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년 (부제: 경우의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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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온진
작품등록일 :
2024.05.10 01:15
최근연재일 :
2024.09.17 00:00
연재수 :
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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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53
추천수 :
127
글자수 :
132,112

작성
24.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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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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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7쪽

아버지와 노랑이들

DUMMY

요 며칠간 아버지의 상태가 몹시 수상하다.


성대한 게 잔치 이후에 우리는 자주 코코넛 게를 잡으러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잡은 게를 우리 편에 주며, 자신은 어머니가 좋아하는 열매를 따가겠으니 우리더러 먼저 가있으라고 말했다.


그날 저녁 아버지는 해가 지고도 한참 늦게 동굴로 돌아와 우리를 걱정시켰다.


그리고 상한 열매를 먹어서 속이 안 좋다면서 불을 등지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상태를 살펴보려고 아직 코 골고 자고 있던 아버지에게 다가갔는데 놀랍게도 아버지한테서 희미하게 술 냄새가 났다.


이 정글에서 술을 구할 수 있을 리가 없을 텐데 말이다.




아버지는 이후로도 노골적으로 나와 수를 다른 곳으로 보내고 혼자 다니길 바랐다.


내가 좀 아버지를 따라가려 쫓아가면 어느새 쥐새끼처럼 어디론가 금세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닌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의심이 깊어졌고 나는 급기야 아버지를 미행하기로 결심했다.


어느 아침 동굴을 나서며 내가 말했다.


“아! 아버지! 오늘은 수랑 마 캐러 다닐게요. 동굴 근처에 땅에 묻어 놓으면 오래 먹을 수 있으니까!”


그 말을 듣고 아버지는 홀가분하다는 듯 너털웃음을 짓고 나를 쳐다봤다.


“허허허! 그럴래? 아! 그럼 나는 설치한 덫들을 살펴보고, 다른 게 있나 천천히 둘러보고 오마. 수야! 괜찮겠지?”


그때 수는 못 마땅하지만 참을 때, 짓는 특유의 한쪽 입 꼬리 올리기를 시전하며 대답했다.


녀석은 심지어 입술까지 깨물며 말했다.


“그으래! 그럼! 갔다 와! 나는 오빠랑 갈 테니까.”





잠시 후 아버지와 헤어져 숲 안쪽으로 조금 가다가 나는 갑자기 뭐가 생각난 듯 연기하며 수에게 말했다.


“아차차아! 이이런···! 수야! 먼저 가서 마 캐고 있을래? 내가 깜빡한 게 있어서 동굴에 좀 다녀와야겠어.”


수가 또 한쪽 입 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하아! 알았어!”


나는 수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음에도 마음이 급한 나머지 부리나케 출발해 아버지가 향한 쪽으로 최대한 조용하고 빠르게 나아갔다.





한참을 찾아 헤맨 끝에 겨우 발견한, 아버지는 일단 우리를 떼어놓고 안심했는지 가끔 춤도 추고, 꽃도 구경하고, 열매도 따 먹으며 여유롭게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나는 큰 잎들이 무성하게 달린 식물 뒤에 숨어서 아버지를 관찰하다가 눈을 돌려 잠시 주위를 둘러봤다.


그때 좀 떨어진 곳에서 역시 숨어서 아버지를 주시하고 있던 수를 발견한 나는 경악하며 입을 틀어막았다.


‘아니, 왜, 쟤가 여깄지?’


그때 수 역시 아버지를 보고 있다가 우연히 돌린 시선에 나를 발견하고는 흠칫 놀랐다.




나는 입모양과 수신호를 통해 수에게 말을 걸었다.


“야! 너 뭐해?”


잠시 후, 수의 입모양과 수신호가 돌아왔다.


“나, 아빠 감시하러 왔는데!”


역시 동생도 아버지가 수상한 걸 눈치 채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 나 돈데!”


우리들은 힘을 합쳐 이 문제를 파헤치기로 하고 들키지 않게 조심하면서 같이 아버지를 쫒았다.




아버지는 노랑이들이 주로 사는 곳에 다다르자 멈추고는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는 열심히 나무를 오르내리며 코코넛 열매를 모으기 시작했다.


한참을 부지런히 일하는 아버지를 보고 있으려니 나는 아버지를 괜히 의심했나 하는 후회가 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아버지에게 미안한 마음이 돼서 앞으로 나서려 할 때였다.


수가 심한 욕을 가미한 손짓을 하며 나서려는 나를 강하게 막았다.


‘하아아! 이제 좀 나아졌나 했더니 또 이 오빠를 X신 취급이나 하고, 아! 짜증나!’


부아가 치민 내가 수에게 한마디 하려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코코넛 무더기 앞에서 난데없이 두 팔로 땅을 짚더니 노랑이들 소리를 흉내 내는 것이었다.


‘우우까! 끼이까! 우아학!’


두세 번 더 소리를 내고 아버지가 수풀 속으로 쏙 사라졌다.


그랬더니 곧 아버지가 있었던 자리에 노랑이들이 몰려와 코코넛 무더기를 발견하고 녀석들은 잔치를 벌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때 수가 나에게 다른 쪽을 가리키며 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수와 같이 나는 아버지를 한참동안 여기저기 찾아다녔다.


