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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광
작품등록일 :
2024.06.14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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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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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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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방어는 최선의 공격(1)

DUMMY

그로부터 2주 후.

헬리온은 반쯤 시체 같은 몰골로 기숙사에 기어들어 왔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움직여 침대 위로 쓰러지자, 라피가 다가와 축 처진 손에 머리를 가져다 댔다. 쓰다듬으라는 의미였다.


“이야, 몰골 한 번 처참하네. 달리안이 그렇게 빡세게 굴린다며?”

“언제 한 번 구경이라도 갈까 싶네. 베일린, 내일 시간 돼?”

“당연하지. 헬리온, 너 몇 시부터 달리안 연구실에 가 있어?”

“먉옹.”


레온하르트와 베일린은 히죽거리며 헬리온의 꼴을 감상했다. 고양이 울음소리까지 합세하니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겨우 손을 들어 고양이를 쓰다듬을 정도의 힘밖에 남지 않은 헬리온은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죽어가는 사람 보는 게 재미있냐?”

“안 죽으니까 재미있는 거지. 너 회복력도 엄청 좋잖아. 아, 한 잔 줄까?”


베일린은 손에 든 온더락 글라스를 흔들며 웃었다. 찰랑이는 술이 맛있어 보이긴 했다. 처음엔 마셔도 되나 싶었지만, 이젠스 왕국에서 주류는 16세부터 살 수 있는 듯했다. 겨우 정신을 차린 헬리온은 자세를 바꾸어 침대에 걸터앉았다.


“온더락 잔에 하이볼 타 마시는 사람은 처음 본다. 근데 왜 항상 내 방이야? 라피가 마시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뭐 어때. 잔이 이거밖에 없었단 말야. 그리고 아무리 우리라도 학기 중에 완전히 취해서 정신 못 차리고 싶진 않거든? 라피는 우리가 잘 지켜보고 있으니까 괜찮아.”


두 사람은 입학 직후 치러진 진급 시험에 참가하여 3급 검사 타이틀을 얻었다. 나이에 비하면 뛰어난 성적이었지만, 9급까지 있는 체계 안에서 생각하면 그렇게 눈에 띄는 성취는 아니었다. 물론 술에 고양이가 뛰어드는 정도는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실력이다.


‘3, 4급 정도만 돼도 마법이나 검술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고, 웬만한 사람들은 노력해도 6급 정도가 한계니까. 7급부터가 진짜 대우받는 사람들이지.’


그렇게 생각하니 새삼 케이슨 딜라드가 대단해 보였다. 방학에 돌아가면 괜히 심기를 거스르는 일이 없도록 행동해야 하나 고민되었다. 베일린은 새 잔에 술과 탄산수를 적당히 따라 헬리온에게 건넸다.


“대체 술을 어디서 계속 가져오는 거냐? 식당에 술을 팔진 않잖아.”


헬리온은 한 모금 홀짝이고는 의심스러운 듯 물었다. 혀를 자극하는 탄산이 몽롱한 정신을 깨운다. 레온하르트는 단숨에 잔을 비우고 말했다.


“다~방법이 있지. 따로 들여올 수도 있지만, 그건 번거로우니까···. 헬리, 생각해봐. 아침에 술 냄새 풍기면서 들어오는 교수님들은 어디서 술을 가져왔을까?”

“···아하. 이해했어.”

“역시 이해가 빠른 사람이랑 대화하면 편하다니까.”


세 사람은 조용히 웃었다. 헬리온이 돌아오기 전까지 둘이서 꽤 많이 마신 모양이다. 레온하르트와 베일린은 술을 잘 마시는 편이었고, 헬리온은 적어도 윤명진일 때보다는 잘 마시게 되었다.

젊어서 간이 깨끗한 탓이라고 치부하기엔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헬리온은 재잘거리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며칠 전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콰콰쾅—!

평화로운 오후, 달리안의 연구실 뒤뜰에선 그다지 평화롭지 못한 소음이 들려왔다.


“빨리 일어나! 또 쏜다?”


주홍빛 서클 안에는 상앗빛 보닛까지 쓴 귀여운 드레스 차림으로 완드를 들고 준비 자세를 취한 달리안과, 이미 너덜너덜해진 헬리온이 마주 서 있었다.

서클은 달리안이 ‘시끄러우면 괜히 주의만 쏠린다’며 차폐막 대용으로 펼친, 말하자면 방음벽 겸 시야 차단용 결계였다. 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바깥에선 보이거나 들리지 않으며, 그 말인즉슨 사후 처리만 잘한다면 이 안에서 땅을 폭파해도, 사람을 반죽음으로 만들어도 급수가 더 높은 사람이 오지 않는 이상, 웬만한 사람은 모른다는 의미였다. 헬리온은 비틀거리며 연습용 완드를 쥐었다.

