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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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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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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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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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DUMMY

29화




지주(知州)는 종5품 주(州)의 장관이다. 군정을 제외한 민정과 사법을 통할하는 총책이며, 주 아래 현(縣)의 가구수를 보통 1만 호로 잡는 점을 고려하면 무려 수만 호를 다스리는 관직인 것.


바로 위 품계의 정5품 천호가 병사 1,120명을 지휘하는 중견 장수지만 실질적인 권세로 비교하면 지주가 몇 끗발 위였다. 지주에게는 재판을 통해 사람을 살리고 죽일 수 있는 권리 즉, 생살여탈권이 있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천호는 군법을 위반한 무관과 병사 혹은 제국의 행사에 무력으로 대항하거나 위협하는 등 그 처벌이 즉결 처분에 해당하는 죄를 저지른 사람만 실시간에 현장에서 처단할 수 있었다. 실시간, 현장. 두 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되어야만 가능했다.


사람이 제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이를 어려워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이치고, 실생활에서 다 외울 수도 없이 많은 법령을 적용하여 생살여탈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주를 천호보다 두려워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생살여탈권은 문과를 치르고 급제한 관리 즉, 문관만 가질 수 있는 특권. 무관은 총독이나 순무로 임명되지 않는 이상 행사할 수도 없고 행사할 일도 없는 권한이었다.


애초에 총독은 전쟁 중 전선 일대의 지방에서 실권을 발휘하는 관직이고 순무는 지방에서 민정과 사법을 담당하는 문관과 비교하여 품계가 높은 무관을 견제함으로써 지방의 민정, 사법, 군정의 균형을 도모할 목적으로 신설한 관직인지라 문관이 임명되었으니, 신민의 생살여탈권을 사실상 문관의 고유 권한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한 실정이었다.


그러니 지주가 지방에서는 세도 당당할 수밖에 없고 또 평범한 백성의 경우 현청을 건너뛰고 주청으로 불려 갈 수준의 죄를 짓지 않는 이상, 평생 지주가 누군지 성명도 얼굴도 모르고 사는 게 보통이었다.


따라서 그런 지주가 직접 찾은 이는 둘 중 어느 한쪽 상황에 놓인 셈이었다. 경사 혹은 흉사. 최소 현의 화제가 될 만큼 큰 규모의.




방안에서 아무런 답이 없자, 창주 지주 형이산이 다시금 재촉했다.


“안에 계시는 것을 점주에게 들어서 알고 있소. 어서 의관을 정제하고 나오시오.”


그러면서 주변에 눈짓하자, 장수와 병사들이 우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태세를 갖췄다. 이런 경우 보통은 순순히 나오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도 왕왕 있었다. 무예를 익힌 중죄인이 관리를 해치고 도주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따끔따끔 피부를 찌르는 듯 날카로운 긴장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이내 기세를 더 가파르게 올리기 전 때마침, 안에서 견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 나가겠습니다.”


잠시 뜸 들여 대답한 견신은 역시나 올 게 왔다고 생각하며 침상에서 일어섰다.


예상대로 양성이 고발했을 것. 아니면, 양성과의 실랑이를 목격한 누군가 고발했을 수도 있고, 그도 아니면 양성이 고발을 사주했을 수도 있고.


어느 쪽이든 양성이 원인인 것만은 틀림없을 터다. 형이산이 조금 전 양성과의 실랑이를 언급한 것도 있고, 이 일은 그때 이미 예정된 일이니까. 양성이 마장에서 금도(禁度)를 범했던 그때.


당시 양성까지 전부 제거했어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훨씬 더 나빴을 공산이 크다. 일정 수준, 정도 이상으로 피를 보게 되면 인과와 상관없이 시시비비를 떠나서 반드시 척지게, 원수 지게 되는 법이니까.


그것이 혈채(血債) 즉, 피의 빚이 은원 관계에서 보이는 특수성. 많은 피는 진실과 인과 그리고 시비를 원한으로 덮어 버리는 특성을 가졌다. 만약 그 당시 더 많은 피를 봤다면, 양성 개인이 아닌 산서상인 전체와 원한 관계를 맺었을 거란 이야기. 필연적으로.


