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무사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새글

서마
작품등록일 :
2024.07.03 16:47
최근연재일 :
2024.09.19 21:06
연재수 :
44 회
조회수 :
492,022
추천수 :
19,868
글자수 :
408,736

작성
24.09.19 21:06
조회
4,138
추천
357
글자
16쪽

43화

DUMMY

43화




조금 전 형주 사람 고사를, 견신을 찾아왔노라며 말한 황보신고. 그랬으나, 그는 견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견신의 망막에 맺힌 상은 한쪽 손이 없는 사람 즉, 장선이었다.


“······.”


무릎 꿇은 장선이 황보신고 등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산동은 물론 온 강호에 명성이 자자한 검사, 백호검사 황보문충의 등장은 장선에게 조금의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집에 어린 아들딸이 있습니다! 한 번만 다시 생각해 주십시오! 이래 봬도 일에는 이골이 난 놈입니다!”


그의 절박한 목소리를, 뒤따라 들어온 중년 사내가 거들었다.


“맞습니다! 이이를 사사로운 연 때문에 쓰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일을 잘 해서 쓰는 것입니다!”


반점에 들어오기 전, 황보신고를 비롯한 이들은 한쪽 손이 없는 장선을 내쳤다. 몸이 온전치 않은 이에게 일을 맡길 수 없다며.


동시에 장선을 고용한 중년 사내를 그러한 맥락에서 문책했다. 몸이 온전치 않은 장선을 고용함으로써 가문 재산을 축냈다고, 같은 품삯이면 몸이 온전한 사람을 써야지 않겠냐며.


그처럼 장선과 중년 사내가 애원했지만, 결정은 바뀌지 않았다. 나이 얼핏 스물쯤 사내 자손이 엄한 목소리로 중년 사내를 꾸짖었다.


“그만! 그만하게. 이미 결정한 일일세. 자네 말 대로 일을 잘 해서 물통을 쏟을 뻔하였는가? 또, 사정은 알겠으나 상업을 사사로운 정(情)으로 대할 수는 없는 일. 같은 값이면 몸이 성한 자를 써야겠지. 아닌가? 본가가 무가이긴 하나, 상업과 돈을 허투루 대하지는 아니함이야. 자네는 내일 아침 양조장에서 기다리게. 곧 중요한 일이 있으니, 이만들 물러가고. 더는 용납지 않을 것이네.”

“무사님···! 허나···! 허···!”


그에 중년 사내의 동공이 긴 숨과 함께 빛을 잃고 말았으나, 장선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부양할 자식들이 있기 때문. 상대가 서슬 퍼런 무사라고 해도.


사내는 얼마든지 나약할 수도, 포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비는 다르다. 나약할 수도 없고 나약해서도 안 된다. 아비에게 포기, 체념 등은 있을 수 없는 일이요, 금기다. 자식에게 부모는 우주이자 세상. 부모에게 자식은 늙고 병들어 지쳐도, 언제나 또 언제까지나, 숨이 끊어지는 그날까지 지켜줘야 할 분신이므로.


그러니, 저와 아내를 닮은 자식을 둔 아비는 그 어떤 굴욕과 수모라도 감당할 수 있고 또 감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집 밖에서 저보다 한참 어린 이들에게 간 쓸개 다 내주고 무릎 꿇고 사정했을지언정, 집으로 돌아갈 때는 처자식의 주린 배를 채워줄 음식 한 보따리 손에 들고 웃는 것이다.


억지로라도, 속은 문드러졌을지라도.


그처럼 홀아비 슬하에 자란 남매를 떠올린 장선은 무릎걸음으로 기어서 황보신고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무사님! 부탁드립니다! 일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품삯은 반만 주셔도 됩니다! 일할 수 있게만 해주십시오! 제발···!”


어렵사리 구한, 사정에 사정을 거듭해서 구한 일자리였다. 아직 젊고 팔 한쪽을 빼면 건장하지만 아무도 병신을 써주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헐값에 부려 먹으려 들거나.


아마도 결정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황보가 사람, 한참 어려 보이는 사내의 성정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병신 너는 일터를 또 잃게 되었다고.


그에 속에서 다시 또 원망이 솟구친다. 전쟁, 토목보, 오랑캐 그리고 황제를 향한 원망이.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날 그때 토목보에 가지 않았다면, 오랑캐가 탐욕을 부리지 않았다면, 애당초 그전에 황제가 정치를 잘했다면!


