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무사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서마
작품등록일 :
2024.07.03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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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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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2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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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DUMMY

22화




이물 방향 맨 앞의 선실.

유희, 조경, 공손신정은 조금 전 첫 번째 비명이 울렸을 때 눈치챘다.


[······.]


뭔가 사달이 벌어졌음을.


현 위치는 대략 북경과 그리 멀지 않은 천진 바로 남쪽. ‘토목의 변’ 그러니까 황제가 몽골의 포로로 잡힌 치욕을 기점으로 제국군이 다소 허약해지기는 했으나 그럼에도 치안이 좋은 지역이다. 북경 턱밑이므로.


그런 지역에서 조운선을 습격한다는 건 위험천만한 일. 따라서 지금 습격은 흔한 일이 아니다. 습격한 이들도 흔하지 않은 자들일 거고, 한밤의 불청객이 노리는 목표 역시 흔하지 않은 것일 터.


평소 그랬듯 선실 문 바로 옆 구석을 점거한 조경이 눈을 빨갛게 빛냈다.


“곡물 같은 게 아냐. 뭔가 있어. 여긴 천진이라고. 설마···? 아니겠지.”


답은 구석에 세워둔, 조금 기다란 보따리를 푸는 유희가 먼저 했다.


“침착해. 그분은 아닐 가능성이 커.”


유희가 돌돌 말린 천을 풀어내자 고색창연한 빛의 검집과 거기 꽂힌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길이는 3척쯤. 검집 가운데 앞뒤로 음양이 양각되어 태극을 이룬 모습이었다.


그를 보는 조경과 공손신정의 눈빛이 번뜩였다. 둘 다 저들이 보고 있는 것이 예상 밖의 목격이라는 듯 적잖게 놀란 기색이었다.


“···무당.”

“무당이었군. 속가인가?”


목격한 것이, 유희의 검이 천하 남쪽이 공경하는 남존무당(南尊武當), 무당파의 것이기 때문. 고유의.


그 사이 저를 쥐는 주인과 교감하는 듯 검의 맑은 울음소리가 울리고, 그 뒤로 유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스릉—


“속가겠어? 아무튼, 위장을 꽤 잘하셨으니까. 고(鼓)를 빼닮은 검도 그렇고.”


그녀의 말마따나 견신이 기여를 든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검자 고견신의 애병, 신검 고는 천하 모든 검사의 이상향이자 꿈. 검사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의 외형을 베낀 검을 대장간에 주문해서 쥐어보곤 했다.


뭇 선비들이 공자를 추앙하듯 검자를 추앙했다. 깨달음과 제2의 검자를 꿈꾸며 풍진강호를 주유했다. 물론 날을 세우지 않은 고와 달리 날을 날카롭게 벼려서.


날을 세우지 않은 검은 몽둥이나 마찬가지라서 검으로서 효용을 다할 수 없으므로. 그러니 고가 신병인 거고 그 고를 다룬 고견신이 검자로 불리는 것이다. 고와 검자는 상식을 초월하는 신병과 불세출의 검사였다.


개중에는 검자를 맹종한 나머지 그런 모방을 검자에 대한 모욕으로 지목해서 지적하거나 심하게는 무력으로 징벌하고자 하는 무리도 있었다.




이어서 공손신정도 3척 길이 목곽에서 철봉 3개를 꺼냈다. 그중 한 개 그 끄트머리에는 1척(尺) 남짓 길이에 단조 과정에서 한가운데 유성(流星) 두 글자를 뚫어놓은 창날이 달려 있었다. 일종의 혈조(血漕) 역할을 해서 출혈을 유도할 게 분명해 보이는 장치.


그가 조경과 유희를 번갈아 보며 철봉 세 개를 조립하자 이내 한 자루 장창이 됐다.


“누설됐을 가능성도 있지.”


그런 모습을 지켜보고 공손신정의 말을 듣는 조경과 유희의 눈꺼풀이 서로 한껏 멀어졌다. 동시에.


도(刀)를 예상했는데 창이 나왔기 때문.


[!!!!!!]


금의위는 대다수가 도를 사용한다. 창병은 극소수였고 그들은 금의위 중의 금의위로 불렸다. 황제가 황궁밖에 나설 때 황제의 바로 곁에 금강역사처럼 포진하는 열두 명의 금군이 바로 그 창병들. 금의위가 자랑하는 정예들이었다.


