드에서 자란 어떤 영국인 풍자 소설가가 묘사했던 것처럼 바다에 통을 던졌을 거예요.

배를 난파시키려는 고래들의 주위를 다른 곳으로 끌기 위해서요.

그들 고래들은 입속에 반란의 횃불을 감추고 있거든요.


비록 ‘The Billy of tea’라는 배는 영원한 반역의 유령과 과오와 거짓의 유령 및 불공정의 유령, 심지어 타락과 부정의 유령이 출몰하는 거의 캐리비안 해적선 수준이었지만요.

결국엔 Dead Men Tell No Tales(죽은 자는 말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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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염백(7) 24.01.17 12 0 11쪽
209 염백(6) 23.12.27 9 0 11쪽
» 염백(5) 23.12.08 1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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