노모도 죽지 않았을 거고, 덕주 촌뜨기 장선의 손도 온전했을 것이며, 지난 세월 그 수모와 지금의 수모 역시 겪지 않아도 됐을 거고, 지금 아이들 끼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을 테니까. 딸아이의 생일상 걱정도.


그러니, 이 모든 것은 전부 그이의 탓이다. 황제, 천순제 주기진 탓이다. 십수 년 전, 수백만 백성의 삶에 이처럼 커다란 상처를 안겨주었으면서, 정작 저는 지금 금은보화, 수많은 처첩과 자식들에게 둘러싸인 채 기름진 육신을 관에 누였을 터.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 있다는 말인가. 도대체 어떻게 된 게 이토록 불공평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 빌어먹을 세상은!




그처럼 통사정하는 장선에게 바짓가랑이를 붙잡힌 황보신고.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던 그때였다. 돌연 앳된 목소리 둘이 들려온 것은.


“아버지!”

“아빠!”


그에 장선은 물론이고 황보가 자손들, 장내 사람들의 눈과 귀가 일제히 목소리의 주인공들을 찾았다.


[!!!!!!]


견신의 원탁에서 온종일 주린 배를 채우고 있었던 오빠와 동생. 우락부락한 인상의 사람들에게 사정하는 아비를 보고 얼굴색이 노래진 장보 장희 남매를.


그간 섭식이 시원찮았던 탓에, 본래 젖살이 뭉게구름처럼 부풀어 있어야 할 얼굴들은 홀쭉하기만 했다. 빈곤이라는 도적이 다녀간 얼굴들은.



그처럼 뜻밖의 시간과 장소에서 남매를 발견한 장선. 그가 순간 무서운 얼굴이 돼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곧장 견신과 남매가 앉아있는 원탁을 향해 다가갔다.


“너희들! 여기서 뭐 하고 있어!”


그는 아들딸과 마주 앉은 견신과 고경신도 자식들처럼 빈한한 소년들로 여겼다. 그와 더불어 반점 주인이 종종 그랬듯, 이번에도 가난한 소년들에게 음식을 내줬다며 생각했고.


“장보! 아비가 여기 오지 말랬지? 왜 말 안 들어?”

“아버지, 그게 아니라···!”

“아비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얻어먹지 말라고! 얻어먹고 다니면 빚을 지게 되고 손가락질받게 된다고. 빚은 무슨 일이 있어도 갚아야 하는 거고. 우리가 거지야? 너 이 빚, 지금 다 갚을 수 있어?”


반점 주인에게 얻어먹는 건 아니지만, 견신에게 얻어먹는 건 사실이기에, 장보는 입안에 머금은 말을 바꿨다. 항변에서 사죄로.


“아니요··· 잘못했습니다, 아버지.”


그처럼 오늘따라 유난히 거친 아비의 성화 그리고 잔뜩 주눅이 들어서 대답하는 오라비. 유일한 가족의 불화를 접하고 서러워진 장희가 울음을 터뜨렸다.


“으아앙—”


그에 장보가 얼른 동생을 품에 안고 두 손으로 봇물 터진 듯 쏟아져 내리는 눈물을 훔쳐주었다.


“희아, 울지마. 괜찮아, 속상하셔서 그런 거야. 오빠 혼나는 거 아니야. 희아랑 오빠, 혼나는 거 아니야.”


어린 오라비가 닦고 또 닦아내지만, 누이의 눈물은 가늘어지지도, 느려지지도, 줄지도 않았다. 물방울로 내려와 얼음으로 얼어붙고 마는 늦겨울 비처럼 시리게 쏟아졌다.


빈곤은, 가난은 예나 지금이나 이처럼 가족을 위태롭게 만드는 시련이요, 가족의 화목을 훔치는 도적이었다.


그런 남매를 보고 급기야는 억장이 무너진 장선이 홱 고개를 돌려서 주방을 노려봤다.


“숙수어른! 말씀드렸잖습니까! 성의는 고마우나, 이리하시면 아이들이 커서 홀로 살아갈 수가 없다고! 저희 아이들을 망치는 길이라고요! 그러니, 손님으로 받지 마시라고! 손님으로 받으시려거든 남들과 똑같이! 제값 다 받으시라고!”


