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의 수레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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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8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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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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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4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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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추호비침 (2부28화)

DUMMY

화산파에서 열릴 무림 대첩이 취소되자, 서호는 세가를 떠나기 전 ‘반드시 돌아와 거북바위 밑을 파보라’는 할머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남궁세가로 향했다.


며칠 후. 남궁세가에 도착한 서호의 눈에 흉가로 변한 자신의 집이 들어왔다.


군데군데 불에 탄 전각이 보였고, 마당에는 유골들이 흩어져 있었다.


성인이 될 때까지 기쁨과 슬픔이 쌓여 있는 추억의 장소들이 부서지고 불에 탄 모습을 바라보자 서호의 가슴에 불길처럼 분노가 솟구쳤다.


자시가 되자, 서호가 호위 무사들에게 말했다.


"지금 세가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너희들은 내가 들어간 뒤 세가에서 빠져나오는 놈을 가능하면 생포해라.


나를 도울 생각은 말고, 반드시 셋이 뭉쳐서 상대해라.


저들의 무공은 너희들 못지않은 자들이다. 알겠느냐?"


"예, 문주님!!"


서호는 정체를 숨기기 위해 장발을 늘어뜨리고 복면을 한 채 세가로 잠입했다.


어디선가 풍겨오는 으스스한 살기는 공포마저 느껴졌다.


어둠이 대지를 짓누르고 차가운 밤바람이 불어와 풀잎들을 눕히자, 그 위에 푸르게 변한 해골들이 이미 떠난 영혼을 찾아 이리저리 구르고 있었다.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할머님의 전각인 용봉각이었다.


그곳은 이미 기관이 작동되어 안에는 타고 남은 뼈 조각들이 쌓여 있었다.


이곳저곳 발걸음을 옮겨 전각들을 살펴보니, 다행히 자신이 묵었던 전각은 기관이 작동되지 않아 멀쩡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각은 기관이 작동되어 이미 썩어 뼈만 남은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세가의 북쪽 땅, 숲속에 있는 거북바위를 향해 가는 도중 천이통과 감각을 최대한 발휘 하자 수많은 살기가 느껴졌다.


사방에서 접근하는 놈들과 이미 매복해 있는 살수들이 서호에겐 한 폭의 그림처럼 그들의 위치가 그려졌다.


얼마를 걷자 한순간 나무껍질들이 갈라지며 사방에서 검들이 튀어나왔다.


서호는 그럴 줄 알고 있었다는 듯 코웃음을 치고 몸을 회전하여 장풍과 지풍을 날린 후 공중으로 치솟았다.


그러자 나무 위에서 다시 비도와 암기가 쏟아졌다.


절체절명의 순간, 서호는 마치 천근추 신법을 사용하듯 또다시 땅으로 향하며 윗 쪽 나무를 향해 지풍을 날렸다.


그리고 땅에 다다르기 전에 다시 하늘로 솟구쳤다.


허공에서 오르내리며 장력과 지력을 쏘아대는 신법은 진기의 흐름을 생각만으로 바꿀 수 있는 절정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만이 가능했다.


화경에 도달한 사조님이 동굴 가장 안쪽에 남긴 무공이 모두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초식이 아니라 무공의 묘리라는 것을 서호는 깨달아 가고 있었다.


서너 번의 도약으로 십여 명을 죽인 후 땅에 내려섰다.


사방의 살수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기회를 노리는 듯 은둔한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서호가 씨-익 웃었다.


땅에 떨어져 있는 칼을 허공섭물로 손에 쥐자마자 동쪽에 있는 바위를 향해 동굴 안쪽에 새겨진 낙뢰 검법을 펼쳤다.


‘콰르르르 쾅!!’


푸른 섬광과 함께 떨어진 낙뢰는 바위를 쪼갰고 그 뒤 숨어있던 살수들은 까맣게 탄 채 베어졌다.


그래도 아직 때가 아니라는 듯 사방은 조용했다.


그런 팽팽한 침묵 속에서 서호는 가소롭다는 듯 다시 한 번 이빨을 드러내며 씩 웃었다.


그 순간 서호의 독기에 찬 잔인한 미소를 보았다면, 그 미소가 평생 동안 꿈속에서 괴롭혔을 것이다.


이번에는 서호가 북쪽을 향했다.


