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호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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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언두
그림/삽화
원두
작품등록일 :
2024.06.29 22:10
최근연재일 :
2024.09.16 02:48
연재수 :
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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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글자수 :
252,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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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7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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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47화. 피로 물든 잔인한 지하

DUMMY

미호는 유길 아줌마와 함께 지하철역으로 들어서며,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이곳의 정적에 더욱 신경이 곤두섰다. 어둠이 짙게 깔린 역 내부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모습이었다. 천장이 낮고 조명이 어둡게 깜빡거리는 가운데, 무거운 공기 속에서 미호는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녀의 눈앞에 멈춰 있는 에스컬레이터가 보였다. 사람 하나 없는 이곳에서 에스컬레이터는 무언가에 홀린 듯 멈춰 있었고, 미호는 그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발걸음 하나하나가 침묵 속에서 메아리치며 울렸다. 이 순간, 미호는 숨을 죽이며 주위의 모든 움직임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정적이 깊게 내려앉은 이곳에서는 그 어떤 작은 소리도 크게 울려 퍼질 수밖에 없었다.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온 미호는 멈춰있는 개찰구 앞에 섰다. 그 개찰구도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아무런 동작도 없이 그녀를 맞이하고 있었다. 미호는 천천히 개찰구를 지나치며, 주위를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이곳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더욱 불길한 느낌을 자아냈다. 한때 수많은 사람이 오갔을 이곳은, 이제는 그저 텅 빈 유령 도시와 같은 모습이었다.


미호는 유길 아줌마의 뒤를 따라 계속해서 걸어 나갔다. 고요한 플랫폼에 다다르자, 그녀의 눈앞에 멈춰 있는 지하철이 보였다. 지하철은 마치 그 자리에 영원히 멈춰선 듯한 모습으로, 한 줄기 바람조차 느껴지지 않는 이곳의 정적을 더욱 깊게 만들고 있었다. 미호는 주변을 경계하며, 언제든지 무언가 나타날 것 같은 불안감을 감추려 애썼다.


“정말.. 여기가 맞아요?”


미호는 긴장된 목소리로 유길 아줌마에게 물었다.


유길 아줌마는 미호를 돌아보며 잠시 침묵했다. 그녀의 얼굴에 드리워진 어둠이 미호의 눈에 비쳤고, 그 눈빛은 무엇인가를 확신하지 못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아줌마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가 그들이 마지막으로 향한 곳이에요. 이제 우리가 확인해야 할 것은...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그리고 그들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예요.”


그 순간, 멈춰있던 지하철에서 라이트가 켜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라이트의 불빛이 닿은 곳에서 충격적인 장면이 포착되었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선로 위에 몸이 묶인 채로 마치 줄줄이 소세지처럼 끝없이 선로에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공포에 일그러져 있었고, 눈은 공허하게 떠 있었다. 미호는 순간적으로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그들이 이곳에서 어떻게 되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충격에 휩싸여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그러나 그 순간, 철도의 끝에서부터 들려오는 기계음이 그녀의 신경을 자극했다. 눈을 들어 그쪽을 바라보자, 멈춰 있을 것만 같았던 지하철이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호의 눈동자가 커지며, 그곳에 묶여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어? 어??”


미호는 본능적으로 소리쳤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지하철이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향해 돌진했고, 그들의 비명은 철도 전체에 울려 퍼졌다. 사방팔방으로 터지며 나가는 피는 순식간에 지하철을 덮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금방 비명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피비린내가 가득 채웠다. 지하철은 사람들을 가차 없이 덮쳤고, 순식간에 그들을 짓밟으며 지나갔다. 미호는 충격에 얼어붙은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미호의 부들부들 떨리는 손과 흐르는 땀이 지금 이 자리에서 나타난 상황을 표현하는 듯 보였다.


피가 사방으로 튀었고, 지하철 내부는 순식간에 피로 가득해졌다. 그 광경은 너무도 비현실적이어서, 미호는 그저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지하철이 멈추고 난 후, 살아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죽어간 사람들의 혼이 그 자리에서 서서히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혼령이 되어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미호는 이 광경을 보고도 차마 눈을 돌릴 수 없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죄책감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어째서.. 이런 짓을..”