그런 울분을 촉으로 단 화살은 점소이에게도 날아갔다.


“아우! 내 저번에 아우에게 신신당부하잖았는가! 우리 애들 받지 말라고! 버릇 나빠진다고! 장보, 장희를 응석받이로 자라게 할 셈인가?”


그에 견신과 남매를 번갈아 보는 점소이가 조금 전부터 준비한 항변을 꺼내 드는데.


“형님! 그게 그것이 아니라···!”


견신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그와 장선 사이, 허공을 가르고 지나갔다.


“장 대가, 이 사람은 형주 사람 고사라 합니다.”


그런 부름이 그를 향한 것인 줄은 미처 생각지 못한 장선이 점소이를 쏘아보는 가운데, 사뭇 놀란 눈초리로 견신을 돌아보는 이들이 있었다.


[!!!!!!]


창주에서 섬전도 조규상을 일 합에 제압했다고 알려진 소년 무사. 며칠 전 흑회의 고수들을 격멸했다고 알려진 소년 검사. 불세출의 검사, 천하 검사의 우상, 태대종사 검자 고견신의 출신과 아명을 쓰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행색까지 모방하는 소년 고수를 만나기 위해 여기 온 사람들.


황보신고와 자손들 그리고 검회의 회원, 백호검사 황보문충이었다.


“!!!!!!!”


그들 모두, 예상보다 훨씬 더 어리게 보이는 견신을 발견하고 눈을 의심하는 기색이었다. 그 사이, 견신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장선의 의식을 단박에 잡아채는 목소리가.


“장 대가, 대가의 자식들이 얻어먹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이 생애 그 귀한 봄날을 천자와 제국의 안녕을 위해, 전쟁에 바친 이의 아들딸을 부족하게나마 대접하는 것입니다.”


천자, 제국 그리고 두 글자, 전쟁이 장선의 의식 그 귀퉁이를 잡아챘다.


“······?”


그에 목소리 주인을 확인하고자 하는 그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가고, 거기 덤덤한 기색으로 자리에서 일어선 견신이 있었다.


“무에 잘못되었겠습니까?”

“지금···! 혹, 이 사람에게 하는···?”

“그렇습니다, 장 대가.”


일어선 견신의 허리춤에서 묵색 물체, 기여의 검파를 목격한 장선이 순간 움찔하면서도 의문을 해소하고자 했다.


“무, 무사님···? 방금 무어라고···?”

“덕주 사람, 장가 선(線). 정통 십사 년 봄 징집되셨고, 여름 북로친정(北虜親征)에 참전. 맞습니까?”

“마, 맞습니다···! 그건 왜···?”

“천순 폐하께서 보내셨습니다.”

“예? 그게 지금 무슨···?”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어리둥절해져 주변과 견신을 번갈아 보는 장선. 그리고 별안간 등장한 대행황제로 인해 깜짝 놀란 홍소화와 문국 등의 사람들.


[!!!!!!]


특히 유희와 조경, 공손신정은 놀란 나머지 사레가 들려서는 입에 문 것을 토해냈다.


[켁—!]


그 모든 이들의 공통된 생각은 그것이었다.

대행황제가 보냈다? 대행황제가 형주 사람 고사를 보냈다? 장선에게? 그럴 리가? 왜?


세 호위만의 생각은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을 몇 가지 들자면 우선 정왕 주견신의 발언 그 진위에 대한 의심.


그리고 정왕 주견신이 지금 여기서 정체를 밝히려고 하는 건지, 그 여부에 관한 의문과 이유 또 그로 인해 발생할 상황들에 대한 우려 등이었다.


그처럼 장선을 포함, 모든 이를 혼란에 빠트린 견신이 조금 전 준비했던 비단 족자를 펼쳤다.


“덕주 사람 장가 선은 들어라. 그 여름 짐과 제국을 위해 잘 싸워주었다.”

“허···?”

“비록 짐과 제국이 오랑캐의 도검에 패하였으나 이는 짐이 부덕한 탓일 뿐. 병졸의 과도 오도 아닐지어다.”


그 대목에서 그동안 분노와 놀람으로 눈썹과 이목구비 전체가 곤두섰던 장선의 얼굴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두 눈에 그도 느끼지 못한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고.


