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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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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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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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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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DUMMY

37화




쇠가 살을 뚫고 또 가르며 뼈를 끊는 소리.


써—억—


곧바로 이어지는 단말마.


[꺼걱—]


그리고 하늘로 솟구치는 피. 허물어지는 육신과 생명을 상실하는 순간의 고통이 여실히 드러나는 얼굴. 이내 빛을 잃고 마는 눈동자.


견신의 후방, 한데 모인 비전투원들의 가장 앞에서 그러한 풍광을 마주하는 홍소화의 육신은 생명이 소멸하는 순간마다 발작하듯 떨리고 있었다.


움찔—


천하를 누벼야 하는 상인으로서 또 상행을 이끄는 행수로서 상황을 직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공포에는 한계가 없는 법. 반사적으로 감기는 눈, 소스라치는 육신의 반응을 통제할 수는 없었다.


이는 뇌와 몸이 서로 다른 걸 시키는 데서 비롯된 현상이었고, 그녀의 뒤에서 어깨를 붙이고 뭉친 남녀노소 모두 별반 다를 바 없는 기색이었다. 다들 몸서리치고 있었다.


이는 생사의 갈림길 그 풍경이었다. 전형적인.




사람들끼리 죽고 죽이는 모습을 더는 대면할 수 없는 홍소화가 그 풍광의 정중심에 눈의 초점을 맞췄다. 거기 홀로 고요하게 서 있는 소년, 견신에게.


정보로는 며칠 전에 만났고 실체로는 어제저녁에 처음 만난 소년은 그 풍광 속에서 홀로 이질적인 경물이었다. 마치 소년의 주변만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그 주변의 공기만 다른 느낌.


‘형주 사람 고사···’


뭐랄까, 상인이 상품으로서 가치 없는 물건을 보는 듯한, 침착과 차분함을 넘어 무심하게까지 느껴지는 태도를 보고 있으니 소름이 끼쳤다. 왠지 모르게 오싹한 소름이.


‘닮았어··· 그때와···’


저이와 비슷한 태도 분위기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 남경의 푸줏간과 북경 승천문 광장에서.


도살을 앞둔 소를 바라보는 백정과 처형을 앞둔 죄수를 바라보는 도수(刀手)에게서 경험한 태도, 분위기를 닮았다.


소의 크고 둥근 눈에 달린 눈물을 보고 아무렇지 않게, 미간의 정중앙에 도끼를 내려치는 백정.


위로는 눈물 콧물을 쏟아내고 아래로는 똥오줌을 놓으며 울부짖는 죄수의 목을 무심하게 내려다보는 도수.


그날 그 둘에게서 본 적이 있는 태도, 분위기와 닮았다. 인간이 초월할 수 없는 것을 초월한 듯한 태도, 분위기와.


지금처럼 도검이 난무하고 또 비명과 신음이 속출하며 피가 솟구치고, 시체가 나뒹구는 풍광에서 사람이 어떻게, 무슨 수를 써야 저처럼 담대하게 서 있을 수 있는 것일까. 그것도 열다섯 소년이.


‘어디서 나타난 인사일까.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 같아.’


원래라면 버리는 패였던 말과 나귀를 모아서 모처로 데려가고, 일행 중 유일한 소년인 아들도 피신시켰다. 처음부터 지금 자리를 알고 있었다는 듯 무리를 이끌었고, 생소한 방식으로 수레와 마차를 배치했다.


또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이 기름 항아리와 화시(火矢)를 준비했고, 그중 압권은 진 주변 반 장(丈) 너비에 물을 뿌린 것.


아무도 생각지 못한 묘수였다. 그냥 눈밭이었다면 적들이 수월하게 올라왔을 것. 게다가 아군은 무명천을 발에 감아서 미끄러지지 않게 했다. 지형의 유리함을 극대화한 셈.


그러니, 살아서 아침을 맞이한다면 모두 저 소년. 죽은 아이 아비와 성명이 같은 소년 무사 덕택일 터.


‘묘한 인연··· 정녕 묘한···’


이름도 그렇고, 정말이지 기이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그 시각 견신은 격전이 진행 중인 진 북쪽과 조경의 바로 뒤에서 갈등 중인 서각 일행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전투는 계획한 대로 시작됐으나, 이내 파탄의 조짐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었다. 북쪽은 산서상인 일부와 정검당 전원이 맡았는데, 벌써 여럿이 쓰러진 것.


