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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1.12.13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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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5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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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백(4)

DUMMY


나 염소께선 살해당할 수 있다는 두려운 감정이 용솟음치는 걸 억지로 진정시키곤 얼음장과 같은 냉정으로 전신을 무장했다네.

그나저나 침입자가 정체불명 언어로 쏘아대는 헛소리에 잠시 잊었지만 내 목을 겨누고 있는 금속성 물질은 바로 여포 창날 같이 예리한 등산용 피켈이 아닌가!

알다시피 그건 바로 볼셰비키 혁명의 주역이자 ‘이오시프 스탈린(Iosif Stalin)’ 최고 지도자의 경쟁자이던 ‘레온 트로츠키(Leon Trotsky)’ 동무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치던 피켈이란 말일세.

그랬다네.

트로츠키 동무께서는 일찍이 멕시코로 망명해 친구인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라 부인이자 화가인 ‘프리다 칼로(Frida Kaholo)’와 밀애를 즐기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황천길로 가셨다네.

당시 러시아에선 트로츠키의 온 친족은 물론 추종자들까지도 몽땅 살해당했음에도 즐길 건 주저 없이 즐기는 저 대담한 혁명정신이여!


자고로 좌익 혁명의 와중에 있어서는 트로츠키와 같이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모르는 숙맥인 이상주의자들은 스탈린과 같은 종류의 흉악무도한 현실주의자를 결코 이길 수 없다는 역사적 진실!

왜, 봤잖은가.

과거 남조선 좌파 정권에서도 이상주의자들은 정치범 수용소 대신 아랫도리 부실 단속 등 치욕적인 죄에 엮여 빵에 가거나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자살로 인생을 끝낼 수밖에 없었던 사례들을.

왜인 줄 아는가?

정적들을 제거하기 위한 차원에서 당의 명령에 철두철미하게 따르는 유혹자와 히트맨은 항상 존재하걸랑.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히트맨(HITMAN)을 페인트공(Paint Houses)이라고도 하더군 그래.


여담이지만 디에고 동무는 부인인 프리다 칼로의 동생과 관계를 맺을 정도로 천하에 손색없는 오입쟁이임에도 공산주의자이자 동시에 민족주의자였다네.

남조선 공산주의자들의 후손들은 조상이 민족주의자에다 독립투사였다는 사실만을 애써 강조하더군.

그들이 세우려 했던 조국의 시스템과 메커니즘이 무엇이었는가는 무조건 감추면서 말일세.


그러고 보니 달가울 리 없는 야밤의 습격자인 넌!

내 비서의 애인인 독일인 하겐이 아니냐?

목소리를 너무 깔아서 몰라봤잖아.

이놈이 장미꽃 대신 살상 무기를 들고 있구먼.


쉿! 이렇듯 치명적인 암살자는 바로 곁에 있다는 사실을 또 한 번 증명한 셈!

절대로 잊지 말길 바라네.

단언하건대 혁명적인 혼란 시기엔 어느 누구도 믿어선 안 된다는 치명적인 격언을.

내가 너무 오랫동안 남조선에 있다 보니 여기 ‘diehard supporters’와 똑같이 ‘상상력의 부재 증후군’을 앓고 있었던 것이었으니.

얼마 전 팔레스타인 테러 단체인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아이언 돔 방공망을 싸구려 로켓과 낙하산으로 뚫어버린 데다가 지상 방어벽조차도 불도저로 무너트린 채 오토바이와 트럭으로 여호와의 백성을 유린했잖은가.

오래전 발생한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 알카에다의 항공기 동사다발 공격인 9.11 테러도 그랬고.

이곳 남조선 보수 세력도 낡아빠진 콘크리트 지지층을 보수할 생각은 없이 그것이 아이언 돔과 방어벽인 양 맹신하다간 곧 절단 날 터인데···

안일한 습관이 오래되면 징후를 포착하는 감각도 무뎌지는 법이거늘.

쯧쯧 바보들인 게지.

보라!

뒤늦게 위험을 인지해봤자 무장해제 당한 자들에 대한 대학살이 시작될 것이라고!


웬걸. 훗날 알고 봤더니 하겐은 정체를 숨기기 위해 남조선을 취재하는 독일인 기자로 위장했지만 스페인 출신 킬러였지 뭔가.

본명은 코르테스(Cortés)였다나 뭐라나.

글구 ‘The Journalist and the Murderer’!

그래, 그거야!

작금의 남조선과 같은 내전상황에선 언론인이란?

각기 서로 다른 진영으로 편 갈라서 날선 풍자라는 미명하에 마구 총을 쏘아대는 인격 살인자와 매한가지걸랑.

그렇기에 이날 밤은 그야말로 놈의 원래 국적 말마따나 ‘Noche Triste(비통한 밤)’이었단 말일세.