공손신정이 지금 보듯 창을 꺼냈으니 금의위 예하 양대 조직인 두 진무사 중에서도 핵심인 북진무사 소속이고 그 북진무사 중에서도 열두 명뿐인 위룡(衛龍) 천호 중 한 명이라는 이야기다. 위룡천호, 용을 지키는 천호.


이내 조경이 날카로운 비늘이 손톱처럼 달린 철제 수갑을 끼며 으르렁거렸다. 투기 혹은 살기다. 적개심과 분노가 뒤섞인.


“역시, 너였군. 너였어.”


위룡천호 열두 명은 황제의 주변에 머물러야 한다. 그것이 법도다. 그런데, 그 열두 명 중 한 명이 여기 있다는 것은 권력자가 공손신정을 황궁에서 빼냈다는 의미이고 그럴 수 있는 자, 그런 일을 한 자가 누군지는 불 보듯 훤한 일이었다.


즉, 공손신정이 쭉정이라고. 귀비 모자 혹은 그들을 추종하는 세력이 정왕을 시해하기 위해 심은 사람이라고 보는 것.


“참으로 지독한 의심병이야. 무슨 생각 중인지는 내 알겠는데 천자께서 윤허하셨을 거라는 생각은 아니 드나?”

“헛소···! 흠.”


순간 그랬다면 동창이 몰랐을 리가 없다고 또 이쪽에서 몰랐을 리가 없다며 반박하려다 멈췄다. 두 사람에게 말할 내용은 아니니까. 공손신정의 말마따나 실제로 그랬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그러는 동안에도 비명은 점점 더 많아졌고 보다 커졌으며 가까워졌다.


“커헉!”

“으극—!”

“도, 도적이···! 컥—!”

“습격이다—아—!”

“무, 무사님들 어···! 흐극—!”


그를 들은 유희가 두 사람을 중재했다.


“시답잖은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어쩔래? 바깥에? 목표가 그분이 아니면? 어쩔래 조경?”

“뭘 어째, 그분의 선실로 가는 것을 막는다.”

“덩치는?”

“막을 준비는 하되 우선은 지켜보지. 그대는 몰라도 나나 피곤한 내신이 손을 쓰면 그분께 곧바로 발각이니까.”

“흠, 둘 다 일리가 있네. 그럼 나는···”


유희가 잠시 고민하자, 조경이 무슨 말도 안 되는 고민을 하고 있냐며 따지듯 선실 문고리를 잡아갔다.


“뭘 고민하고 있어? 간다. 잊었어? 우리는 그분의 호위라고.”


그랬으나, 잡을 수 없었다. 공손신정이 지난밤 정한 규칙을 들어 제지했기 때문.


“조경, 멈춰라. 규칙을 잊었나?”


지금 적용되는 규칙은 3인의 의견이 충돌할 때 2인의 합의에 따른다는 것. 그에 합의를 기다리는 조경이 재촉하자 유희가 진지한 얼굴로 대꾸했다.


“말코!”

“우선 그분의 선실 뒤 양쪽 복도에서 대기. 관망하다가 필요하면 손을 쓴다. 본녀가 신호하기 전까지는 자기 호신만 하는 걸로.”

“말코 너···!”


그녀의 결정을 들은 조경이 순간 분기탱천하는 그때였다. 별안간 선실 문이 왈칵 열리며 칼 한 자루가 밀고 들어온 것은.


쾅—


[!!!!!!]


셋 중 문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사람은 조경. 그의 대처는 빨랐다.


진입 각도상 유희와 공손신정을 먼저 발견한 흑의 자객이 그를 발견하기 전에 재빨리 선실 바닥을 쭉 미끄러지면서 양손을 뻗었고 먼저 도를 움켜쥔 손목을 틀어쥔 뒤 나머지 한 손을 자객의 옆구리에 박아 넣었다.


“꺼거걱—”


백귀조법(百鬼爪法), 귀신의 조법이다.


콰직—


철제 수갑이 피륙을 뚫고 갈비뼈를 으스러뜨리는 소리와 함께 심장을 내준 자객이 그대로 허물어졌다. 몸에서 빠져나오는 철수에 뻘건 선혈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조경이 대수롭지 않은 듯 손을 한 번 휘둘러 핏물을 털어내자, 그를 보는 유희가 내심 역시는 역시라고 조경의 실력에 감탄하며 동료들을 재촉했다.


“서둘러! 가는 길이 막힌다! 규칙 잊지 말고!”

“내신, 서둘러라. 그래야, 네가 원하는 것을 지킬 수 있다. 규칙도, 우리도.”

