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의 수레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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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5.08 14:41
최근연재일 :
2024.09.1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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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2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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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미혼산 (2부 18화)

DUMMY


간단한 음식과 술이 나오자 ‘황지하’는 대뜸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소협, 성함이 어찌 되십니까?"


"아, 인사가 늦어 죄송합니다. 저는 ‘남서호’라 합니다."


"나이는요?"


"스무 살입니다."


그러자 황지하는 눈을 반짝이며


"저하고 동갑이네요. 그럼 우리말도 편하게 하고 서로 친구처럼 지냅시다."


친구가 없던 서호는 흔쾌히 "그래, 좋아!" 하며 술잔을 부딪쳤다.



“서호야, 아까 불한당들을 물리칠 때 보니 상당한 내공을 소유하고 있던데 사문은 어디야?”


서호는 잠시 망설이다가


"나는 사문이 없어. 가문에서 내려오는 내공심법만 건강을 위해 익혔을 뿐 아직까지 무림인이라 할 수가 없어."


"그럼 혹시, 무공 초식을 배워볼 의향은 없어? 신법과 검법, 장법 등 다양한 종류의 초식을 배우면 너의 내공 수위로는 조만간 절대고수의 반열에 들 수 있을 것 같아."


"하하!! 나도 배우고 싶어. 하지만 내가 꼭 가야 할 곳이 있어서 그 일을 마친 후 정도문을 찾아 갈게. 그런데 너는 이곳에 무슨 일로 왔어?"


"응, 사실 정도문에서는 처음 강호에 경험을 쌓으러 나갈 때 협행을 하는 전통이 있어.


그러다 우연히 강호에서 유명한 음적 ‘천면수사’ ‘사마귀’를 만나 추적중이야.


그 놈은 해독제도 없는 춘약 중 가장 독한 ‘환혼미혼산’을 이용해 수많은 아녀자를 겁탈한 놈이야.


그래서 관은 물론 나도 한 달 넘게 추격했지만 실패했어.


인피면구를 이용해 얼굴을 수시로 바꿔 지금껏 얼굴도 모르고 있어.


아주 짜증 나는 놈이야. 그 놈을 추격하여 이곳까지 왔는데 종족이 묘연해졌어."


잠시 생각하던 서호가


"지금 좋은 방법이 하나 떠올랐다."


"그게 무엇이야?"


"벌이 꽃을 향해 날아들 듯, 그 음적 또한 아름다운 여인을 향해 움직일 거야.


즉 ‘미인계’를 이용해 그놈을 유인하자는 거지.


혹시 우릴 도와줄만한 여자 친구가 있을까?"


그 말을 듣고 한참을 망설이던 황지하는


"내가 이 객잔에 묵고 있는데 잠시만 내 방으로 같이 올라가자. 너에게 보여 줄 것이 있으니까....."


방에 들어간 지하가 두건을 풀어헤치자 흑단 같은 머릿결이 어깨까지 흘러내렸다.


깜짝 놀라 뒷걸음을 친 서호를 향해 지하가 빙긋 웃으며


"놀라게 해서 미안~. 사실 나 여자야. 강호에서 활동하기 위해 남장을 하고 있었어.


네가 보기에 어때? 그 음적을 유인할 수 있을 것 같아?"


평소 자신의 미모에 자긍심이 대단했는지 물어보는 황지하는 자신만만해 했다.


서호가 바라보니 초롱초롱한 눈빛과 오똑한 콧날, 야무지고 도톰한 입술 등 모두 시원시원한 것이 매력적이었으나 남자로 처음 만난 탓인지 여인으로서 아름답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벌은 무슨 꽃이나 다 좋아한다는 생각에 마음과는 달리 입에서는 본능적으로 "무척 아름다워"라는 말이 튀어 나왔다.


서호의 말을 듣자 신이 난 지하는


"그럼 내가 음적을 유인할 테니 나를 좀 도와줄래?"


"내가 그럴 능력이 될까?"


"그럼 내가 유용하게 쓸 수 있는 한 가지 보법을 알려줄게.


이 보법은 ‘팔행보법’이라는 것으로 우리 정도문의 비전절기야.


현란한 움직임으로 칼과 장을 피할 수도 있지만 짧은 거리를 이동할 때의 빠르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지.


다만 진기 소모가 많은데 너는 진기는 무궁하니까 나를 도와주는데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아."


"그렇다면 좋아, 배워볼게."


이미 병법과 진법에 대해 통달한 서호는 ‘팔행’과 ‘삼십육괘’에 정통하여 단 두 번의 설명에 보법의 묘리는 물론 진기 운행법 까지 깨우쳤고 반시진이 지나자 방에서 그림자만 남기고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을 본 지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자신은 일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그것도 다른 사형제들보다 빠르다고 스승님에게 칭찬을 들었었는데 서호는 반 시진 만에 자신을 능가하는 보법을 펼치다니 사람 같지 않아 보였다.