내 짐작엔 하겐은 분명히 러시아 마피아 최종 존엄이 보낸 청부살인업자가 분명해.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통에 마피아 상층부에서도 지각변동이 있었거든.

기실인즉슨 나 염소의 뒤를 봐주던 마피아 뒷배가 잔혹하게끔 제거되었으니까.

난 불법 침입자 하겐에게 마지막 자비를 부탁했다네.

원하옵건대 저 무시무시한 등산용 피켈로 내 두개골을 빙벽 찍듯이 쪼지 말고, 대신 깔끔하게 머리에 총알을 박아 넣어 달라고.

그러자 하겐은 자신은 결코 그런 무지막지한 ‘Executioner(사형집행자)’가 아니라고 항변하더군.

러시아 마피아에서 자신에게 나 염소를 자결시키라고 사약을 전달하는 임무를 맡겼지만.

자기는 죽지 못해 힘들어할 경우에만 두개골을 쳐주는 자비로운 보조역할에 불과하다나 뭐라나.


그렇담 놈은 과거 일본에서 유행하던 가이샤쿠(介錯)란 말인가?

왜, 있잖나?

할복 중인 자의 머리를 잘라 즉사시켜 주는 선한 일꾼 말일세.

뭐가 됐든 놈은 나에게 총알 대신 러시아제 특수 조제용 홍차를 한 잔 타 주겠다고 했네.

총기의 개인 소유가 불법인 남조선에선 총에 맞은 주검이 발견되면 난리 난다면서.

이런, 이런, 엄청나게 치밀한 놈 같으니라고.


하겐은 러시아식으로 죽음의 의식을 진행하더군.

심지어 그곳에서 공수해 온 사모바르(samovar)에 물을 끓인 후 아제르바이잔에서 수확한 일등급 차를 충분히 우려내더라니까.

거기다 친절하게도 달디달고 달디단 밤양갱까지 최후의 디저트로 드시라면서···.


물론이려니와 저 차 안에는 영국으로 망명한 러시아 전직 간첩이 드셨다는 방사능 물질인 ‘폴로늄-210’이 첨가되어 있겠지만.

이보게!

참고로 그동안 수차례 독살 시도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부지하던 반체제 인사 ‘알렉세이 나발리’도 최근 끝내 의문사함에 따라 저항의 드라마가 막을 내렸다더군.


그렇잖아도 난 얼마 전 상감마마로부터 사약을 받은 어떤 대감이 감히 사발을 엎어버리자마자 동네방네에 자기를 죽이려 한다고 떠드는 걸 본적인 있었다네.

이유야 뭐가 됐든···

그 대감께선 나중에 임금의 토닥거리는 격려까지 받으며 위풍당당하게 전장에 나가더군.

마치 다윗 왕께서 밧세바의 남편인 헷족속 우리아를 치명적인 전장에 내보냈듯이 말일세.

하지만 남조선 우리아들은 결코 만만치 않아서 자기 살길을 치밀하게 모색하거나 설령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혼자 죽지 않을걸.


맞네! 이러한 사례는 북조선 역사에도 엄연히 존재했걸랑.

김일성 수령께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낙동강 전선에게 몇 개 사단만 빼달라는 간곡하게 명령했음에도···.

김 책 사령관이 무시했다는 설도 있거든.

그래서 전쟁 중이던 1951년 1월 31일, 향년 47세에 돌연 죽었을까?


이윽고 사약을 받을 시간이 도달했구먼.

놈은 생애 마지막 노랠 불러주겠다며 추억의 올드 팝송인 ‘Dust in the wind’를 불러주지 뭔가.

‘I close my eyes. Only for a moment and the moment’s gone. ∼ All they are is dust in the wind∼’

하긴 탐욕스러운 인간들이 이 노래 가사를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비참한 꼴을 당하지.

이제 보니 넌 진정한 ‘Homo musicus(음악적 인간)’로구나.


난 하겐이 넘겨준 독차를 두 손으로 공손히 집어 들고 먼저 지옥의 냄새를 음미하다가 입안 가득히 넣었다네.

그러곤 노래를 흥얼거리느라고 방심한 놈의 면상을 향해 입안에 머금고 있던 홍차를 장렬하게 뿜었고.

급기야 하겐은 기겁을 하면서 이성을 상실한 나머지 등산용 피켈로 사정없이 나의 두개골을 내리찍더군.

나 역시 질 수 없다는 기세로 취침 때마다 베개 밑에 숨겨둔 잠비아 단검으로 속사포처럼 찔러댔고.

이어서 놈은 근접전에선 피켈이 오히려 불리하다고 여겼는지 얼른 던지고선 허벅지에 찬 수중 나이프를 빼들었으니.

이에 우리 둘은 서로의 머리를 잡은 채 한데 엮여 상대의 옆구리를 노리는 형국이 된지라.