빙판에서 미끄러진 적이 곧바로 암기 공격을 퍼부음으로써 아군을 수레와 마차 뒤쪽에 묶어놓은 뒤, 경사가 완만해지는 동쪽 꼭짓점을 향해서 기동 중이었다. 지청명이 맡은 구역으로.


개개인의 몸놀림도 그렇고 아주 영리한 대처였다. 그처럼 적이 뛰어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운명이니까.


개중에 한 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있다면, 개살구 세 녀석이 천진에서처럼 이번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점.


‘이번에도 호신, 수비만 할 생각인 모양. 한심한.’


정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들이었다. 주견신과는 다른 의미에서 가슴이, 심장이 굳어버린 녀석들. 무엇이 중요한지 또 우선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바보들. 문자 그대로 개살구들.


녀석들을 북경으로 물릴 수만 있다면 물리고 싶다. 홍일점이 창주에서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나 원하지도 않았고, 녀석의 도움 없이도 얼마든지 창주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즉, 지금과 같은 모습이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녀석들이다. 외려 분노만 자극하는 화근들일 뿐.


‘아직도 모르겠느냐. 정왕 주견신을 감시하든 시해하든. 무엇을 임무로 받았든 그 임무 이전에 황실과 나라, 백성을 위하여 종사해야 할 관리라는 것을.’


이 세 녀석을 물릴 방법은 없다. 녀석들이 아직 칼을 들이밀지 않았으므로 단죄할 수도 없고, 칼을 들이밀어서 처단했다고 해도 이복형과 귀비, 모자를 따르는 세력이 믿지 않을 터.


셋 다 한꺼번에, 목격자 없이 제거하는 방법도 있겠으나 아무래도 시도하지 않는 쪽이 신상에 이로울 것이다. 북경이 정왕 주견신을 흉수로 지목할 테니까.


정황만 놓고 보면 정왕 주견신은 그럴만한 동기가 있는 인물이고, 그게 아니라도 북경은 어떻게든 그쪽으로 몰아갈 테니까.


즉, 결론적으로 녀석들을 자력으로 어쩔 방법은 없다. 어떻게든 떨쳐 내거나 아니면 계속 달고 다니는 수밖에.


‘계속 쫓아오는 너희 녀석들을 고(孤)가 언제까지 모른 척해야겠느냐. 정녕 너희 녀석들이 그리한다고 발각되지 않을 성싶더냐. 영리한 인사들이 그런 사정을 다 알면서, 이리 눈 가리고 아웅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하고 딱할 따름.’


아무튼 서각이 언제 이빨을 드러낼지, 놈과 호위들의 실력도 모르니,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다. 그나마 작은 미남을 서각에게 붙여놓은 것이 대책이라면 대책.


그러나, 이리 보고만 있다가는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테니 어떻게든 움직여야 한다. 어떻게든.


관건은 여전히 이빨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서각이고.


백면서생이라면 저처럼 고심 중일, 갈등 중일 수가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지, 놈은 겁먹고 움츠러든 기색이 아니라 무언가 생각에 잠긴 기색이었다.


결국 방법은 하나뿐. 놈이 본색을 드러내지 않으니, 이쪽에서 본색을 끌어낼 수밖에.


“서각. 백면서생치고는 겁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나? 위장은 표정과 태도까지다.”


지난번 천진 사건 당시에는 종청산의 아내가 칼을 맞고 죽어가는 까닭에 달아나는 이들을 놔뒀지만, 이번에는 꼬리를 잡을 생각이었다.


연판장을 쫓아왔든 아니면, 다른 무엇을 노리고 왔든. 만약 연판장을 쫓아온 놈들이라면 잡아서 윗선을 타고 올라갈 작정이고.


윗선이라고 해봐야, 흑회 혹은 흑회에 부역하는 놈들이겠지만.


“···그게 무슨 말이오···?”


서각이 아차 싶은 얼굴이 돼서 대꾸했다.


“너 지금 과히 어설픔이다. 백면서생이 지금 네놈처럼 침착할 수가 있을까? 그런 손을 가진 자가 백면서생? 내 처음부터 농으로 들었다.”

“당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도통···?”

“제남서가? 그 또한 흥미로웠다. 제남 사람을 자처하는 놈이 불과 얼마 전에 왕림한 친왕이 덕왕인지, 수왕인지를 모른다?”

“······.”