그러므로 낮에 한 명의 피만 본 것은 긍지와 자존을 지키면서도 귀찮은 상황을 피하기 위한 최선이었다. 또 항복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일단은 항복하는 이를 어쩔 생각도 없는 사람이기도 하고.


아무튼 지주가 직접 온 건 조금 의외긴 하지만 산서상인이 엮인 일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문고리를 잡았다.


방문을 열자, 오십 줄 퉁퉁한 체구의 사내와 관리들 그리고 칼과 창으로 무장한 장수와 병사들이 복도를 점거하고 있었다.


“형주 사람, 고가 사라고 합니다. 지주 대인께서 이 밤에 어인 일이신지.”


그처럼 문이 열리고, 유등 불빛에 비친 견신을 보는 형이산과 사람들이 순간 움찔거렸다.


흠칫—


[!!!!!!]


소년이 나이대의 보통을 상회 하는 고수임을 또 공력을 익힌 무사를 일 합으로 제압한 무사임을 들었고, 그런 이가 듣던 대로 열네다섯쯤에 불과해 보이는 소년인 데다가 흑색 일색의 차림새였기에, 보는 순간 본능적으로 놀란 것. 게다가 한밤중이니.


이윽고 주재자답게 가장 먼저 이성을 회복한 형이산이 견신을 찬찬히 살피며 물었다.


“본관이 절차상 거듭 확인하겠소. 형주 사람 고사가 맞소? 낮에 마장에서 양성과 시비가 있었고?”

“그렇습니다, 대인. 혹, 소인이 짐을 꾸려야 합니까?”

“아니오, 잠시 본관을 따르면 될 것이오.”

“···예.”


견신은 돌아서서 걷는 형이산의 등을 보며 생각했다. 우선 첫인상에서 느낀 건 하나.


‘매수하기 딱 좋은 인상인데.’


형이산은 잔 술수가 지나치게 잘 통할 것 같은 인상의 소유자였다. 예를 들면 매수 같은.


보행이 쉽지 않을 만큼 퉁퉁한 뱃살, 그에 한겨울에도 땀을 흘리는 기름진 얼굴. 종5품 지주의 봉록으로 살 수 있을까 싶은 고급 의복과 장신구까지.


‘꽤 피곤해질 수도.’


상인인 양성은 당시 상황을 조작하여 말하거나 사실을 말하고 매수하거나, 둘 중 쉽고 빠르며 확실한 방법인 후자를 선택했을 공산이 크고, 만에 하나 형이산이 양성에게 매수됐다면 무고를 증명하는 과정이 상당히 귀찮아질 터였다.




그건 그건데 의아한 대목이 하나 있다. 짐을 챙기지 않아도 된다고 한 대목. 이런 경우 주청이나 현청의 옥사에 일단 갇히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게 보통. 그러자면 짐을 정리해서 가야 하는 거고.


따라서 짐을 챙기지 않아도 된다고 한 말은 여기서 결판을 본다는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는 건데 어떻게 그런 행사가 가능한 건지 궁금해졌다.


“대인, 옥사로 가는 게 아닙니까? 소인은 연고도 일행도 없는지라 따로 물품을 정리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만.”

“크흠···! 일단 본관을 따라오시오.”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수상하고 또 이해할 수 없는 일. 그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형이산이 이런 식으로 사람들의 주머니와 재산까지 털어온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시간이 충분했다면 형이산의 평판, 됨됨이를 미리 알아봤겠으나 궁호상 일가를 살피느라 그러지 못했다.


사실, 시간이 충분했더라도 지현을 비롯한 현의 관리들 정도만 조사해 봤을 터. 솔직히 지주는 예상 범위 밖에 있었다.




이윽고, 형이산과 견신을 포위하듯 에워싼 일행이 반점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아래층에도 장수와 병사들이 다수 대기 중이었고, 술과 음식을 즐기던 이들은 서둘러 자리를 뜬 모습이었다. 순식간에 반점을 잠식한 분위기에 밀려서.


그런 병사들의 사이에 그가 껴 있었다. 계단을 내려오는 견신을 양성이 실실 웃는 얼굴을 하고서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눈이 마주치기를 바라는 듯이, 노골적으로.