"너 혹시 전에 이 보법 배운 적 있어? 왜 이리 성취가 빠른거야~~"


"아니, 처음 배운 무예야. 아마 내가 진법에 조예가 있어 원리를 쉽게 깨우칠 수 있었나봐."


"네가 정도문에 오면 누가 스승님이 될지 모르겠지만, 십 년이면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겠다." 하며 기가 막히다는 듯 혀를 찼다.


그러자 서호는 "격려의 말로 그 칭찬을 받아들일게" 하며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자, 그러면 우리 계책대로 한번 실행에 옮겨볼까?" 하면서 그녀는


"너는 잠시 밖에 나가서 기다려. 내가 옷을 갈아입고 나갈게."



서호가 밖에 나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한들거리는 하늘색 옷을 입고 옅은 화장을 한 요염하고 상큼한 느낌의 여인이 서호 앞에 등장했다.


방안에서 무복을 입은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붉은 입술과 가녀린 목, 뽀얀 살색의 보일 듯 말 듯 한 가슴골과 동그란 어깨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자신감이 그득한 지하가 "그럼 이제 거리를 활보해 볼까?" 하자


서호가 농담으로 한마디 했다.


"너의 아름다움에 내가 혹시 음적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


그 말에 지하도 즐거운 듯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며


"고마워. 그럼 우리의 계책대로 움직여 보자" 하면서 그녀는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마을을 가로질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마을에 있는 주점들도 돌며 마치 안에서 사람을 찾는 듯, 한 바퀴 휘돌고 나와 많은 남자들의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제일 좋은 객잔의 독채로 숙소를 옮겨 이목을 줄여 보다 쉽게 음적이 올 수 있게 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째 되는 날 밤 축시가 지날 무렵, 대들보 위에서 긴장한 채 숨어있는 서호가 약간의 지루함을 느끼는 순간 지하의 전음이 들려왔다.


<서호야, 음적이 왔어. 조심해.>


이불 속 지하도 긴장한 듯 검을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천면수사’ ‘사마귀’는 봉창에 미세한 구멍을 뚫고 가느다란 대롱을 이용해 ‘환혼미혼산’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이제껏 수십 번 넘게 사용한 방법이라 능숙하게 처리하며 오늘의 즐거움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후후, 오늘은 오랜만에 상큼한... 크크크."


일각정도 기다린 후 문을 살며시 열고 방안에 들어선 사마귀가 주저 없이 다가가 이불을 젖인 순간 배를 뚫고 무언가 차가운 것이 들어왔다.


그 순간 장력을 쏟아내며 서 있는 자세 그대로 문을 향해 쏜살같이 물러나 문을 부수고 도망을 가려했다.


그때 등에 무언가 물컹한 것과 부딪혔다.


돌아보니 언제 나타났는지 어둠 속에서 어떤 놈이 양팔을 벌린 채 자신의 퇴로를 막고 있었다.


그러자 사마귀가 전력을 다해 장력을 쏟아냈고 다시 ‘펑’ 소리와 함께 놈의 몸에 적중되었다.


그런데 그놈은 자신의 장력을 맞고도 ‘헉’ 하는 소리만 낼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당황한 사마귀가 또다시 장력을 내뿜으려는 순간, 등줄기에 다시 섬뜩하고 차가운 느낌이 파고들었다.


일생 최대의 위기를 느낀 사마귀는 양 소매를 펄럭이며 검은 가루를 허공에 뿌렸다.


그리고는 혼신의 힘을 다해 문 앞을 막고 있는 놈을 향해 일장을 뻗었다.


‘꽈--광!’


그러나 서호의 호신강기에 두 손은 석벽에 부딪친 듯 부러졌고, 앞뒤로 구멍 뚫린 육신은 ‘주루룩’ 바닥으로 무너지며 그의 영혼은 구천으로 직행했다.


지하가 재빠르게 창과 방문을 열고 바람을 일으켜 방 안의 미혼산을 모두 제거하고 비로소 입을 열며, "서호야, 우리 성공했어!" 라며 기쁨에 찬 환호성을 질렀다.


그런데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그의 충혈 된 눈은 바닥을 향해 있고 얼굴은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하는 지감적으로 그가 미혼산에 중독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서호는 몸이 뜨거워지는 듯 장삼을 벗어버린 후 가부좌를 틀고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그의 상태를 보기 위해 지하가 몇 발짝 가까이 다가간 순간,


그녀의 체취가 퍼지자 서호는 신선한 고기 냄새를 맡은 늑대로 돌변해 벌떡 일어나 그녀를 낚아채듯 끌어안고 입맞춤을 시도했다.

놀란 그녀는 검의 손잡이를 와락 잡아 서호의 등에 꽂으려는 순간 서호의 입술이 지하의 입술 위로 포개졌다.


