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의 수레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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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8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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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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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4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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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출생의 비밀 (2부 9화)

DUMMY

지경에게 한 달간 조사동에 머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십대 초반의 나이에 조사동에 든 것은 지경이 최초이다. 태양지체의 위엄을 본 스님들은 지경의 조사동 출입을 천축사 번영의 기회로 여겨 모두가 환영했다.


열화신단 네 알을 품에 넣고 조사동에 든 지경의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중앙에 있는 천여 권에 이르는 부처님과 그의 제자들이 남긴 경전이었다.


오른쪽에는 부처님 탄생 이전에 범어로 쓰여진 그 당시 종교의 제례의식인 베다와 그 사상서 등이 주를 이루었고 왼쪽 열개의 상자에는 고대 산스크리트어로 쓰여진 다라 나무의 잎으로 된 폐엽경이 가득 담겨 있을 뿐 무학에 관련된 책은 보이지가 않았다.


다소 실망을 한 지경은 작년에 방장 스님이 보여 주었던 폐엽경이 떠올라 상자 속에 있는 나뭇잎을 조심스럽게 꺼내 읽어 보기 시작했다.


대부분 고대 언어라 해석이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자꾸 읽으려 하다 보니 오성이 뛰어난 지경은 점점 빠르게 독해해 나가기 시작했다.


한 열흘쯤 지나자 고대인이 삶을 바라보는 시각과 그에 따른 수행법 등에 점점 흥미가 느껴졌다.


그렇게 또다시 열흘이 지나자 속도가 더욱 빨라져 읽는 시간보다 부서지기 쉬운 폐엽경을 꺼내고 다시 상자에 넣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한 달을 며칠 정도 남겨놓은 어느 날, 가장 아래쪽에 있는 마지막 상자를 개봉한 후 패엽경을 읽기 시작한 순간 시황의 눈이 한껏 부릅떠졌다. 누렇게 변한 잎 위에 '태양심법'이라는 수행법이 보였다.


그것은 천축사에서 사용하고 있는 심법과 유사했다. 백여 장의 폐엽경에 적힌 태양심법을 다 읽고 나자 이번에는 '태양지체' 심법이 나왔다.


태양지체를 타고난 사람만이 익힐 수 있는 심법으로 태양을 직시하며 수련하는 수행법으로 매우 어려워 잘못하면 실명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고도의 수행법이었다.


수행법을 모두 암기하고 상자의 뚜껑을 닫으려는 그 순간, 마지막 한 묶음의 폐엽경이 또 다시 눈에 들어왔다. 바로 '채음보양술' 이었다.


고대에는 여자를 생산의 도구로 여겨서 그랬는지 몰라도 여자와의 합궁을 통해 음기를 빨아들여 남자의 양기를 보충하는 지극히 악마적인 술법이었다.


그 술법의 후반부에는 채음보양술처럼 일방적으로 남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성교를 통해 서로의 진기를 증진 시키는 것이다. ‘극양’과 ‘극음’의 합일을 통해 최고의 경지를 이룰 수 있는 신비한 술법이지만 체질적으로 극음과 극양이 만나기란 어려워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을 다 읽고 난 후 상자를 덮는 순간 어린 동자승이 헐떡이며 달려와


“지경스님~ 빨리 방장 스님께서 오시랍니다."


"무슨 일인데 그러느냐?"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서 가보세요."


방장실 앞에 도착한 지경은 헛기침을 하며 공손이 아뢰었다.


"스님, 지경이옵니다. "


"어서 들어오너라 "


"스님, 저를 찾으셨습니까 ?"


"그래. 조금 전에 네가 사는 마을에서 사람이 왔었다. 너의 아버님이 위독 하시다고 한다. 본가에 다녀오너라."


잠시 말을 멈춘 방장스님이 가벼운 한숨과 함께 다시 말을 이었다.


"지경아..! 혹시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너의 몸 안에 부처가 있음을 명심하여라."