물론, 시력이 극도로 발달한 견신과 금방 눈이 마주쳤다. 그에 더 휘어지는 양성의 입매가 비릿한 냄새를 만들어내는 것 같았다.


씨익—


이내 자연스레 견신이 한가운데 서고 형이산을 비롯한 주와 현의 관리들이 그 앞에서 대치하는 모습이 됐다.


이어서 잠시, 실개천 같은 정적이 흘렀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하면서도 이어지는 그런 침묵이.


[······.]


소리라고 부르기도 뭣한, 아니라고 하기도 이상한 소리, 횃불 타는 소리와 사람들의 숨소리, 불꽃이 뱉어낸 연기가 정처 없이 배회했다. 가끔 군사들의 두정갑이 부스럭거리기도 했고.


유등의 불꽃과 횃불이 일렁일 때마다 사람들의 얼굴도 변모했다. 빛이 얼굴 일부만 비췄을 때 혹은 일부만 비추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된 듯 보였다.


눈으로 본 상과 실체는 다를 수 있음을 암시하듯이. 인간의 감각이야말로 허상에 현혹되기 쉽다는 것을 시사하듯이.


그런 침묵에 다시금 의아해진 견신이 운을 뗐다.


“혹, 소인이 고발당한 것이라면 그 세세한 내용을 여쭤도 되겠습니까?”


사람을 불러놓고 아무런 말이 없으니 의아할 수밖에.


그에 형이산이 얼굴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되물었다.


“낮에 산서상인 소속 무사 둘과 다툼이 있었고 그중 한 명을 중상, 한 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 사실이오?”


그런 동작과 말하는 도중에 어딘가를 살피고 확인하는 듯 한 번씩 눈알을 굴리는 모습이 지켜보는 견신의 심기를 자극했다.


“···사실입니다.”

“그 다툼의 원인이 귀하께서 무력을 앞세워 행수 양성의 거래를 방해, 말을 가로챘기 때문이오?”

“그것은 아닙니다. 완전히 반대입니다. 대인의 말씀을 들으니, 누군가 낮의 일로 소인을 고발한 듯합니다. 혹, 양성이 고발하였습니까?”


고발자가 누군지는 여전히 미지수지만, 내용은 대강 확인된 셈이었다. 고발자가 사건의 진실에서 양성과 견신의 위치를 바꿔치기한 것. 돈 대신 무력으로 힘도 바꾸고.


“본관의 의문이 먼저요. 낮에 있었던 일을 시작부터 차근차근 말씀해 보시오.”

“그러겠습니다. 말을 한 필 구하고자 마장을 둘러보던 소인은 궁가 호상이라는···”


견신이 형이산의 요구대로 낮의 일을 시간 순서에 따라 해설했다. 가감도 사족도 없이.


“개를 데리러 간 사이 상도의를 어긴 것도 양성이고, 강호의 도리를 가르쳐주겠다며 무사를 부린 것도 양성입니다. 그러니 이는 대명률 중 형률, 소송편의 무고(誣告)에 해당하는 죄일 것입니다.”


설명을 마치는 견신이 끝에 가서 무고죄가 속한 편의 제목까지 자세하고 정확하게 언급하자, 그 대목에서 형이산과 사람들 모두 이채를 띠었다.


[!!!!!!]


소년 무사가 제국 법령까지 꿰고 있을 줄은 몰랐던 것. 관리들도 대부분 자기 실무에 관련된 편만 알고 또 사법을 다루는 관리가 아닌 이상, 어느 편에서 어떤 죄를 다루는지까지는 세세히 알지 못했다.


그런데 세상 물정도 다 알지 못할 소년 무사가 형률과 소송편까지 정확하게 언급하니, 놀랍고 또 정신이 번쩍 들 수밖에.


그런 안색을 재정비한 형이산이 판관과 이목을 돌아봤다. 종7품 판관은 주(州)의 사법을 맡은 관리다.


“판관은 빠짐없이 적었는가. 읊게.”

“예, 대인. 형주 사람 고사는 낮에···”


이윽고, 낭독이 끝나자 형이산이 견신에게 확인을 요구했다.


“이상이 귀하의 진술 내용이요, 맞소?”

“맞습니다.”