부지런히 돌아다닌 끝에 찾아낸 아버지는, 노랑이들이 자신이 모아 놓은 코코넛 더미에 정신이 팔린 사이, 그놈들이 차지하고 있던 나무를 정신없이 오르내리며 아직 나무에 매달린 코코넛들의 냄새를 맡고 있었다.


그 과정을 반복하며 아버지는 나무를 엄청난 속도로 빠르게 오르내렸다.


‘정말, 저 나무 타는 재주는 원숭이도 울고 갈 만큼이다!’


나는 그 와중에도 아버지의 재주를 감탄하며 쳐다봤다.




아버지는 드디어 자신이 찾는 것을 발견했는지 코코넛 하나를 따서 조심히 들고 내려왔다.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 양 말이다!


그리고 땅에 내려와 그 내용물을 한 번 마시더니 ‘키야’하고 소리를 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몰라도 ‘저건 술이다!’ 하는 직감이 왔다.


수는 입술을 질근 질근 깨물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딱 보기에도 엄청나게 화가 난 수를 달래려 수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걱정마라, 수야! 이번엔 우리가 어머니가 눈치 채지 않게끔 아버지 버릇을 고쳐놓자!”


수가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다 마신 아버지는 술을 더 많이 찾고 싶었는지 또 다른 나무위로 올라가 열매의 냄새를 맡고는, 따서 내려오기를 반복해 그것들을 자루에 넣었다.


잠시 후, 나무에 다시 올라간 아버지를 한 번 더 확인한, 수가 코코넛 더미에 몰려있는 노랑이들 쪽을 보더니 앞으로 ‘쓰윽’하고 나갔다.


그때 나는 몹시 당황하며 수를 말리려 얼결에 따라 나갔다.


그리고 수는 내가 말릴 새도 없이, 아버지가 소중하게 잎으로 막아서 그물주머니에 넣어둔, 코코넛 열매 술을 열더니 그것을 노랑이들에게 힘껏 던졌다.


모여 있던 노랑이들은 졸지에 술 벼락을 맞고는 몹시 화가 났는지 소리를 지르면서 우리를 죽일 듯이 쫓아오기 시작했다.


‘까가가악! 카악! 끼끼악!’




아버지는 코코넛을 따서 내려오다가 2미터쯤 되는 높이에서 쫓는 원숭이들과 쫓기는 우리를 보고 놀라서 떨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아버지가 술이든 코코넛을 목숨처럼 아낀 나머지, 그걸 두 손으로 받친 채 떨어져서 그만 얼굴을 땅에 박고 말았다.


비록 너무 미운 아버지였지만 그대로 놔두면 노랑이들에게 처참히 뜯길 게 뻔한데, 그걸 두고 볼 수는 없어서 우리는 아버지를 낚아채, 양쪽에서 부축하고 죽어라 뛰었다.


노랑이들은 한참을 자기네 구역에서 우리가 머물고 있던 동굴 가까이까지 우리들을 집요하게 추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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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원주민들 24.09.17 7 0 5쪽
47 밥은 맛있는데 마음이 영 불편하다 24.09.13 16 0 5쪽
46 마을 리더의 집에 초대받다 24.09.10 27 1 5쪽
45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마을 24.09.06 48 4 5쪽
44 드디어 마을을 발견했다 +3 24.09.03 71 4 5쪽
43 너스탱과 가슴 아픈 이별을 했다 24.08.30 50 2 4쪽
42 다시 여행을 떠나다 24.08.27 53 3 6쪽
41 너스탱 24.08.23 48 3 6쪽
40 서울로 24.08.20 50 2 5쪽
39 싸움에서 승리하다 24.08.18 49 3 4쪽
38 근육 돼지와 베이컨 24.07.05 48 1 4쪽
37 위험했던 상황 24.07.02 51 2 5쪽
36 탈 것이 생겼다, 그리고 드디어 베이컨의 식구들을 만났다 24.06.28 52 1 5쪽
35 타조새 24.06.25 51 1 5쪽
34 멋지게 친구를 구했는데 입술이 이상하다 24.06.21 51 2 4쪽
33 민기와 같이 사냥을 나갔다가 봉변을 당했다 24.06.18 52 1 6쪽
32 적과의 어색한 동침 24.06.14 54 1 5쪽
31 기껏 육지에 도착했는데, 외나무다리에서 원수를 만났다 24.06.11 52 2 5쪽
30 어쩌다보니 숲의 제왕을 구했다 24.06.08 51 1 5쪽
29 모두 다 힘을 합쳐 제왕에 맞서다 24.06.07 54 1 5쪽
28 베이컨이 돌아왔다 24.06.06 54 1 6쪽
27 탈출 24.06.05 52 2 5쪽
26 동굴 (?)을 발견했다 24.06.04 55 3 7쪽
25 화산 폭발의 징후 24.06.03 57 1 6쪽
24 거기에 있던 친구의 사정 24.06.02 59 1 8쪽
23 친구, 민기의 등장 24.06.01 56 1 7쪽
22 말 안 듣는 아버지를 구하러 남매가 나섰다 24.05.31 59 2 9쪽
21 상어 떼가 나타났다 24.05.30 58 1 6쪽
20 이사를 결심했다 24.05.29 63 2 7쪽
19 만 년 전 이야기와 아버지의 선물 24.05.28 69 3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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