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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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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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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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6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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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DUMMY

30화




순백색 눈이 굵은 재처럼 날리는 한낮이었다. 금세 쌓인 눈은 걸음마다 정강이를 움켜쥐기 일쑤였고 밟히는 대로 뭉개지다가 얼어붙었다. 말간 햇살, 빨간 불길이 아니면, 녹일 수 없을 터였다.


흰 눈이 인간과 우마가 다니는 길마저 뒤덮었으나, 다들 나무와 나무 사이에 길이 있겠거니 하며 어느 봄날 밭을 가는 소처럼 눈밭을 나아갔다. 우직하게.


그런 날에도 온갖 사연들이 있고 사연들은 인간과 살아 움직이는 것들을 밀고 당기고는 했다. 저마다 눈물 한 말과 한숨 한 짐 짊어지고, 질리도록 또 시리도록 하얀 산야를 이리저리 헤매는 중이었다.


온통 희디흰 벌판 위로 하나둘 찍히는 색색 외로운 점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고적함도 조금 가시는 느낌이 들었다. 혼자가 아닌 듯한 착각이, 다시 걷기 시작하면 곧바로 뿔뿔이 흩어지고 말 안도감을 잠시나마 부여했다.


그처럼 너무도 희고 깨끗한 세상은 길 위의 생명들을 삼켰고 새하얀 창자에 둘러싸인 생명들은 외로움과 서러움, 부끄러움 따위를 느끼곤 했다.




창주를 떠난 견신은 며칠 새 질기고 또 두툼한 살로 갈비뼈를 덮은 귀로와 함께 길을 나섰다. 북경을 떠날 때 짊어진 목곽도 오른손의 기여도 그대로. 변한 건 귀로뿐이었다.


머리에 굴레를 쓰고 등에는 장인이 무두질한 안장을 얹은 뒤 제가 먹을 건초와 곡식들을 허리 좌우에 짊어진 귀로는 털의 윤기도 상당수 회복한 모습. 걸을 때마다 새카만 털이 반질반질하게 물결치는 모습이 햇살 머금은 호수의 물비늘들을 보는 것 같았다.


지난 며칠 반점 점소이를 곤란케 만들었던 귀로는 견신이 고삐를 쥐지 않았음에도 곧잘 보조를 맞췄다. 소년 주인의 걸음에 맞춰 터벅터벅 눈밭을 가로질렀다. 그러다가도 가끔 광활한 설원을 보면 혈관을 흐르는 본능대로 달리고 싶은 것인지 견신의 어깻죽지를 입술로 잘근잘근 깨물기도 했다.


나이는 두 살, 이름은 귀로(歸路).

돌아가는 길이었다.




순백색 구릉에 서서 남쪽 지평선을 내려다보는 견신. 그가 하얀 입김을 내쉬며 귀로를 쓰다듬었다. 녀석이 또 달리자며 채근한 것.


“그러게, 잘 먹지 그랬느냐. 달포는 더 정양해야 할 것이다.”


주인이자 벗이 고개를 젓는 동작과 어르는 말을 알아들었는지 귀로가 아쉽다는 듯 작게 투레질했다.


푸르릉—


견신은 방향을 남서쪽으로, 목적지는 덕주(德州)로 잡았다. 대운하를 따라서.


한겨울에 길을 잃는 것은 생명을 내놓아야 할 수도 있을 만큼 위험한 일이었다. 최소한 동상, 여차하면 얼어 죽을 수도 있으므로.


삭풍을 막아줄 도구 혹은 숙영지, 불 그리고 식수. 그 세 가지 특히 숙영지와 불이 없는 겨울 나그네가 맞이하게 될 운명은 죽음.


오늘처럼 내리는 눈으로 인해 시야 확보도 길과 지형의 구분도 방향 유지도 어려운 날에는 무엇보다도 방향을 식별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했다.


이런 상황에서 방향 유지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주변 저명한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큼직한 산과 강, 도시 같은. 그런 지형지물이 활용하기 좋고, 근방에서는 대운하가 제격이었다.


대운하는 덕주를 거쳐 요성, 제녕으로 이어지니 옆에 끼고 걷기만 하면 크고 작은 고을을 경유하며 남진할 수 있다. 보급과 휴식을 더 자주 가져가야 하는 겨울 행군에서 이정표로 삼기 딱 좋은 지형지물인 셈.




사실 일정한 폭과 간격으로 심어놓은 나무들과 마찬가지 일정 거리마다 쌓아놓은 작은 흙더미만 알아볼 수 있다면 그 나무들의 중심이, 흙더미의 측면이 길임을 알아볼 수 있고 거리 또한 헤아릴 수 있었다.


거기에 주요 도로를 그린 노정서와 지도가 있다면, 노정서와 지도를 볼 줄 안다면 길을 잃을 염려는 적었다.