“젠장할!”


그렇게 이를 가는 조경을 선두로 세 호위는 선실을 빠져나갔다. 조금 전의 자객이 첫 번째였는지 복도는 넋이 나가버린 승객들만 보였고 그마저도 다시 선실로 들어가서 선실 문을 걸어 잠그는 모습이었다.


세 사람은 재빨리 복도 안쪽 끝 견신의 선실 뒤. 선주실과 선원실이 가로로 놓인 복도 모퉁이에 은신했고 그 과정에서 종청산 일가를 지나쳤다.




같은 시각, 종청산은 조금 전 지나친 무사들을 보고 순간 도움을 요청할지 고민했으나 이내 다시 생각을 굳혔다. 딸아이를 먼저 숨기기로. 세상 가장 소중한 보물과 그 물건을 숨겨놓고 다음 일을 생각하기로.


“부인, 영아를 이리 내시오.”

“가가···!”


얼른 딸아이를 들쳐 안고 흑의소년의 선실을 향해 마저 달려갔다. 품에 안긴 딸아이는 금세 울음을 터트렸다.


“아, 아빠···! 영아 무서워!”


그 울음이 가슴을 짓이겼다. 살아야 할 텐데. 종청산은 죽을지언정 이 내 소중한 보물만은 살아야 할 텐데.


그렇게 몇 걸음 달려서 선실 앞에 서는데, 때마침 선실 문이 열렸다. 순간 그 문 너머 풍경이 주는 충격에 하마터면 혼이 빠져나갈 뻔한 느낌이었다.


“!!!!!!”


열린 문 안쪽에 흑의 소년이, 검은 옷보다 또 이 밤의 어둠보다 새카만 동공을 빛내는 소년이 거무튀튀한 검을 내려트리고 서 있었다. 상상 속 저승사자처럼.


그랬으나, 늦기 전에 아이와 그 물건을 숨겨야 한다는 일념이 의식을 바로 세웠다.


“무사님! 상황이 급하여 우선···!”


그렇게 견신과 마주친 종청산이 일단 선실로 밀고 들어가려는 찰나였는데 사달이 나고 말았다. 뒤에 서 있던 아내의 짤막한 신음이 들려온 것.


“흑!”


깜짝 놀라서 반사적으로 돌아보니 거기 배 한복판을 뚫고 삐져나온 칼과 그 칼을 내려다보며 마구 흔들리는 아내의 눈동자가 보였다.


“부이—인—!”

“어, 엄마—아—!”




그 광경을 견신도 보고 있었다. 불청객이 누구든 무엇을 노리고 왔던. 또한 북경에서 보낸 세 호위가 지켜보든 말든 백성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선실을 나서려던 그.


그는 재빨리 판단을 마치고 행동에 들어갔다. 곧바로 보법을 밟고 거리를 좁히면서 종청산과 그의 아내를 안으로 끌어당겼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선실 문을 닫았다.


쾅—


조금 전 사내의 말.


-무사님! 상황이 급하여 우선···!


상황이 급하다는 대목을 들었을 때 본능이 속삭였다. 습격자들과 일가족 사이에 연관이 있을 거라고.


“부인은 이쪽으로. 아이는 뒤주에.”


선실 바닥에 검을 꽂아 세운 뒤 종청산의 부인을 구석에 앉히는 견신. 여인은 숨을 헐떡이고 배에서 피를 뿜어내는 중이었다.


“칼을 뽑으면 아니 됩니다. 절대로.”


부인의 상세를 살펴보고 언질을 준 견신이 한 손으로 뒤주를 끌어다가 어미 옆에 놓았다.


그를 지켜보는 종청산은 경황 중에 인지하지 못했다. 뒤주가 조금 작다고는 해도 소년의 힘으로는 끌 수 없는 무게를 가졌다는 사실과 또 이는 웬만한 장정이라도 마찬가지고 최초 견신의 방에 뒤주가 놓이던 그 당시 장정 넷이 들어서 옮겼다는 사실도.


“영아, 여기에 잠깐만 있어? 알았지? 가만히 있어야 한다. 알았지? 무사님이 구해주실 거야.”


그때 뒤주를 옮기는 모습을 보았음에도 그런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흑의 소년이 지나치게 침착하다는 사실도.


“아빠— 엄마, 엄마가—”

“쉿! 영아! 쉿!”


종청산이 말렸지만 배에서 피를 흘리며 헐떡거리는 엄마를 목격한 아이는 울음을 그칠 방법을 알지 못했다. 이는 세상에 어떤 아이라도 불가능한 것이다.