“장담컨대 네놈은 서생이 아니다. 칼잡이들을 불러들인 간자일 테지. 네놈도 이제는 선택해야지 않겠느냐? 네놈의 벗들인지, 졸자들인지는 모르겠으나, 진을 쉽사리 무너트릴 수는 없을 것이다. 네놈이 얕잡아볼 진법이 아니므로.”


그때, 견신이 진작부터 정체를 의심했고 지금을 준비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서각, 축자뇌각은 내심 당황하면서도 상황 판단에 집중했다.


‘놈의 말대로 예사 진법이 아니다. 벽을 기이한 형태로 세우고 그를 이용해서 자유자재로 싸우고 있다. 죽은 자들의 자리도 곧바로 대체하고 있고. 진이 흡사 물레방아처럼 자연스레 돈다. 그래도 쌍둥이 형제가 실패하지는 않겠지만··· 지청명이 있으니···’


밤에 이래저래 조사한 바로는 지청명이 창주에서 죽은 섬전도 조규상의 상수라고 했다. 그렇다면 최소 개화무사 이상, 입정무사일 가능성이 크다는 뜻. 정말, 정녕 믿기 어렵지만 형주 사람 고사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고.


정검당은 부당주 손문과 젊은 놈 하나. 총 두 명이 개화무사. 밤에 무리 가운데 자리 잡았던 세 연놈도 아직 한참 젊으니, 잘해야 개화무사일 터다. 사형제라고는 하는데 한 놈은 창을 쓰고 한 놈은 철수. 마지막 사저라는 년은 검을 쓰니, 근본도 없는 잡탕 무맥이 분명하고.


아무튼, 관건은 형주 사람 고사와 지청명이다. 만약 둘 다 개화나 입정이라면 쌍둥이 형제로서도 자웅을 결해야 할 터. 이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그런 가능성을 확실하게 줄이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지금으로서는.


그건 바로 안에서 틈을 만드는 것. 이미 수하들에게 눈짓으로 주지 시켜뒀다. 만약 안에서 틈을 만들게 되면, 그 시작은 가까이 있는 놈이라고. 근본 없는 놈.




그처럼 본색을 드러내기로 작심, 곧바로 결행에 착수하는 축자뇌각.


“쳐라! 잡고 지청명을···!”


찰나, 그의 목소리가 끊긴 까닭은 수하들의 등을 뚫고 나오는 두 개의 철수 때문이었다.


뿌북—


다섯 손가락을 새 부리처럼 가지런히 모은 철수가 도(刀)를 찔러 가려던 두 수하의 등을 뚫고 나와 있었다.


“커허헉—”

“꺼걱—”


목을 모로 꺾은 채 바들바들 떠는 두 사람 사이 조경의 시뻘건 눈자위가 빛나고 있었고.


“되겠냐? 멍청한 놈, 전ㅎ···! 고 무사의 유인책에 걸려들었어.”


그처럼 눈 깜짝할 새 두 사람의 목숨이 끊어졌으나, 그를 본 축자뇌각의 판단은 신속했다. 조경의 정체보다는 조경의 목숨에 집중했다. 조경을 해치우고 지청명의 뒤를 치기로.


조경의 양손이 두 사람의 몸에 묶여있으니 기민하고 영리한 판단이었다.


“네놈 차례다, 놈!”


그는 곧바로 진각을 밟고 수하들의 사이로 쇄도를 시도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왼쪽 수하의 오른손에서 도(刀)를 낚아채는 동시에 조직에서 얻은 초식 중 쾌(快)의 이치를 따르는 초식을 전개하고자 했다.


달리 발도식(拔刀式)으로 불리는 초식의 정수는 전신의 근육을 수축시킨 상태에서 찰나의 순간, 수축시킨 근육을 폭발시키고 빠르게 도를 뽑으며 쇄도, 상대의 측면을 베고 지나가는 수법이었다.


그를 목격한 조경이 다급히 물러서고자 하는데 그 순간, 몸통을 꿰뚫린 수하 중 하나가 두 손으로 조경의 손을 움켜쥐었다.


꽈악—


저를 죽인 조경이 물러서지 못하도록.


“꺼거걱— 죽··· 어···”


회광반조를 발하면서.


“!!!!!!”


그로 인해 기함한 조경이 후진을 포기, 곧바로 측방 회전을 시도하는 그때였다.