미호의 말을 끝맺기 전에, 그녀의 눈앞에 어둠이 일렁였다. 그 어둠 속에서 한 남자의 형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등장에, 미호는 본능적으로 긴장했다. 그 남자는 마치 이 모든 일을 즐기는 듯한 표정으로 미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차가운 빛이 감돌았고, 입가에는 얄팍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 무명!”


미호는 그를 알아보았다. 그의 모습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이 모든 악행의 원흉, 무명이었다.


무명은 천천히 미호에게 다가가며,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건넸다.


“흐음.. 그동안 잘 지냈어? 내 선물은 어떤 거 같아? 우리 여우씨?”


미호는 손에 쥔 검을 더욱 단단히 움켜쥐었다. 그녀의 눈에는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


“어..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가 있어...!”


무명은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 이것으로 부족한가 보구나..”


무명은 가볍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남아있는 사람들이 폭탄처럼 터져버리며 죽어가기 시작했다. 미호는 동공이 커지며 더 이상의 희생을 막으려 무명에게 소리쳤다.


“안 돼!! 하지 마!!”


무명은 천천히 미호에게 다가오며 속삭였다.


“넌 아직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미이건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진정한 공포는 이제부터야.”


미호가 소리치며 무명을 향해 발걸음을 떼려는 순간, 그곳에 서 있던 혼령들이 순식간에 미호에게 몰려들었다. 그들은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 갑작스럽게 그녀의 주위를 둘러쌌다. 미호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며 본능적으로 검을 들어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이들이 왜 자신을 공격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뭐지.. 이들은 방금 혼령이 돼서 아직 무명에게 조종 당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혼령들은 비명과 원망이 뒤섞인 소리들을 내며 미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의 손이 미호의 몸에 닿을 때마다 차가운 한기가 온몸을 휘감았고, 미호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대체 왜 공격하는 거예요..! 전 당신들을 도우러 왔다고요!!”


미호는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지만, 그들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혼령들은 그녀를 향해 집요하게 달려들며,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눈에는 원망과 분노가 가득 차 있었고, 미호는 그 시선에서 자신을 향한 깊은 적의를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혼령들의 공격을 피하며 방어에만 집중했다. 차마 그들을 공격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검을 방패처럼 사용하며 그들의 공격을 막아낼 수밖에 없었다. 미호의 몸은 이미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그녀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혼령들이 내뿜는 그 악랄한 감정의 폭풍은 그녀의 정신을 압박하고 있었다.


그때, 무명의 비웃음 섞인 목소리가 다시 한 번 그녀의 귀에 들려왔다. 그는 미호가 버거워 하는 모습을 즐기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것은 바로 너의 죄악이야, 여우 네가 이곳에 온 순간, 이들은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죽음은 너로 인해 일어난 것이지.”


무명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미호의 마음속에 불안과 죄책감이 더욱 크게 밀려왔다.


"나... 나 때문에?“


미호는 당황하며 무명의 말을 곱씹었다. 그녀는 눈앞에 있는 혼령들이 자신을 향해 원망을 내뿜는 이유를 이제서야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미호를 공격하는 이유는 바로 그녀가 이곳에 왔기 때문이었다. 미호가 이곳에 도착한 순간, 무명은 그들의 목숨을 앗아갔고, 그들은 죽은 후에도 미호를 원망하며 이곳에 남아 있었다.


“여우여.. 넌 이제 그들의 증오를 견뎌내야 한다..”


무명은 조롱하듯 말을 이어갔다.


“그들의 목숨은 너의 존재로 인해 사라졌고, 이제 그 원한은 너를 향할 수밖에 없지.”


미호는 더욱 압도적인 공격을 받으며, 혼령들의 고통과 분노를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그녀는 그들의 원망에 짓눌리며 정신이 혼미해질 것만 같았다.


