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화이트산맥
딱히 바다를 항해하고 싶거나 해적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해본 그였지만 멋진 배를 감상하며 한 번쯤 이런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도 해적이 되고 싶어서 온 거야?”
가슴팍에 닿을 정도의 키에 풍성한 붉은 곱슬머리와 어울리는 붉은 드레스를 입은 귀엽게 생긴 주근깨 소녀가 친근하게 바트에게 다가와 싱긋 웃으며 얘기하자
“아니 난 상인인걸. 붉은수염 해적단이 항구에 들어왔다고 해서 배 구경 왔어.”
바트의 말에 소녀는 호기심이 생기는지
“그으래~ 직접 해적선을 보니까 어때?”
“크고 멋진 배야”
“그렇지! 정말 멋진 배야”
소녀는 생긋 웃으며 바트와 같이 해적선을 바라보았다.
바트는 소녀의 옆에 꽃바구니를 보았다. 아마도 근처에서 꽃을 팔아 생활하는 소녀인 거 같아 보이자
“미안 난 꽃을 살만한 형편이 못 돼서....”
사내가 의기소침해하며 말하자, 소녀는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이 꽃 파는 거 아니야.”
붉은 머리 소녀는 장미꽃 하나를 집어 그에게 주었다.
“이 꽃 가져, 내가 선물로 주는 거야”
“어 정말? 고마워”
뜻밖의 선물에 당황하며 꽃을 받으려 하자
소녀는 입을 샐쭉 내밀며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숙녀가 꽃을 주는데 성의 없게 받을 거야. 기사님처럼 예를 갖춰 받아야지”
“어! 그런가?”
바트는 쑥스러운지 머리를 긁적이며 한쪽 무릎을 꿇어 손을 내밀며 소녀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는지 기사들이 쓰는 말과 행동을 따라 했다.
“마이 레이디”
바트의 행동에 소녀는 화사하게 웃으며 꽃을 건네주었다.
“나의 기사님”
그리곤 볼에 기습 뽀뽀를 해주었다.
쪽~
소녀의 깜짝 행동에 얼굴이 붉어진 바트는 자리에서 황급히 일어나 애써 침착한 표정을 지었다.
소녀는 웃고 있지만 본인도 방금 행동이 부끄러운지 빨개진 얼굴을 감추려 꽃들로 가리며
“다음에 봐요. 잘생긴 오빠~”
“그래 다음에 보자. 그런데 이름이 뭐니? 난 바트라고 해”
“난 로제야. 내 이름 잊지 마”
“그래 안 잊을게. 로제”
붉은 머릿결과 어울리는 이름의 로제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부두가를 떠났다.
“여어~ 이번엔 괜찮을 걸 건졌나?”
소녀와 같은 붉은 머리에 붉은 수염을 한 사내가 음흉하게 웃으며 다가오며 말하자
“흥, 남이사”
“마이 조슈아, 그러는 거 아니지”
사내는 처음부터 다 보고 있었는지 장난기 있게 말하자
로제는 얼굴이 붉어지며
"이익"
소녀의 머리가 허벅지에 닿을 정도의 덩치 큰 중년의 사내의 정장이를 냅다 걷어찼다.
퍽
“억!!! 아이고 내 다리~~~~”
커다란 덩치와 안 어울리게 사내는 엄살을 피우며 맞은 다리를 붙잡고 펄적 펄적 뛰었다.
“자꾸 놀리면 집 나가버린다. 그리고 내 이름은 로제야. 조슈아 이름 별로야”
“미안, 미안 아빠가 잘못했다. 화 풀으렴 그럼 방금 그 희멀건 아니 그 꼬마에 대해서 말해줄게”
커다란 곰 같은 덩치와 험악한 얼굴과는 반대로 잔뜩 화가나 볼을 부풀리고 있는 귀여운 딸을 보며 어쩔 줄 몰라 달랠만한 말을 꺼내 들자
딸은 방긋 웃으며
“좋아”
딸이 화가 풀리자 사내는 씩 웃으며
“타이거 상단에서 일하는 잡부 같더구나”
“진짜? 정말 상단 사람이야?”