쇄도하는 축자뇌각의 가랑이 아래, 다른 이의 발이 미끄러지듯 들어오고, 뒤따라 들어온 거무튀튀한 형체가 스치듯 땅바닥을 긁은 뒤 곧바로 상승 운동을 시작한 것은.


쐐—애—액—


그것은 조경이 말로만 들었던, 문자로만 들었던 단 칼의 초식이었다. 단 한 번의 궤적으로 사람의 몸을 절반으로 가르는.


축자뇌각이 전개하려고 했던 초식 그 완성형일지도 모르는 법식이었다.


사람의 몸은 짚단도 대나무도 아니다. 부드럽기만 한 살도 알고 보면 질기고 뼈는 훨씬 더 단단하다. 검이 살을 파고드는 순간, 뇌는 근육을 강하게 수축시켜서 검을 저지한다. 뼈는 고도로 정련된 검의 이를 나가게 할 만큼 단단하고.


그런 사람을 칼로 찌르고 또 베는 일이 언뜻 보면 쉬워 보일 수도 있으나 그렇지 않다. 이는 상당한 근력과 기술이 필요한 일이었다.


하물며, 견신처럼 단칼에 사람의 몸을 수직으로 쪼개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공력을 병기에 투사할 수 있는 입정무사도 뛰어난 외공 즉, 탁월한 정확성과 힘. 거기 더해 병기의 날카로움까지 빌려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었다.




그처럼 조경의 눈과 일 척(尺) 간격을 남기고 수직으로 지나간 기여와 반듯하게 쪼개지는 축자뇌각을 목격한 조경.


“!!!!!!”


또 싸우는 와중에도 진 한가운데서 벌어진 일의 기척을 느끼고 돌아보는 공손신정과 유희 그리고 지청명과 손문.


[!!!!!!]


그중 동쪽 꼭짓점을 맡고 있던 지청명, 그 옆의 손문의 눈이 견신의 눈과 마주쳤을 때.


견신은 그 둘이 지키고 있던 수레의 위, 안개를 뚫고 나타나는 과도경방을 발견했다. 지청명을 향해 쇄도하는 칼과 그 주인을.


“지 표사!”

“!!!!!!”


그런 견신의 눈에 담긴 경고를 읽고, 순간 아차 싶어진 지청명이 재빨리 바닥을 구르려 했으나,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한 마리 표범처럼 영활한 몸놀림으로 신속하게 수레를 오르고 내려온 과도경방의 도가 지청명의 견갑골을 뚫은 뒤, 측방으로 그어졌다.


푸—욱—


그에 지청명의 목이 쪼개지는 쇄골과 함께 몸에서 분리되는 사이, 과도경방의 측면에서 들이닥친 과도경전이 놀란 나머지 몸이 굳어버린 손문의 등을 사선으로 베었고.


써—억—


그처럼 순식간에 축자뇌각, 지청명, 손문이 연달아 죽었다. 그중 지청명과 손문의 최후는 곧 진의 돌파구였고.


쌍둥이 형제가 열어젖힌 돌파구를 그들의 수하들이 일제히 확장하기 시작했다. 형제 포함 열 명도 되지 않는 숫자였으나, 입정과 숙련된 개화들은 저들에게 못미치는 정검당, 산서상인의 무사들을 빠르게 줄여나갔다.


순식간에 예닐곱 개의 비명이 들려왔다.


[꺼거걱—]

[커헉—]


삽시에 아비규환의 장이 열리고 전세가 역전되는 듯하였으나, 그를 저지하는 사람이 있었다. 견신이었다.


무사들의 비명 뒤로 들려온 소리는 견신이 조경의 측면을 지나치며 횡으로 휘두른 기여가 공간을 수평으로 찢어발기는 소리였다.


후—우—웅—


허공을 검날이 아닌 날의 면으로 베었기에 거센 풍절음이 일어났고 심상찮은 기세를 느낀 형제와 수하들이 공세를 멈추고 물러섰다. 일제히, 본능적으로.


쌍방이 대치한 가운데, 공격자는 형제 포함 총 아홉. 쐐기의 첨단을 역 쐐기 형태로 장악한 모습. 방어자는 견신 포함 전투원 총 열여덟이고 쐐기의 첨단을 잃은 모습이었다.


단 한 번의 회전과 수평 베기로 과도 형제와 수하들을 멈춰 세운 견신. 그가 천천히 허리를 세웠다. 그러고는 쌍둥이 형제를 주목했다.