"예 알겠습니다. 스님...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


@ @ @ @ @


시황은 초원을 달리는 야생마처럼 사막을 달렸다. 지평선의 저 끝에 오아시스가 있고 그 곳에 아버지가 계신데 그 끝이 이룰 수 없는 꿈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시황은 밤에도 멈추지 않고 달렸다. 그의 눈에 별이 들어오지 않는 밤은 처음이었다.



다음 날 저녁 무렵, 모래 먼지를 뒤집어 쓴 시황이 집에 도착하자 수영이 어두운 표정으로 맞이했다.


“시황아... 아버님이 많이 안 좋으셔. 어서 들어가 봐 .”


나뭇잎으로 엮어 만든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아버지는 시황을 보자 비로소 안심이 된다는 듯 미소를 띄우며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했다.


허겁지겁 다가간 시황은 품속에서 열화신단을 꺼내며 


"아버지, 이번 열화대전에서 제가 또 우승했어요. 이 신단을 드시고 쾌차하셔야죠."


".. 그래.. 나의 아들, 이제 천축사에는 네가 상대할 적수가 없겠구나. 네가 자랑스럽다. 하지만 그 신단은 잠시 거두고 내 말을 먼저 듣거라.

수영아, 너희 둘의 사이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너도 이리 와서 같이 앉거라..."


잠시 뜸을 들이던 시황의 아버지는 과거의 아픔과 회한이 되살아나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쉰 뒤 힘겹게 입을 열었다.


"나는 예전 칠왕국시절, 제 나라의  후손으로 사십여 년 전 안평전의 전투를 일으킨 흑운교의 소교주였다.


황제와 환관의 계략에 빠져 안평전에서 흑운교가 몰살을 당한 후 역적의 아들로 몰려 전국에 수배령이 내려지자 세외 지역인 이곳으로 도망쳐 왔단다.


흑운교의 멸문에 분을 참을 수 없었던 나는 복수를 위해 무리하게 마성을 지우는 제마심법과 흑운심법을 운용하려다 그만 주화입마에 빠져 무공을 잃고 말았다.


그렇게 실의에 빠져 지내던 어느 날, 지금껏 보지 못한 거대한 모래 폭풍이 지나갔단다. 그후 며칠 후 빙궁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도중 사막에서 울고 있는 간난 아이를 발견하였단다.


그 아이가 바로 ‘시황’ 너란다.


너를 품에 안은 순간, 나의 삶은 새로운 희망으로 가득 차올랐었다. 그것은 네 가슴에 있는 삼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어릴 적 나의 아버지는 ‘천. 지 .인' 삼성을 갖고 태어난 사람은 황제가 된다고 믿으셨다. 황제가 목표인 자신의 몸에 삼성이 없다는 사실에 늘 불만과 불안을 표출하셨다. 결국 그것이 현실이 되어 황제가 되지못한 채 안평전에서 죽음을 맞이하신 것이 난 늘 가슴이 아팠단다.


그런데 네 몸에 있는 삼성을 보는 순간 죽어가던 내 삶에 새로운 희망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너의 이름도 나의 아버지의 이름 그대로 ‘시황’이라 지은 것이다.


남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아가며 젖을 동냥해 너를 키우고 지혜와 무공을 배우게 하기 위해  천축사로 보낸 것은 제나라 부흥을 너를 통해 이루려는 나의 간절한 소망 때문이었다.


이제 너는 천축사를 떠나 중원으로 나가 그곳에서 힘을 키우거라. 그리고 나의 아버지와 나를 위해 대륙의 황제가 되어다오.


시황아.. 천장 중앙에 있는 대들보 위에서 보자기 하나를 꺼내 오거라 ."


시황이 꺼내온 보자기를 풀자 화려한 목함과 반으로 쪼개진 옥으로 된 목걸이가 나왔다.


"이 목걸이는 나의 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유물이다. 그리고 이 목함은 너를 발견할 당시 너를 감싼 포대기 속에 같이 있던 것이다.


목함의 질과 문양으로 보아 몹시 귀한 듯하다. 나는 열 수가 없어 그 목함에 무엇이 들었는지 모르지만 항상 차가운 기운이 뻗쳐 나온다.