"내가... 내가 그들을 죽게 만든 거라고?“


그녀의 목소리는 이제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혼령들의 눈은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들은 미호에게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미호는 손에 쥔 검을 꼭 쥐고,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차마 그들을 공격할 수 없었다. 그들이 자신 때문에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미호는 그들을 상대로 공격을 가하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저 방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방어하는 것조차도 점점 힘들어졌다. 혼령들은 계속해서 늘어났고, 미호는 점점 더 지쳐갔다.


무명은 그런 미호를 바라보며 조소를 머금었다.


“그래, 힘들겠지. 그들은 네가 죽인 것이다 여우여..”


미호는 혼령들의 무자비한 공격 속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으며, 이 상황을 이겨내겠다고 다짐했다. 그녀는 아직 무명과의 결전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좁은 지하철에서 벌어지는 이 싸움은 그녀에게 있어 가장 힘겨운 싸움이 될 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좁은 지하철을 꽉 채운 혼령들 탓에 도망칠 곳도 도망칠 수도 없던 그녀는 혼령들의 공격을 막아내며, 숨을 고르며 무명에게 말했다.


“네가 아무리 날 무너뜨리려 해도, 나는 끝까지 싸울 거야. 내가 이들을 구할 수 없었다면, 적어도 그들의 원한을 풀어줄 수 있을 때까지 싸우겠어.”


미호의 눈은 강한 결의로 가득 찼다. 그녀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무명의 계획이 무엇이든, 미호는 그 계획을 무너뜨릴 것이다. 그리고 이 지하철에서 벌어질 마지막 전투를 통해, 그녀는 모든 것을 끝낼 각오가 되어 있었다.

구미호 소녀 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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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51화. 작은 점들이 모여 하나의 그림을 그려낼 때 +2 24.09.16 8 1 9쪽
51 50화. 길고 긴 운명 24.09.13 8 1 10쪽
50 49화. 이 모든 악몽을 끝내기 위해 +2 24.09.12 8 1 11쪽
49 48화. 영혼과 그림자 그 어둠을 가르는 불꽃 24.09.09 7 1 12쪽
» 47화. 피로 물든 잔인한 지하 24.09.07 9 1 10쪽
47 46화. 운명의 문턱에서 24.09.04 8 1 9쪽
46 45화. 잃어버린 꿈의 고요함 24.09.03 9 1 9쪽
45 44화. 어둠 속으로 사라진 자들 24.08.30 9 1 9쪽
44 43화. 어둠 속의 조율 24.08.28 10 1 10쪽
43 42화. 악몽 +2 24.08.25 13 1 9쪽
42 41화. 구원의 서약 24.08.23 9 1 9쪽
41 40화. 승리하는 그날까지 24.08.21 9 0 10쪽
40 39화. 시작된 운명 24.08.20 9 0 12쪽
39 38화. 영원하다는 것. 24.08.17 7 1 14쪽
38 37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이유 24.08.15 6 0 10쪽
37 36화. 간직하고 싶은 사람 24.08.12 9 0 8쪽
36 35화. 휴식을 원하는 마음 24.08.12 7 0 9쪽
35 34화. 승리의 환상 24.08.12 5 0 10쪽
34 33화. 처음으로 맞이한 승리의 순간 24.08.12 5 0 10쪽
33 32화. 흐르는 물에 흘려 보내고 24.08.12 5 0 10쪽
32 31화. 무너진 마음 24.08.12 5 1 10쪽
31 30.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사이의 가치 +2 24.07.26 9 0 11쪽
30 29화.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의지 24.07.24 6 0 11쪽
29 28화. 지는 싸움 24.07.21 11 0 11쪽
28 27화. 행운의 소녀 24.07.21 8 0 12쪽
27 26화. 등잔 밑이 어둡다 24.07.18 6 0 10쪽
26 25화. 마음 편한 날이 없어서 24.07.16 6 0 12쪽
25 24화. 닮았지만 비슷하지 않아서.. 24.07.15 8 0 14쪽
24 23화. 지켜야 했던 다짐 24.07.13 1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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