“네놈들이 심은 끄나풀은 죽었다. 살려두고 싶었으나 어쩔 수 없었음이다.”


그 대목에서 조경의 멈칫하는 반응은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영리하기에 이해했고 그로 인해 깨달은 데서 비롯된 필연이었다.


“······.”


축자뇌각이 조경에게 상해를 입힐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에, 죽일 수밖에 없었다는 뜻임을 깨달은 데서.


“이제 네놈들이 대답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말해라. 너 무엇을 위해서 왔는지.”


물음에 답한 이는 과도경방이었다.


“···너군. 두 번째 운반자. 신천을 죽인 자.”


그는 견신을 보는 순간 알아봤다. 천진에서 소이신천을 죽였고, 종청산에게 물건을 건네받은 인물임을.


“신천은 모르겠고. 운반자는 나를 찾아왔다는 이야긴가.”

“그래, 네놈이 종청산에게 넘겨받은 물건을 찾아왔지. 이리 내놓아라. 우리 물건이다.”


그런 과도경방이 종청산, 세 글자를 말하는 순간 상황을 주시 중이던 세 호위의 눈이 번쩍 뜨였다.


[!!!!!!]


특히, 종청산을 관리로 확신 중인 유희의 반응이 가장 격렬했다.


흠칫—


종청산의 이름이 나와서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견신은 짧은 순간, 그런 눈치를 의식하며 곁눈질했고.


“···흑회냐, 아니면, 이 땅의 신민이면서 외적에게 부역하는 반역자냐.”

“글쎄. 알려줄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죽을 놈에게?”

“···그래, 그 말이 옳다.”


한숨처럼 대답하며 잠시, 과도경방을 노려보던 중, 그의 뒤쪽 땅바닥에 널브러진 지청명의 시신을 발견한 견신이 주변을 쓸어보며 주문했다. 나지막이.


“산서상인과 정검당은 물러나십시오. 지금부터는 이 사람이 맡겠습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생존자들로서는 따르지 않을 수가 없는 주문이었다. 아니, 그것은 지상 명령이었다.


소년 무사가 전투를 준비할 때, 그때 이미 격을 달리하는 면모를 보여줬기에. 마치 오래전 주원장과 함께 천하를 통일했던 장수들과 책사들의 화신인 듯 놀라운 전술 또 책략을 보여줬기에.


의식이 명령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주춤주춤—


이내 살아남은 전투원 모두 물러서자, 견신이 오른손의 기여를 왼손에 옮겨 쥐며 두 형제 사이를 겨눴다.


“천하에 제국의 군도, 조선의 환도와 흡사한 도를 쓰는 양수 도법은 흔치 않다. 꼽자면 제국군의 구룡대라도법이 있으나, 구룡대라도법은 본디 제왕의 무예. 무겁고 당당하다. 만 가지 공세를 마주함에 도타운 수비를 우선시하며 그리함으로써 이내 굴복시킨다.”


견신이 구룡대라도법의 의(意)를 해설하자, 듣고 있던 공손신정이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려다, 그를 깨닫고 주변 눈치를 살폈다.


“그와 달리 네놈들의 수법에는 살기가 충만하고 궤적이 간결하며 빠름의 이치가 유독 두드러지니 이는 필시 그를 의미함일 터.”

“······?”

“네놈들이 제국의 강역에 기생하는 오랑캐라는 것을.”

“···이리 만나서 보니, 멋대로 생각하는 재주가 꽤 비상한 소년이군.”

“네놈들의 칼을 본 이 나는 구룡대라일 수 있다며 생각했건만, 다행이다.”


그러다 그 대목에서 경악하면서도 이내 혼란에 접어들었다. 구룡대라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니. 제국군과 금의위를 의심했다? 왜?


대체 지금 이게 무슨 소리라는 말인가.


“그리하여 홀가분한 마음으로 물을 생각이다. 윗선이 누군지 또 어디 가면 만날 수 있는지. 자, 그러므로 한 명이다.”

“······?”


그처럼 말끝에 갑자기 한 명을 말함으로써 과도 형제와 수하들까지 의아하게 만든 견신이 겨눈 검을 비스듬히 내려트리면서 선언했다.


“한 명만 살려둘 것이다. 오라.”


작가의말

퇴고 중에 바로 잡을 게 생겨서 조금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즐거운 금요일밤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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