달리안이 가르쳐주는 내용은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1학년이 듣는 ‘마법 기초’ 과목보다는 깊이가 깊었지만, 어렵지는 않았다. 덕분에 헬리온은 이제 겨우 제 발밑을 차지하는 서클을 펼치는 연습을 하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대략 지름 3미터 정도의 서클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그 특성 덕분에 살았어.’


헬리온이 가진 특성, ‘무한한 가능성’은 초고의 완성도가 올라가서인지 새로운 기능을 개방했다. 그는 이 기능의 덕을 제대로 보고 있었다.

‘무한한 가능성’의 새로운 기능 ‘모방’은, 말 그대로 상대방의 행동을 그대로 모방할 수 있는 특성이다. 외적인 행동뿐만 아니라, 체내의 에테르를 조절하여 서클을 구성하는 형태로 배출하는 것까지 따라 할 수 있어 마법에 문외한인 헬리온의 입장에서는 거의 커닝 페이퍼나 다름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생각보다 잘 따라오는 헬리온이 달리안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는 점이다.


“크윽···!”


달리안은 영창도 없이 불을 쏘아댔다. 실행하기 어려운 마법이 아닌 이상 영창이 필수적인 건 아니지만, 헬리온에게는 그 쉬운 마법조차 ‘공격 마법보단 방어 마법이 쉽다’며 달리안이 가장 먼저 알려 준 간단한 방어 마법으로 막아내는 게 고작이었다. 그마저도 공격을 한 번 막아내면 깨지는 연약한 마법이었다. 따라서 달리안이 헬리온에게 내 준 이번 주의 과제는, ‘서클 범위 전체를 방어할 수 있고, 일정 시간 공격을 버틸 수 있는 방어막을 전개할 것’이었다.


“피하지만 말고 생각해! 이미지를 구체화할 수 있는 문장이라면 뭐든 좋으니까!”


달리안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계속 불덩어리를 쏘아 댔다. 상상력이라곤 이 소설을 집필할 때 다 소진해버린 헬리온은 날아오는 불덩어리를 간신히 막으며 머리를 굴렸다.


‘젠장, 고전 같은 거라도 좀 외워 뒀으면 활용이라도 하는 건데!’


도무지 생각나는 문장이 없었다. 그때, 이리저리 구르며 간신히 불을 피하던 헬리온의 눈앞에 금빛 글자가 번뜩였다.


[[□□□ □□□: 성경]의 열람 권한이 부여됩니다.]


[열람하시겠습니까?]



‘그런 건 일일이 물어보지 말고 그냥 열어! 성경이면 색인도 좀 넣어 주고!’


생각하기 무섭게 눈앞에 금빛 책이 모습을 드러낸다. 성경이라면 괜찮은 구절이 꽤 있다. 필사적으로 읽었던 구절을 떠올리던 헬리온은, 드디어 한 문장을 골라냈는지 다가오는 불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외쳤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파아앗—

밝은 빛이 그를 감싼다.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던 헬리온은 더 이상 끼쳐오지 않는 열기에 조심스레 눈을 떴다. 

그의 발밑으로 펼쳐진 금빛 서클을 반구형으로 감싼 방어막이 형성되었다. 문장의 영향을 받았는지 촘촘한 깃털 무늬가 새겨진 방어막은, 불을 막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의 몸에 난 자잘한 생채기를 치료했다. 그 광경을 본 달리안은 공격하려던 것도 까먹고 헬리온을 향해 달려왔다.


“와, 대박! 너 이거 어떻게 한 거야? 으음, 식은 기본적인 [방어] 식이 맞는데. 거기에 [치유]를···? 아냐, 아닌데? 애초에 조합은 가르쳐 준 적 없어. 그런데, 으으음···? 야! 빨리 이거 풀어 봐!”


어지간히도 급했는지 달리안은 보닛이 비뚤어졌음에도 신경 쓰지 않고 주먹으로 방어막을 쾅쾅 쳐댔다. 에테르를 거둔 헬리온은 여전히 헉헉대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달리안은 그런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듯 헬리온의 어깨를 덥석 잡았다.


“방금 어떻게 한 거야?! 문장, 문장은 그렇다고 쳐, [방어] 마법식도 잘 전개했어. 거기에 [치유]를 걸어서 전개한 거야? 이중으로?!”

“아, 아니···. 난 그런 거 할 줄 몰라. 그리고, 저번에 네가 ‘2, 3중으로 마법을 쓰려면 에테르는 둘째치고 마법에 엄청나게 숙달되어야 한다’고 그랬잖아······.”