“이, 이제 와···! 이제 와서···!”


더불어 오래전 그날 들었던 지현의 목소리가 그의 의식 한쪽에서 들려왔다.


-장가 선! 징집이다.


쫓기듯 떠난 고향. 생전 처음 본 고향 바깥의 세상. 마찬가지 생전 처음 쥐어본 창의 감촉. 팔달령 그 너머 대동까지 장장 2천 리에 달하는 행군길. 그 여정 동안 바뀐 계절의 풍광.


장정 몸통처럼 두꺼운 팔다리를 가졌던, 한 합에 제국군 병사들을 둘로 쪼개던 오이라트 병사들. 촌뜨기 병사들에게는 저승사자나 마찬가지였던 그놈들.


뜨거운 햇살 아래 치솟는 피 분수, 쏟아지는 내장, 두 눈을 뜬 채로 혀를 내밀고 죽은 육신들. 신음, 비명, 절규, 통곡. 그리고 손목이 잘리던 순간의 공포와 고통.


구사일생으로 돌아와서 보니, 하나뿐인 노모는 죽었고, 인심은 황제를 오랑캐에게 내주고 염치도 없이 살아 돌아왔냐며 죄인 취급.


그리고 팔 병신의 삶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을 먹이기 위해 굶어야 하는 가장의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처럼 장선이 치솟는 울분에 몸과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있는데, 견신이 족자의 문장들을 읽었다. 담담하게.


“사막 서쪽 멀리, 지는 해를 볼 적에도 잊지 아니하였노라. 장성 아래 주춧돌 거기 지는 꽃을 보면 떠올렸노라. 바람 부는 날도 천치 가득 궂은 비 내리는 날도 천지 한가운데 서서 부덕한 짐과 제국을 위해 목숨 바친 너희를 생각하였노라. 너희를 생각하는 일이 짐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그 대목은 견신이 어제오늘 주기진과 아비의 생애를 이해하고자 한 결과물이었다.


아버지 당신께서는 단 하루도 잊지 않았을 터. 아니, 잊지 못하셨을 것이다.


어떻게 잊을까. 황제 주기진의 이상과 꿈, 권세와 위엄, 신망 그리고 무공과 심신의 건강까지, 그 모든 것을 앗아간 그날을.


적에게 ‘뿔 없는 마소 같은 노복’이라는 이름을 받고 노예로 살아야 했던 그 비참한 세월을.


하루에도 수백 번씩 북경을 그리며 피눈물을 흘렸을 아버지. 그런 그리움의 대상을 북경이 아닌 장선과 병졸로 바꿔서 말해주었을 따름이었다. 장선을 비롯한 귀환병의 오래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서.


황제를 오랑캐의 수중에 내주고 도망친 병사라는 오명과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아니나 다를까, 그를 듣고 순간 사고가 정지한 듯 핏발 세운 두 눈, 찢어질 듯 입을 벌리고서 바라보는 장선.


“!!!!!!”

“짐이 토목보에서 오랑캐의 수중에 떨어진 까닭은 모두 간신 왕진이다. 바삐 성을 쌓고 용맹스레 또 결사의 의지로 항전한 병졸들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음이다. 짐과 대명의 백성들이여 잘 싸워주었노라. 바라건대 부디 오래도록 평온하라. 내 오랜 바람이다.”


견신이 그런 장선을 지그시 바라보며, 펼친 족자를 조금 말아서 갈무리했다.


“이러한 늦음 또한 짐의 부덕이다. 부족하나마 상을 내리니, 손을 대신할 의수를 채비하고 힘써 여생을 사는 데 쓰도록 하라.”


그런 뒤, 급기야 얼음장 물에 빠진 듯 덜덜 떠는 장선의 손에 쥐여주었다. 노란 족자 위 한가운데 은 백 냥이 적힌 전표가 놓여 있었고, 전표 위로 장선의 굵은 눈물이 떨어졌다.


툭—


장중한 필체의 문장들과 전표를 보고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린 장선이 주저앉으며 물었다.


“저, 정녕 폐하께서···? 폐하께서 소인을 기억하셨다는···?”

“형주 사람 고사가 북로친정의 참전 병사, 천자와 제국을 위해 청춘을 바친 사람, 덕주 사람 장가 선을 뵙습니다.”