“그래 상단 사람이야. 이 동네에서 못 본얼굴이고 옷차림을 보아하니 외지 사람 같은데 오늘 들어온 외지인 상단은 타이거 상단밖에 없거든 왜? 실망했니?”
“아니 괜찮아 생선 비린내만 안 나면 난 좋아, 거기다 쌈도 잘했으면 좋겠어.”
“쌈도?”
“어디 가서 맞고 다니는 거 딱 질색이야”
“그렇지, 그렇지 암 남자는 주먹으로 말하지 므하하하하, 과연 내 딸이야.”
그런 딸이 귀여운지 덩치에 안 맞게 호들갑을 떨며 말하자
“에휴, 남자들이란”
조슈아 아니 로제는 그런 아빠가 창피한지 한숨을 쉬며 터벅터벅 걸어갔다.
*****
바트는 남는 시간을 알차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구경하였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돌아다니지는 않았다. 고향에서 한 싸움 한다고 해도 안전을 위해 불량배들이 있을법한 위험이 감지되는 골목길이나 인적이 뜸한 곳을 피해 사람들이 오고 가는 큰길을 걸어 다니며 항구도시를 구경하다 해가 떨어질 때쯤 저녁이 되어 상단이 머무는 곳으로 돌아왔다.
저녁이 되었는데도 상단의 사람들이 마차들 사이를 부산하게 돌아다니며 짐을 나르는 아저씨에게 인사를 하며
“라울리 아저씨, 저 왔어요”
“이제 오냐. 급하게 일이 생겼다. 어서 와 나르거라”
그의 말대로 상단의 사람들이 부산하게 포대 자루를 나르고 있었다.
아저씨의 말대로 소매를 걷어 제기고 싸여있는 자루를 들어 나르려 하자, 비릿한 냄새가 풍기며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소금에 절인 생선들이다. 영주의 부탁으로 한곳 더 들려 이 물건들을 건네주고 그곳의 특산물을 받아 다시 와야 할 거 같다.”
짐을 같이 나르던 라울리 아저씨의 설명에
“그래요? 어쩐지 소금을 싸게 주더라니 역시 세상엔 공짜는 없네요. 어디로 가는데요?”
“리엔까지 갈 예정이다.”
“리엔요?”
“넌 리엔 마을은 처음이겠구나.”
“네”
“하긴 여기 있는 몇 명 빼곤 프라하시의 최북단 마을까지 가본 적이 없는 거 같구나. 화이트산맥의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지”
“우와!! 화이트산맥의 시작지요!!”
자식뻘인 바트가 신기해하며 말하자, 아저씨는 자신이 아는 화이트산맥에 대한 이미지를 알려주었다.
“그래, 산중에 산이지 사시사철 하얀 눈으로 덮여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지. 이번에 가는 리엔은 관광 도시로 유명하단다. 특히 겨울이 되면 설산이 장관이야. 내일 새벽에 출발이니 사고만 없다면 이틀 후 도착할 것 같구나”
*****
그렇게 싼 값으로 소금을 준 솔트렌 영주의 부탁으로 타이거 상단은 별 탈 없이 이틀 후 리엔 마을의 인근에 도착을 하게 되었다.
멀리서도 보이는 화이트산맥의 모습이 정말 장관이었다.
오월 봄의 끝자락이지만 인간이 올라갈 수 없는 정상의 산들은 아직도 녹지 않은 눈이 덮인 만년설의 새하얀 자태를 보여주며 왜 사람들이 저곳을 화이트산맥이라 부르는지 이유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우와!! 아저씨 저게 말로만 듣던 화이트산맥인가요? 크기가 어마어마하네요”
태어나 처음으로 보는 웅장한 화이트산맥을 보며 감탄하자
“그렇지, 이야~ 산들 진짜 멋지다! 볼 때마다 장관이구나”
두 사람은 눈에 덮인 끝도 없이 펼쳐진 하얀 산들을 보며 감탄을 하였다.
그들뿐 아니라 주변에 처음 본 사람들이나 몇 번 본 사람들도 멀리 보이는 자연의 거대한 조각을 보며 같은 맘으로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멀리 보이는 리엔 마을은 전체적으로 2층 구조로 큼직하게 지어진 집들은 백색 벽돌과 격자무늬로 통일해 산과 하나인 듯한 연상을 주는 한 폭에 그림과도 같은 관광도시였다.