“잠시 기다리시오.”

“예, 대인.”


다시 한번 얼굴과 목의 땀을 훔친 형이산이 잠시 판관과 귀엣말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 사이, 줄곧 희희낙락 중이던 양성은 조금 찜찜한 기분을 느끼곤 잠시, 그런 찜찜함의 원인을 찾는 중이었다. 그는 목덜미를 스쳐 가는 공기가 마치 밤중 울창한 숲속의 공기처럼 꾸덕꾸덕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주가 어째··· 흠···’


일단 표면적인 원인은 형이산의 공대였다. 낮에 찾아갔을 때는 단 한 차례도 듣지 못한 공대다. 물론, 선비들이 상인들을 낮잡아 보는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기는 하지만, 그건 그거고 지주씩이나 되는 인물이 죄인에게 공대하는 건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선비들이 무사를 어려워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본인이 평범한 유생일 때 그런 것이고. 형이산처럼 관직에 오른 선비에게 거대 방문파가의 무사면 모를까, 평민 출신 무사는 어려울 게 없는 존재다. 하물며 죄인이라면 더더욱.


생각이 거기 이르자 다시금 그곳이 떠올랐다. 최강의 검사들, 검자 고견신을 추종하는 검사들의 모임. 검회(劍會)가.


‘설마, 진짜 검회인가···?’


어린놈이 그 검회의 중요 인사라면 지주를 저처럼 압박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지주의 태도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지금 어린놈을 처음 보는 지주가 무슨 수로 알겠는가. 어린놈이 검회인지 보잘것없는 낭인인지.


‘아니, 아니다. 어린놈이 검회라고 한들 줄곧 주청에 있었던 인사가 그를 무슨 수로 알았을까. 혹, 검회일 수 있다고 생각 중인 것인가?’


또 한 가지, 어린놈을 곧장 주청이나 현청으로 데려가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어린놈의 진술을 듣고 나서 저들끼리 쑥덕거리는 것도 그렇고.




그처럼 양성이 찜찜한 직감의 원인을 찾던 중 형이산과 판관의 귀엣말이 끝났다.


“그리하세.”

“예, 대인. 그리 조처하시면 될 것입니다.”


형이산이 땀에 젖은 손수건을 반듯하게 접은 뒤 앞섶에 갈무리하며 나섰다.


“산서상인 행수 양성은 앞으로 나오라.”

“···예! 대인!”


저를 호출할 줄은 예상치 못한 양성이 화들짝 놀라며 얼른 견신의 몇 걸음 우측에 섰다. 머릿속 생각을 지우려는 듯 또 형이산을 믿는다는 듯 형이산을 바라보며 웃어 보이는 모습.


그런데 곧바로 그의 믿음을 완벽하게 저버리는 일이 벌어졌다. 일을 벌인 사람은 형이산이고.


“판관은 지금 즉시 죄인, 양성을 주청으로 압송하라!”

“예! 대인!”


판관의 복창과 함께 대기하던 장수들과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자 화들짝 놀란 양성이 기겁하며 소리쳤다.


“예? 대인! 무슨···? 죄인이라니요?”


얼마나 놀랐는지, 목구멍으로 심장을 내뱉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의 호위들이 반사적으로 움찔하며 나서려다 그럴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부동자세로 돌아갔다.


보고 들은 목격자까지 한꺼번에 해치울 수 있다면 모를까 관의 행사에 도검을 들이미는 것은 판결도 필요 없는 사형 확정을 요청하는 셈. 칼자루를 잡기만 해도 목이 달아나는 수가 있다.


그처럼 어쩔 줄 모르는 양성의 몸에 금세 굵은 오랏줄이 친친 감기자, 그를 확인한 형이산이 다시 주문했다.


“판관은 양성의 죄를 나열하라.”

“예, 산서상인의 행수 양성은 진상을 사실과 다르게 왜곡하여 지주에게 고함으로써 형주 사람 고사를 무고하였다. 형주 사람 고사가 양성이 마장에 나타나기 전 창주 사람 궁호상의 말을 은 백 냥에 사기로 약조한 것은 사실이었으며.”

“···판관 대인···? 그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분명 마주들이 증언을···!”