과거 진나라가 도로를 정비하고 수레의 바퀴 간격와 도로 폭을 통일했다. 그를 차동궤(車同軌)라고 불렀고, 진나라 이후 ‘오랫동안 천하를 다스리기 위해 군주가 가장 먼저 할 일은 길을 정비하는 것이다.’라는 말과 교훈은 이후 역대 왕조 공통의 통치 지침이었다.


나라가 기획하여 건설 혹은 정비한 도로는 관도(官道)로 불렸으며 양옆에 일정 폭과 간격으로 나무를 심었고, 5리마다 추가로 작은 흙더미를 쌓았다.


그중 주요 도로에는 60리, 80리 간격으로 역참을 설치, 지친 말을 교체하거나 밥을 먹고 잠을 잘 수 있게 했다. 물론 관리만 이용할 수 있었고, 백성들은 역참을 통해 거리를 계산할 수만 있었다.


그러나 역참이 모든 도로에 설치되진 않았고 간격도 60, 80리에 달했다. 게다가 세월이 흐르고 나무와 흙 모두 자연의 영향을 받는 만큼 제때 관리가 되지 않은 도로는 주변 나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거나, 흙더미도 무너져 있는 등 도로 본연의 모습을 잃기 일쑤였다.


지금처럼 큰 눈이 내리는 환경에서는 그런 도로들을 식별하는 일이 더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고.


그러니, 그런 도로 대신에 내리는 눈이 흐르는 물로 인해 녹고 종종 배가 오가는 운하를 낀 도로를 이용하면, 길치도 길을 잃으려야 잃을 수가 없었다. 덤으로 식수와 물고기도 얻고.


“이 짓도 백 년만인가.”


아무튼, 그만한 세월 뒤의 행군이었다. 그 옛날 호주 사람 이이를 따라서 시작한, 빈농의 아들이 생애 처음, 마을에서 보이는 지평선 그 너머에 닿은 날의 행군으로부터 백 년이 흘렀다.


순백의 설원을 보고 있으니 그날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마을을 떠날 때 부모가 들려 보낸 이불을 이리저리 찢어서 몸과 발을 감싸고 낡은 짚신 한 켤레에 체중을 얹은 채, 한 겨울 칼바람에 이리저리 떠밀리던 무지렁이들. 농사와 목축만 알던 범부들.


하얀 서리 맺힌 얼굴들, 딱딱 부딪히는 이빨 소리, 주체할 수 없이 떨리는 동체들.


그러다 어느 날부터 가렵기 시작하고 나중에 더 미칠 듯이 가려워지면 검게 썩은 손가락과 발가락을 생으로 도려내야 했던 가엾은 이들.


병신으로라도 살아남아야겠다고, 고향으로 기어이 돌아가고야 말겠다며, 살아서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 반려를 다시 만나고야 말겠다며 손목 발목을 자르다 죽어간 청춘들. 가엾은 그들의 서럽고 또 외로운 행군이 저 설원에서 계속되고 있었다.


그대들은 안식을 얻었는가. 평안에 이르렀는가. 이 나는 아직 얻지도 이르지도 못하였다. 이리 살아서 여전히, 아직도 걷고 있다.


어디로 가는지도,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면서, 가는 까닭도 모르는 주제에 이리 계속 헤매고 있다.


그대들은 부디 그 겨울에서 벗어나 영원한 안식을 얻었기를. 그 잔인한 겨울날을 다 잊고 무궁한 평안에 이르렀기를.




이윽고 상념에서 깨어난 견신이 다시 걷기 시작하자 귀로도 따라서 걸었고 이내 그들은 끝없는 설원 위, 한 쌍의 새카만 점이 되었다. 그 한 쌍의 점 뒤로 조금 멀리 세 개의 점도 있었다.




#




해 질 녘.

내리던 눈도 그쳤고 바람도 없는 날인지라 견신은 운하 인근 길가에 대강 자리 잡았다. 능숙한 솜씨로 구덩이를 판 뒤, 귀로가 지고 온 짐보따리에서 불쏘시개와 마른 장작을 꺼내서 불을 붙였다.


귀로는 어디 묶이지도 않은 채 견신이 내준 건초와 보리, 귀리 따위를 씹으며 주인을 지켜봤다.


모닥불을 피우고 일어서서 그런 귀로의 목덜미를 어루만진 견신은 눈을 치우고 쌓아둔 장작 위에 가죽 깔개를 깔고 앉았다. 그러고는 석양에 물든 운하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강물이 핏빛으로 변할 때쯤 얼른 생각의 고삐를 챘고 상념은 음울한 과거의 회상을 밀어내고 무(武)의 세계를 향해 달려갔다.


홀로 떠도는 방랑자는 축기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호법을 서줄 사람이 없으니까.