달리안이 붙잡고 흔드는 대로 무력하게 흔들리는 헬리온은 기운 빠진 목소리로 대꾸했다. 속이 울렁거려 말을 길게 하지도 못했다. 흥분해서 귀까지 붉어진 달리안은 겨우 그의 어깨에서 손을 놓고, 심호흡한 다음 다시 말을 꺼냈다.


“네 말이 맞아. 그러면 확인할 방법은 하나뿐이네. 나한테 네 서클 씌워봐.”


서클은 시전자를 포함하지 않고도 전개할 수 있다. 그 범위가 시전자를 포함했을 경우의 절반으로 줄어드는 데다, 보통은 사용할 일이 없는 기술이지만 달리안은 ‘할 수 있으면 뭐든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의 머릿속에 내용을 주입했다.

달리안의 주변으로 금빛 서클이 씌워졌다. 서클이 제대로 펼쳐진 걸 확인한 그는 완드로 제 팔에 작은 상처를 냈다.


“뭐 하는 거야?!”

“어어, 서클 흔들리잖아. 집중해! 가만히 있어!”


헬리온은 그 호통에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뭘 확인하려는 건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달리안을 바라보던 그때, 그의 팔에 난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진짜 신기하네···. 지금은 서클뿐이니까 [치유] 식은커녕 지금은 [방어]도 전개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런 게 되지?”

“나도 몰라···.”


빠른 속도로 아문 상처는 금세 상처가 나기 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달리안은 여전히 신기하다는 듯 상처가 아문 팔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상처는 다시 벌어져 피가 흘러내렸다.


“어라.”

“왜 이렇게 태평해, 애가?! 자기 팔에 상처 내놓고 아프지도 않냐···?!”


헬리온은 다급하게 [치유] 식을 전개했다. 에테르를 많이 잡아먹는 식이었지만 순도가 높은 헬리온은 아주 조금의 에테르로도 좋은 효과를 냈다. 이번에야말로 잘 아문 상처는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았다. 달리안은 혼자 안절부절못하는 헬리온을 보고 물었다.


“너, 특능 있어?”

“뭐?”

“특능. 특-수-능-력. 가끔 그런 게 있다는 사람이 있거든. 그런 사람들은 능력이랑 관련해서 특이한 일이 종종 일어나기도 한다고 들어서.”

“나는 잘 모르겠는데···.”


헬리온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능력의 사용에 대해서라면 정말 모르는 게 맞았고, 능력 보유 여부에 대해서도 대답하기 힘든 정신 상태였다. 거의 녹아내리기 직전인 헬리온을 본 달리안은 급히 [복구] 마법으로 난장판이 된 땅을 정리하고 서클을 해제했다.

그날 헬리온은 기절하듯 잠들어, 다음 날 아침 수업에 지각할 뻔했다.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해 보면, 그때 달리안이 했던 질문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서클 안에서 회복이 되었다가 서클을 해제하면 상처가 다시 벌어지는 이유, 술을 잘 마시게 된 이유.

어쩌면 원인은, 그에게 주어진 특능 [라케시스의 실타래]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것.


작가의말

*시편 91:4 (개역개정판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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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36. 비밀 결사(2) 24.09.02 7 0 10쪽
35 35. 비밀 결사(1) 24.08.30 7 0 11쪽
34 34.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5) 24.08.28 8 0 10쪽
33 33.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4) 24.08.26 9 0 10쪽
32 32.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3) 24.08.23 8 0 11쪽
31 31.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2) 24.08.21 8 0 10쪽
30 30.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1) 24.08.19 8 0 9쪽
29 29.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5) 24.08.16 9 0 10쪽
28 28.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4) 24.08.14 9 0 10쪽
27 27.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3) 24.08.12 11 0 9쪽
26 26.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2) 24.08.09 10 0 11쪽
25 25.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1) 24.08.07 11 0 10쪽
24 24. 금빛 태양 24.08.05 10 0 10쪽
23 23.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4) 24.08.02 11 0 10쪽
22 22.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3) 24.07.31 13 0 10쪽
21 21.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 24.07.29 10 0 11쪽
20 20. 헬리온 딜라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1) 24.07.26 11 0 11쪽
19 19. 피서지는 북쪽으로(2) 24.07.24 15 0 9쪽
18 18. 피서지는 북쪽으로(1) 24.07.22 13 0 12쪽
17 17. 진급 시험(5) 24.07.19 16 0 10쪽
16 16. 진급 시험(4) 24.07.17 17 0 10쪽
15 15. 진급 시험(3) 24.07.15 19 0 10쪽
14 14. 진급 시험(2) 24.07.12 17 0 13쪽
13 13. 진급 시험(1) 24.07.10 17 0 9쪽
12 12. 방어는 최선의 공격(3) 24.07.08 2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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