그때 견신이 종청산을 돌아보며 눈짓했다. 뒤로 더 물러서라고, 벽으로 붙으라며.


“······.”


그러면서 선실 가운데 꽂아뒀던 기여를 다시 뽑아 들었다. 소녀도 그를 보고는 울음을 멈췄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눈치로 또 직감으로 느낀 것이다.


저 문밖에 뭔가 있다는 것을. 몇 살 위 오라버니 무사가 그 무언가를 경계하고 있다는 사실과 문밖에 도사린 무언가가 곧 들이닥칠 거라는 사실도.


그런 소녀도, 종청산도 찰나로 느낀 그 시간과 침묵이 흐르고···


[······.]


아니나 다를까.


쾅—


발길질에 맞은 문짝이 떨어져 나가면서 칼과 흑의 자객이 선실 가운데 견신을 향해 짓쳐 들었다. 직선으로 곧장.


쑤—우—욱—


그때 종청산은 습격자가 우는 아이를 진정시키기도 전에 너무 빨리 왔다고, 이 선실로 가족이 숨는 것을 봤으며, 아이의 울음을 들었을 거라고, 아울러 어차피 모든 선실을 다 뒤질 심산일 거라며 낙심했다.


더불어 죄 없는 흑의 소년을, 애먼 사람을 죽음으로 이끌었다고 후회했다. 적들이 흑의 소년을 종청산의 호위로 간주할 수도 있잖은가.


죄책감이 엄습했다. 청산아, 이 못난 종청산아. 관리로서 백성을 구제하지는 못할망정 어린 백성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끌어들였느냐. 한심한 사람아. 그러고도 대명의 관리란 말이냐.


그러다 어느 한순간 부지불식간에 두 눈을 감은 것인지, 완전한 암흑 속에서 들려온 소리는 서로 다른 물성을 가진 뭔가가 파괴되는 소리였다.


까—앙—


“······?”


그에 무심코 눈을 떠보니 흑의 소년이 왼손으로 쥔 검을 오른쪽으로 휘두른 듯한 광경이 보였고 소년의 좌우로 두 동강 난 칼과 허리부터 분리되는 육신이 눈에 들어왔다.


콰직—


부러진 칼은 선실 벽에 박혔고 분리된 육신은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졌다. 본능적으로 딸아이의 눈을 가렸다. 어른도 보는 순간 혼이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광경을 열두 살 딸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


또한 이는 기사였다. 기적이었다. 믿을 수 없는 이변이었다. 칼은 채소와 고기 썰 때나 쓰는 식도 밖에 모르는 사람이라 자세한 건 모르지만 소리가 한 번이었다. 한 번.


한 번이었는데 칼과 사람이 한꺼번에 갈라진 것. 어떻게 한 것인가? 어떻게?




그처럼 그의 세상에서는 기적인 일을 목격한 종청산이 마치 태산을 삼킬 듯 입을 벌린 채 어안이 벙벙해져 있을 때, 견신은 차례차례 밀고 들어오는 자객들을 베어 넘겼다.


뿌리 깊은 나무처럼 그대로 서서 다시 쇄도하는 칼을 베고 재차 칼의 주인을 베었다. 초식이라고 부를 것도 없는 단순한 칼질이었다.


까—앙— 콰직—


한 번 휘두름에 칼이 부서지고 두 번째 휘두름에 사람의 육신이 둘로 나뉘기를 반복했다. 사람 한 명만 통과할 수 있는 문으로 밀려드는 칼과 자객들은 그대로 해체되기를 반복했고.


순식간에 여섯이 해체된 직후 견신의 주변은 방금 막 도축을 끝낸 도축장처럼 변해 있었다. 선실 바닥에 양분된 고깃덩이, 핏물들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고 당연히 자객들의 공격이 멈췄다. 그대로 계속 밀고 들어갔다가는 똑같은 결말을 맞이하게 될 거라며 판단한 것. 개죽음이라는 결말을.




가장 끝 선실에서 동료들이 계속해서 죽어 나가는 낌새를 눈치챈 자객들이 다른 선실을 그대로 두고 견신의 선실로 몰려들었다.


눈 부위만 터놓고 드러난 살갗을 새카맣게 숯으로 칠한 자객들이 선뜻 진입하지 못하고 견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


몸 전면을 온통 피로 칠한 견신 역시 그들을 마주 보고 있는데, 문득 문 바로 앞에 서 있던 자객이 보고하듯 말했다. 두 눈은 그대로 견신을 주시하며.