의식으로 내면을 관조하는 중 발생할 우발 상황에 대처할 수가 없다. 축기 중에 집중을 잃고 실수하면 기운이 경락과 혈도를 건드려서 내상을 입기 마련이고.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어차피 축기의 이치는 깨달았으니, 언제든 여건만 되면 할 수 있는 것. 이제 관심은 기운의 이동과 머무름에 있었다.


기운은 어떠한 이치를 깨달은 의식의 조종을 받아 이동하는가. 어떤 이치를 통해 경로를 유지하며 주변 오장육부로 흩어지지 않고 손과 발, 신체 각 부위로 이동하는가.


또 어떠한 이치로써 거기 머물 수 있고 공력으로써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


그동안 꾸준히 의식 속에서 황제내경에서 본 경락과 혈도를 그려내고 그 길을 통해 기운을 움직여봤으나 단전을 벗어난 기운은 금세 제멋대로 움직였고 흩어졌다.


단순히 길을 인식한 뒤 기운을 지각, 인도하는 것만으로는 불가능이었다. 틈나는 대로 이현이 준 삼경심의주해를 탐독하고 있지만, 실마리는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역시 하나의 세계와 완전한 체계를 만들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여러 가지 이치가 뒤섞이면서 의식이 뒤엉키려 할 때쯤, 다음을 기약하며 생각을 털어냈다.


“···쉽지 않다. 쉽지가.”


그러고는 다시금 강물을 바라봤다. 털어낸 생각의 편린들이 강물에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아니, 불꽃처럼 벌겋게 물든 강물이 말끔히 태워 버리는 느낌.


그때였다. 문득 전혀 별개의 낱말들, 의미들 그리고 현상들이 결합과 단절을 반복하기 시작한 것은.


그러한 현상의 원인은 석양에 빨갛게 물든 운하였다.


“강··· 흐름··· 불꽃··· 물··· 불···”


강은 흐른다. 강은 물인가 물길인가. 물은 무엇인가. 물길은 무엇인가. 길은 어떻게 형성된 것인가. 물이 먼저인가, 길이 먼저인가.


물은 길을 따라 흐르기도, 길을 바꾸기도 한다. 길은 물을 그저 흘려보내기도, 머금기도 한다. 거기 자연의 어떤 이치가 있나. 자연은 어떠한 이치로 물과 길을 부리는가.


그것들을 한데 모아 육신과 기운에 빗대어 본다. 물길은 경락과 혈도, 물은 기운.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몇 갈래든 길이 있으면 그 길로 흐른다. 그래서 본류가 지류로 나뉘기도 하는 것이고.


이는 단전을 벗어난 기운이 경혈과 오장육부로 흩어지는 현상과 닿아있는 이치일 터.


따라서 그 이치만으로는 모자람이다. 기가 흩어지는 까닭을 깨달은 것에 불과하므로.


중요한 것은 불이다. 물과 물길에 있는 저 불.


물과 불은 오행의 일부이면서 상극을 이룬다. 나무와 흙 그리고 쇠와는 상생과 상극을 이루고.


상생은 도움이요 생육이고 가까움. 화합이요 끌어당김이다.


상극은 방해요 소멸이며 멂. 불화요 밀어냄이다.


황제내경에 따르면 경락과 혈도, 오장육부도 저마다 오행의 특성을 띤다고 하였다.


그랬는가, 그런 것이었는가.

그로 인해 흩어질 수도, 흩어지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었는가.


하늘과 땅 사이의 기운을 음양으로 의식하고 음양을 오행으로 나누어 지각하여 상생과 상극의 도리를 따라서 흐르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심법의 요체였는가.




깨달은 찰나 의식이 아득하고도 아득한 순백색 광휘의 세계를 거쳐, 멀고도 먼 칠흑빛 명암의 세계를 지나 마침내 육신으로 돌아왔다.


그런 의식을 따라서 기운이 흐르기 시작한다. 처음은 음양으로, 다음은 오행으로 분리되어 흐른다.


상극의 이치를 따라서 밀어내고 상생의 이치를 따라서 끌어당긴다. 그리함으로써 의도한 경혈을 통과하게 하고, 또 오장육부로 길을 바꾸지 않게 하며, 마침내 장심의 노궁혈에 머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지금 견신의 손바닥 한가운데 노궁혈 자리의 살갗이 신비로운 빛으로 반짝이고, 그 현상을 보는 눈동자가 안에 별을 품은 듯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깨달음이었다.




#




한참이 흐른 뒤 땅거미가 지고 거기 검푸른 하늘에 별들의 강이 흐르기 시작할 때 견신은 기분 좋게 깨어났다.


견신은 여러모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깨달음도 깨달음이고, 깨달음을 갈무리할 동안 아무도 오지 않았고 그에 어떤 방해도 받지 않은 점에 만족했다.