병사들에게 어깨를 붙잡힌 양성이 발작하듯 항변했으나 판관은 아랑곳없이 판결을 이어갔다. 조금 전 판관과 형이산의 대화는 지금의 판결을 협의한 것이었다.


“고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양성이 궁호상에게 은 삼백 냥을 제시하며 고사와의 거래를 무르라고 한 것 역시 사실이었다. 고사가 궁호상의 아이에게 선물한 개를 데리고 돌아온 뒤, 고사에게 은 삼백 냥을 제시한 것 또한 사실이었으며 그를 거절하며 그간의 무례를 꾸짖는 고사에게 사죄를 종용하며 무사를 앞세워 고사를 겁박한 것 역시 사실이었다.”

“판···! 지주 대인! 이게 어찌 된 영문입니까? 전에 분명 증언을 들으셨잖습니까?”


마주들까지 매수해서 완벽하게 준비했다고 생각한 양성의 입장에는 미치고 펄쩍 뛸 일이었다. 실제 양성은 마주 세 명을 매수했고 그들은 양성이 불러준 대로 형이산에게 증언했다.


더불어 양성이 형이산에게 재물로 청탁을 넣은 것도 사실이지만 당시 형이산이 완곡하게 거절했다. 그러나, 형이산이 양성과 마주들에게 전해 들은 견신의 행태에 분노한 태도를 보였기에 양성이 안심했던 것.


“이를 마장의 마주 삼 인이 증언하였다.”

“예? 무슨···? 누가 그리 증언하였습니까?”


그런데, 지금처럼 판관이 마주 삼 인의 증언을 증거로 양성이 거짓을 말했다며 판결하고 있으니, 양성의 입장에는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일 수밖에.


“또한 마주 삼 인은 양성에게 재물을 받고 거짓을 고한 죄를 인정하였다.”

“그, 그런···! 그럴 리가! 아, 아닙니다! 이, 이는 모함입니다. 마주들과 대질하게 해주십시오! 그들이 거짓을 고한 것입니다!”

“대질은 주청에서 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양성은 이 무고를 위해 지주 대인의 판단을 재물로써 구하려고 하였다.”

“!!!!!!”

“그 또한 죄다. 이를 무고죄와 합하여 지금 본판결에 앞서 가판결한다. 대명률 이십이권 형률 소송편 삼백오십구조 무고에 따르면 무고죄의 형벌은 죄인이 덮어씌우려 했던 죄로 반좌(反坐)한다. 양성은 고사에게 살인죄를 무고하였으니, 살인죄로 반좌하여야 한다. 그러나 무고를 당한 고사가 처결되지 않았으므로 삽백오십구조 일항에 따라 장 일백 대와 유(流) 삼천 리, 노역 삼 년에 처한다.”

“대, 대이—인—!”


직전 마주 셋이 매수된 사실을 이실직고했다는 대목에서 완전히 무너진 양성의 안색은 흙빛으로 변해 있었고, 전신이 사시나무처럼 덜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무고죄는 제국이 중죄로 다루는 죄로써 만약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덮어씌웠고 무고를 당한 사람의 사형이 집행됐다면 무고한 사람도 사형을 받는 것이 형벌의 원칙이었다.


우발 혹은 고의로 사람을 죽인 죗값은 목을 매달아 죽이는 교형 혹은 목을 베서 죽이는 참형. 즉, 양성의 무고가 성공 시 견신이 받을 형벌은 사형이다.


그러나 견신이 사형을 당하지 않았으니 이런 경우, 장 일백 대를 치고, 거주지 기준으로 3천 리 밖에 유배를 보내며, 3년간 노역을 부과하도록 정해져 있었다.


“아, 아닙니다! 오해가···! 이는 필시 누군가 농간···! 수작을 부린 것입니다!”


지금 양성의 정신이 붕괴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장형이다. 장형은 최소 60대부터 시작했는데 그 정도만 맞아도 초주검이 되는 게 보통. 백 대면 맞다가 골반 골절 등으로 현장에서 죽을 수 있고, 맞고 나서도 장독이 오르는 등 병을 앓다가 죽는 사례가 허다할 만큼 무시무시한 형벌이었다. 속된 말로 병신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고.