“이쪽입니다. 젊은 부부, 여식 한 명. 정보와 일치합니다.”


그러자 복도 끝에서 점점 가까워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막 갑판에서 올라 온 모양.


“틀림없나?”

“구 할 이상, 맞는 것으로. 선주실과 선원실 제외, 다른 선실은 확인했습니다.”

“죽인 건?”

“아내 쪽이 칼에 맞았으나 아직 살아 있습니다. 노인 제외, 나머지는 확인이 끝날 때까지 살려두었습니다.”

“한데, 왜 그러고 있나?”

“그것이···”


수하 자객이 난처한 듯 말을 잇지 못하자 상급자가 의아해하며 다가왔다. 선실의 문은 다 열려 있었고, 범부들이 안에서 떨고 있었다. 병기를 갖고 있던 무사들은 다 죽었고.


텅 빈 방, 그러니까 조경 등 세 호위가 쓰던 방은 그들이 비운 탓에 텅 빈 상태였지만 자객들의 관심사는 아니었다. 그저 승객들이 옆방으로 옮겨갔겠거니 생각한 것.


이윽고 견신의 선실 앞에 도착, 선실 안쪽을 확인한 상급자, 소이(少貳) 가문의 막내아들, 소이신천은 선실 안을 보고 찰나 움찔거렸다.


흠칫—


“!!!!!!”


선실 구석 뒤주에 빼꼼 고개를 내민 소녀. 그 옆에 앉아 숨을 헐떡이는 여인. 그런 여인과 소녀를 가리고 선 사내. 그리고···


나뒹구는 고깃덩이들과 부러진 칼들, 홍수를 이룬 핏물들. 마지막으로 그 중심에 차분하게, 기이하리만큼 침착하게 서 있는 흑의 소년.


놈이 가문 정예 여섯을 해치운 아니, 지금 보다시피 도축한 것이다. 소나 돼지 잡듯이. 아직 골격도 여물지 않은 어린놈이.


이렇게 만나지 않았다면 기이하게 여길 것도 없는 인물이었겠으나 이렇게 만났으니 모든 것이 기이하게 느껴진다.


“검··· 고를 흉내 냈군.”


먼저 검이다. 코등이도 없는. 검집도 보이지 않는다. 이는 필시 대륙인들이 신검으로 부르는 고를 모방한 물건일 터.


검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검을 쥔 손이다. 검을 왼손으로 쥐었다. 좌수검사라는 이야기.


“좌수검···”


좌수검사는 흔하지 않다. 그래서 까다로운 상대고. 그러나 가신 여섯이 당한 까닭은 좌수검법의 변칙성이나 의외성이 아니다.


“힘···”


어떻게 가능한 건지는 봐야 알겠으나 추측건대 어마어마한 정확성과 정교함 그리고 힘이다. 그것도 상상을 초월하는.


멀쩡한 칼이 없는 게 그 증거. 애초 그리 쉽게 부러질 칼이 아니거니와 개중 한두 자루 부러졌다면야 우연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여섯 자루 전부 부러진 건 우연이 아니란 이야기다. 필연에, 실력에 의한 파괴라는 이야기다.


어린놈이 다른 건 둘째치고 이런 힘을 발휘했다는 말인가? 불가능한 일. 말도 안 되는 일. 이는 공력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다.


생각이 거기 이르자 불현듯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이 느껴졌다. 내가? 소이 가문의 신천이?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애송이에게 겁을 먹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일단은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상책처럼 느껴졌다. 놈을 보다 샅샅이 훑으며 실행에 옮겼다.


“누군지 물어도 답은 없을 거고.”


그러자, 놈의 음성이 피 묻은 머리칼 사이를 뚫고 다가왔다.


“과객.”


지나치게 여유롭다. 건방지고 오만하며 인정하기 싫지만, 믿을 수 없으나 과하게 차분하다. 음성과 호흡에서 떨림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는 흥분도 긴장도 하지 않았다는 뜻. 바꿔 말하면 이런 살인에 익숙하다는 의미다.


성년도 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소년에게서 찾아볼 수도, 기대할 수도 없는 평정심이라는 이야기다.


생각할수록 불길하고 또 흉험하다. 아무래도 좋지 않다. 본능이 우선은 협상을 시도하라고 명령했다.


“···네 뒤 저 자에게 우리 물건이 있다. 그것만 받으면 이대로 물러나지.”