면포 안에 목화솜을 누빈 이불을 걸친 귀로는 꾸벅꾸벅 조는 중. 그러다가 저를 보는 눈길을 느꼈는지 깨어나는 모습이었다.


아니, 느낀 모양이었다. 지금 땅에서 느껴지는 이 미세한 진동을. 공기를 타고 들려오는 희미한 목소리와 잡다한 소음들을.


“···누가 오는 모양이다. 귀로.”


수레 혹은 마차, 우마와 사람들이 오고 있었다. 이 길로.


푸르릉—


아니나 다를까, 이내 어림잡아 서른 명 남짓으로 보이는 무리가 다가왔다. 견신의 모닥불을 본 모양.




이윽고 선두 무사가 견신과 충분히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워워— 선객께서는 안심하십시오. 본인은 산서상인의 표사 지청명이라 합니다.”


이는 강호뿐만 아니라 널리 통용되는 예의였다. 어두운 밤에는 충분한 거리를 두고 통성명을 나눈 뒤, 합류하거나 통과하는 게 예법이었다.


“날이 어두워져 폐상인도 강과 가까운 이 인근에 유하고자 합니다.”


물은 사람과 짐승 모두에게 필요한 것. 견신이 식수 확보를 위해 도로가 운하 바로 가까이 붙은 곳에 자리 잡았듯, 지청명 일행도 그렇게 하려는 것.


견신의 답은 그 즉시와 정적 그 사이 어디쯤에서 들려왔다.


“···그리하십시오. 합석은 사양이고.”


지청천이 따로 묻지 않았음에도 견신이 합석을 사양한다고 한 까닭은 산서상인이기 때문이었다. 지금쯤이면 산서상인 전체가 양성의 일을 알고 있을 테니 그의 입장에는 합석을 원치 않는 게 당연했다.


그렇다고 해서 천하에 신용이 자자한 산서상인을 주변 일대에 머물지 못하게 하기에는 명분이 없고 또 강호의 도리도 아니었다. 지청명 일행을 피해서 자리를 뜨는 건 너무도 귀찮은 일이 될 테고.


“알겠습니다. 양보 고맙습니다. 행수! 예서 유하시지요.”

“그래요. 금일 예서 유하고 동이 틀 때 다시 길을 나설 테니 서둘러 채비들 하세요.”


대답과 동시에 명령하는 음성은 여인의 것이었다. 여인의 음색치고는 낮고 두터운 축에 드는, 그러나 어조와 높낮이가 강단 있게 들렸다.


[예! 행수!]




그렇게 잠시 후,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은 견신이 말린 고기를 씹고 있는데, 멀찌감치 행수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인사드려도 될는지요? 양보해 주신 데 사례의 의미로 드실 것을 좀 가져와 봤습니다.”


견신은 단번에 거절하려고 했다. 산서상인 행수이니만큼 양성의 일을 잘 알고 있을 터. 가까이 와서 이쪽을 보면 양성과 악연을 맺은 형주 사람 고사로 의심하거나 더 나아가서는 알아볼 수도 있으므로.


산서상인이 보복을 명령했을 수도 있고 명령을 받은 자들이 상행으로 위장해서 추적해 온 것일 수도 있고.


여러모로 가까이해서 좋을 게 없는 상황이었다. 선자불래 내자불선이기도 하고.


그런데, 거절할 수 없었다. 곧바로 이어지는 대목으로 인해.


“이 사람은 산서상인 행수, 홍가 소화라고 합니다.”

“!!!!!!”


홍소화(洪小花), 홍씨 집안의 작은 꽃.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입이 저작 활동을 멈췄다. 의식도 멈췄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밝을 소(昭)자나 꽃, 빛, 색채 등을 의미하는 화(華)자를 쓰지 않고 작을 소에 꽃 화를 썼다. 아주 쉽고 단순하게 지어진 이름을.


말도 안 되는 생각인 줄 알지만 생김새도 그때 그 소녀와 같을까. 행수가 소녀의 환생은 아닐까. 그런저런 생각들이 제 멋대로 의식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홀린 듯 무심코 대답하고 말았다.


“···그러십시오.”

“예, 허면 이 사람이 호신만 겨우 하는 범부인지라 호위를 뒤에 세우고 그리로 가겠습니다.”


점점 가까워지는 발소리.


저벅저벅—


그를 감지한 심장이 어찌나 요동치는지 그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이내 홍소화가 견신의 모닥불, 그 빛의 권역에 들어서고 일렁이는 노란 불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췄다. 그리고 백 년 전 한 마을에 살았던, 소나기 내리던 날 수숫단 안에서 새끼손가락을 걸고 혼인을 약속했던 소년과 소녀.


그 두 사람과 같은 이름을 가진 남녀의 시선이 거기 허공에서 조우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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