“영주가 부탁한 상점에 가서 물건을 전달하고 준비해 놓은 화물을 받아 정리 후, 다음 날 새벽에 출발할 거니 일이 없다고 너무 늦게까지 돌아다니거나 사고 치지 말고 조용히 구경하도록”
리즈 대장이 몬드 국장 대신 굵은 목소리로 힘을 주며 엄숙하게 단원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네~네~ 적당히 적당히”
다들 리즈 대장의 말을 한쪽 귀로 흘리며 밤 문화를 즐기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허흠흠흠, 이놈들 사고만 치기만 해봐라.”
“우리는 대장님이 제일 걱정입니다.”
“술 좀 적당히 마셔요. 솔트렌에서 처럼 새벽에 짐짝에 실려 운송되지 말고”
“맞아, 맞아”
단원들의 핀잔에 무안한지
“헙헙, 아무튼 조심하자 하하하”
웃음으로 얼버무리는 리즈 대장을 뒤로하고 솔트렌 영주의 부탁을 받고 도착한 곳에 짐을 내리고 가져갈 짐을 실은 일행들은 마음이 이미 콩밭에 있는 듯 사람들은 평상시보다 몇 배나 빠른 몸놀림으로 깔끔하게 짐 정리를 마쳤다.
몬드 국장은 그 모습에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짓곤 거래처 사무실로 들어갔다.
다들 하나가 되어 합심하여 빠르게 일을 마무리한 것에 뿌듯함을 느끼며 누가 먼저 뭐라 할 것도 없이 단결력 있게 어깨 동무를 하고 환락가로 발걸음을 즐겁게 옮겼다.
바트만은 아직 미성년자인 관계로 어른들 노는 데는 낄 수 없어 혼자 시내를 돌아다녔다.
며칠 더 있다 가면 산 근처라도 올라가 볼 텐데 아쉽게도 내일 새벽 출발인지라 근처만 기웃거리며 사 먹을만한 것을 찾아 기웃거렸다.
- 어디 보자.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하이머 형님 말로는 이곳에 싸면서도 맛있기로 유명한 음식이 보르쉬와 양고기를 잘게 조각내 꿰어 양념을 바른 양꼬치 고기라고 했는데....’
바트는 맛 탐방을 하러 주변을 돌아다녔다.
“이새끼들 다 뒤졌어.”
“으악!!!!”
보이지 않은 골목 구석에서 누군가가 크게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에휴, 여기나 고향이나 싸우는 소리는 다 똑같구나”
그래도 호기심이 생기는지 그는 소리가 나는 골목 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골목 안에서는 같은 또래로 보이는 소년들이 뒤엉켜 싸우고 있었다.
두 사람을 포위하여 다섯 명의 소년이 밀어붙이고 있었다. 소년 하나는 이미 바닥에 누워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도 좀 전에 비명을 지른 소년인 것 같았다.
대장인 듯한 덩치 큰 소년이 으르렁거리며
“너 이새끼 니가 이러고도 무사할 거 같아”
덩치가 제법 큰 소년이 앞에 있는 2명의 또래를 협박하며 주변에 있던 무리들은 그 둘이 도망 못 가게 에워싸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검은색 머리와 갈색 머리의 두 소년은 무리들에게 밀리지 않고 맞서 잘 버티고 있었다.
검은 머리 소년이 쪽수로 안 되겠다 싶었는지 방금 협박을 한 덩치 큰 소년에게 도발을 시작하였다.
“까고 있네. 쪽수 믿고 몰려다니는 양아치 새끼들이 어디서 깝치고 지랄이야.”
“뭐! 양아치!! 고아 새끼가 어디서 깝치고 있어”
고아라고 놀려대는 덩치의 말에도 검은색 머리 소년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돼지 새끼가 사람 소리 내고 지랄하네. 퉷”
돼지라 불린 덩치 큰 소년은 가장 싫어하는 말을 듣자 화가 단단히 났는지 얼굴이 붉어질 때로 붉어지자
검은 머리 소년은 자신의 말이 먹힌 걸 보고 조롱하듯 피식 웃으며 그를 더욱 자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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