“귀한 것인가 보군. 이리 밤중에 떼로 몰려온 것을 보면. 그것도 천진에서.”

“귀하지.”

“허면, 나도 욕심을 내봐야겠지.”

“···후회할 텐데?”

“후회는 네 수하들이 하는 중이고.”


견신이 검으로 바닥을 가리키자, 소이신천의 복면 속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금 네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냐. 이쪽은 스물이 더 있다. 약조하지.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라고. 나는 쓸데없는 손해를 줄이고 싶을 뿐, 널 어쩔 수 없어서 이러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길고 짧은 건 대봐야 하지 않나? 나도 약조하지. 그 후회, 내 몫이 아닐 것이다.”

“호위인가? 얼마를 받았든 두 배, 아니 열 배를 주지. 지금 이 자리에서.”

“아니, 불가.”

“호위도 아니다? 허면, 그냥 내주는 게 낫지 않나? 이건 너무 어리석은 선택이지 않은가. 피차 피곤한 일이잖나?”

“낮에 뭘 받긴 받아서.”

“뭘? 뭘 받았든 그 열 배를 준다. 지금.”

“산해박.”

“······?”


뱃사람으로서 산해박이 무엇인지는 마땅히 알지만 순간 잘못 들었다고 생각한 소이신천이 다시 물었다.


“뭐?”

“멀미약이라더군.”

“지금 나와 농을 하는 건가?”


그가 발끈하며 묻자, 견신이 한층 더 무심해진 표정으로 또 낮은 목소리로 압박했다.


“농처럼 보이나?”

“이익!”

“멀미약 한 알에 백성의 목숨이면 충분하지. 오지 않으면 이쪽에서 간다.”

“쳐라! 놈의 살을 찢고 뼈를 부숴 형제들의 원혼을 위···!”


견신의 경고를 듣는 즉시 뒤로 물러서면서 가신들에게 명령하던 소이신천은 찰나의 순간 분명히 그랬다고 생각했다.


“······?”


횃불 빛이 비친 거기 선실 가운데 소년 검사가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가신들도 마찬가지였다. 그에 전부, 약속한 듯 일제히 눈을 감았다 뜨면서 망막에 맺힌 상을 확인하는데···


[!!!!!!]


그런 그들의 눈과 뇌가 포착한 현상은 마치 잔상처럼 코앞까지 쇄도하는 견신과 그의 검 기여가 소이신천의 흉골 정중앙을 부수고 들어가는 모습이었다.


“커헉—!”


뇌가 인지하기도 전에 정중 흉골이 부서지고 심장이 꿰뚫리는 소이신천의 얼굴. 그 얼굴이 고스란히 담긴 견신의 눈동자.


마찬가지 그런 견신의 얼굴을 내려다보는 소이신천은 그의 목숨을 짧은 일수유에 끊어버린 사내가 암송한 문장을 듣지 못했다.


‘팔문 일식.’


검자 고견신의 검법, 그 첫 번째 의(意).

무예의 수많은 이치 중 빠름.

쾌(快). 그 극치의 다른 이름을.


‘초광(初光).’


그 이름은 첫 번째 빛이다. 매일 천지 가운데 부상하는 태양. 천지 만물이 최초로 마주하는 그 빛살. 최초의 빛. 초광이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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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35화 +13 24.08.27 8,478 385 19쪽
35 34화 +9 24.08.26 8,509 356 23쪽
34 33화 +17 24.08.23 8,866 407 20쪽
33 32화 +14 24.08.21 8,803 359 20쪽
32 31화 +23 24.08.20 8,871 360 18쪽
31 30화 +21 24.08.16 9,430 412 16쪽
30 29화 +20 24.08.15 9,012 456 21쪽
29 28화 +29 24.08.13 9,353 349 21쪽
28 27화 +23 24.08.12 9,088 373 20쪽
27 26화 +25 24.08.09 9,354 422 20쪽
26 25화 +20 24.08.08 9,775 363 18쪽
25 24화 +21 24.08.07 9,568 406 20쪽
24 23화 +19 24.08.05 9,530 369 21쪽
» 22화 +23 24.08.02 9,659 430 21쪽
22 21화 +14 24.08.01 9,905 367 18쪽
21 20화 +15 24.07.31 10,108 379 21쪽
20 19화 +21 24.07.30 10,054 440 18쪽
19 18화 +16 24.07.29 10,412 409 21쪽
18 17화 +32 24.07.26 10,331 548 20쪽
17 16화 +16 24.07.24 10,540 423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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