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호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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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언두
그림/삽화
원두
작품등록일 :
2024.06.29 22:10
최근연재일 :
2024.09.16 02:48
연재수 :
52 회
조회수 :
524
추천수 :
14
글자수 :
252,524

작성
24.09.03 00:51
조회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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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9쪽

45화. 잃어버린 꿈의 고요함

DUMMY

미호는 돌에 새겨진 문구를 천천히 되새겼다.


“도망치는 자에게는 결코 평화가 오지 않는다.”


글자들은 마치 자신을 향한 경고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이미 오랜 시간 도망쳐 왔다. 두려움에 쫓겨 자신을 잃어버린 채로.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도망친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지 않으며, 오히려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게 할 뿐이었다.


미호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생각에 잠겼다. 그동안 쫓아다녔던 어둠 속에서 자신이 바랐던 평범한 삶이 얼마나 허황된 것이었는지를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전히 평범한 여고생으로 살아가고 싶었다.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평범한 일상을 꿈꾸는 소녀로 남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잔혹했다. 그녀가 가진 힘, 그리고 그로 인해 겪어야 하는 싸움은 그녀를 그저 평범한 소녀로 남아있게 해주지 않았다.


“왜, 하필 나야...”


미호는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고개를 떨구었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미호는 주변을 둘러봤다. 도시의 고요함은 그녀의 마음속 공허함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이곳에는 이제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의 흔적은커녕, 바람조차도 이 도시의 정적을 깨뜨리지 않았다. 길거리는 텅 비어있었고, 건물들은 그 자체로 쓸쓸하게 서 있었다. 이곳은 더 이상 생명으로 가득 찬 도시가 아니었다. 마치 영혼이 사라진 껍데기만이 남아있는 듯했다.


미호는 천천히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녀의 발걸음 소리만이 적막한 거리를 울릴 뿐이었다. 주변의 모든 것은 차갑게 식어 있었고, 미호는 그 차가운 분위기에 자신도 서서히 녹아들어 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미호는 익숙한 길목에 다다랐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것은 그녀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학교였다.


그녀의 눈앞에 드러난 학교는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복도와 운동장, 교실까지도 조용했다. 더 이상 학생들의 웃음소리나, 수업이 진행되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저 고요함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미호는 학교 정문을 지나, 천천히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실로 향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수많은 감정이 뒤섞였다.


“언젠가.. 다시 내가 여길 다닐 수 있는 소녀가 될 수 있을까...”


미호는 조용히 중얼거리며 학교의 문턱을 넘었다. 그녀는 자신이 왜 이곳에 왔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평범한 여고생이 되고 싶었던 그녀가, 이곳에서 무엇을 찾으려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저 발걸음이 이끄는 대로, 본능적으로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복도를 걷다 보니, 그녀는 오래된 기억들이 떠올랐다.


이 학교에서 그녀는 친구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지금은 얼마나 그리운지 깨달았다. 미호는 복도를 지나 한 교실로 들어섰다. 텅 빈 교실에는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함이 가득했다. 미호는 천천히 교실 안을 둘러보았다. 한때 수많은 학생들로 북적였을 교실이 이제는 고요하게 잠들어 있었다.


미호는 천천히 책상으로 다가가 손으로 표면을 쓸어보았다. 차가운 책상의 감촉이 그녀의 손끝에 전해졌다. 미호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 책상에 앉아있던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교복을 입고, 남들처럼 예쁘게 화장도 하고, 친구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자신을. 그저 그런 평범한 일상이 그녀에게는 얼마나 소중했는지, 이제서야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여길 처음 온 그 순간으로.. 아무 일도 없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미호는 책상 위에 엎드리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과거의 자신이 이토록 그리울 줄은 몰랐다.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마음, 단순한 일상 속에서의 행복이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먼 꿈처럼 느껴졌다. 미호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았다. 그때 그녀는 얼마나 무기력했고, 지금은 얼마나 강해졌는지.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겪으며 자신이 얼마나 변했는지를 깨달았다.


미호는 오래전부터 원했던 평범한 삶을 되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가 선택한 길은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길이었다. 이제는 그저 앞을 향해 나아가야만 했다. 그리고 그녀가 가야 할 길이 어떤 것인지, 점차 명확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길이 너무나도 외롭고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예감은 여전히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 있었다.


오랜 시간 교실을 둘러보던 미호는 결국 교실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이곳에서 더 이상 머물러 있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교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섰다. 발걸음 소리가 복도에 메아리쳤다. 그 메아리는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공허함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학교 앞에 다다랐을 때, 미호는 문득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주변이 더욱 조용해졌고, 갑작스러운 정적이 그녀를 감쌌다. 그리고 그 순간, 학교 앞에서 누군가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났다. 미호는 그 모습을 보고 순간 멈칫했다. 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바로 유길 아줌마였다.


“아... 아줌마...?”


미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유길 아줌마는 그녀가 한때 도와줬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줌마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혼령이 되어 미호의 앞에 나타나 있었다. 미호는 그 모습을 보고 놀라움과 혼란스러움에 사로잡혔다.


“이 세상에 남아있는 이들이 모두 사라졌는데, 어떻게... 어떻게 아줌마가 여기...?”