그에 견신이 살짝 허리를 숙이고 내려다보는 찰나.


“!!!!!!”


장선은 어린 견신에게서 그를 봤다. 오래전 그 여름날, 토성 위에서 처음 만난 주기진을.


“폐, 폐하···!”


뿌옇게 흐려진 세상 한가운데 오래전 그날 만난 동갑내기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홉 살 어린 나이에 아비를 잃고 황위에 올라, 천하라는 벅찬 멍에를 심신에 이고 고군분투하던 동갑내기가.


어린 나이에 아비를 잃었기에, 어린 마음으로 의지했던 간신들의 농간에 휘둘릴 수밖에 없었던 주군. 바로 어제, 오랜 숙환을 앓다가 기어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는 천자. 촌뜨기 장선의, 나의 황제가.


그 얼굴을 보고 있으니,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다. 한순간 깨져버린 술독에 담겼던 술처럼 와르르 쏟아졌다.


“폐하—아—! 크흑— 어찌 그리 가셨사옵니까— 고단하셨던 생애, 이놈 죄인도 여태 살아 있거늘, 천자 되신 몸으로 더 복락을 누리지 않으시고, 어찌 그리 일찍 가셨사옵니까—아—”


그처럼 마침내, 저 뱃속에서 솟구치는 울음을 완전히 놓아버린 장선이 오래전 그날 본 것과 전혀 다른 생김새의 발을, 훨씬 작은 발을 조심스레 어루만지며 목 놓아 울었다.


“못난 장선이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폐하를 원망할 수 없는, 원망해서도 아니 되는 못난 병졸 주제에! 그때 큰 은혜를 입고도 폐하를 제대로 호종하지 못한 죄인이! 오랑캐에게 내주고 만 죄인이! 감히 폐하를 원망하였었사옵니다. 용서하시옵소서—어—”


견신은 차마 그 모습을 더 보지 못하고 슬그머니 반점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어느 순간 그의 눈꼬리 끝도 반짝이기 시작했다.


‘아버지.’


작가의말

즐거움으로 풍성한 한가위 보내셨으리라 믿습니다.

많은 격려와 응원, 그리고 추천글 감사드립니다.

큰 힘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와인초콜렛님,  djsejr님, 조용한베어님, k1945_ckck1021님, qws2님 후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58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윤회무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지난 휴재 공지] +40 24.09.04 3,857 0 -
공지 [연재시간 변경] 평일 오후 9시 연재 됩니다. 24.07.30 6,130 0 -
» 43화 NEW +58 22시간 전 4,139 357 16쪽
43 42화 +53 24.09.13 8,427 448 18쪽
42 41화 +63 24.09.11 8,474 477 18쪽
41 40화 +33 24.09.10 8,537 425 22쪽
40 39화 +43 24.09.09 8,846 485 22쪽
39 38화 +47 24.09.03 9,577 496 21쪽
38 37화 +16 24.08.30 8,713 374 18쪽
37 36화 +20 24.08.29 9,041 401 21쪽
36 35화 +14 24.08.27 8,959 396 19쪽
35 34화 +11 24.08.26 8,993 366 23쪽
34 33화 +18 24.08.23 9,361 418 20쪽
33 32화 +15 24.08.21 9,290 372 20쪽
32 31화 +24 24.08.20 9,400 370 18쪽
31 30화 +22 24.08.16 9,984 425 16쪽
30 29화 +21 24.08.15 9,524 475 21쪽
29 28화 +31 24.08.13 9,882 364 21쪽
28 27화 +24 24.08.12 9,610 384 20쪽
27 26화 +25 24.08.09 9,879 437 20쪽
26 25화 +20 24.08.08 10,340 379 18쪽
25 24화 +23 24.08.07 10,106 422 20쪽
24 23화 +19 24.08.05 10,077 384 21쪽
23 22화 +24 24.08.02 10,223 447 21쪽
22 21화 +14 24.08.01 10,492 380 18쪽
21 20화 +15 24.07.31 10,699 392 21쪽
20 19화 +21 24.07.30 10,643 453 18쪽
19 18화 +16 24.07.29 11,030 421 21쪽
18 17화 +32 24.07.26 10,962 565 20쪽
17 16화 +16 24.07.24 11,189 436 2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