저벅저벅 일장(一丈) 정도 걸어가 몸을 살짝 하늘로 솟구친 후, 땅에 검으로 금을 긋듯 횡으로 쭈-욱 그었다.


그러자 또다시 땅속에서 피분수가 하늘로 솟구쳤다.


그 순간, 지루한 기다림이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은 우두머리가 악을 썼다.


"모두 쳐라!!!"


그러자 긴 기다림이 분노로 바뀐 검과 암기가 사방에서 우박처럼 쏟아졌다.


하지만 암기는 서호의 반탄진력을 뚫지 못해 튕겨나갔고, 검들은 서호의 검강에 전병처럼 부서져 나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십여 명이 고꾸라지자, 또다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 철수해라!"


그 말을 듣자 서호가 또다시 살 떨리는 미소를 지으며 가슴속으로 외쳤다.


‘감히 내 집에 들어와 나를 죽이려 해?’


그리고 그 순간, 서호의 손안에 있던 검에서 ‘우-웅’ 하는 소리가 나며 검은 조각조각 부서져 도망가는 살수들을 향해 뿌려졌다.


"크악!" 하는 짧은 비명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잠시 후, 검 날이 등을 뚫고 배를 통과해 괴로워하는 살수의 목에 발을 올린 서호가 물었다.


"너희들은 누구냐? 사실대로 말하면 고통 없이 죽여주마."


자신의 배에 뚫린 구멍으로 스멀스멀 삐져나오는 내장을 보며 살수는 웃음이 나왔다.


‘40년간 죽기 살기로 훈련하고 나온 첫 싸움에서 죽음이라니...’,


어이없고 허망한 웃음이었다.


"나는.. 무형문의 흑살단 소속이다. ...너야말로 누...구냐?"


"나는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다."


서호가 그렇게 말하며 발에 힘을 주자, ‘우드득’ 소리와 함께 살수의 눈이 부릅떠졌다.


서호는 마침내 거북바위 앞에 섰다.


할머님의 모습이 떠올라, 마치 바로 앞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듯했다.


거북바위의 머리 밑을 파자 작은 상자가 나왔다.


그곳에는 할머님의 꽃무늬 낙인으로 밀봉된 편지가 들어 있었다.


서호에 얼굴에 반가운 미소가 번졌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부터 할머니는 하고 싶은 말씀들을 이렇게 밀봉된 편지로 내미셨다.


‘일찍 일어나라’, ‘밥 많이 먹어라’, ‘이 서책 오늘까지 다 읽어라’ 등의 일상적인 잔소리들이었지만 밀봉된 편지 때문에 무겁게 느껴졌다.


그래서 투정 한 번 부리지 못하고 묵묵히 따랐던 자신을 떠올리며, 역시 할머니는 중원 제일의 책략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호는 할머님의 밀서를 열었다.


<<서호야, 너의 무공 성취를 축하한다. 할아버지가 항마 수호대를 만든 곳으로 가면 네가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기다릴 것이다. 그때까지 정체를 드러내지 말고 이동 하거라. 때가 되면 만나게 될 것이다.>>


서호가 삼매진화로 편지를 태운 후 세가 밖으로 나오자, 설미는 땅에 쓰러져 있고 지하는 땅에 앉아 운기조식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을 보호하고 있는 구승에게 서호가 놀라 뛰어갔다.


"무슨 일이냐?"


"예, 문주님. 부끄럽습니다. 도망가는 놈이 터트린 암기에 두 사람이 당했습니다."


그때 지하가 힘겹게 눈을 뜨며 말했다.


"문주님, 추호비침탄입니다."


지하의 얼굴이 푸른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서호는 지하를 안고 구승에게 외쳤다.


"설미를 데리고 나를 따라오너라!"


서호는 다시 세가 안, 자신의 누각으로 향했다.


"구승, 너는 저 방으로 들어가 설미를 치료 하거라!"


서호는 현무령에서 뽑아낸 피독주를 건네며 덧붙였다.


"이것을 입에 물리고 모든 추호침을 뽑아내라! 하나라도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이 추호침이 혈맥을 따라 심장으로 간다면 대라신선도 살릴 수가 없다.


그런 후 진력으로 독기를 제거하거라."


구승이 당황하여 물었다.