유길 아줌마는 미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에요 미호님”


그러나 그 미소에는 무언가 알 수 없는 깊은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미호는 그 슬픈 미소를 보며 마음이 복잡해졌다. 유길 아줌마가 왜 지금, 이곳에 나타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분명히 혼령이 되어 이 세상을 떠났을 텐데, 어째서 지금 이 순간 그녀의 앞에 다시 나타난 것일까?


“왜... 왜 여기 계신 거예요? 모두 사라졌는데, 아줌마는 어떻게...”


미호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이 모든 상황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었다. 그녀는 유길 아줌마에게 다가가고 싶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서서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유길 아줌마는 지긋이 미호를 바라보았다.


“기억 하시죠..? 그때 저 도와주셨던거.. 제가 그때 말씀했잖아요 저는 당신의 편에 서겠다고”


“네? 기억 하긴 하는데.. 근데 대체 어떻게 여기 있는 거죠?”


이 세상에 아무도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했던 미호는, 유길 아줌마의 등장에 모든 생각이 멈춘 듯했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도시, 텅 빈 학교, 그리고 그곳에서 마주한 유길 아줌마의 혼령. 이 모든 것이 미호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였다. 그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그 자리에 서서, 유길 아줌마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이 기묘한 만남 속에서 미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또 다른 질문들이 떠올랐다. 유길 아줌마는 왜 이곳에 나타난 것일까? 그녀는 미호에게 무엇을 전하려 하는 것일까? 이 모든 상황의 끝에는 어떤 진실이 기다리고 있을지, 미호는 알 수 없었다.


“저도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아마도 기도가 힘이 되었던 것 같아요.”


“기도요...?”


“네, 그날 이후로 매일 아침과 잠들기 전에 구미호이자 신이신 미호님께 간절히 기도드렸어요. 아마 그 덕분에 저를 지켜주는 힘이 생겼던 것 같아요. 무언가 어두운 기운으로부터 보호받았달까요.”


“어두운 기운이라뇨...?”


“어.. 모르시나요? 그 기운이 주변을 잠식하듯 퍼졌어요. 마치 전염병처럼 사람들과 혼령들을 하나둘씩 휩쓸어갔죠. 처음엔 누구도 그 이유를 몰랐지만, 이내 그들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에 사로잡히면서 연쇄적으로 사라져 갔어요. 하지만, 저는 그 끔찍한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미호님의 보호 덕분에.”


미호는 순간 멈칫했다.


“그들이... 서로를 끌어당겼다고요? 그게 무슨 뜻이에요?”


유길 아줌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호를 바라봤다.


“그들이 서로를 감염시키듯 퍼져나가면서, 하나하나 사라져갔어요. 그 속에서 혼자 버틸 수 있었던 건 미호님 덕분이라고 믿어요. 아마, 미호님께서 저를 보호해주신 거겠죠.”


미호는 그 말에 묘한 불안감을 느꼈지만, 유길 아줌마의 말 속에서 희망의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바로 이들의 생사여부였다.


“그렇다는 말씀은.. 사라진 사람들이나 혼령들이 죽지는 않았다는 소리네요..?”


“맞아요, 제가 똑똑히 봤어요 그들은 죽지 않았을 거예요”


미호는 모두가 살아있다는 희망에 불행중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 그래 살아있으면 된거야.. 이제 진짜.. 나만 정신차리면 돼.. 나.. 나만 정신 차리고 똑바로 하면 모두를 살릴 수 있어..”

구미호 소녀 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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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51화. 작은 점들이 모여 하나의 그림을 그려낼 때 +2 24.09.16 8 1 9쪽
51 50화. 길고 긴 운명 24.09.13 8 1 10쪽
50 49화. 이 모든 악몽을 끝내기 위해 +2 24.09.12 8 1 11쪽
49 48화. 영혼과 그림자 그 어둠을 가르는 불꽃 24.09.09 7 1 12쪽
48 47화. 피로 물든 잔인한 지하 24.09.07 9 1 10쪽
47 46화. 운명의 문턱에서 24.09.04 8 1 9쪽
» 45화. 잃어버린 꿈의 고요함 24.09.03 10 1 9쪽
45 44화. 어둠 속으로 사라진 자들 24.08.30 9 1 9쪽
44 43화. 어둠 속의 조율 24.08.28 10 1 10쪽
43 42화. 악몽 +2 24.08.25 13 1 9쪽
42 41화. 구원의 서약 24.08.23 9 1 9쪽
41 40화. 승리하는 그날까지 24.08.21 10 0 10쪽
40 39화. 시작된 운명 24.08.20 9 0 12쪽
39 38화. 영원하다는 것. 24.08.17 7 1 14쪽
38 37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이유 24.08.15 6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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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33화. 처음으로 맞이한 승리의 순간 24.08.12 6 0 10쪽
33 32화. 흐르는 물에 흘려 보내고 24.08.12 6 0 10쪽
32 31화. 무너진 마음 24.08.12 6 1 10쪽
31 30.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사이의 가치 +2 24.07.26 9 0 11쪽
30 29화.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의지 24.07.24 6 0 11쪽
29 28화. 지는 싸움 24.07.21 11 0 11쪽
28 27화. 행운의 소녀 24.07.21 8 0 12쪽
27 26화. 등잔 밑이 어둡다 24.07.18 7 0 10쪽
26 25화. 마음 편한 날이 없어서 24.07.16 7 0 12쪽
25 24화. 닮았지만 비슷하지 않아서.. 24.07.15 8 0 14쪽
24 23화. 지켜야 했던 다짐 24.07.13 1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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