거기 더해 3천 리 밖이면 천하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끌려가는 셈이니, 사실상 양성의 인생은 끝났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었다.


“또한 재물로써 청탁하려 하였으니 대명률 이십삼권 형률 수장편 삼백칠십조, 유사이재구청에 해당하는 죄다. 삼백칠십조는 사람들이 어떤 일에 재물로써 청탁을 하여 법을 굽히게 하면, 준 재물을 계산하여 좌장(坐贓)으로 처결한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이 또한 최대 장 일백 대와 도(徒) 삼 년이다.”

“대이—인—! 소인은 산서상인의 행수입니다! 폐상인을 아시잖습니까! 이러실 수는 없습니다! 대이—인—!”


넋이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바지를 적시면서도 발악하는 양성에게, 형이산이 다가갔다.


“이놈! 네놈이 한낱 재물로 본관을 사들일 수 있을 줄 알았더냐! 네놈이 낯짝을 들이밀고 은부터 꺼낼 때 내 이미 수상쩍게 여겼느니라! 이치와 도리를 꺼내기 전에 같잖은 돈부터 꺼내 드는 천박한 장사치의 말을 내 선비로서 어찌 믿을까!”

“대이—인—! 제발 믿어주십시오! 이는 모함입니다, 대이—인—!”

“내 마장 마주들과 전부 대질시켜 줄 것이다. 끌고 가라!”

“대이—인—! 놔라! 대이—인—!”


발버둥 치며 끌려 나가는 양성을 형이산이 꼴 보기도 싫다는 듯 마저 보고는, 얼떨떨한 얼굴로 어색하게 서 있는 견신을 돌아봤다.


“일은 이리 마치겠소. 일이 이처럼 사필귀정 권선징악으로 귀결되어서, 본관이 종결할 수 있어서 다행이오. 이만 돌아가셔도 좋소. 귀하를 더 부를 일은 없을 것이오.”


그때 견신은 형이산의 목소리가 뭐랄까 쓸데없이 크다고 생각했다. 마치 다른 이가 듣기를 바라는 것처럼, 강조하는 것처럼.


“···예. 허면, 소인은 이만. 노고 많으셨습니다. 지주 대인, 여러 대인.”




그처럼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어 얼떨떨한 상태로 계단을 향해 걷는 견신의 고막을, 삼삼오오 해산하는 관리들의 수군거리는 음성이 두드렸다.


“어리석은 작자지. 지주 대인 가문이 대대로 창주에서 몇 손에 드는 부호이거늘. 그깟 푼돈이 먹히겠는가?”

“그게 아니라도 대쪽 형이산에게 은을? 나 잡아 잡수라는 이야기지.”

“그러게나 말일세. 물만 잡수셔도 살이 찌는 체질만 빼면 흠이 없으신 분인데··· 참···”


특히 마지막에 들려온 목소리의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그럴 일은 없었겠지만, 까닥 잘못 넘어갔다면 우리 다 죽었지. 지주 대인이시라 우리 다 살아남은 걸세. 세상에 첨도어사께서 납실지, 다 보셨을지 누가 알았겠는가. 그러고 보면 저이 고사랬나? 참 운이 좋아. 운이 좋은 인사야.”


첨도어사, 네 글자가.


작가의말

금일은 8월 15일, 작가는 광복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


기다려주시고 찾아주신 독자님들께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seng2006님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더 노력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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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8화 +29 24.08.13 9,356 349 21쪽
28 27화 +23 24.08.12 9,091 373 20쪽
27 26화 +25 24.08.09 9,354 422 20쪽
26 25화 +20 24.08.08 9,776 363 18쪽
25 24화 +21 24.08.07 9,570 406 20쪽
24 23화 +19 24.08.05 9,531 369 21쪽
23 22화 +23 24.08.02 9,660 430 21쪽
22 21화 +14 24.08.01 9,905 367 18쪽
21 20화 +15 24.07.31 10,108 379 21쪽
20 19화 +21 24.07.30 10,054 440 18쪽
19 18화 +16 24.07.29 10,414 409 21쪽
18 17화 +32 24.07.26 10,331 548 20쪽
17 16화 +16 24.07.24 10,540 423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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