"그럼 지하는 어떡합니까? 지하도 중독된 것 같은데요."


그러자 지하가 대답했다.


"사형, 나는 손등에만 박혀 있어서 피독주 없이 제 스스로 치료할 수 있으니 걱정 마세요."



방안으로 들어온 구승은 설미를 침대에 눕히고 나서 갑자기 막막해졌다.


평생 동안 여자와는 연무장에서 주고받던 몇 마디 말이 전부였는데, 여자의 옷을 벗겨야 한다는 것이 실로 난감했다. 그것도 속옷까지.


끙끙대며 옷을 벗기는 손이 겨울 삭풍에 떨리는 사시나무 가지처럼  덜덜거렸다.


겨우 옷은 벗겼지만,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식은땀이 비 오듯 흐르며 심장이 가슴을 헤집고 튀어나올 듯 쿵쾅거렸다.


반면 서호는 지하가 이미 손등에 있는 추호침을 뽑아낸 후라 명문혈에 진기를 주입해 일주천 하자 반시진도 못되어 독기를 모두 태울 수 있었다.


모든 독기가 사라지자 서호는 짖궃게 말을 건냈다.


"지하야, 너도 온몸에 추호침이 박혔으면 좋았을 걸."


그러자 지하가 쌍심지를 켜며 말했다.


"이 상황에서 그런 농담이 나오냐? 그저 남자들이란 ."


구승의 치료는 두 시진이 지나도록 계속되었다.


동이 틀 무렵, "끼약!" 하는 비명 소리가 설미의 입에서 터져 나오고, 우당탕하며 무언가 집어던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구승이 허겁지겁 뛰쳐나오며 말했다.


"지하야, 어서 방으로 들어가 봐라!" 어쩔 줄 몰라 하는 구승의 모습을 보며 서호와 지하는 웃음을 터트렸다.


세가를 벗어나 작은 객점에서 국수를 먹을 때, 평소보다 얌전해진 모습으로 구승 옆에 앉아 있는 설미를 보며 서호와 지하는 웃음을 참으려고 애를 써야만 했다.


하지만 눈을 부릅뜬 돌부처 구승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국수를 빨아올리고만 있었다.


그때 장난기가 발동한 서호가 구승에게 물었다.


"추호침은 가을철에 나오는 짐승의 털이라 불릴 만큼 가늘어, 사용하려면 오갑자 이상의 내공이 있어야 한다.


과거 당문의 장문인들만이 사용하던 가전비기인데, 그놈이 사용하다니 이상하구나.


그런데 설미의 치료는 잘 되었느냐?"


"예. 문주님."


"몇 개의 침이 박혀 있었느냐?"


"예, 수십여 개의 침이 박혀 있었습니다."


"그럼 온몸에 박혔을 텐데, 뽑아낼 때 손이 안 떨리더냐?"


"예, 무척 떨렸습니다."


그러자 설미가 서호를 째려보며 말했다.


"문주님, 그만하시죠!"


그 순간 지하가 킥킥대며 웃자, 설미가 "언니!" 하고 소리를 빽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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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혈성랑 (2부33화) 24.09.07 48 0 10쪽
69 남궁 화의 계략 (2부 32화) 24.09.06 51 0 9쪽
68 주화산의 보름달 (2부 31화) 24.08.31 61 0 9쪽
67 호위무사 (2부 30화) 24.08.30 61 0 9쪽
66 구씨 촌 (2부 29화) 24.08.29 56 0 9쪽
» 추호비침 (2부28화) 24.08.24 65 0 10쪽
64 두개의 달 (2부 27화) 24.08.23 72 1 12쪽
63 나한동인 (2부26화) 24.08.22 66 0 9쪽
62 무림첩 (2부25화) 24.08.17 77 1 8쪽
61 문주의 첫걸음 (2부24화) 24.08.16 83 0 9쪽
60 월하장 (2부23화) 24.08.15 73 0 8쪽
59 재회 (2부 22화) 24.08.10 82 0 10쪽
58 정도문 (2부 21화) 24.08.09 80 0 9쪽
57 박쥐 (2부 20화) 24.08.07 89 0 9쪽
56 영웅은 사라지고(2부 19화) 24.08.03 85 1 12쪽
55 미혼산 (2부 18화) 24.08.02 86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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