난 이번에도 하겐에게 왼쪽 심장부위를 찔렸지만 무사할 수 있었다네.

매번 강조하지만 난 우흉심 기형이잖나.

이젠 정말 죽고 싶어도 나의 인생 자체가 목숨이 질긴 ‘die hard’라니까.

프리다 칼로가 그랬다지? “죽임이 나를 이기지 못하도록 나는 죽음을 놀리고 비웃는다.”라고!


그런데 뜬금없이 내 여비서 류드밀라의 외마디 외침이 방안에 울려 퍼졌다네.

Lyudmila는 말하길,

“맙소사! 내 그럴 줄 알았어!

내가 아무리 단호한 Free Woman에다 고집스러운 페미니스트일지언정 사귀는 내내 그 흔하디흔한 디올 백 한 개를 사주지 않더니만.

세상에나, 저놈이 결국 우리 회장님의 목숨을 노리는 암살자였어!”


나의 여비서는 단연코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닐세.

왜냐하면 그녀는 중앙아시아에서 태어났으며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대가로 러시아 국적을 획득한 고려인을 부계로, 스탈린에 의해 강제 이주당한 타타르인을 모계로 두고 있잖나.

부모 두 분 다 러시아 무술 삼보의 실력자라네.

자 보게나.

류드밀라는 냅다 달려들어 칼을 들고 있던 암살자의 손을 순식간에 제압하더니 ‘die hard’ 기술을 놈에게 선사하잖나.

이는 몸을 숙인 상대방의 다리를 교차해 거꾸로 들어 올려 바닥에 내팽개치는 기술이지.

오호! 여비서의 유도와 레슬링을 기반으로 한 삼보기술이 일품인걸.


이에 하겐은 땅바닥에 고꾸라져 망신당하자, 여자 친구고 나발이고 간에 다시 칼을 집더니 그녀의 경동맥을 찌르지 뭔가.

그러고도 분에 못 이겨 아예 식도까지 뚫고 들어간 칼날을 비틀어가면서···

안 돼!

너무 잔혹한 장면이라 상세한 설명은 생략하네만.

Lyudmila는 1793년 10월 16일 단두대에서 처형된 지체 높으신 여인네의 머리와 같은 꼴이 되었지 뭔가.

요즘 실명을 밝히기가 뭐해서 말일세.


나 염소는 기어코 뇌진탕 때문인지 아니면 독약으로 인한 현상인지 모르겠지만 정신을 잃어가는 와중에 이를 생생하게 지켜볼 수밖에.

이런 걸 일종의 locked in syndrome(전신마비 상태임에도 의식이 존재하는)라고 해야 할까?

혹시 궁금해할까 봐 지독한 두통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환각에 대해 소상하게 설명하겠네.


이거야말로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넘나드는 충격의 판타지인걸.

함 보세.

환상 속에선 대치중인 각 진영에서 12 명씩 나와 상대방의 머리를 잡고는 옆구리를 찔러 일제히 쓰러지는 게 아닌가.

왜들 이러는 걸까?

그토록 참혹하고도 장난스러운 건 또 없나니.

세상에나!

뒤이어 이긴 쪽에선 진 세력을 쫓으면서 칼과 창을 잔혹하게 휘둘러대는걸.

이제 겨우 생존한 95명의 패잔병들은 사방이 적에게 포위당한 채 사면초가(四面楚歌)를 들으며 두려움에 떨고 있구나.

헌데 졸병들은 붉은 군복인데 반해 왜 군관동무들의 전투복은 저럴까?

시백(是白)?

그랬다네.

폐왕별희(霸王別姬)에서 흰옷을 입고 검무를 추던 애첩 우희(虞姬)가 먼저 자결한 데 이어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장본인 항우도 역시나, 그리고 그가 거병할 때부터 따르던 강동(江東)의 팔천여 장졸들도 모두 쓰러졌구나.

오호통재(嗚呼痛哉)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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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시백(5) 24.05.03 11 0 12쪽
» 시백(4) 24.04.05 11 0 12쪽
213 시백(3) 24.03.21 1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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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시백(1) 24.02.15 1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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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 염백(6) 23.12.27 10 0 11쪽
208 염백(5) 23.12.08 15 0 12쪽
207 염백(4) 23.10.30 18 0 12쪽
206 염백(3) 23.10.09 14 0 11쪽
205 염백(2) 23.09.23 14 0 12쪽
204 염백(1) 23.09.10 15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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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 갱백(6) 23.08.19 22 0 12쪽
201 갱백(5) 23.08.10 2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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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 갱백(1) 23.06.28 2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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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 타백(6) 23.06.06 24 0 11쪽
194 타백(5) 23.05.24 27 0 12쪽
193 타백(4) 23.05.13 2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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