난생처음 가까이 다가온 남성의 얼굴과 마주하며 그의 말랑하고 따뜻한 입술의 감촉과 체취에 검을 떨어트리며 자신도 모르게 입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서호의 입안에 남아 있던 미혼산이 그녀에게 넘어갔고 그녀 또한 달구어진 몸을 주체할 수 없게 되었다.


미혼산에 중독된 두 청춘 남녀의 밤은 살벌했다.


서로를 죽일 듯이 밀고 당기며 방바닥을 굴렀다.


그들이 내지르는 비명 소리는 새벽에 일어난 하인들을 다시 이불 속으로 밀어 넣었다.


서호는 아침까지 이어진 중독 현상에 저녁이 되어서야 잠에서 깨어났지만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농담처럼 던진 말이 현실이 되어 자신이 음적이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 부끄럽고 창피해 이불을 걷어차고 쥐구멍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살며시 눈을 뜨고 방안을 살피기 위해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목 젖 위에 놓인 시퍼런 검의 날이 눈에 들어왔다.


눈동자만을 굴려 그녀를 바라보자 지하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 하는 말에 목숨이 달렸으니 거짓 없이 진실만을 말해야 할 거야.”


서호는 잔뜩 위축된 목소리로


“알겠소, 낭자.”


“너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잠시 생각하던 서호는 한숨을 내쉰 뒤


“...내 목숨을 원하면 가져가. 모든 것은 내 잘못이니 절대 너를 원망하지 않을게.”


그 말을 들은 지하는 분노가 차오르는 듯 서호의 목에 검을 더욱 바짝 들이대며


“내가 원하는 것은 너의 목숨이 아니야!!”

곰곰이 생각하던 서호가


“...만약 나를 용서해 준다면 너를 아내로 맞아 평생 사랑하며 아껴줄 것을 맹세할게.”


그 말을 듣자 지하는 검을 버리고 서호의 품안으로 뛰어들었다.



@@@



다음 날 아침, 이불 속에 나란히 누운 서호가 다정한 눈빛으로 지하를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지하야, 사실 나의 성은 ‘남’씨가 아니라 ‘남궁’이야. 부득이한 사정으로 너를 속인 것이니 이해해 주라.”


“혹시 ‘남궁세가’의 ‘남궁’씨를 말하는 것이야?”


“응, 집안에 위기가 닥쳐 무공을 수련하라는 엄명으로 ‘북태산’으로 가야만 해.


수련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지만 그 즉시 너를 만나러 정도문으로 달려갈게.


그때까지 기다려 줄 수 있겠니?”


“응, 알았어. 나도 정도문으로 돌아가 무공 증진에 노력하며 너를 기다리고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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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제왕지로(帝王之路)(2부 36화) 24.09.12 50 0 9쪽
72 장천검의 검무(2부 35화) 24.09.09 54 0 9쪽
71 협의문(2부 34화)  24.09.08 53 0 9쪽
70 혈성랑 (2부33화) 24.09.07 49 0 10쪽
69 남궁 화의 계략 (2부 32화) 24.09.06 51 0 9쪽
68 주화산의 보름달 (2부 31화) 24.08.31 61 0 9쪽
67 호위무사 (2부 30화) 24.08.30 62 0 9쪽
66 구씨 촌 (2부 29화) 24.08.29 56 0 9쪽
65 추호비침 (2부28화) 24.08.24 65 0 10쪽
64 두개의 달 (2부 27화) 24.08.23 72 1 12쪽
63 나한동인 (2부26화) 24.08.22 66 0 9쪽
62 무림첩 (2부25화) 24.08.17 77 1 8쪽
61 문주의 첫걸음 (2부24화) 24.08.16 84 0 9쪽
60 월하장 (2부23화) 24.08.15 74 0 8쪽
59 재회 (2부 22화) 24.08.10 82 0 10쪽
58 정도문 (2부 21화) 24.08.09 80 0 9쪽
57 박쥐 (2부 20화) 24.08.07 89 0 9쪽
56 영웅은 사라지고(2부 19화) 24.08.03 85 1 12쪽
» 미혼산 (2부 18화) 24.08.02 87 0 11쪽
54 첫 걸음 (2부 17화) 24.08.01 90 1 8쪽
53 현상금 (2부 16화) 24.07.28 95 1 9쪽
52 의형제 (2부15화) 24.07.26 102 1 8쪽
51 힘의 뿌리 (2부 14화) 24.07.25 90 1 10쪽
50 구청산 (2부 13화) 24.07.22 89 2 8쪽
49 드러난 진실(2부 12화) 24.07.21 100 2 10쪽
48 빙정의 사연 (2부 11화) 24.07.19 108 2 8쪽
47 억울한 절규 (2부 10화) 24.07.18 98 2 8쪽
46 출생의 비밀 (2부 9화) 24.07.14 107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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