우리 집이 다른 집보다 시원한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고 갓난아기인 네가 뜨거운 사막에서도 며칠을 버틸 수 있었던 것도 그 목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시황아... 너의 출생 비밀을 결코 서둘러서 알아내려 하지 말거라. 오히려 너에게 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때가 되면 너의 숙명이 길을 인도할 것이다.


그리고... 수영아! 비록 너와 시황의 혼인을 못보고 떠나지만 너는 나의 며느리다. 너의 희생 없이는 시황은 대업을 이룰 수..가 없..단다. ...시...황...을 잘.. 부...탁...한....다 ."


힘겹게 말을 마친 흑운교의 소교주는 안도의 미소를 간직한 채 불운한 삶을 끝내고 고개를 떨구었다.


시황은 영혼이 떠나 가벼워진 아버지의 시신을 안고 오아시스가 작은 점으로 보일 만큼 떨어진 높은 모래 언덕에 도착했다.


그곳은 근처에서 유일하게 거대한 돌이 우뚝 솟아 주변 사막들과 빙궁까지도 한눈에 들어오는 장소다.


시황과 수영은 그곳에 아버지를 묻었다.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과 출생의 비밀 등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시황은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오랫동안 침묵이 흐른 뒤 수영이 입을 열었다.

"시황아 우리 어릴 적 이곳에 와서 너와 나의 이름에서 한자씩을 따 ‘수황산’이라 이름 짓고, 바위 밑에 동굴을 파서 그 안에 숨어 놀던 것 기억나니?"


"응.... 그날 집에 늦게 들어가서 처음으로 아버지한테 무지하게 혼났었지."  그 말을 하는 순간 시황은 아버지가 떠올라 울컥하며 눈물을 쏟아냈다.


그 모습을 본 수영이 시황을 품에 안으며 속삭였다.


"시황아.. 슬퍼 하지마. 얼마 전 네가 나에게 윤회에 대해 말하며 '삶은 끝없이 도는 수레바퀴'라고 했잖아. 부자의 인연으로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다음 생....,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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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신화문 (2부 38화) 24.09.14 32 0 11쪽
74 태양과 천도(2부 37화) 24.09.13 44 0 10쪽
73 제왕지로(帝王之路)(2부 36화) 24.09.12 50 0 9쪽
72 장천검의 검무(2부 35화) 24.09.09 54 0 9쪽
71 협의문(2부 34화)  24.09.08 53 0 9쪽
70 혈성랑 (2부33화) 24.09.07 48 0 10쪽
69 남궁 화의 계략 (2부 32화) 24.09.06 51 0 9쪽
68 주화산의 보름달 (2부 31화) 24.08.31 61 0 9쪽
67 호위무사 (2부 30화) 24.08.30 61 0 9쪽
66 구씨 촌 (2부 29화) 24.08.29 56 0 9쪽
65 추호비침 (2부28화) 24.08.24 65 0 10쪽
64 두개의 달 (2부 27화) 24.08.23 72 1 12쪽
63 나한동인 (2부26화) 24.08.22 66 0 9쪽
62 무림첩 (2부25화) 24.08.17 77 1 8쪽
61 문주의 첫걸음 (2부24화) 24.08.16 83 0 9쪽
60 월하장 (2부23화) 24.08.15 73 0 8쪽
59 재회 (2부 22화) 24.08.10 82 0 10쪽
58 정도문 (2부 21화) 24.08.09 80 0 9쪽
57 박쥐 (2부 20화) 24.08.07 89 0 9쪽
56 영웅은 사라지고(2부 19화) 24.08.03 85 1 12쪽
55 미혼산 (2부 18화) 24.08.02 86 0 11쪽
54 첫 걸음 (2부 17화) 24.08.01 90 1 8쪽
53 현상금 (2부 16화) 24.07.28 95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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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드러난 진실(2부 12화) 24.07.21 100 2 10쪽
48 빙정의 사연 (2부 11화) 24.07.19 108 2 8쪽
47 억울한 절규 (2부 10화) 24.07.18 98 2 8쪽
» 출생의 비밀 (2부 9화) 24.07.14 107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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